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97)
EP.397 397화 – 한여름 밤의 꿈 (13)
397화 – 한여름 밤의 꿈 (13)
– 김상현
개인적으로 관리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두려워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매일 함께하는 관리국 출신 동료들은 이런 내 생각을 알면 섭섭할지 모르나,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직도 심해의 호텔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밤잠을 설치기 때문이다.
관리국은 잔혹하며, 인륜이라는 개념이 없다.
대의라는 단어를 앞세워 어지간한 악마도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을 죽인다.
그뿐인가?
겉으론 감추려 하나 내적으론 선민의식이 가득하다.
외부인을 같은 인간이라 보지 않으며, 중요한 정보는 자신들끼리만 공유한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엄숙히 받아들인다.
그들은 또한 세상의 수호자다.
별 전체에 가득한 혼돈으로부터 모든 이를 지켜온 방패다.
그러므로 그들의 방식 또한 존중해야 한다.
*
“오늘은 내가 티모시를 보살피겠습니다.”
“집사님께 연락드릴까요?”
“그렇게 하시죠.”
경찰과 대화하던 중, 티모시가 처음으로 두려움이 담긴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부모님이 올 때까지 나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던 걸까?
“… 아저씨.”
“걱정 말거라. 마마는 아주 요리를 잘하시거든.”
“…”
늦은 밤, 난데없는 꼬마를 데려왔음에도 마마는 놀라지 않았다.
“어머, 어머! 티모시, 완전히 뼈밖에 없구나!”
폐를 끼쳐 미안하다는 내 말에 마마 셰리는 미소로 화답했다.
기회가 된다면, 그녀에겐 반드시 은혜를 갚고 싶다.
다음 날 아침, 본격적으로 소년을 진찰하기 시작했다.
얇은 피부와 기이하게 번뜩이는 눈동자는 낮에 다시 봐도 섬뜩한 구석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아닌 괴물인가?
라고 하기엔 또 애매했다.
나에겐 의사 면허와 203호에서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 쌓아온 무지막지한 치료 경험이 있다.
그런 내가 진찰한 바에 따르면, 이 소년은 여전히 인간이었다.
“아저씨, 친구랑 놀고 싶어요.”
“…”
“아저씨!”
“말하렴.”
“아빠는 언제 오시나요?”
“제임스가 연락했으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걱정 말거라. 늦어봐야 오늘 저녁이겠지.”
말하는 태도, 행동, 의도 등을 주의 깊게 살폈지만 역시 특별한 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
“실종 기간의 기억은 계속 없고?”
“네.”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려 가며 시선을 피하는 모습, 살짝 일어선 피부의 털과 긴장한 근육.
이 말은 거짓말이다.
뭔가 기억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억지로 추궁해볼까?
관리국이라면 주리를 틀어서라도 이 꼬마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토하게 했으리라.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그보다 나은 방식으로 정보를 얻을 자신이 있었다.
“계속 애스터레이크 주변에서 살았니?”
“자, 잘 모르겠어요!”
호수 주변에서 살았구나.
“누군가 널 보살펴줬구나. 할머니 같은 분이니? 혹은…. 괴물?”
“괴물 같은 건 없었어요!”
“조금 전엔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어?”
“…”
어린아이답게 거짓말 솜씨가 부족해서 10초만 대화해도 말의 앞뒤가 맞지 않았다.
“누군가 널 보살피긴 했구나. 누구지? 말해보렴.”
“모, 몰라요.”
“티모시, 혹시 오렌지 먹고 싶지 않니?”
“예?”
테이블 위에 있던 오렌지를 가볍게 쥐었다.
곧, 오렌지가 내 손에서 으깨지며 사방에 과즙이 흐르기 시작했다.
“히, 히끅!”
티모시 바로 앞으로 바짝 달라붙어서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내겐 적절한 심문 기술과 건장한 체격, 여기에 아이를 다뤄본 경험까지 있다.
아이의 머릿속을 살펴보는데 굳이 대단한 독심술이나 초능력이 필요하진 않았다.
티모시와 오랫동안 ‘진실한’ 대화를 나누었다.
사건의 진상은 자못 충격적이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
저녁 무렵, 티모시의 부모가 찾아왔다.
