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98)
EP.398 398화 – 한여름 밤의 꿈 (14) Fin
398화 – 한여름 밤의 꿈 (14) Fin
– 김상현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셰리 마마의 집으로 돌아왔다.
밤새도록 창가에서 두 남자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 걸까?
마마는 내가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에 뛰어나와서 맞이했다.
“마마, 들어가 계시지 왜 -”
“조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마마가 어찌나 호들갑을 떨었는지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다쳤어!”
“셰리, 제 몸은 알아서 돌볼 수 있으니 티모시 좀 부탁드립니다. 아마 좀 씻기고 먹여야 할 겁니다.”
셰리 마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돌아보면서도 티모시를 데리고 욕실로 들어갔다.
“후우우….”
마마의 말마따나, 내 상태도 정상은 아니었다.
호기롭게 ‘THIS IS AMERICA!’를 외쳤건만, 싸움은 생각보다 길어졌기 때문이다.
더블 배럴 샷건이 어떤 무기인가?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철컥’ 소리 하나로 말하는 남자의 로망 그 자체가 아니던가?
…
원래 머리 복잡하게 굴려서 이리저리 계산하는 건 남자가 아니다.
즉, 남자의 로망이란 보통 효율성이 구리다.
덕분에 밤새도록 1000번도 넘게 생각했다.
그냥 AR-15를 어떻게든 챙겼어야 했다고!
뭐, 아무래도 좋다.
어떻게든 그놈의 해골바가지를 처치했으니까 된 것 아닐까?
점심 무렵, 티모시에 관해 셰리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마마는 자신이 티모시를 돌보겠다 했지만, 아이를 책임지는 일은 결코 한순간의 동정심으로 정해선 안 된다.
그래서 티모시에게 어떤 병이 있고, 앞으로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소상히 전했다.
마마의 뜻은 흔들림이 없었다.
새삼 느꼈지만, 그녀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선량한 사람 중 하나다.
돈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다.
난치병에 걸린 아이의 육아에 있어서 재력은 아주 중요한 요소다.
이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끝났다.
남은 사람의 일은 앞으로도 이 세계에 남아있을 사람이 결정해야 하는 법이니까.
슬슬 시간이 빠듯했기에 셰리에게 작별을 고했다.
마지막 남은 몇 시간은 어떻게 보낼까?
…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231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중앙 홀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하염없이 길었던 호텔의 하루가 서서히 끝나간다.
우리는 이 시간이 되기까지 정말이지 치열하게 싸웠다!
조언 횟수가 0인 것이 그 증거다.
여기저기 구멍 뚫린 벽에 기댄 아리가 중얼거렸다.
“이제 이놈의 이벤트도 곧 끝나겠지?”
“아마도. 사실, 한 20분 전부터 잠잠해졌네.”
“으아아…. 진짜 힘들었다!”
옆에서 송이도 불평했다.
“파티 타임이 일주일이나 주어지길래 좀 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같은 생각이다.
파티는 무슨 놈의 파티?
밖에서 황당한 사교도들과 웃기지도 않은 쇼를 벌이다가 악마 하나 잡고 온 기억뿐인데?
심지어 호텔 돌아오니까 더 피곤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
어느새 주변이 조용해졌다.
이 순간에도 시간은 멈춤 없이 흘렀다.
파티타임이 끝나기까지 10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선생님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슬슬 동료들이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사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생길 것 같았어. 그 사람은 지옥에 한번 떨어져 봤으니까.”
포기한 듯한 아리의 말을 엘레나가 받았다.
“선생님을 이해해요. 호텔의 매 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송이는 조금 아쉬운 듯했다.
“그, 그래도! 이렇게 떠나버리다니! 페로 너도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지?”
— 삐이익!
할아버지는 아예 포기한 기색이다.
“언제든 벌어질 일이었다. 내 말은, 우리 중 한 명 정도는 어떻게든 이탈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지.”
아리가 한마디 했다.
“묵성이 넌 상현이가 반드시 돌아올 거라며?”
“그거야 희망 사항이지! 이런 게 뭐 내 생각대로 되겠냐?”
이렇듯, 동료들이 하나하나 마음을 내려놓고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
— 팅!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 우당탕!
