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00)
EP.400 400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2)
400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2)
저녁 무렵, 고단한 일과를 끝낸 토비어가 허름한 술집에 들어섰다.
여기저기 술에 거나하게 취해 널브러진 사람들, 귀를 찌르는 요란한 소음.
전형적인 술집의 무질서한 풍경이다.
토비어의 동료들이 모이는 장소이기도 했다.
동료 중 1인, 헨더슨이 토비어를 발견했다.
“왔군. 오늘은 좀 늦었는데?”
“밥을 먹는데 30초를 초과해서 징계받았네. 30분 더 일해야 했지.”
“수고했네.”
곧 모임의 주최자, 펜들턴이 속삭이는듯한 목소리로 모두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지금 낙원의 모습이 정녕 시조께서 꿈꾸신 이상향이었을까요?”
‘그럴 리 없지.’
토비어의 마음속엔 확신이 있었다.
비록 태어나서 다른 도시라는 걸 경험한 적은 없지만, 낙원의 삶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모든 것의 문제는 바로 시장, 레온 카디로프입니다. 카디로프 일당은 시조께서 창조한 낙원을 사리사욕을 위해 지옥으로 바꾸었습니다.”
“펜들턴, 그렇다면 우리가 어찌해야 합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피터, 우리는 시장을 몰아내야 하죠.”
“내 말은,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겁니다. 카디로프 일당이 인포서들을 꽉 쥐고 있는데 말이죠.”
“… 여러분. 제 말에 귀 기울이십시오. 혹시 ‘목소리’를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목소리’
그 단어가 나오는 순간 토비어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의 하층민들 사이에서 떠돌기 시작한 기이한 소문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귀를 쫑긋 세웠을 때.
— 철컥!
차가운 금속음이 들려왔다.
“3급 시민 펜들턴. 너를 반역 모의 죄로 체포한다.”
“이, 인포서! 대체 어디서 -”
뒤늦게 상황을 눈치챈 한 남성이 헐레벌떡 도주하려는 순간 –
거대한 체격의 남성이 입구를 막았다.
“멈춰라. 뒤지기 싫으면.”
그것으로 상황이 종료되었다.
*
– 김묵성
나는 3급 시민, 인포서의 역할을 받은 채 깨어났다.
숨 한번 돌릴 틈도 없이 쉴 새 없이 내려오는 과중한 업무를 처리하며 생각했다.
낙원은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지옥이다.
도시 설계부터가 기묘했다.
상상을 초월하게 거대한 반구형 돔이 지면을 덮고 그 돔 내부에 최소 수천만이 살아가는 도시국가가 구현된 상태다.
시민들이 진짜 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 중 길어야 30분, 돔 상단부가 열리며 환기하는 시간뿐이다.
내부 공기 상태도 최악이었는데, 미세 먼지 측정기가 있다면 시뻘건 수치를 보이며 당장 방독면을 쓰라고 경고할 것임이 분명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하나 있긴 했다.
“아따, 할배. 드럽게 힘드네요.”
“일이 징글징글하게 많지?”
동료, 차진철의 존재다.
그는 차에 타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할배, 내가 일하다가 좀 싸해서 말인데….”
“말해봐라.”
“우리가 하는 일, 뭔가 독재자의 꼭두각시 느낌 아닙니까? 좀 전에 체포한 펜들턴이 알고 보니 민주투사라던가?”
“그놈이 민주투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독재자의 무기인 건 사실이지.”
“…”
“마음 비워라. 현실적인 생각이나 해.”
“대체 뭔 놈의 도시가 이 꼴입니까? 이렇게 더러운 세상은 처음 봅니다.”
진철이는 단순한 놈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녀석도 3일 정도 구르자 정신 차리기 시작했다.
“사실상 밀고, 내분, 배신을 조장하는 구조더군요. 적어도 3급, 4급 시민의 삶은 그렇습니다.”
“위에 이빨을 들이밀지 말고 너희끼리 싸우라는 의도겠지.”
“… 삶의 질이 너무 낮습니다.”
“톱니바퀴니까.”
도시의 모든 인간은 톱니바퀴와 같아서 나름의 역할이 있었다.
인포서의 역할은 시장의 수족으로서 도시를 통제하는 것이다.
“참, 아까 챙긴 책입니다. 도서관 구석에 하나 남아있더군요.”
다른 루트로 얻은 정보와 차진철이 구한 ‘역사책’을 읽자 어느 정도 윤곽 혹은 기초 설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약 180년 전, 알려진 세계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파멸을 맞이했다.
