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94)
EP.394 394화 – 한여름 밤의 꿈 (10)
394화 – 한여름 밤의 꿈 (10)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231일 차
현재 위치 : —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하늘을 날아 호텔로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날 반긴 존재는 동료들이 아니었다.
멀리서 시꺼멓고 걸쭉한 덩어리가 슝 하며 날아왔다.
이게 대체 뭔가 싶어 호텔을 살피자 말문이 탁 막혔다.
“대체 무슨 일이지?”
눈 앞에 보이는 흉물스러운 무언가는 누가 봐도 ‘호텔’이 아니었다.
비슷한 건물을 인류 문명이 멸망하고 억겁의 세월이 흐른 203호에서 많이 봤다.
반쯤 폐허가 된 콘크리트 덩어리 여기저기를 정체불명의 식물이 덮고 있었고, 상단의 거대한 꽃이 내 쪽을 ‘바라보며’ 걸쭉한 점액을 포탄처럼 쏘아댔다.
“후우….”
다행히 아폴리온이 그리 강하지 않았기에 강림의 힘이 약간 남아있었다.
원거리에서 꽃을 요격한 후, 다시 호텔 정문을 열고 –
“아 진짜 이거 뭐냐고!”
정문을 열자마자 붉은 살덩어리가 데굴데굴 굴러왔다.
호텔을 더 부수고 싶진 않았기에 힘 조절해서 살덩어리를 쳐내야 했다.
장내의 상황은 난장판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눈을 부리부리하게 뜬 채 천장을 뜯어내고 있는 검은색 거인.
사방에 뿌리를 뻗느라 정신없는 넝쿨 괴물.
다시 굴러가기 위해 자리 잡은 살덩이.
여기저기서 날아다니는 유령.
“…”
이쯤 되자 그냥 말문이 막혔다.
*
1층을 돌아다니며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괴물을 끝없이 쏟아내는 공간의 틈 같은 것이 여기저기 발생해있었던 것.
이런 균열들은 실체가 없는 무언가라 파괴할 방법도 없었다.
다행히 상태창의 ‘동료 위치 정보’에 따르면 죽은 사람은 없었고, 다들 2층에 있었다.
결국, 남은 약간의 힘은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데 다 쓰였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와서 비로소 안정을 찾자 강림한 후 줄곧 내 옷 틈에 들어가 있던 페로가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언젠가부터는 나를 참 싫어하는 녀석인데, 내가 생각해도 날 싫어할 이유가 너무 많아서 그냥 받아들였다.
그런데도 지금처럼 주변이 답 없이 위험하다 싶으면 말없이 내게 찰싹 붙어있다.
“확실히 우리 페로가 똑똑하긴 똑똑해.”
페로는 내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고, 엘리베이터가 2층에 도착하자마자 벼락같이 튀어 나갔다.
“그렇게 싫었냐….”
이해는 한다.
— 푸드덕!
벼락같이 튀어 나간 앵무새가 숨 한번 고르기도 전에 다시 내게 돌아왔다.
“…”
갑자기 내가 좋아져서는 아니겠지.
딱 보니까 2층 꼬라지도 답이 없었다.
“창문! 창문 막아!”
“정문에서도 뭐 하나 들어온다!”
“하, 할아버지! 위쪽이요!”
“와! 이 씨부럴 놈들은 어디서 이렇게 튀어나와?”
오랜만에 보는 동료들은,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는데도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유령과 괴물이 정신없이 침입하고 있으니 그럴 상황이 아니기도 했고.
결국, 환영 인사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눈빛으로만 복귀 신고한 후 죽어라 싸워야 했다.
*
30분쯤 흐른 후에야 간신히 주변을 정리하고 이야기할 틈이 생겼다.
“2층이 그나마 괜찮은 상황이라고요?”
“그렇다니까? 가인이 너, 1층 정문으로 왔다며? 1층 꼬라지는 어땠냐?”
