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93)
EP.393 393화 – 한여름 밤의 꿈 (9)
393화 – 한여름 밤의 꿈 (9)
[사〿자 : 한가〿(지〿)〿짜 : 2〿〿일 〿
현〿 위치 : —
현〿의 조〿 : 〿]
– 한가인
현실로 떨어진 후,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진짜 몸을 찾은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지?
호텔 1층은 하늘에 있을 텐데?
여기에 생각이 닿자 상황이 오히려 단순해졌다.
윙 부츠를 얻지 못한 지금, 내 진짜 몸이 비행할 방법은 강림뿐이기 때문이다.
3번째 강림을 써도 될지에 관한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으나 호텔은 천기누설을 통해 ‘써도 된다’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어렴풋한, 그러면서도 흔들림 없는 확신.
‘지금’은 강림을 써도 상관없다.
‘지금’은 뒷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이 확신이 내 결정을 도와주었다.
[강림 : 1 -> 0]*
하늘에서 빛의 파도가 내리쳤다.
벌써 세 번째 강림의 순간이건만, 껍질이 깨지며 느껴지는 고통만큼은 언제나 변함없다.
볼 수 없던 것, 들을 수 없던 것.
사람의 인지를 초월한 정보의 홍수가 뇌에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몸 전체에서 끝없는 힘이 끓어올랐다.
나 자신이 흡사 살아있는 화산으로 변한 것 같았다.
이 무궁한 힘의 축복이 내 몸과 영혼 전체에 미쳤기에 고통 또한 영원하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 주변은 이미 몰아치는 힘의 격류 속에서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익투스는 물론이고 근처까지 따라온 신도들 또한 어디론가 날아갔거나 바닥에 널브러진 상태.
어쩌면 몇몇은 이미 죽었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아폴리온, 감히 신을 자처한 오만한 자가 내 앞에 있었다.
너는 대체 무엇이지?
지난 며칠간 아폴리온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이젠 해줄 수 있으리라.
“내 입으로 이런 소리를 할 줄은 몰랐는데.”
무슨 말이지?
“야, 말은 바로 하자. 네가 무슨 신이냐?”
아폴리온의 눈이 흉험한 빛으로 물들었다.
그렇다 해도 할 말은 해야겠지.
“요즘은 무슨 개나 소나 신이래?”
곧 검붉은 악마의 몸에서 미증유의 거력이 솟구치며 주변 땅 전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문득, 며칠 전 익투스의 인도로 아폴리온을 처음 만났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 난 무슨 생각을 했던가?
순수하게 궁금했다.
현실에서 신을 자처하는 혼돈체는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을까?
실망스러웠다.
상태창의 보호 없이 순수한 페로의 몸으로 마주했는데도 위압감을 거의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미 이 우주에서 ‘신’을 자처하려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호텔에서 봤다.
죄수들은 흡사 살아있는 태양과 같았다.
턱짓 한 번으로 우주의 법칙을 농락하고, 손짓 한 번으로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낸다.
만상의 파괴와 만물의 신생이 단 하나의 점에 응축된 존재!
격이 낮은 존재는 이들 앞에서 가만 서 있는 것조차 힘들다.
그들이 무슨 악의를 품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너무 거대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태양 근처에 가면 한 줌 재로 변하는 것이 무슨 태양이 악의를 품어서가 아님과 같다.
이 정도는 되어야 신 아닐까?
그에 비해 아폴리온은 ‘잘 쳐주면’ 달 정도일까?
사람이 보기엔 달도 엄청 커 보이겠지만, 태양과 달의 질량 차이는 2,600만 배 이상 차이가 난다.
그때, 악마가 전신에 타르처럼 검은 기운을 감은 채 내게 들이닥쳤다.
아폴리온이 한 차례 공격했다.
붉은 악마의 오른쪽 뿔을 뽑고, 왼쪽 어깨의 꿈틀거리는 피부를 뜯어낸 후 가볍게 걷어찼다.
상대는 부르르 떨더니 이번엔 뿔로 번쩍이는 섬광을 뿜어냈다.
움직임을 가볍게 꺾어 회피한 후, 이번엔 아폴리온의 배에 큼직한 구멍을 뚫어주었다.
딱 두 번의 공방이 오가자 우열이 명확히 가려졌다.
애초에 이 수준에서 무슨 신을 논했을까?
“이제 네가 신을 자처한 것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알겠느냐?”
대체 왜 나를 공격하는가? 나는 네 회복을 도왔을 뿐, 해를 끼친 적이 없다.
“회복을 도왔다? 이건 사실이네. 네가 날 도왔으니 우리 사이는 친구 관계라 할 수 있지. 그렇지?”
그렇다. 우린 친구다. 내가 널 손위 형제로 섬기마, 그러니 –
“이런 말이 있어. 친구 사이엔 니꺼 내꺼가 없는 거야.”
뭐?