모두가 정신없이 일어나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달려갔다!
느릿하게 열린 문 너머에는, 무슨 열대 휴양지에서나 입을 법한 옷을 입은 남성이 있었다.
“다들 오랜만입니다. 다들 파티타임 동안 잘 쉬셨죠?”
모두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
“오랜만에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휴양 좀 했습니다. 오랜만에 시원한 칵테일 한잔하면서 해변을 거닐다 보니, 쌓였던 스트레스가 가볍게 날아가지 뭡니까?”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선생님!”
“가인 군?”
“모두가 선생님을 믿고 있었어요!”
“예?”
이렇게, 행복했던 ‘한여름 밤의 꿈’이 끝났다.
… 행복했던 것 맞지?
[‘한여름 밤의 꿈’을 종료합니다!]*
날짜가 넘어가는 순간, 정말이지 마법 같은 일이 펼쳐졌다.
호텔이라기보단 인류 멸망 후의 폐허에 가까웠던 건물이 눈 한번 감았다 뜰 시간에 화려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지간히 신기한 일엔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동료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주변을 돌아보느라 바빴다.
이외에도 많은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미로는 회중시계를 보며 환호했다.
“진짜네! 자정의 미로가 다시 채워졌어!”
— 덜컹!
허공에서 떨어진 새하얀 우주복을 선생님이 덥석 껴안았다.
“어이쿠! 천만다행입니다. 방호복이 입장권으로 변하는 바람에 소멸했을까 봐 걱정했는데 말이죠.”
물론, 내 힘도 마찬가지다.
[강림 : 1]“자아! 어떻게 다 끝난 것 같네. 하지만,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중앙 테이블로 집합!”
누나의 자신감 있는 목소리도 오랜만에 들으니 제법 반가웠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아리가 입을 열었다.
“다들 피곤할 테니까 딱 필요한 말만 하자. 우선 각자 얻은 것 좀 말해봐. 워낙 정신없어서 각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으니깐.”
정리해보면 간단하다.
나는 바깥에 관한 정보와 더불어 윙 부츠를 완성했고, 내일 올 예정이다.
은솔 누나는 고출력 탐욕의 손을 통해 강력한 도구를 얻었고, 역시 내일 올 예정이다.
엘레나와 아리, 미로는 마음의 짐을 덜어냈다.
진철 형과 승엽이는 아리마와 관련한 화두가 생겨났다.
할아버지와 송이는 새로운 축복을 얻었다.
의사 선생님은 잘 쉬다 오신 것 같다.
다음으로, 다음 방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다.
“어느 방에 가야 할지는 정해져 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104호, 206호, 207호 중 관문의 방은 당연히 빼야겠죠. 104호는 가인 군의 강림 스택이 다시 돌아왔으니 역시 제외해야 하고.”
“206호뿐이네요.”
“그렇습니다.”
206호, 2층에 남은 마지막 저주의 방.
긴장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아리가 조심스레 중얼거렸다.
“다들 기억하지? 206호는….”
“특별히 어려운 저주의 방이야.”
“맞아. 천기누설에서 뭐라고 했었더라?”
똑똑히 기억이 났다.
“3자 대결, 창작물의 단골 소재, 날짜를 수시로 확인할 것.”
할아버지가 재빨리 강조했다.
“너희, 중요한 것 잊지 마라. 가인이가 호텔 시네마에서 얻었던 정보 기억하지?”
관리국이 찾는 세상을 구할 힘.
호텔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보물은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이며, 하나는 모래시계다.
다른 하나는 ‘가장 어려운 저주의 방’에서 주어진다.
즉, 206호의 유산이다.
천기누설의 해석과 206호의 유산에 관한 추측.
우리는 두 주제에 대해 늦은 시간까지 의견을 나누었다.
*
한가인 : 아리, 좀 나오셈.
김아리 : …
한가인 : …이 뭐야? 장난침?
— 끼익!
“하아암! 개인 대화창은 묵성이에게 부탁했어? 밤늦게까지 회의했는데 이 시간에 또 뭔데?”
“미안. 너무 궁금한 게 있어서 참기 힘들었어.”
“뭔데?”
“밖에서 겪은 일. 말해줘야 할 것 같아서.”
