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95)
EP.395 395화 – 한여름 밤의 꿈 (11)
395화 – 한여름 밤의 꿈 (11)
– 7일 전, 김상현
“어디 보자…. 가인 군이 말한 장소가 여기인가?”
호텔 엘리베이터 계기판 하단엔 붉은 버튼이 있었다.
“너무 대놓고 있으니 오히려 의심하기 어려웠겠는데?”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 벽면 일부가 뒤집히며 키패드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옆에 새겨진 작은 글씨.
“이건 호텔에서 내분용으로 적어둔 건가?”
만일 그렇다면, 부정적인 의미로 참 꼼꼼한 인테리어다.
비밀번호 87439124를 눌렀다.
— 위이잉! 위이잉!
「긴급탈출 가동! 긴급탈출 가동!」
이윽고 엘리베이터 내부가 어두워지며 요란한 소음이 내부를 가득 채우는가 싶더니 – 엘리베이터가 난데없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무슨 우주선도 아니고 이게 뭐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마치 작은 동물이 된 채 고속 회전 중인 세탁기 내부에 들어간 것 같았다.
충격을 견디지 못한 엘리베이터 문이 덜컹거리는가 싶더니 활짝 벌어졌다.
바깥은 지옥이라는 단어 말고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용암과 불꽃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누군가가 끝없이 비명 질렀다.
적어도 한 가지 사실, 엘리베이터를 통한 탈출에 방호복이 필수인 이유를 알았다.
용암과 불꽃이 엘리베이터 내부로 마구 들이쳤기 때문이다.
어설픈 간이 방염복 따위였다면 버티긴커녕 이 시점에서 이미 죽었겠지.
엘리베이터는 타오르는 지옥을 뚫고 끝없이 날아갔다.
*
“이봐, 괜찮아요?”
“…”
“병원에 가보시는 게 어때요?”
“… 아.”
“저기요?”
“괜찮습니다. 잠시 생각 좀 하고 있었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따스한 햇볕 아래 멍하니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근처에 지나가던 학생이 괜찮냐고 묻는 것을 보아하니, 제법 오래 가만히 있던 모양이다.
주변 풍경을 돌아보며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나는 미국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 중 하나인 텍사스의 주도, 오스틴 외곽에서 깨어났다.
고등학교를 오스틴에서 나왔기에 잘 알고 있다.
둘째, 이 세상은 내 고향이 아닌 것 같다.
— 탕!
“이봐! 눈이 없나? 가만히 서서 뭐 하는 거야?”
“… 죄송합니다.”
조금 전, 나를 빤히 바라보던 사슴의 눈이 갑자기 붉게 물들었다.
주변을 순찰하던 경찰이 당연하다는 듯 엽총을 연거푸 갈겨 사슴을 고깃덩어리로 만들었다.
이곳은 이런 세계다.
*
경험상, 몇몇 한국인들은 미국의 치안에 대해 이상한 편견이 있다.
경찰은 물론이고 범죄자들이 수시로 총격전을 벌인다는 인식을 말한다.
단호히 말하지만, 소득을 비롯한 생활 수준이 최하위권인 일부 슬럼가의 문제다.
미국 남부의 핵심이자 경제 발전의 주축인 텍사스 같은 주에서는 더더욱 해당 사항 없는 이야기다.
적어도 내가 아는 미국은 그랬다.
이곳은 아닌 것 같다.
조금만 걷다 보면 플레이트까지 덧붙인 방탄 방검복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산탄총은 물론이고 돌격소총까지 대놓고 드러낸 상태였는데, 주변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난데없이 최면술을 쓰려하는 사슴이나 ‘포식형’ 비둘기가 날아다니는 세상이라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 역시 내 고향이 아니구나.”
얼마든지 이럴 가능성이 있었기에 놀라진 않았다.
동료들과 대화하며 여러 번 느끼지 않았나?
우리가 기억하는 현실의 모습이 너무나 달랐다.
가인 군은 관리국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비밀 조직 정도로 여겼으며, 괴물은 세계 뉴스 항목에서나 가끔 봤다고 한다.