그때, 위대한 영웅인 ‘시조’가 나타나 사람들을 이끌고 낙원을 건설했다.
낙원의 사람들은 이 별에 남은 마지막 인류다.
“도시 밖 상황은 어떨 것 같습니까?”
“글쎄다…. 애초에 나갈 방법이 없어 보이긴 한데.”
“할배, 우리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죠? 동료들은 어디 있습니까?”
목표설정이라.
요 며칠간 생각한 바가 있긴 했다.
“우리가 힘을 잃은 이유는 알지?”
“깨어날 때 이상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불굴의 이성 맞죠?”
“분명하다. 그 정체불명의 힘이 모든 초자연성을 억누르는 과정에서 우리도 약해진 거야.”
“솔직히 감탄했습니다. 이계의 별만 막힌 게 아닙니다. 내 힘도 그냥 운동 좀 열심히 한 일반인이 됐더군요.”
“아니, 그건 아니다. 네가 일반인은 무슨 일반인? 헐크가 고릴라로 변한 정도지.”
“그렇다 치죠. 딱 느낌 왔습니다. 불굴의 이성이 할배랑 아리, 관리국이 바라는 물건 맞죠?”
“…”
“딱 봐도 여러분이 환장하겠던데? 초자연적인 힘을 강력하게 찍어누른다?”
“그게 관리국의 오랜 꿈이긴 하지. 여하튼, 우린 이 불굴의 이성을 이겨낼 방도를 찾아야 한다.”
“이겨낸다라.”
“도구라면 정지할 방법도 있겠지. 그렇지 않고선 우린 그냥 힘 좀 쓰는 일반인이다. 도시를 뒤흔들 방도가 없어.”
차진철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 가지 의문을 던졌다.
“어째 별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관리국이 꿈에 그리던 물건일 텐데.”
“…”
“할배?”
“난 불굴의 이성의 원리를 알 것 같다.”
“예?”
“관리국이 오랜 세월 연구했거든. 물론, 우리는 기술력 부족으로 개발 실패했어. 하지만 이 세계에선 개발에 성공한 거지.”
“실패했다면서 원리는 어떻게 압니까?”
“우리가 개발하려던 물건과 방향성이 똑같아.”
“…”
“결과물은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사악한 물건이다.”
“사악한 물건이요?”
“이 도시가 이렇게 된 원인임이 분명해.”
“하, 할배. 조금 더 자세히 말해보십쇼.”
“내 예상대로라면, 불굴의 이성을 만들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사람을 죽였을 게다. 그게 끝이 아니야. 만든 후에도 작동을 위해선 끊임없이 인간을 희생해야 한다.”
차진철의 말문이 막혔다.
“관리국에선, 개발하려던 물건에 이런 이름을 붙였어. ‘영혼의 화로’.”
*
– 엘레나
나는 3급 시민이다.
지난 3일간 깨달은 바에 따르면, 낙원의 모든 인간은 도시를 위한 역할이 있다.
내 역할은 배우로서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대중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이다.
보아하니 난 나름대로 인기 배우인 것 같다.
촬영장의 스텝이나 감독도 내 눈치를 볼 정도니, 현실로 치면 스타 배우다.
초인기 스타 배우란 어떤 존재인가?
소위 ‘셀럽’이라 불리며 사회적 영향력은 어지간한 정치인을 능가한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현실에선 그랬다.
낙원에선 해당 사항 없는 이야기다.
누가 내 눈치를 보니 마니 하는 건 스텝이나 감독도 같은 ‘3급 따리’ 시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기 있는 배우라 해봐야, ‘3급 따리’인 게 낙원의 현실.
그러니 이런 일도 감내해야 한다.
“흐음…. 엘레나 양. 이 대본의 대사 일부는 그대가 짰다고?”
“네. 괜찮지 않나요?”
“풋. 얼굴만 이쁘장하지, 머릿속은 텅텅 비었군.”
“…”
“뭐, 넓은 시야가 없으니 별 수 있겠나. 이게 그대의 수준인 것을.”
“…”
내 안의 흑염, 아니 흑 엘레나! 참아야 해!
이딴 소리를 30분째 듣느라 주먹이 울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참아!
인내해야 한다.
눈앞의 쓰레기 같은 새끼, 패트릭은 2급 시민인 고등 인포서이기 때문이다.
2급 시민은 적당한 이유만 있다면 얼마든지 3급 시민을 죽일 수 있다.
“아까부터 대답이 없군. 지능이 낮아서 그런가? 얼굴이 예쁘면 고개만 숙이는 식으로 모든 문제를 넘길 수 있다 생각하나?”