“… 아예 폐허 비슷했죠. 괴물의 번식장?”
“거긴 이미 호텔은커녕 건물도 아니야. 참고로 지하도 별 차이 없다. 그나마 2층이 멀쩡해.”
“엘리베이터는 멀쩡하던데 거기서 버티는 게 낫지 않아요?”
“처음엔 거기서 쉬었는데,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우릴 ‘이상한 장소’에 데려가려고 했어.”
“…”
2층의 경우, 괴물이 튀어나오는 균열이 호텔 내부엔 없고 외부의 설원에만 있었다.
또, 괴물이 끊임없이 나오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 비는 시간이 길어 숨돌릴 시간이 있었다.
“한 서너 시간은 얌전할 거야. 그동안 계속 그랬으니까. 눈 붙일 사람은 다들 쉬어!”
아리가 굳이 외칠 것도 없이 미로나 엘레나는 이미 벽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2층만 이렇게 버틸만한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2층에서 소원을 빌어서 그래.”
은솔 누나의 우울한 표정에 그 답이 있었다.
정신 착란에 빠진 채 초강력 소원을 빌었는데, 소원을 빌 당시 누나가 2층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기력이 남은 할아버지와 아리가 내 궁금증을 해소해주었다.
예컨대, 지금 호텔에서 진행 중인 이벤트의 이름을 알았다.
“‘한여름 밤의 꿈’이라고요?”
“2층 디스플레이에 그렇게 나오더라. 지금은 그것도 작살났지만.”
“파티타임 종료 시 이벤트도 종료한다라….”
“호텔 새끼들이 설명도 짜증 나게 적어놓은 것 아냐? 재미있는 이벤트니, 행복한 시간 보내란다!”
“…”
아리가 한숨 한번 쉬며 설명해줬다.
“재밌진 않아. 그래도 우리에게 손해인 이벤트는 아니야. 그러니까 파티타임인데도 시작했겠지만.”
모두가 얻은 성과를 하나하나 정리해봤다.
진철 형은 ‘아리마’의 환영을 직접 만나 기묘한 제안을 받았고, 승엽이와 상의까지 끝냈다고 한다.
“며칠 전에 네가 올빼미에게 들었지? 마녀를 영혼의 함에 담을 특별한 방법이 있다. 그걸 마녀가 직접 알아냈어.”
“뭔데?”
“아리마는 본인을 컴퓨터 바이러스 비슷한 존재로 여기는데, 이 비유에 따르면 영혼의 함은 컴퓨터를 담는 도구야. 그러니 바이러스 그 자체를 담진 못한 거지. 영혼이 아니라 정신 데이터일 뿐이니까.”
비유를 듣자마자 정답이 바로 떠올랐다.
“감염된 컴퓨터를 담으면 되겠구나.”
“저주의 방 NPC 중 한 명의 몸을 자기가 빼앗겠다네. 그 NPC를 담으면 된대.”
할아버지와 승엽이, 송이는 술자리에 끼지 않아서 이벤트에 휘말리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은솔 누나는 이번에도 신기한 보상을 얻었다.
“‘신비의 장인’의 강화 이벤트?”
“가끔 궁금하긴 했어. 저놈의 장인이 하는 역할은 윙 부츠 제작뿐일까? 역시 아니었네. 탐욕의 손으로 조종할 수 있었어.”
여기서부터 건너편에 있던 누나가 직접 와서 설명했다.
“가끔 아쉬웠거든. 내게 이런저런 도구는 많은데, 뭔가 애매하다? 다 뛰어난 마법 도구지만 어딘가 애매해. 이유도 어느 시점부턴 알았어. 소원의 ‘출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지.”
이 말은 쉽게 이해했다.
“지금처럼 빌어야 했던 거네요. 동료의 사정 따위 봐주지 말고 약한 놈은 뒤지시든가 하면서 빌어야 했구나.”
