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04)
EP.404 404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6)
404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6)
– 박승엽
“아냐 아냐! 이 멍청아, 얼마나 더 설명해야 하냐? 3번 레버를 몸쪽으로 당기면서 밀라고 했잖아! 넌 오늘도 저녁 먹을 생각 하지 마라!”
덩치 큰 남자가 버럭 짜증 내며 빼빼 마른 남자아이를 밀쳤다.
수수깡처럼 쓰러진 소년은 불평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덜덜 떤다.
부모 잃은 4급 아이들이 자라나는 ‘작은 희망’ 보육원의 일과는 이처럼 가혹하기 그지없었다.
좋게 말하면 어릴 때부터 직업훈련을 시켜주는 셈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동학대다.
답답하다.
밖으로 나갈 방법도 없고, 정보를 수집할 방법도 없다.
호텔은 대체 왜 내게 이렇게까지 무력한 역할을 내렸을까?
…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저 여자애 때문이다.
“으아앙!”
“피터, 무릎 내밀어 봐.”
“메이 누나….”
보육원에는 메이라는 소녀가 있었는데, 나보다 세 살 정도 많았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일종의 유모 비슷한 존재였다.
물론, 겨우 이런 이유로 내가 신경 쓰는 것은 아니다.
아리 누나나 미로에 비하면 예쁘지도 않고.
“자! 이제 안 아프지?”
“응!”
메이가 손으로 상처를 한번 쓰다듬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멋모르는 아이들이야 그냥 까르르 웃고 말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명백한 초능력이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자.
호텔을 오르며 초능력 정도는 수도 없이 봤으니까.
정말 이상한 건 초능력의 존재가 아니라 어떻게 쓸 수 있냐의 문제다.
불굴의 이성이 내 축복과 영혼의 함을 죄다 차단했는데, 어떻게 저 여자애만 치유 능력을 쓸 수 있을까?
“승엽아, 너무 그렇게 노려보지 마.”
“…”
지난 며칠간 너무 티 나게 관찰한 모양이다.
이럴 때는 가인 형처럼 연기력이 뛰어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
늦은 밤.
누군가 내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나와볼래?”
“…”
메이는 날 데리고 보육원 옥상으로 이동했다.
“대체….”
“응?”
“무슨 짓을 한 거야? 원장님도 선생님들도 다 어디로 갔어?”
“오늘은 조금 일찍 잠들게끔 조치했지.”
“…”
메이는 한참 동안 말없이 옥상에서 바람을 쐬었다.
“가끔 너 같은 애들이 있어.”
“…”
“의심 많고, 미묘하게 눈치 빠르고.”
“그냥 대놓고 초능력을 쓰는데 눈치 빠르고 말고가 의미 있어?”
“승엽아, 원장님이나 선생님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이게 무슨 의미일까?”
그 말을 듣자 당황했다.
생각해보니, 이 여자애는 옆에 선생님이 있든 없든 신경도 쓰지 않고 초능력을 쓰잖아?
왜 어른들은 모르지?
“몰라야 정상이야. 보통 모르니까. 네가 특이한 경우지.”
“그러면 어떻게 할 셈인데?”
“글쎄, 살인 멸구?”
순간 숨이 턱 막혀서 고개를 들었다.
메이는 입꼬리를 끌어올린 채 웃고 있었는데, 그제야 농담임을 알았다.
“노, 놀랐잖아!”
“아마 다른 보육원으로 가겠지.”
“…”
이 여자애는 대체 뭐지?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가 보육원에서 깨어난 건 이 여자애의 존재를 알기 위해서다.
그때, 메이는 어딘가 복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너희에게 미안할 때가 있구나.”
“뭐?”
“세상이 너무 힘들어서 말이지.”
“무슨 소리야?”
“들어보렴. 나는 오랜 세월 최선을 다했단다.”
“… 보기보다 나이가 많으신가 보네요.”
“그렇지. 여하튼, 모든 것을 더 나아지게 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어.”
“…”
“그런데…. 지나놓고 보니 결과물이 너무 끔찍하더라고.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 결과 지옥을 만들고 말았어.”
“어째서요?”
