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03)
EP.403 403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5)
403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5)
– 김아리
어두운 조명, 탁한 공기, 다소 불쾌한 냄새까지.
가뜩이나 삶의 질이 최악에 가까운 ‘낙원’인데, 지금 내가 있는 지하 공동은 낙원 기준으로도 처참하다.
제대로 된 환기는 물론 전기도 통하지 않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런 장소에 수백 명이 훌쩍 넘는 사람이 모여있었다.
“여러분! 오늘의 말씀은 ‘평등’에 관한 것입니다. 모두가 영광된 자손이며, 위대한 시선 아래 각자의 계급은 허울과 같고 -”
연단에 선 남성은 우렁찬 목소리로 설교 중이었다.
내용만 들어보면 사악하긴커녕 21세기의 인권 운동가들도 고개를 끄덕일 만큼 상식적이었다.
설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하의 분위기 자체가 무척 훈훈했다.
우선, 설교하거나 말거나 모여든 사람들은 잡담을 나누거나 먹을 것을 나누었다.
그 누구도 자유롭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제지하지 않았고, 심지어 설교하는 사람도 중간중간 농담을 던지곤 했다.
모여든 사람 상당수는 4급 시민이지만 몇몇은 3급, 심지어 2급도 있었다.
적어도 이 장소에선 아무도 계급을 신경 쓰지 않았다.
여러모로 도시의 억압적인 분위기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오랜만에 시조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설교자는 이렇게 운을 띄운 후, 낙원의 ‘진정한’ 역사를 논하기 시작했다.
교단의 주장에 따르면, 시조는 위대한 구세주이긴커녕 모두를 속인 사기꾼이라고 한다.
“시조, 아이라바타. 누군가는 그녀를 용사라고 부르지요.”
아마도 이 부분이 천기누설에서 말한 창작물 클리셰인것 같다.
용사와 마왕보다 유명한 창작물 소재가 있을까?
“아이라바타가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를 낙원으로 인도한다고 했죠? 여러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봅시다! 이곳이 낙원입니까?”
곧이어 수많은 사람이 답했다.
“아닙니다!”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아닙니다!”
“시조는 우릴 지옥으로 데려왔습니다!”
교단은 ‘마왕’에 대해 논했다.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해방이 머지않았습니다. 이 답답한 도시의 구중심처,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곳, 별의 심장. 그곳에서 진실한 구주께서 일어나십니다.”
이 말이 누군가에겐 제법 감동적이었는지, 눈물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어허! 울지 마세요! 왜 웁니까? 세상에서 가장 기쁜 소식인데 왜 운단 말입니까? 여러분은 행운아입니다. 살아서 구주의 강림을 볼 수 있으니, 이런 행운이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이런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당사자들은 당황해서 감추려 하나 연단 위에서 보면 다 티가 난다.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당황하는 사람.
시조가 사기꾼이라는 말에 입을 쩍 벌리는 사람.
마왕이 어쩌고 하는 소리에 얘네 미쳤나 하는 사람.
모두가 최근에 입교한 사람들이다.
교단 식으로 표현하면, 아직 도시 물이 덜 빠진 사람들이다.
통상적인 사이비 종교라면 저런 ‘어설픈 신도’는 아주 위험하다.
이 상태로 집회가 끝난다?
저 어설픈 신도 중 일부는 100% 확률로 교단에 대한 정보를 인포서에 신고하리라.
이 사실은 교단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랬기에 교단은 매 집회 후반, 반드시 어떤 절차를 진행한다.
“자~! 여러분. 이제, 진실을 보러 갑시다.”
진실.
이것이야말로 마왕 숭배자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다.
*
낙원은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졌으며, 긴 세월 유지보수를 거쳐왔다.
덕분에 지하로 내려갈수록 개미굴이 따로 없을 만큼 구조가 한없이 복잡해졌는데, 인포서들조차 지하 통로를 모두 파악하지 못했다.
교단 또한 낙원 지하를 전부 파악한 것은 아니다.
인포서들이 알지 못하는 몇 가지 루트를 개척했을 뿐이다.
설교자는 집회에 모인 수백의 사람들을 숨겨진 루트 중 하나로 이끌었다.
복잡하게 엉킨 두꺼운 전선들, 용도를 알 수 없는 파이프, 끝없이 증기를 뿜어내는 배관.