아버지인 라이언은 리버빌 교회의 집사였고, 어머니인 베티는 작은 커피숍을 운영 중인 평범한 부부였다.
두 사람은 실종된 자식이 돌아왔다는 말이 충격적이었는지, 마마의 집에 들어와 티모시를 보자마자 입을 쩍 벌렸다.
티모시는, 어딘가 안절부절못하며 부모 주변을 서성였다.
“라이언, 연락은 받으셨지요?”
“요, 요원님! 제임스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아이의 상태에 대해선 알고 계시지요? 진찰한 결과 피부에 포르피린증 혹은 이와 유사한 희귀 난치병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진찰받아보셔야 할 겁니다.”
“… 알고 있습니다. 피부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으니까요.”
티모시의 병에 대해 제임스와 대화하던 중, 베티가 어딘가 날카로운 표정으로 질문했다.
“요원님. 정말 피부에만 병이 있는 것 맞나요?”
“무슨 의미입니까?”
“눈! 눈을 보세요! 이게 무슨 사람의 눈입니까?”
티모시의 눈동자는 검은자위가 사라졌고, 희뿌연 광채를 내뿜는 무언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누가 봐도 자연스러운 눈동자와 거리가 멀었다.
나는 대답 대신 손끝에서 불꽃을 만들어냈다.
“흐엇!”
“베티, 내가 당신보다 이런 부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것 같습니까?”
“그,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니에요.”
“혼돈 재해에 접촉하며 일시적으로 눈이 변했을 뿐입니다. 큰 문제는 아니고, 1년 내로 정상으로 돌아올 겁니다. 그동안에는 렌즈를 착용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충고 감사합니다.”
두 부부는 여전히 꺼림칙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요원이라는 권위에 굴복했을 뿐, 내 말에 진심으로 승복한 것 같진 않았다.
두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떠난 후, 마마 셰리가 내게 다가왔다.
“조니.”
“말씀하시죠.”
“어제 너와 티모시가 대화하는 걸 얼핏 들었단다.”
“…”
“저 개새끼와 쌍년에게 아이를 맡겨도 되겠니?”
마마의 서글서글한 표정에서 나오는 거친 욕설에 순간 움찔했다.
“그런 말도 할 줄 아셨습니까?”
“조니, 네가 무슨 생각 중인지 알 것 같구나.”
“…”
“넌 관리국 요원이지….”
마마는 우울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
이후, 3일간 매일 저녁 티모시의 집 근처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인근에 커피숍도 있고 주차할 곳도 많아서 의심을 사거나 하진 않았다.
“이 애가 우리 애라고? 그럴 리 없어!”
“엄마….”
“엄마라고 하지 마! 넌 대체 누구니?”
“베티, 목소리 좀 낮추지 못하겠어?”
“라이언, 이 애 눈알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글쎄, 요원님 말로는 괜찮다지 않아!”
“요원이라고 항상 옳아요? 당신도 와서 보라고!”
길을 걷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한 번씩 바라볼 정도로 요란한 목소리.
그날 밤, 예상대로의 일이 벌어졌다.
— 로오오오!
티모시는 신비로운 노래를 부르며 집 밖을 나섰다.
부모는 이미 모종의 힘으로 잠든 것 같았다.
곧, 나는 소년의 앞을 막아섰다.
“… 아저씨.”
“티모시.”
“약속을 지켜주실 거죠?”
“그래.”
소년의 얼굴에 행복한 표정이 깃들었다.
“좋아요! 그러면, 절 ‘엄마’에게 데려다주세요.”
*
서구권에는 체인질링이라는 전설이 있다.
요정이 인간의 아이를 납치하고 대신 놓고 간 아이를 말함인데, 요정이 두고 간 아이는 언제나 장애 아동이거나 신체적으로 허약하다고 한다.
이런 전설이 으레 그렇듯, 진위를 가리는 것 보다는 ‘왜 이런 믿음이 생겨났는가’를 주목해야 한다.
유력한 해석 중 하나는 다소 끔찍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병마에 시달리는 아이를 돌보는 일은 많은 부모에게 극심한 고통을 준다.
이 과정에서 몇몇 사람이 자식을 버려서라도 부양의무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음은 당연하다.
체인질링은 좋은 명분이 되었다.