“좋은 질문이야. 내 답은 ‘모르겠다’야.”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어. 내가 했던 선택들 중 틀린 게 있었을까? 세월이 지나 다시 생각해도 뭐가 문제였는지 찾을 수 없었어.”
“…”
“대부분의 선택을 정확히 했는데도 결과가 이 모양 이 꼴이라면…. 우리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던 걸까?”
그 말을 끝으로 메이는 흡사 거품이 꺼지듯 사라졌다.
저 여자애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264일 차(+32)
현재 위치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32일.
206호에 들어온 후 내가 보낸 시간이다.
어지간한 저주의 방이라면 죄수가 세상을 열다섯 번은 멸망시켰을 시간인데, 206호의 죄수는 아직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도시의 분위기가 점차 무르익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4급 노동자들의 산발적인 시위가 시작됐고, 나는 은근슬쩍 시위의 구심점이 되었다.
매일같이 다양한 언론사 기자들이 몰래 찾아오는 걸 보니 확실하다.
“인포서들이 가인 군을 잡고 싶어서 난리입니다.”
의사 선생님의 지적은 나도 잘 알고 있는 포인트다.
“괜찮아요. 그 인포서들의 정보가 매일 제게 들어오니까.”
“하하! 진철 군과 요원님이 제 역할을 다하는 모양이군요.”
“은솔 누나도 도와주고 있으니까요.”
선생님은 레온 카디로프의 충직한 발톱이라는 2급 요원에 속한다.
물론, 그 ‘발톱’은 비밀리에 날 찾아와서 모든 정보를 전달하고 있었다.
“카디로프가 낙원을 철권으로 통제할 수 있는 비결을 아십니까?”
“‘증발’을 말씀하시는 거죠?”
“정확합니다. 사실상 사형선고보다도 무서운 벌이죠.”
‘증발’
조지 오웰의 1984에선 ‘증발’이라는 끔찍한 단어가 나온다.
죽이는 정도가 아니라 그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지워버리는 기록 말살형의 일종이며, 레온 카디로프가 도시를 공포로 지배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그런데, 이 증발이라는 건 굉장히 기이합니다.”
“어떤 의미죠?”
“지난 10년간 3번 정도 증발 사례가 있었는데, 기억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합니다. 증발 대상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갑자기 사라지다?”
“네. 그냥 길 가다가 사라지고, 밥 먹다가 사라집니다. 이렇게 사라진 사람은 출생신고부터 시작해서 관련한 모든 기록 또한 사라집니다.”
“… 자연적인 정치 공작이 아니군요.”
“절대 아니죠. 초자연적인 힘의 일종입니다. 문제는, 불굴의 이성이 작동 중인데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거죠.”
다소 혼란스러웠지만, 초자연적인 힘 이야기가 나오자 나도 할 말이 있었다.
“최근에 송이의 초대로 카디로프의 부유 저택에 가보았습니다.”
“레온은 만났습니까?”
“아니요. 송이만 만났습니다.”
당시 송이는 내게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냐고 질문한 후, 한 가지 중요한 제안을 했다.
“레온의 몸을 빼앗으라 하더군요.”
“매력적인 선택 같은데, 왜 피하셨죠?”
“그는 골방의 철학자가 아니라 시장입니다. 하루의 절반 이상은 도시에서 보내잖아요?”
“아하!”
“도시에 내려와 불굴의 이성이 작동하는 순간, 빙의가 풀릴지도 모릅니다.”
“그건 확실히 심각한 문제군요.”
“그렇죠. 그런데, 송이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카디로프 가문엔 대대로 이어지는 초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가문의 가주만 쓸 수 있다고 덧붙이더군요.”
“대대로 이어지는 초능력?”
“네. 그 힘이 있으므로 레온 카디로프와 송이는 낙원 최상단, 불굴의 이성이 초자연 현상을 억누르는 영역 밖에서 거주합니다.”
“초능력을 원할 때 쓰기 위해서? 복잡하군요. 그 능력이 대체 뭡니까?”
“모릅니다. 송이도 몰랐어요.”
“으음….”
