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96)
EP.396 396화 – 한여름 밤의 꿈 (12)
396화 – 한여름 밤의 꿈 (12)
– 김상현
호텔에서 동료들과 대화하며 종종 느꼈다.
그들은 러시아 태생인 엘레나 양을 포함한 전원이 한국에서 살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살아온 내 경험과 다른 부분이 적지 않았다.
예컨대, 괴물을 민간인이 구축하는 상황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였다.
이런 종류의 대화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 두 요원을 배제하면, 동료 중 가장 흉험한 환경을 경험해온 사람은 의외로 송이 양이다.
그런데, 송이 양조차 괴물은 당연히 관리국 군인들이 상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개별 가정에서 레이저 포탑 등의 보안 설비를 설치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괴물을 적극적으로 잡는 건 관리국의 몫이라고 여긴다.
이것은 한국의 상식이며 미국의 상식이 아니다.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
원래 홈 디펜스는 경찰이 오기 전에 각자 알아서 하는 나라가 아니었던가?
이런 차이를 분석하기 위해 프런티어 정신이니, 청교도 사상이니, 건국의 아버지니 하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없다.
많은 지역에선 경찰이든 관리국이든 한 시간 내에 온다고 장담할 수 없는 나라다.
이 정도 시간이면 괴물이 일가족을 다 잡아먹은 후, 뼈까지 수프로 끓여 먹는다.
그러므로 잡스러운 괴물은 민간인도 처치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걸 할 수 없는 사람은 이미 잡아먹혔다.
*
어두운 밤, 달조차 사라진 세상.
텍사스의 밤은 내 손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그러나 전방에서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무언가가 계속해서 내 주의를 끌고 있었다.
— 철컥!
샷건의 상황을 다시 확인했다.
셰리 마마가 평소에 잘 관리하지 않아서 외견은 더러웠으나, 기능상 문제는 없다.
“…”
내가 멈춰서 총을 확인하자 상대도 멈췄다.
마치 날 어딘가로 유인하는듯한 행동.
따라가는 게 맞나?
최후의 섬광만 쓸 수 있었다면 고민하지 않았을 텐데, 이번에도 섬광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호텔에서 미로가 또 내 레이저를 쓴 모양이다.
물론 필요해서 썼겠으나 나로선 당황스러웠다.
20분 정도 추격하자 어렴풋이 빛나는 형상이 오스틴 외곽의 숲 쪽으로 들어섰다.
“… 이건 아니군.”
내가 아는 오스틴에 이런 숲은 없었다.
전혀 모르는 지형이고, 어쩌면 정체불명의 존재가 만들어낸 지형일지도 모른다.
결국 첫날 밤은 별 소득 없이 돌아왔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식사 중 내 말을 들은 마마가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조니, 네가 말하는 위치라면 아마 애스터레이크 쪽일 거야.”
또 애스터레이크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 대신 있던 학교의 이름도 애스터레이크 고등학교였지.
“오스틴 사람들이 산책할 때 자주 가는 장소인데, 밝을 때 한번 가보렴. 넓고 물이 깨끗한데다가 경관이 좋지.”
“혼돈체는 없습니까?”
“혼돈체? 데몬? 글쎄, 네 말대로면 빛나는 무언가가 호수 쪽으로 향한 모양이긴 한데….”
셰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애스터레이크는 매일 수백 명 이상이 산책하는 안전한 장소라 강조했다.
그 말을 듣자 나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우선 관리국에 한 번 더 신고해보마. 그래봐야 별 도움은 안될 거야. 그 친구들은 지금 뉴올리언스의 크라켄과 싸우느라 바쁘거든.”
“…”
그렇지 않아도 아침부터 뉴스에서 나오고 있었다.
다리 길이만 300M가 넘는 초대형 문어 괴물이 루이지애나의 항구 도시, 뉴올리언스를 덮쳐서 1시간 만에 120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
“… 기가 막히는군요.”
저런 놈이 여기저기서 판치는데, 반짝이는 짝퉁 요정을 신경 쓸 겨를이 있겠는가?
뉴스캐스터는 시호크 공격헬기가 기관포로 크라켄의 다리를 다 으스러트렸음에도 크라켄이 1분 만에 전부 재생했다는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저런 건 대체 어떻게 잡습니까? 핵이라도 떨어트려야 하나?”
“글쎄다…. 요전에 멕시코에서 나타난 녀석은 무슨 바이러스 폭탄으로 처리했다더라.”
대체 이런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나도 모르게 한숨 쉬던 차, 마마의 집에 아이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토비, 조쉬, 피터, 타이스도?”
