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09)
EP.409 409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11)
409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11)
– 엘레나
— 라아아아!
숨 한번 들이쉬고 나자 부유 저택을 지키던 보안 시스템이 삽시간에 무너졌다.
저주의 방에선 종종 정의를 사용한 나와 맞대결을 할 수 있는 존재도 있다.
적어도 레온 카디로프는 그런 존재는 아니었다.
그는 그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연거푸 뒤로 물러섰다.
“…”
저택을 반쯤 무너트리며 다가가는데도 시장은 그 어떤 수도 꺼내지 않았다.
아리의 말에 의하면 시간을 돌리는 힘이 있다는데, 동전이건 뭐건 꺼내지 않았다.
아무래도 ‘원 모어 찬스’는 한번 쓰고 나면 꽤 오랜 시간 충전해야 하는 모양이다.
이런 점은 다행이었다.
조금 아쉽다.
마음 같아선 붙잡아서 대체 무슨 비밀을 숨기고 있냐며 심문이라도 하고 싶은데, 정의는 내게 그런 자율성을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심판을 좀 느리게 진행하는 정도였다.
“유언이라도 해봐. 갈 때 가더라도 답답하지 않게.”
가능하면 비밀도 좀 털어놓고!
시장이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대체…. 사과한다. 넌 마왕 교단 따위가 아니구나. 대체 어디서 왔지?”
“그게 다야?”
“이게 모든 것의 끝이 아니길 바란다.”
— 콰직!
결국 뭐 하나 제대로 알아내지 못한 채 시장을 죽이고 말았다.
심판이 끝나자 전신을 가득 채웠던 무궁한 힘이 모래성이 무너지듯 사그라들었다.
꽤 오랜만에 정의의 힘을 썼기 때문일까?
머리가 띵 할 정도의 탈력감에 전신을 휘청였다.
이걸로 해결? 그럴 리 없지.
내가 대단한 천재는 아니지만, 이 정도는 알아.
방의 비밀에 관해 뭐 하나 제대로 알아낸 게 없는데 갑자기 해결되면 그게 더 이상해.
애초에 레온을 죽이는 게 맞는지부터가 미지수야.
이번 회차에선 레온이 빠득빠득 우릴 죽이려 드니까 별수 없었을 뿐이지.
“이제 뭘 해야 하죠?”
혼란에 빠져서 중얼거리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어?”
가인 씨가 ‘윙 부츠’를 타고 부유 저택 창가에 나타났다!
— 쨍그랑!
“가, 가인 씨! 윙 부츠 쓸 줄 알아요?”
“아리에게 열심히 배웠어요. 덕분에 위아래로는 움직일 수 있죠. 당장 나갑시다. 엘레나는 모르겠지만, 도시에선 지금 난리가 났어요.”
*
3일이 흘렀다.
… 거짓말처럼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어.
정체 모를 암살자에 의해 시장이 암살당한 일은 도시를 충격에 빠트렸지만, 그게 끝이야.
레온이 평소 만들어놓은 악독한 유사 신분제가 이런 때는 사회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2급 시민들이 모여서 자연스럽게 유사 의회를 구성했고, 조만간 새로운 시장을 투표로 뽑는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투표권은 3급 이상의 시민에게만 주어진다고 한다.
시장이 암살당한 날, 내가 그와 식사 중이었다는 사실은 시장 측근들은 다 알고 있었기에 조사를 제법 여러 번 받았다.
역시 별일 없었다.
“이렇게까지 쉽게 혐의가 풀릴 줄은 몰랐어요.”
“당연하지 않아요? 카메라 같은 물증은 엘레나가 정의 상태로 다 부쉈죠. 또, 대외적으로 엘레나는 그냥 여배우잖아요.”
“그렇긴 하죠.”
“상식적으로 성공한 연예인이 갑자기 시장을 왜 죽이겠어요? 그럴 이유도 없고, 능력도 없지.”
앞에 앉은 가인 씨는 당연하다는 듯 쉽게 말하며 음료를 홀짝였다.
“엉뚱하게 마왕 숭배자만 열심히 찾고 있네요.”
“저 사람들로선 그게 합리적이죠.”
우리는 낙원의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식사 중이다.
시장이 죽으며 가인 씨에 대한 추격도 끝났기 때문이다.
애초에 회귀를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로선 가인 씨를 쫓을 이유가 없었다.
“미묘하게 답답하네요. 모르는 것도 많고.”
“그렇죠.”
“미로는 어디 있을까요? 페로는?”
“그러게요.”
미로가 봉인 당했다는 사실은 다른 동료 전원의 위치를 파악하자 자연스레 알려졌지만, 거기까지다.
우리는 아직도 미로의 위치를 모른다.
“페로는 보통 우리 중 한 명 근처에 있어요. 평소엔 송이였지만 이번엔 아니네요.”
페로도 미로 근처에 있는 것 같다.