모두가 이 복잡한 도시를 지탱하는 혈관과 같다.
그 혈관 사이를 2시간 정도 걸었을까?
마침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벽 앞에 도착했다.
설교자가 질문했다.
“여러분, 이 벽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미 몇 차례 와본 신도들이 즉답했다.
“진실의 문!”
“하하, 그렇지요. 진실의 문입니다. 교단이 신성하게 여기는 장소죠. 다만, 그렇게 말하면 이번에 처음 온 분들이 이해할 수 없지 않습니까.”
이 시점에서 결국 참지 못한 ‘어설픈 신도’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대, 대체 여기가 어딥니까? 저 틈은 또 뭐죠?”
“좋은 질문입니다. 여러분. 이곳은 바로 도시의 ‘바깥’으로 통하는 문입니다.”
낙원의 바깥.
낙원에서 나고 자란 시민들은 어릴 때부터 이렇게 배운다.
낙원은 인류 최후의 도시이며, 별이 파멸하는 와중에 시조가 만들어낸 마지막 도피처다.
이렇게 배운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낙원 바깥을 인간이 살 수 없는 지옥이라 여기게 된다.
— 끼이익!
설교자가 틈을 벌렸다.
“자, 다들 나오세요.”
이미 경험해본 사람들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뛰쳐나갔다.
처음 겪는 사람들은 크게 당황하며 움찔움찔했지만,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마침내 새장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낙원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새파랗게 빛나는 하늘과 허공을 떠다니는 구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광활한 평야.
낙원의 매캐한 공기와 전혀 다른 상쾌한 공기.
여기에 사방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와 뛰어다니는 소동물들까지.
아름다운 수목원이나 국립공원을 떠올릴만한 풍경이다.
평생 도시의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난생처음으로 이런 광경을 보았다.
나로선 저들이 지금 어떤 기분일지 상상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리고….
교단의 수뇌부, 나이 든 노인이 나를 툭 쳤다.
“사도님.”
“…”
“신도들에게 한번 보여주시지요.”
“알겠어.”
초원을 향해 움직였다.
모든 이의 시선이 내게 몰려듦을 느꼈다.
— 탁!
바닥을 박차는 순간 – 나는 새처럼 하늘을 날았다.
이곳은 낙원의 바깥, 새장의 범위에 속하지 않은 영역.
불굴의 이성이 우릴 억제할 수 없는 장소다.
이곳에서 나와 호텔 동료들은 다시금 인간을 넘어선 초인이 된다.
“흐읍!”
이번이 세 번째였나?
매번 느끼지만 윙 부츠의 사용법은 대단히 어려웠다.
신발이 양쪽에서 각자 추진력을 뿜어냈기 때문이다.
상당한 다리 힘으로 부츠를 억누르는 동시에 양발을 개별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했다.
이렇게 하지 못하면 몸이 하늘에서 아무렇게나 회전하다가 떨어지기 딱 좋다.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자, 무슨 그리스 신화의 신을 대하듯 날 바라보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로써 ‘어설픈 신도’들의 마음속에 진실한 신앙심이 채워 –
“…”
장소가 하늘이다 보니 자연스레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잘 아는 사람이다.
신도들 틈에 섞여 있던 김상현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까딱했다.
나도 뭐, 같이 까딱하는 수밖에 없었다.
*
– 유송이
「안녕하십니까! 해피해피 낙원 뉴스의 리포터, 트림본입니다. 얼마 전, 우리는 미르코늄 광산에서 벌어진 비극에 대해 알려드렸는데요, 이에 대한 최근 속보에 따르면 -」
레온 카디로프와 함께하는 식사 시간, TV에서 요즘 도시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광산의 관리인과 그 하수인들이 24명의 광부를 참혹하게 살해했다는 내용이다.
곧,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 카메라에 얼굴을 비췄다.
“… 한가인.”
「뉴스를 보고 계신 시민분들께 호소합니다! 이번 일은 단순히 4급 시민의 희생이라고 끝낼 문제가 아닙니다. 일찍이 시조께서 모두의 직분을 나누지 않았습니까? 2급은 이끌고, 3급은 수행하며, 4급은 떠받칩니다. 그러니 -」
가인 오빠가 하는 말만 듣고 있으면 평생 4급 시민의 인권을 위해 투쟁해온 시민운동가가 따로 없었다.