송이 양은 정반대였는데, 집마다 레이저 포탑과 전술 드론이 배치된 환경이 당연하다 여겼다.
나는 저 둘 사이였다고 봐야겠지.
괴물 관련 소식을 ‘국내 뉴스’ 항목에서 자주 보는 정도?
적어도 지금처럼 어디 고개 한번 돌리기 무서울 정도로 흉흉한 환경은 아니었다.
그때, 손에 딱딱한 종이 한 장이 들려있음을 깨달았다.
“입장권.”
호텔 산 물건이 으레 그렇듯이 저절로 그 정체와 사용법을 알았다.
입장권은 방호복이 변해 만들어졌으며, 이걸 찢으면 호텔로 돌아갈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이 들었다.
설마 이대로 방호복을 영영 상실하는 건가?
그렇다면 내가 꽤 큰 사고를 친 셈인데….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저지른 행동이니 동료들이 이런 문제로 날 책망할 리는 없다.
그러나 누구 책임이냐를 떠나서 방호복의 상실은 제법 뼈 아팠다.
“조니! 제임스가 길에서 넋 놓고 있는 멍청이가 있다고 불평하더니, 그게 설마 너일 줄이야!”
“…”
“여기서 뭘 하고 있니? 오스틴에 돌아왔으면 내게 연락부터 하지 않고!”
“… 마마.”
*
“예전에 무슨, 뉴욕이었나? 의대에 합격했다고 하지 않았니?”
“…”
“그런데 왜 – 아니다.”
“…”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있는 법이지. 밥은 먹었니?”
“아닙니다.”
“잘 됐구나. 소파에서 쉬고 있으렴.”
마마 셰리.
흑인이며, 오래전에 사고로 남편과 자식을 잃었고 재산이 제법 많다.
가족을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자선사업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인근의 가난한 유색인종 아이들을 데려다가 밥을 먹이고 학비를 보태주었는데, 덕분에 인근에선 일종의 대모로 여기며 제법 인망 있는 사람이다.
참고로 그 도움을 받은 사람 중 한 명이 나다.
그래, 여기까진 좋다.
어릴 때 내게 은혜를 베푼 분이니 만나서 기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분명 내가 지능이 낮은 사람은 아닐 텐데.
애초에 이 장소는 내가 살아온 세계가 아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이상하고, 그녀가 날 알아보는 것도 희한하다.
혹시 이곳은 일종의 평행세계고, 마마 셰리는 ‘평행세계의 나’를 알아본 건가?
“소파에 있는 널 보고 있으니 예전 생각이 드는구나! 네가 웨스트우드의 2년 차일 때 말이지 -”
“웨스트우드 고등학교가 여기 있습니까?”
“음? 당연히 오스틴 Anderson Mill에 -”
여기까지 말하던 마마가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 Anderson Mill에 있는 학교는 애스터레이크였지?”
“그렇죠. 아까 봤습니다.”
“어…. 어?”
“마마, 전 애스터레이크 나왔습니다.”
“그랬니? 아무래도 내가 헷갈린 모양이다. 이해하렴, 너도 나만큼 나이 먹으면 알게 될 거야. 기억이 오락가락하거든.”
“그럴 수 있죠.”
아니다.
마마 셰리의 기억은 정확하며, 나는 웨스트 우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이 세계에 그런 학교는 없다.
내 모교가 있던 장소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애스터레이크라는 학교가 자리 잡고 있었다.
조금 전, 마마 셰리는 이 세계엔 존재하지도 않는 고등학교를 떠올리며 정확히 ‘나’라는 사람을 떠올렸다.
점점 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기괴한 사실이 하나 더 있었는데, 나와 마마의 나이 차이다.
내가 10대 중반일 때 마마는 이미 40대 후반이었다.
지금 난 호텔에서 보낸 시간을 빼도 40이 훌쩍 넘었다.
그렇다면, 마마의 나이는 70을 넘어 80에 가까워야 하는데 눈앞의 그녀는 아무리 많이 쳐도 60대 정도로 보였다.
이해할 수 없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도리어 마음이 차분해졌다.
호텔에서 쌓아온 경험이 내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다면 그저 받아들이고, 더 생각하지 마라.