“… 뒤지시든가 까진 아니었어. 그냥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았다 쪽에 가까워.”
“그래서 기존의 도구를 강화하고 싶다고 빌었어요?”
“응.”
신비의 장인, 그 레고 인형이 갑자기 뚜벅뚜벅 다가와 누나의 도구들을 가져갔다고 한다.
“투명 배지, 나비 브로치, 쉐프 모자. 눈 빼고 도구 셋을 가져갔어. 눈은 엄밀히 말해 내 것이 아니라 빌린 것이라 강화 대상이 아닌가 봐.”
“그래서 강화해줬어요?”
“아직.”
“예? 아니, 주변에 괴물이 이렇게 많은데 왜 지금 안 주고 -”
“좋은 지적인데, 한 가지 확인하고 싶어. 너도 신비의 장인에게 가봐. 윙 부츠 재료 이제 다 모았으니까.”
윙 부츠.
무려 호텔 도착 첫날부터 존재가 암시된 탈출 도구, 하늘을 나는 신발.
당시엔 윙 부츠에 관한 생각만 해도 마음이 두근거렸지.
지금 다시 생각하니 그때만큼 간절하진 않았다.
애초에 도구 없이도 날아서 탈출했다가 돌아온 상황이다.
밖에 나가보니 윙 부츠를 통한 탈출은 ‘진정한 탈출’이 아님을 깨닫기도 했고.
물론, 윙 부츠는 호텔 내부 진행을 위해서도 충분히 유용한 도구다.
“참가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호텔 파이오니어에서 즐거운 시간 -”
설명을 다시 들어도 참 길다.
“- 1번을 눌러주세요.”
1번을 눌렀다.
“하늘을 나는 신발, 또는 윙 부츠. 공용 아이템이므로 획득 후 참가자 모두가 쓸 수 있습니다. 착용 시 비행할 수 있으며, 충분히 훈련한다면 정문을 통해 호텔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알고 있던 이야기다.
“제작을 위한 재료가 전부 확보되었습니다. 제작 의뢰를 진행하시려면 1번을 눌러주세요.”
새삼 든 생각인데, 어차피 1번만 누르는데 키패드는 왜 만들었나 모르겠다.
— 삑!
다음 순간, 신비의 장인이 윙윙거리며 진동하더니 허공에 세 개의 재료가 나타났다.
재료 하단에 뜬 작은 알림창에 설명도 쓰여있었다.
벽력의 힘조차 버텨내는 투사의 털(차진철, 204호 호텔 시네마에서 획득)
정점에서 만물을 관조하는 자의 안구(이은솔, 203호 새로운 시작에서 획득)
태풍을 뚫고 비상하는 새의 날개깃(한가인, 1층 외부 하늘에서 획득)
“윙 부츠 제작을 진행하겠습니다. 완성품은 내일 배송됩니다.”
신비의 장인은 이 말을 끝으로 조용해졌다.
“내일?”
굳이 내일일 필요가 있나?
제대로 쉰 적이 없어서 아쉽긴 하나 오늘이 파티타임 마지막 날이다.
오늘 줘야 하루라도 써볼 수 있을 텐데.
내일 주면 연습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로 저주의 방에 들어가야 한다.
그때, 은솔 누나가 한숨 쉬었다.
“역시네. 내 도구들도 싹 가져가더니 내일 주겠다고 했어.”
“왜 내일일까요?”
대답은 뒤에서 아리가 줬다.
“그래야 사라지지 않으니까.”
“…”
그 말을 듣자마자 깨달았다.
밖에서도 어렴풋이 느꼈고, 호텔로 돌아와 동료들의 설명까지 듣고 확실해진 사실.
지난 일주일간 한여름 밤의 꿈에 휩쓸려 벌어진 일은 이벤트 종료와 함께 초기화된다.
미로가 소모한 자정의 미로의 시간이나 박살이 난 호텔의 상태, 내 강림 횟수 등은 모두 회복된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 강화된 도구나 윙 부츠를 주면 이벤트 종료 시 사라진다.