사실상 같이 봉인 당한 수준인데, 201호에서 한번 겪은 일이다.
가인 씨가 어딘가 답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3일을 그냥 허공에다 뿌린 느낌인데.”
“…”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네요. 굳이 따지면 생존자가 우리 둘뿐인 것 같다 정도? 미로를 제외한다면요.”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인포서들에게 조사받는 사이, 자유를 얻은 가인 씨가 도시를 열심히 돌아다녔음에도 추가적인 정보를 얻지 못했다.
현실적인 문제였는데, 시장의 죽음으로 인포서의 경계가 철저해진데다가 가인 씨가 4급 시민이었기 때문이다.
“으으…. 역시 이번에도 혁명 일으켰어야 했나!”
“이번엔 무리죠. 시장이 죽어서 혁명의 목표부터가 애매할 텐데. 오히려 압제자가 죽었으니 이제 삶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여기저기 퍼졌잖아요.”
“후우우….”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부터는 좀 다를지도 모르니까.”
“뭐가 달라요? 여전히 경계가 철저한데!”
“제가 부자잖아요.”
단순명쾌한 이야기에 가인 씨가 무릎을 ‘탁’ 쳤다.
“아, 그걸 잊었네!”
“이 레스토랑, 한 끼에 얼마인지 알아요? 가인 씨 한 달 월급으로는 예약도 못 해요.”
“와! 그건 진짜 심한데요? 역시 혁명을 일으켜야!”
왜 가인 씨는 자꾸 생각이 혁명으로 가는 거야?!
세상에 누가 혁명을 두 번이나 일으켜? 레닌도 한 번으로 끝이었는데!
그때, 웨이터가 접시를 들고 나타났다.
가인 씨 앞에는 고급스러운 양갈비 스테이크가 놓였고, 내 앞엔 절반은 찌고 절반은 튀긴 농어 요리가 나왔다.
곧 가인 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게 대체!”
“왜 그래요?”
“이걸 보고 어제 먹은 옥수수죽을 떠올리니까 그쪽이 진짜 개 사료만도 못하게 느껴지는데요.”
“아하하! 맛있게 드시고 -”
“4급 시민이 비곗덩어리를 고기랍시고 주워 먹는 사이에 위에선 이런 파티를 열고 있었다고? 이건 진짜 혁명 없이는 말이 안 되는 -”
— 틱!
포크로 가인 씨 접시를 쳤다.
“그냥 입 좀 다물고 먹어요.”
“… 네.”
농어 요리는 정말이지 맛있었다.
바삭한 식감의 껍질과 푹 쪄서 녹아내리는 살점의 조화는 이상적이었고, 레몬 향이 살짝 나는 소스의 맛 또한 훌륭했다.
앞에서 민트 젤리를 바른 양갈비를 뜯던 가인 씨가 감탄했다.
“엄청나네요. 이게 겉바속촉 그런 건가? 초록색 젤리는 처음엔 뭔가 싶었는데, 양갈비에 바르니까 박하 향이 나는 게 기가 막혀요.”
“그렇죠?”
“근데, 일반인은 나갈 수도 없는 도시국가에서 양과 농어는 대체 어떻게 구한 거죠?”
대답 대신 포크로 가격표를 가리켰다.
“…”
“보이죠? 가인 씨 한 달 월급으로는 양의 다리 한 짝도 사기 힘든 거?”
“…”
“가격이 곧 답이에요.”
접시를 절반 정도 비웠을 때쯤, 가인 씨가 갑자기 픽 웃었다.
“왜 그래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네요.”
“네?”
“여자 친구가 돈이 많은데 혁명을 대체 왜 하죠? 이런 곳에 척 척 데려와 주는데?”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곧, 가인 씨가 당황한 듯 덧붙였다.
“제 말은, 주, 주변에서 보면 여자 친구 같다는 거죠.”
“얼굴만 잘생긴 한량이 운 좋게 돈 많은 여자 친구 만난 상황?”
잘생겼다는 말에 그는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제와서 이 정도 말로 서로 부끄러워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까!
난 예쁘다는 말 들어도 아무렇지 않은데? 사실이잖아?
가인 씨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생각해보니까 내일 언론에서 난리 나지 않을까요?”
“왜요?”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가 난데없이 4급 광산 노동자 데리고 특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했다. 이거 딱 봐도 엄청난 특종이네요.”
그야 그렇다.
워낙 비싼 레스토랑이라 우리 주변에 기자들이 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이런 가십은 숨길 수 없다.
“상관없죠. 아니면 사람들을 아예 더 놀라게 해볼까요?”
“더 놀라게 한다니….”
“쿡!”
가인 씨는 성과 없는 3일이라 했지만, 내겐 아닌 것 같아.
적어도 오늘은 아니야.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니까.
이런 말 하긴 미안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이 둘 뿐이라는 점도 나름대로 느낌 있었다.