“서로 돕는 게 당연한 관계니까 도와줬다고 해서 내가 뭘 갚아줄 필요는 없는 셈이지.”
이 미친 새끼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
아폴리온의 말이 채 끝나기 전, 내 손에서 뻗은 빛의 파도가 그의 몸을 내리쳤다.
— 쿠르릉!
붉은 악마의 거체가 지면에 틀어박히며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온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인근에 남아있던 이놈의 신도들은 이 시점에서 대부분 죽었겠지.
새삼스레 악마 숭배자의 죽음 따위가 신경 쓰이진 않았다.
“친구 사이에 빚은 없는 것 알지? 그리고 가슴에 손을 – 손이 없네. 촉수를 얹고 생각해봐라. 니가 무슨 신이냐? 신이 무슨 나이키에서 파는 건 줄 아냐?”
— 그라아아앗!
아폴리온은 기괴한 울음을 터트리더니, 이번엔 내게 달려드는 대신 반대편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도주하며 시간 끌기?
강림에 시간제한이 있음을 고려하면 꽤 적절한 전술이긴 한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 전술을 수행하기엔 저놈이 너무 약하고 느리다.
지면을 박차며 뛰어오르는 순간, 땅에서 폭탄이 터지는 듯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지구에 가득한 대기가 점성이 있는 액체처럼 내 움직임을 방해했다.
참 불편한 행성이다.
갑자기 아폴리온이 도주를 멈추고 내 쪽으로 돌아섰는데, 위치를 보자 의도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인구 300만의 대도시인 인천을 등진 채 날 바라보았다.
아폴리온은 신이라기엔 너무 약하지만 필멸자의 틀은 분명 벗어난 존재.
그를 파괴할 정도의 공격이라면 분명 대도시에 큰 피해를 줄 수밖에 없겠지.
“이게 네 계획이냐?”
협상을 바란다. 널 방해할 생각도, 이 별에 남아있을 생각도 없다. 얌전히 떠날 테니 –
“아니, 그런 건 됐어. 넌 내가 진짜 천사인 줄 아는 모양이네.”
웃음이 나왔다.
물론, 지금 내 모습이 누가 봐도 신이 내린 천사의 외형이긴 하다.
그러니 저 악마도 천사가 민간인을 함부로 해치지 않으리라 생각했겠지.
“가는 길 외롭지 않게 인간 한 10만 명하고 같이 보내주마. 잘 가라 ‘친구’.”
천상의 파도가 내 손끝에 깃들었다.
이 힘은 신의 유체였던 ‘태어나지 못한 자’ 또한 허투루 대하지 못한 공격.
저 나이키 좌판대에나 올라갈 자칭 신이 감당할 수는 없다.
피할 수 없는 파멸을 깨달은 아폴리온의 얼굴에 암울함이 깃들었다.
그리고 내 손이 10만의 인간과 1마리의 악마에게 준엄한 심판을 내리려는 그 순간 –
최초로 균열을 느꼈다.
이런 짓은 해선 안 된다.
102호에선 도시 하나도 날렸는데?
그곳은 현실이 아니지만, 이곳은 현실이다.
아니다. 나는 이 장소를 저주의 방과 다름없이 여긴다.
내 현실은 아닐 수 있으나, 동료의 현실이다.
대체 그 의미 없는 구분에 무슨 논리가 있지?
기묘한 문답.
내가 나에게 묻고, 내가 나에게 답한다.
누가 묻고 누가 답하는가?
이것은 자문자답인가? 아니면 분열된 자아의 문답인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질문과 답변이 분명 존재함을 알았다.
그리고….
또 다른 논리가 나타났다.
근처에 관리국의 군대가 왔다.
3일간 군대를 보내지 말라고 했는데, 약속을 어겼나?
아니다. 약속의 내용을 정확히 할 때, 아폴리온이 내 몸을 찾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면 내 몸을 되찾을 때까지 개입하지 않았으므로 약속 위반은 아니로군.
근처에 관리국의 군대가 있다. 저들 앞에서 인천 시민을 학살하면, 관리국과도 싸워야 한다.
이미 아폴리온에게 꽤 많은 힘을 썼으니 적을 섣불리 늘리는 것은 현명치 않아.
‘우리’의 아버지도 관리국을 경계했음을 생각하라.
그러므로 관리국을 우습게 보는 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다.
이번의 논리는 두 명의 나를 모두 설득할 수 있었다.
균열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 나는 ‘내’가 깨어났음을 알았다.
나는 나다. 그렇다면 조금 전까지의 나는 내가 아니었나?
이게 대체 –
떠나도 되겠나?
아폴리온의 목소리가 내 정신 속 혼란을 멈췄다.
지금까지의 상념은 시간으로 치면 1초 미만.
인간에게는 짧은 시간이나 나와 저 악마의 영역에선 제법 긴 시간이다.
내가 공격하지 않고 침묵하자 아폴리온은 자신을 살려주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
아폴리온은 안심했다는 듯 빠르게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대한 정교하게 조준한 천상의 물결이 악마를 강타했다.