내 아이가 아니라, 사악한 요정이 두고 간 아이이므로 버려도 된다는 것.
…
며칠 전, 티모시와 대화하며 파악한 사건의 진상은 바로 이 체인질링 전설을 연상시켰다.
혼돈 재해에 휩쓸려 변이를 일으킨 눈과 달리, 아이의 피부는 유전병의 일종인 포르피린증의 결과물이었다.
이 병은 저혈압, 빈혈, 잦은 구토와 근육의 약화와 같은 심각한 증세를 일으킨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포르피린증 환자는 피부가 극단적으로 약해지므로 자외선을 반드시 피해야 하고, 평생을 태양을 피하며 살아야 한다.
오죽하면 이 병에 걸린 사람을 보고 뱀파이어라는 도시 전설이 생긴 것 아니냐는 말이 있을 정도다.
병마는 소년의 정신은 물론이고 부모의 정신조차 황폐하게 했다.
어느 순간, 병에 대한 절망이 아들에 대한 증오로 변했다.
부부는 난치병에 걸린 티모시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다.
티모시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줄 수 있는 부모를 바랬다.
기적이 일어났다.
티모시의 진정한 ‘요정 부모’가 나타난 것이다.
며칠 전, 나는 소년과 대화하며 약속했다.
인간 부모가 널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시 요정에게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아저씨, 밖에서 들으셨죠?”
“…”
“저 두 사람은 절 싫어해요. 분명, 제 부모님이 아니겠죠.”
“…”
“엄마가 보고 싶어요….”
“그래, 데려다주마.”
*
늦은 밤, 애스터레이크 호수에 도착했다.
— 로오오오!
티모시는 눈과 몸에서 기묘한 빛을 내뿜으며 신비한 노래를 불렀다.
아마도 ‘엄마’를 부르는 중이겠지.
호수에서 소용돌이가 발생하며 요정이 나타났다.
티모시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눈엔 그리 아름다운 생물은 아니었다.
하기야, 저 소년에게 중요한 건 외형보다는 ‘날 진심으로 사랑해주는가’였으리라.
과연, 이형의 존재는 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마음으로 입양한 아들을 살포시 끌어안았다.
“엄마…. 엄마…. 보고 싶었어요….”
— 로오오…!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타고난 질병으로 인해 부모에게 버림받은 소년.
티모시가 다시금 자신을 사랑해줄 수 있는 부모의 품에 안겼다.
*
어떤 사건에선, 인간이 악의 근원일 수 있다.
어떤 사건에선, 혼돈의 존재가 선한 측이거나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관리국은 이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라는 명쾌한 결론을 내렸다.
선악의 구별이나 피해자와 가해자가 누구인가 따위는 그들에게 하찮은 문제다.
기준은 언제나 단 하나, 인류의 존속.
…
티모시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아이는 늦은 밤에 오스틴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붙잡아서 이유를 묻자 소년은 간단히 답했다.
‘친구를 찾고 있었어요.’
소년은 친구를 찾고 있었다.
자신과 같은 또래 아이들을 ‘엄마’에게 데려가고 싶어 했다.
감출 수 없는 차가운 진실이 내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
내 발걸음 소리를 들은 티모시가 내 쪽을 돌아보았다.
“아저씨? 아저씨! 제 엄마 보이시죠?”
“…”
“고마워요! 진짜 고마워요! 엄마, 저 아저씨가 절 다시 여기에 데려다주셨어요.”
‘요정’이 기묘한 울음을 토해내며 내 쪽을 바라보았다.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끼기라도 했을까?
이미 늦었다.
— 철컥!
“아, 아저씨?”
“비키거라.”
나는 티모시를 속이지 않았다.
약속대로 부모에게 재차 버림받은 소년을 호수에서 기다리는 요정에게 데려다주었으니까.
다만, 이후에 벌어질 일을 굳이 언급하지 않았을 뿐이다.
‘저것’이 티모시를 미끼로 삼아 인간 아이를 유인하려 했던 것처럼.
나는 티모시를 미끼로 삼아 저것을 내 앞에 나타나게 했다.
— 탕!
“THIS IS AMERICA!”
위대한 나의 조국은 언제나 더블 배럴 샷건으로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