하는 말의 내용은….
솔직히 좀 교활하게 들려.
4급 광산 노동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내용보다 2급 광산주들의 재산 피해가 얼마나 막심한지를 논하는 내용이 더 많잖아.
주기적으로 2급 고등 법무관이 얼마나 현명하고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했는지, 사건 해결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언급하는 것도 빼먹지 않고 있어.
2급엔 철저히 숙이며 그들의 선민의식을 충족시켜주고, 모든 책임을 3급의 문제로 돌린다.
갈라치기다.
보통은 위에서 아래에 있는 사람을 다루는 데 쓰는 수법인데, 이번엔 아래에서 위를 다루는 데 쓰고 있을 뿐이지.
당연히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의 눈에 저 정도 수법은 뻔히 보인다.
내 눈에도 보이는데, 내 옆의 사람이 저 정도를 읽지 못할 리가 없다.
그랬기에 옆에 앉은 ‘아빠’는 픽 웃었다.
“허허 참, 저 친구가 요령이 좋구나.”
“… 그런가요?”
“그럼.”
“너무 뻔하지 않아요? 2급 시민 여러분은 죄가 없답니다. 3급을 괴롭혀주세요! 하는 느낌인데.”
“뻔하지. 그런데 송이야, 세상엔 뻔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수법이 있단다.”
“뻔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수법?”
“어찌 됐든 저 청년의 주장대로 여론이 형성된다 치자. 광산주들은 복잡한 문제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고, 고등 법무관은 이번 일을 경력으로 삼을 수 있지.”
“…”
“그러니 이득 본 사람들은 저 친구 편을 들어줄 테고, 그러면 저 친구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겠지.”
듣다 보니 궁금해졌다.
가인 오빠는 왜 저런 일을 벌이고 있을까? 목적은 뭐야?
“아무래도 저 친구, 계급을 올리고 싶은 모양인데?”
“…”
“흐음…. 머리가 쓸만한 것이 3급으로 올려줘도 괜찮겠는데? 어떻게 생각하니?”
적어도 가인 오빠의 목적이 3급 승급 따위가 아니라는 건 확신했다.
“아빠, 저 사람을 제가 한번 볼 수 있을까요?”
“음?”
레온 카디로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날 바라보았다.
“송이야, 저런 친구들은 보기보다 험해서 네가 만나기는 좀 -”
— 따악!
손을 튕기는 순간, 팔찌가 번쩍이며 온 사방에 환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를 본 레온 카디로프는 내 뜻을 이해했다.
“저 친구를 ‘이 장소’로 데려와달라는 말이니?”
“네.”
이곳은 낙원 최상단보다도 더 높은 장소, 도시의 바깥에 있는 부유하는 저택.
불굴의 이성이 우릴 억누를 수 없는 장소다.
“신기하구나. 그냥 머리 좀 잘 돌아가는 4급 시민 같은데…. 이유를 말해보렴.”
지난 며칠 동안 나도 놀고먹은 것은 아니야.
이 인간, 레온 카디로프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건방지잖아요?”
“…”
“뭐, 머리 좋은 건 알겠는데…. 모든 계급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죠. 4급은 곧 도시를 위해 타오르는 석탄과 같은 사람들. 그러므로 타오르면 될 뿐. 이리저리 머리 굴릴 필요 있을까요?”
“호오.”
“3급에 이빨을 들이댄 반동이 과연 2급 상대로는 얌전할까요? 그저 당장은 힘이 부족하니 엎드리는 시늉만 하는 거죠. 그러니, 보여줘야죠. 시조께서 우리에게 어떤 힘을 내리셨는지.”
길게 떠들었지만, 요약하면 4급 주제에 건방지니까 내가 손 좀 봐주겠다는 소리다.
레온 카디로프는 활짝 웃었다.
“좋아. 불러주마.”
이게 저 남자가 좋아하는 방식의 대답이다.
식사가 끝날 때쯤, 아빠가 방긋 웃었다.
“정말이지, 오늘처럼 네가 든든하게 느껴진 적이 없단다.”
“…”
“잘 자렴, 내 공주님.”
“… 네.”
레온 카디로프는 나를, 그의 유일한 딸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이 사실은 때때로 날 고통스럽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