*
다행히 마마는 본인 기억의 모순을 느끼지 못했다.
예컨대, 존재하지 않는 학교 같은 것은 단순한 착각으로 치부했다.
나이의 문제 역시 단순하게 받아들였다.
“조니, 대체 뉴욕에서 얼마나 고생한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마마는 내가 고생을 많이 해서 얼굴이 삭았다고 여기는 듯하다.
“대체…. 너처럼 똑똑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꼬!”
“그러게 말입니다.”
나도 내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며칠이라도 좋으니 여기서 좀 쉬려무나. 부모님은 잘 계시니?”
“돌아가셨을 겁니다.”
사실, 이 세상에 존재했는지부터 의문이다.
“어머! 세상에! 미안하다.”
“아닙니다.”
이 질문 이후로 그녀는 더 이상 ‘조니의 불행한 과거사’에 관해 묻지 않았다.
물론, 그녀의 머릿속에서 한편의 비극적인 주말 드라마가 쓰이고 있는 것 같긴 했다.
똑똑하고 재능있는 아시안 소년, 조니 킴.
이기적이고 편협한 뉴요커들 사이에서 인생을 허비한 끝에 허무함을 느끼고 고향에 돌아오다.
대충 이런 내용 아닐까?
마마의 풍부한 표정 변화를 보아하니 그녀의 마음속 귀여운 조니 킴이 인생의 크나큰 굴곡을 맞이한 듯했다.
이런 것도 그냥 받아들이자.
어차피 진실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먹을 만하니?”
“그럼요. 마마의 검보(Gumbo) 요리 실력이 예전보다 더 좋아지셨군요. 닭고기는 수프에 넣기 전에 미리 한번 구우신 것 같고, 새우 식감이 굉장히 탱글탱글합니다. ”
“…”
“또, 검보에 들어간 양파의 단맛이 훌륭한데, 수프에 넣고 끓인 것 같지 않습니다. 별도로 캐러맬라이징해서 넣으신 건가요?”
“조니, 혹시 뉴욕에서 레스토랑을 차렸었니?”
“그건 아닙니다.”
점점 마음이 편안해졌다.
부모님은 아니나 그 못지않게 고마운 분을 만나서 대접받으니 제법 각별했다.
복잡한 생각은 머리 한구석에 치워놓기로 했다.
“어디 갈 곳은 있니?”
“…”
“아까 말했지? 며칠 머물러도 상관없단다. 어차피 나 혼자 살기엔 큰 집이야.”
*
늦은 밤.
— 끼이익!
창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흠칫하며 잠에서 깼다.
…
창 너머 어두운 공간, 희미하게 발광하는 정체불명의 형체가 보였다.
가만히 있다 당할 생각은 없었기에 몸을 일으킨 후, 침대 옆에서 굴러다니는 골프채 한 자루를 쥐었다.
그때, 숨죽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니, 조니!”
“… 마마?”
“얌전히 있으렴. 가만 있으면 곧 지나갈 거야.”
공포영화에서나 나올 장면인데 태연하기 그지없는 노인의 태도는 많은것을 시사했다.
나처럼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의미다.
“저건 뭡니까?”
“나도 잘 모른단다.”
“관리국에 신고는 하셨습니까?”
“신고는 했지만…. 알잖니? 그 친구들이 좀 바빠야 말이지!”
“…”
— 끼이익!
다시금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총 있습니까?”
“조니, 그냥 기다리면 -”
“죄송한데, 제가 마마보다 이런 문제는 더 잘 압니다.”
“…”
그녀는 저 괴물에 대해 뭔가 잘 알아서 기다리자는 게 아니다.
어차피 대항할 힘이 없으니까, 관리국에 신고해도 처리해주지 않으니까 덜덜 떨고 있을 뿐이다.
이런 무력함은 ‘지켜지는 사람’의 대응이지, ‘지키는 사람’의 대응이 아니었다.
“총 있습니까?”
“… 산탄총, 더블 배럴로 한 자루는 있지.”
“주시죠.”
“내, 내가 관리를 잘 안 해서 -”
“괜찮습니다.”
제법 긴 밤이 될 모양이다.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