그러니까….
“가인 씨, 할 말이 있어요.”
“어?”
“전에 호텔에서 했던 말의 연장선인데요.”
“에, 엘레나!”
“중요한 순간이니까 이상한 말로 끊지 말고 -”
“엘레나! 힘이 돌아왔어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누군가 얼음물을 들이부은 것처럼 정신이 확 들었다.
돌아왔다.
정의의 축복과 불길한 상상의 힘이 깨어났다.
“이, 이게 무슨?”
이 레스토랑은 부유 저택이나 낙원 바깥이 아니야.
불굴의 이성이 우리 힘을 억누르는 장소라고!
그런데 갑자기 힘이 돌아왔어?
넋이 나간 나와 가인 씨가 서로를 마주 보며 동시에 중얼거렸다.
“불굴의 이성!”
“멈췄습니다. 아, 아니? 왜 멈췄죠? 왜 갑자기 – 아니, 아니지. 이럴 때가 아니지!”
가인 씨가 황급히 허공을 터치하며 시나리오를 확인했다.
“어? 어?”
“뭐래요? 시나리오에서 뭐래요?”
“시장이 죽어서 아무도 불굴의 이성에 땔감을 공급하지 않았답니다!”
아리가 해준 이야기다.
불굴의 이성은 관리국이 만들려다가 실패한 ‘영혼의 화로’와 유사한 물건이며, 제작은 물론 힘을 유지하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인간의 목숨을 요구한다.
실제, 회귀 전 시장은 동료 중 다수를 불굴의 이성에 제물로 바쳤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죠?”
가인 씨가 넋 나간 사람처럼 벌떡 일어섰다.
“가인 씨?”
“하, 하! 이, 이게 무슨….”
— 위이이잉! 위이이잉!
갑자기 요란한 경고음이 들려왔다.
「시민 여러분, 긴급 속보입니다. 음식점, 아파트, 도서관 등 건물 내에 있는 분들은 즉시 탁 트인 공간으로 나와주십시오.」
사방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갑자기 무슨 방송입니까?”
“나가라는데요?”
“지, 지진입니다! 지진 경보가 틀림없어요!”
뚱뚱한 남자가 ‘지진’이라는 키워드를 꺼내자 사람들이 죄다 놀라서 황급히 문을 향해 달려갔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건물 내에 있는 분들은 즉시 바깥으로 탈출하십시오.」
“가인 씨! 우, 우리도 일단 밖으로 -”
그때, 가인 씨가 허탈한 표정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가인 씨?”
“가만 있어요.”
“네?”
“그냥, 가만 있어요.”
우리가 넋 나간 것처럼 서 있는 사이, 다른 사람들은 죄다 입구 쪽으로 달렸다.
그리고 –
— 와작!
“꺄아아악!”
“괴, 괴물이다아아!”
밖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우리가 식사하며 냈던 소리다.
껍질을 뒤집어 속살을 파먹는 소리.
뼈에 붙은 살을 살살 빨아먹는 소리.
넋이 나간 채 레스토랑 창 밖을 보자 비로소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화물차는 스스로 구르며 수십 명의 사람을 깔아 죽였다.
몇몇 집은 흡사 생물처럼 일어서서 길가의 사람을 잡아먹었다.
빌딩 상단의 광고 스크린에선 뱀 같은 목을 두른 괴인이 튀어나와 사방에 혀를 뻗었다.
지옥이다.
눈 한번 감았다 뜬 사이에 낙원 전체가 지옥이 되었다.
단순히 레스토랑 입구에 무언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정체 모를 악의가 도시 전체를 공격하고 있다.
— 틱!
조명이 꺼지며 주변이 어두워졌다.
“허어억! 이, 이게 무슨!”
갑자기 허공에 나타난 붉은 글씨에 질려서 넘어질 뻔한 순간, 가인 씨가 날 지탱했다.
“하! 어떤 새끼인지 몰라도 지랄 적당히 해!”
웃음을 보았다, 혹은 들었다.
하늘을 무너트릴 듯한 압도적인 힘이 단박에 콘크리트 건물을 쪼갰다.
— 쿠르릉!
그녀는 천둥과 함께 나타났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272일 차(+40)
현재 위치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현자의 조언 : 1]
– 한가인
아무래도 좆된 것 같다.
이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오랜만에 확인한 시나리오 이해의 마지막 문장이 눈에 아프게 밟혔다.
「시나리오 :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도시를 지탱하던 레온 카디로프가 암살당하고 3일이 흘렀습니다.
지난 3일, 그 누구도 불굴의 이성에 땔감을 공급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낙원을 지탱하던 이성의 불꽃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최선을 다해주세요.
이것이 여정의 끝이 아니길 빕니다.
마왕이 부활합니다. 」
“이런 씨발! 100일 후에 부활한다며! 아직 아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