“후우…. 예쁘다는 말은 칭찬으로 들을게요.”
“그건 칭찬이긴 하지. 그 얼굴이라도 없었으면 이따위 대사를 떠올린 시점에서 총살이니까.”
“…”
“내게 감사하도록. 네 쓰레기 같은 대본을 내가 적절히 수정했으니.”
그 말과 함께 남자는 검열이 끝난 대본을 내밀었다.
첫 페이지가 이 꼴이 되어있었다.
■■■, ■■■ 시■ ■■장■■. ■■, ■■■.
■■님의 ■■■■■ ■■ 결■■■.
정■■ ■ ■■ ■■■ 이■ ■■ ■■■ ■.
이딴 식으로 한참 이어진 글자의 나열을 모으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완성되었다.
‘시장님의 결정이 모두를 구했다.’
“…”
“어떤가?”
“참 좋은 대사네요.”
아마 지구의 어지간한 독재 정권도 이렇게까지 검열한 대본을 보면 ‘이건 좀….’하는 반응을 보이리라 생각한다.
고등 인포서가 검열한 대본을 읽은 다른 배우들과 감독 및 스텝은 단체로 넋이 나갔다.
“이, 이게 대체 뭔 대사를 -”
스텝 한 명이 실수로 입을 여는 순간.
— 철컥!
“불만 있나?”
패트릭이 권총을 겨누었다.
“그, 그럴 리가요! 대본의 품질이 너무 훌륭해서 감동했습니다.”
“다행이군. 촬영 진행하게.”
대사엔 불만이 있었다.
권총에 불만이 없었을 뿐.
*
현장의 사람들은 어느 시점부턴 그저 다 내려놓은 채 퇴근 시간만 기다렸다.
감독은 어느 시점부턴 배우가 대놓고 실수해도 다시 찍자고 하지 않았다.
마침내 고통스러웠던 드라마 촬영이 끝났다.
난 내가 출연한 TV 프로나 내가 맡은 역할에 대해 애착이 있었다.
물론, 어떤 드라마나 예능은 평가가 좋지 않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나에겐 하나하나가 경험이고 좋은 추억이다.
오늘 찍은 것만 빼고.
아까 내 입으로 뱉은 대사를 떠올리자 머리가 띵해졌다.
「“오오! 시장님, 시장님! 당신의 현명함이 모두를 구했답니다!”」
이거 다시 생각하니까 또 화나는데?
시장, 레온 카디로프.
이 새끼도 변태 아니야?
진짜 이런 대사가 드라마에 나오는 걸 보고 싶었어?
“후우….”
잡생각을 그만두고 더 중요한 일을 떠올렸다.
다른 동료는 어디 있을까?
은솔 언니에 대해선 알고 있는데, 그녀는 2급 시민인 이사관이다.
내가 직접 본 적은 없으나 촬영 감독이 알고 있었다.
동료 중 1급도 있을까?
지금까지 알아본 바에 따르면, 2급 시민부터는 도시의 지배층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에 있는 사람, 시장 레온 카디로프와 그를 따르는 핵심 간부가 1급 시민이다.
우리 중 1급 할만한 사람은….
가인 씨라면 할만한데?
그 사람이 1급이라면 지금쯤 도시를 흔들만한 설계를 짜고 있지 않을까!
이런 희망적인 생각에 빠진 채 집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
…
…
— 덥썩!
인기척을 느껴 깨어나려는 순간, 부드러운 손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조용.”
다행히 아는 목소리다.
“읍읍!”
“작게 말해.”
“아리! 날 어떻게 찾았어?”
“오오! 시장님, 시장님! 당신의 현명함이 -”
“으엑! 조, 조용히 해!”
생각해보니 너무 쉽네.
TV에서 날 봤구나.
“엘레나, 찾은 동료 있어?”
“은솔 언니는 2급 이사관이야. 나머진 몰라. 넌 알아?”
“묵성과 진철은 3급 인포서야.”
“가인 씨는?”
“몰라.”
“넌?”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날 만나고 싶으면 그냥 팬 흉내 내면 되는 것 아닌가?
나름대로 인기 배우 역할이라 팬이 많아서 길 가다가 사인해준 적도 있다.
“나에겐 계급이 없어.”
“그게 무슨 -”
낙원은 지옥에 반 발자국 걸친 디스토피아다.
시대적 배경은 SF까진 아니고, 현실보다 20~30년 정도 앞선 근미래다.
이런 배경과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아리 입에서 튀어나왔다.
“나는 마왕 숭배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