아폴리온이 파멸했다.
*
붉은 악마의 형체가 으스러지는 순간, 그 힘의 여파가 인천을 향해 퍼져나갔다.
이대로 두면 아까처럼 10만 명의 희생까진 아니겠으나 수천의 희생은 피할 수 없는 상황.
다행히 내 예측대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관리국 세력이 정체불명의 기기를 조작하자 육각형 패널이 여럿 모인 듯한 불투명한 방벽이 인천 하늘을 덮었기 때문이다.
201호, 202호에서 연이어 겪었듯이 관리국의 기술은 정말이지 마법 같았다.
어쩌면, 마법과 기술의 경계는 진정으로 높은 이가 보기엔 무의미한 것인지도 모른다.
관리국 쪽에서 헬리콥터 한 대가 날아왔다.
미사일이나 기관총이 없는 것으로 미뤄볼 때 공격 의사가 없는 것 같았다.
… 아마도 저 안에 요전에 만난 박 부장이 있겠지
그는 제법 교활하며 말재간이 뛰어났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함정에 빠지기 쉬울 것 같았다.
지상에서 처리할 일은 다 끝났으니 번잡스러운 일을 겪고 싶지 않기도 했고.
그래서 무시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제 호텔로 돌아갈 시간이다.
…
처음으로 인지한 균열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나와 대화하던 순간의 기억.
분명 타인은 아니나 명백히 구분이 생긴 존재를 느꼈다.
그와 나는 하나의 뿌리에서 자라났으되, 둘로 갈라진 나무와 같았다.
그는 계시(Revelation)였다.
생각이 여기에 닿자, 나를 주시하는 시선을 느꼈다.
나는 계시를 보았다.
계시는 나를 보았다.
싸워야 하나?
지금 저 존재를 제압해서 내 정신의 순수성을 되찾아야 하는가?
그때, 계시가 손을 들어서 날 멈춰 세웠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지금의 내가 호텔의 기묘한 장난질에 휘말린 상태임을 알았다.
혹은 처음부터 알고 있던 것 같기도 했다.
꿈과 현실이 기이하게 뒤섞였다.
지금까지 겪은 모든 일이 허상이라는 말은 아니다.
오늘의 일은 분명 별의 역사에 영원히 기록되리라.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호텔의 이벤트 종료 시 내게 일어난 일은 전부 초기화된다.
지금 승부를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인내하라. 어차피 때가 머지않았음이야.
너에게서 내 순수성을 되찾겠다.
참으로 미욱한 생각이로다. 그 몸, 잘 간수하고 있으라.
… 불쾌한 대화였다.
*
인천 하늘이 다시금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나 지상의 혼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부장님, 더 이상 놈을 관측할 수 없습니다!”
박현민에게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하늘로 날아간 ‘천사’가 갑자기 사라졌다.
인간의 표정까지 구분할 수 있는 정밀한 인공위성들조차도 천사의 흔적을 놓쳤다.
당연한 일이다.
호텔은 자격 없는 이가 함부로 접근할 수 없음은 물론, 관측할 수도 없는 장소이므로.
이게 가능했다면 관리국은 호텔에 사람들을 1,000명씩 들이부었으리라.
“그만 추적하라 하게. 시간 낭비니까.”
“알겠습니다.”
참가자의 힘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나, 박현민이 생각하기에 저런 존재가 인간이라는 말은 닭과 티렉스가 같은 공룡이라는 말과 비슷했다.
그리스신화에서 튀어나온 올림포스의 미친 신들과 다르지 않았다.
“걱정스럽군.”
“부장님?”
다시금 그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여긴 내 세계가 아닙니다.’
이 말은 어딘가엔 ‘자기 세계’가 있으리라는 믿음을 내포하고 있다.
관리국이 아는 한 그런 것은 없다.
올림포스의 미친 신은 마지막까지 세상의 진실을 깨닫지 못했다.
이는 그의 능력이 부족했음은 아니다.
진실을 알아챌 수 있는 시기가 있고,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니다.
덕분에 그는 존재하지도 않는 고향을 찾기 위해 순순히 호텔로 다시 들어갔다.
… 언젠가 저자가 진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이 걱정이 박현민을 두렵게 만들었다.
“부장님, 지금 막 임시 파일 올라왔습니다!”
「‘별빛 천사’
일련번호 : C-003
위험 등급 : 계측 불가
인천 하늘에서 나타난 정체불명의 존재.
천사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A등급 개체 아폴리온을 파괴했다.
관리 절차 : 격리(Contain)
인간을 적대하는지 불분명한 만큼 섣불리 접근하지 말고 관찰할 필요가 있다.
+ 임시 파일이므로 불확정 정보가 많음을 명심할 것!」
“…”
“아무래도 알아낸 게 거의 없다 보니 정보가 부실합니다.”
“돌아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