“마마, 오늘도 안녕하세요?”
아이들은 대체로 10대 중후반의 히스패닉들이었는데, 셰리가 밥도 주고 용돈도 주고 하니 이렇게 자주 모이는 것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풍경과 유사했다.
나는 용돈은 사양했지만, 밥은 자주 얻어먹었었지.
“아침인데 학교는 어떻게 하고?”
“오늘은 학교 안 가요!”
“뭐? 일요일도 아닌데?”
소년 한 명이 킥킥거리더니 갑자기 집 벽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소리 들리죠? 이 소리?”
“들리지.”
“학교 벽에서 계속 이런 소리가 났거든요? 결국 학교에서 벽을 살짝 뜯었는데.”
그리고 옆에 있던 여자아이가 갑자기 양팔을 들어 올렸다.
“캬옹!”
“캬옹?”
“엄청나게 큰 고양이가 돌아다니고 있어서 오늘은 선생님들이 그거 잡는데요.”
결국 학교에 웬 고양이 괴물이 튀어나와서 쉰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그 괴물을 잡는 사람은 관리국 군인이 아니라 학교 직원들이다.
참으로 평화로운 학교 풍경이다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그때, 남자아이 한 명이 내 쪽을 바라보았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순간 말문이 막혔는데, 마마가 간단히 말했다.
“백수지.”
“…”
틀린 말은 아니다.
“와! 우리 아빠도 20년째 직업이 없는데!”
“…”
더더욱 해줄 말이 없었다.
애초에 아이가 돈이 없는 건 보통 부모의 문제이기 마련이다.
마마는 곧 어제 먹다 남은 검보에 재료를 몇 가지 추가해서 다시 끓이기 시작했고,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놀기 시작했다.
얘네한테 물어보면 답이 나오려나?
“얘들아, 아저씨가 질문이 하나 있다.”
늦은 밤, 창밖에서 빛나는 정체불명의 존재.
알아듣는 아이가 한 명 있었다.
“아, 혹시 그거 숲 쪽으로 움직이지 않았어요?”
“애스터레이크?”
“네.”
“맞아. 그쪽으로 갔지. 혹시 알고 있니?”
“엄마가 예전에 애스터레이크에는 요정이 산다고 했어요! 저도 한번 봤어요.”
“요정이라.”
그때, 뜨거운 수프 냄비를 들고 온 마마 셰리가 단호히 답했다.
“타이스, 세상에 요정 같은 건 없단다. 요정 비슷하게 생겼으면서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라면 모르겠지만.”
“하지만, 죽은 사람은 없지 않아요?”
“애초에 나타난 지도 얼마 안 됐잖니? 나는 한 달 전에 처음 봤고, 어젯밤에 두 번째로 봤지.”
“엄마는 3개월 전에 봤어요.”
정황상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타난 건 최근인 듯하다.
길어야 반년 정도 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아직 희생자가 없다 해서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다시 타이스에게 물었다.
“왜 네 어머니가 요정이라고 말씀하셨을까?”
“쌍안경으로 봤더니 작은 인간과 닮아있었대요.”
“작은 인간? 혹시 다른 정보는 있니?”
소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낮에 본 사람은 없어?”
“밤에만 나타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아직은 시간이 있다.
*
아이들이 떠난 후, 거실을 서성이며 생각했다.
어젯밤의 나는 조금은 신기할 정도로 용맹하게 뛰쳐나갔다.
다시 생각해보면, 제법 위험한 판단이었다.
죽음 후에도 부활할 수 있는 호텔을 돌파하며 생긴 위험한 습관인지도 모른다.
데려갈 만한 사람이 없을까?
“관리국에서 도와주긴 힘들 거야.”
마마의 답변에 나 또한 공감했다.
뉴스에서 아직도 그놈의 크라켄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어떻습니까?”
“… 알잖니. 그 친구들은 괴물을 무서워해.”
이 시점에서 난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관리국 요원이 함께 간다면서 협조 요청하면 어떨까요?”
“그렇게 하면 오긴 하겠지만, 일개 직원도 아니고 요원이라니! 요원은 정말 수가 적다고 들었는데 -”
— 틱!
가볍게 손을 튕겨 불꽃을 만들어냈다.
다음으로 내 손이 마마의 어깨 ‘내부’를 살짝 들어갔다 나왔다.
마마가 입을 쩍 벌린 채 날 바라보았다.
“조, 조니 너! 과, 관리국에서 일하다 왔니?”
“은퇴했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죠.”