잠시 고민하던 선생님이 곧 다음 주제를 꺼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마왕 숭배자와 관련한 문제죠.”
“마왕 숭배자?”
“만나 보셨지요?”
“마왕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종의 사교도라면 만나봤죠.”
“그들의 가장 괴상한 점이 뭔지 압니까?”
“뭔가요?”
“내가 그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잠깐 생각하자 선생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선생님의 신분은 2급 시민, 비밀 요원이다.
비밀 요원의 임무가 마왕 숭배자들의 감시다?
마왕 숭배자들이 존재함을 낙원 수뇌부가 이미 알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레온 정도면 마왕 숭배자의 존재를 잘 알고 있겠군요.”
“물론입니다.”
“왜 알면서도 없애지 않을까요?”
“그게 바로 제 의문이죠.”
“…”
이를 끝으로 컴컴한 방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시장이 도시를 통제하는 데 쓰는 수단, ‘증발’.
카디로프 일족이 대대로 타고난다는 초능력.
마왕 숭배자들의 존재를 알면서도 숙청하지 않은 것.
여기까지 생각하자 무언가 알듯 말듯 했는데, 무어라 딱 단정할 수 없었다.
“어렵네요.”
— 탁!
선생님이 가볍게 탁자를 두드린 후, 다음 주제로 옮겨갔다.
“도시 자체에 관해 이야기해봅시다. 가인 군이 화려하게 일을 벌인 덕에, 곧 큰일이 나겠더군요.”
“내가 일을 벌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건 정말이다.
“이 도시는, 원래 이 지랄이 날 준비가 되어있었어요. 4급을 포함한 시민들의 분노가 임계점에 다다른 지 오래였죠.”
“가인 군은 계기를 제공했을 뿐이다? 그야 그렇겠지만, 그 계기라는 게 또 중요한 법이죠.”
“그럴 수도 있죠.”
“혹시 ‘다음 계기’에 관한 계획이 있습니까?”
있다.
내 설명을 들은 선생님은 잠깐 입을 벙긋거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뭐, 알아서 하십시오. 참, 이건 확실한 정보는 아닌데….”
“뭐죠?”
“승엽 군이 실종된 것 같습니다. 보육원에서 명단을 찾았는데, 제가 찾으러 갔을 때는 이미 없었습니다.”
*
– 김묵성
“해명하라! 해명하라!”
광장 전체를 가득 채운 시위대의 구호가 도시를 울리기 시작했다.
“레온 카디로프! 레온 카디로프!”
급기야 도시에서 성역처럼 여겨지던 1급 시민, 레온 카디로프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수천에 달하는 인포서가 소집되었는데, 이들조차 어마어마한 규모의 시위대를 보자 겁에 질린 상태였다.
그 시점, 진철이 녀석이 조심스레 질문했다.
“할배, 진짜 할 겁니까?”
“그럼.”
“그 미친 짓을 진짜 해요?”
“해야지. 가인이 녀석이 하라지 않냐.”
“으으….”
“네 성격엔 좀 이상하냐? 어차피 내가 할 테니 넌 빠져 있어.”
“…”
그때, 시위대를 이끄는 청년이 열변을 토하며 다가왔다.
“낙원의 모든 역사는 곧 계급투쟁의 역사다!”
너무 유명한 말이라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과연, 조금 더 기다리자 더 유명한 문장이 튀어나왔다.
“낙원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와아아아!”
들불처럼 일어나는 기세가 시위대를 흥분시켰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그리고 –
— 철컥!
묵성의 손에서 라이플이 튀어나왔다.
주변에 있던 다른 인포서들이 기함하며 제지했다.
“헛! 묵성! 당장 내려놓지 못해? 지금 쏘면 -”
지금 쏘면 난리가 나겠지.
그게 목적이다.
— 탕!
한 발의 총성이 허공을 갈랐다.
분명히 허공을 갈랐다.
시위대를 이끌던 청년이 입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너무나 충격적인 상황에 시위대는 물론이고 인포서들조차 넋이 나간 그 순간 –
지극히 유명한 또 하나의 명언이 내 귀에 들려왔다.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
“으아아아악!
살얼음판 같던 균형이 단숨에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