“이벤트 종료 후에 준다는 소리였구나.”
“일종의 배려라고 봐야겠지.”
우릴 엿 먹일 생각이었다면, 지금 준 다음에 내일 이벤트 종료하자마자 ‘수고’하고 없애버렸겠지.
호텔답지 않게 배려해준 셈이다.
“…”
초기화라는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뒤로 돌아 엘레나와 미로를 확인했다.
두 사람은 내가 돌아온 후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무지하게 어색하다.
솔직히 무슨 만화에서나 나오는 둔감 속성도 아니고, 전혀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미로는 워낙 어린애 같을 때가 많아서 헷갈렸어도 엘레나는 알았다.
하지만,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과 밖으로 꺼내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이벤트가 끝날 때 기억도 지워줬으면 좋겠다.
“흠, 흠!”
그때, 아리가 헛기침하며 주의를 끌었다.
“이제 대충 모두가 뭘 얻었는지 이해했지?”
진철 형과 승엽이는 아리마와 관련한 고민 혹은 보상을 얻었다.
은솔 누나는 강력한 도구를 얻을 예정이다.
할아버지와 송이는 이벤트와는 무관하나, 축복 강화를 얻었다.
엘레나와 미로는…. 마음의 짐을 덜어낸 셈 치자.
나도 바깥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했고, 강림의 진정한 대가가 무엇인지 깨달았으니 성과가 있다.
언제나 그랬듯 이번 파티타임에도 이것저것 많이 얻어간 셈이다.
“아리 넌 뭘 얻었어?”
“… 호기심 해결?”
아리도 무언가 얻었다니 다행이다.
딱 한 사람만 남았다.
그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 말에 주변 동료들의 표정이 죄다 어두워졌다.
“돌아오실 방법을 찾지 못하신 건가? 아오…. 선생님도 탈출하신 줄 알았으면 내가 챙겨서 데려왔을 텐데!”
박 부장에게 요청했다면 찾아주지 않았을까?
그때, 할아버지가 우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선생은 가인이 너랑 상황이 다르다.”
“네?”
“… 예전에, 공포의 저택에서 처음 탈출했을 때의 대화 기억하냐?”
“오래된 일이라 가물가물하네요.”
“탈출에 성공하면 호텔에선 내보내면서 ‘입장권’을 준다고 했지.”
“아, 기억났다! 탈출자 본인 혼자만 쓸 수 있는 -”
말하다 보니 당황했다. 난 그런 것 없었는데?
“뭐야? 왜 저는 안 줬죠? 그걸 줬으면 개고생할 이유가 없었는데?”
아리가 바로 설명해줬다.
“탈출 도구를 쓰지 않아서 그래.”
“아?”
“방호복, 윙 부츠. 탈출 도구를 써서 해당 루트로 나가면, 도구가 밖에 나가자마자 입장권으로 바뀌어.”
“… 그 말은.”
“상현이는 너랑 달리 방호복을 입고 나갔어. 즉, 입장권이 있어.”
“…”
주변이 조용해졌다.
나와 달리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입장권을 가지고 있는 의사 선생님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
모두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불길한 가설을 떠올렸다.
선생님은 우리보다 탈출에 대한 갈망이 훨씬 강한 사람이다.
그때, 할아버지가 툭 내뱉었다.
“곧 돌아올 게다.”
“…”
“그 녀석은 분명 ‘며칠만 쉬겠다’라고 했거든. 호텔에도 휴가가 있어야 한다더라.”
“…”
“호텔 꼬라지가 이렇게 개판이 된 줄은 모르고 있겠지. 은솔이가 탐욕의 손을 쓰기 전이었으니까. 그래서 우리도 그냥 잘 노는 줄 알고 있을 테고, 본인도 겸사겸사 쉬고 있는 거야.”
할아버지의 믿음이 진실일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