은퇴한 요원 행세나 하자.
어차피 앞으로 5일 정도 후에 호텔로 돌아갈 테니 거짓말의 뒷수습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요원 신분 증명? 초능력보다 확실한 건 없다.
“아는 경찰 있으시죠? 제임스?”
“그럼!”
“대신 연락 좀 부탁합니다. 참, 괜찮은 장비도 부탁합니다.”
*
저녁 무렵, 세 명의 젊고 용기 있는 경찰이 마마의 집에 모였다.
한 명은 어제 본 사람이었다.
“크흠, 어, 어제는 죄송합니다. 요원이신 줄 몰라뵈고….”
“아닙니다.”
내 앞에서 최면술 쓰는 사슴을 죽였던 경찰, 제임스다.
또 다른 남자, 루퍼트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셰리의 말을 믿습니다만, 그래도 한번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지요.”
마마에게 보였던 능력을 보이자 그들의 눈에 감탄이 가득 찼다.
곧 그들이 가져온 옷과 총기로 무장한 채 애스터레이크로 출발했다
“몇 년을 일하신 겁니까?”
“…”
“직원이나 군인이야 자주 봤지만, 요원은 처음 봅니다.”
“…”
“항상 궁금했는데, 이 세상에 ‘요원’은 몇 명이죠?”
“…”
모든 질문을 무시하자 곧 질문도 사라졌다.
애초에 나도 답을 모른다.
새삼스럽지만, 호텔에서 매일 만나는 아리와 묵성이 일반인 기준으로 얼마나 신비한 존재인지 깨달았다.
관리국의 일반 직원이나 타격대는 흔히 볼 수 있으나, 요원은 정말이지 평생 한 번 보기 힘든 존재다.
애초에 어떻게 해야 요원이 될 수 있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초능력이 있어야 한다?
보통 그렇게들 많이 알고 있고, 그래서 내가 축복의 힘을 보이자 다들 요원이라는 말을 믿어주었다.
정작 진짜 요원인 김묵성에게 호텔에 들어오기 전만 해도 초능력 따위는 없었다.
“후우…. 그래도 다행입니다. 사실, 우리들끼리도 호수 쪽을 한번 살펴봐야 한다는 말은 있었거든요.”
“…”
“요원님이 있어서 든든합니다.”
“…”
나 하나 믿고 따라오고 있는 경찰들에겐 미안한데, 사실 이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내 ‘초능력’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성실의 힘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출력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담뱃불을 붙이는 힘이나 피부만 살짝 투과하는 힘은 솔직히 의미 없다.
이런 애매한 초능력 따위보다 내가 들고 있는 AR-15가 100배는 믿을만하다.
해가 질 무렵, 어제 보았던 희뿌연 광채가 다시 나타났다.
“흡!”
“따라갑시다.”
*
이번엔 숲 근처에서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따라갔다.
그리고….
“얘, 얘야? 이런 데서 뭘 하는 거니?”
빛나는 형체를 관찰한 타이스의 모친이 뭐라 했지?
작은 인간과 닮았다?
정말이었다.
발광체의 정체는 기이한 외형의 남자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피부가 종이처럼 얇았고, 이 때문에 그 밑의 핏줄과 내장의 움직임까지 설핏 드러났다.
눈동자에는 검은자위 대신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며 광채를 내뿜는 무언가가 있었다.
게다가 전신에서 은은한 빛을 뿜어냈는데, 이쯤 되자 이게 인간인지 아니면 ‘요정’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때, 제임스가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티모시?”
“아는 아이입니까?”
“Rivervill 인근에 교회가 있는데, 그쪽 집사님 댁 아이입니다. 올해 초에 실종되어 동네가 난리가 났죠.”
올해 초에 실종된 소년?
“이, 일단 뭔가 치료해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그 말만큼은 동의했다.
눈앞의 소년은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인간이 맞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고.
그때, 제임스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관리국에 알리시기 전에 우리가 한번 살펴보는 게 어떨까요?”
“…”
두려움이 느껴지는 경찰들의 눈동자를 보며 상황을 이해했다.
이들은 내가 이 아이의 발견을 관리국에 보고할까 봐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관리국이라면, 일말의 고민 없이 이 아이를 죽일 테니까.
“티, 티모시가 사라지고 집사님은 정말 괴로워하셨습니다. 그 심정을 조금만 -”
“셰리에게 들었겠지만, 난 은퇴했습니다. 보고하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경찰들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킥!”
소년이 설핏 웃었다.
그 모습이 제법 귀여우면서도 어딘가 섬뜩함을 부정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