“흠, 궁금하긴 했는데. 그래, 무려 탈출씩이나 해본 소감이 어때?”
“바깥은 내 현실이 아니었어.”
“…”
“부모님도 없고 친구도 없더라. 내가 졸업한 중학교도 없었어. 고등학교는 건물 모양이 달랐고.”
“…”
“근데, 관리국에서 너랑 할아버지 이름은 알아들었어. 아마 너랑 할아버지가 온 세상인가 봐.”
“그렇구나.”
“알고 있었지?”
“…”
“뭐, 괜찮아. 이런 걸 따지려고 부른 건 아니니까.”
“무슨 말을 하려고 부른 거야?”
“…”
다시금 어제의 일, 강림을 써서 아폴리온을 처단하고 호텔로 돌아오던 기억을 떠올렸다.
“밖에서 강림을 썼어. 물론, 돌아오니까 숫자는 회복했지만.”
“스펙터클한 일을 벌였나 보네.”
“예전에 말해줬지만, 강림은 단순히 물리적인 힘을 강하게 해주는 능력이 아니야. 그보다 훨씬…. 복합적이지.”
“복합적?”
“하늘에서 떨어지는 백만 개의 눈송이 하나하나의 모양새를 죄다 구별할 수 있다면 믿을 수 있겠어?”
“… 정말이지 신적인 힘이네.”
“덕분에 강림을 쓴 나는 평소라면 절대 알아챌 수 없는 사실을 느낄 수 있지.”
“…”
“막연한, 정말이지 막연한 깨달음을 얻었어. 당시엔 내가 뭘 깨달았는지도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설마 이 의미였나? 하는 느낌이지.”
“…”
“혹시 현실 말이야, 이거야?”
아리의 앞에서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
이것은 곧 무한을 의미한다.
“… 대체.”
“대체?”
“그걸 어떻게 ‘감’으로 알아챈 거지?”
“강림이니까.”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힘이구나.”
아리는 내 대답을 부정하지 않았다.
곧, 그녀의 눈에 불안함이 깃들었다.
“그 사실을 깨달았다면, 또 다른 진실도 알았겠구나.”
“진실? 무슨 진실?”
“이 우주에 ‘한가인이 살아온 세상’ 같은 건 -”
“그런 건 없다? 내가 살아온 현실은 이미 사라졌고, 부모님이든 친구들이든 되돌릴 방법은 없다?”
이 말을 하는 내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황했다.
“괘, 괜찮아?”
“그럼. 괜찮고말고.”
“괜찮다고? 부모님이 존재하지 않다는데 괜찮은 게 말이 돼? 불 속성 효자야?”
“… 거기서 불 속성 효자가 왜 나와?”
“노, 놀라서.”
나는 진심으로 아무렇지 않았다.
무한 속에서 으스러진 내 현실을 아무렇지 않게 여겼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아리야, 이래서 여태 그렇게 숨겼구나?”
“…”
“내가 이 사실을 알면, 뭐 돌아서 날뛰기라도 할까 봐?”
“돌진 않더라도 큰 충격에 빠질 수는 있을 테니까.”
“괜찮아. 난 정말 괜찮아.”
“왜?”
나는 아리가 안심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웃었다.
“약속받았으니까.”
“약속?”
“이야기했잖아? 호텔 시네마가 끝났을 때, 호텔이 내게 약속해줬어. 모든 시련을 이겨내기만 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해피엔딩을 주겠다.”
“그거지.”
“아니, 해피엔딩이고 자시고 그런 게 없다고 -”
“아리야, 너랑 관리국이 정말 이 우주의 모든 것을 파악했다고 생각해?”
그녀는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물론 나도 모르는 게 많지. 다만, 한 가지는 알아.”
“…”
“내가 아는 한, 호텔만큼 전능에 가까운 장소는 없어. 이곳에서 ‘된다’라고 했으면 되는 거야. 생각해봐. 애초에 너랑 할아버지가 이곳에 들어온 이유가 뭐야?”
“…”
“관리국 힘으로 불가능한 일을 호텔의 도움으로 이루려 했지?”
“그렇지.”
“나도 너희와 같아.”
다음 날, 우리는 마지막 저주의 방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