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12)
EP.412 412화 – 영광과 초월 (1)
412화 – 영광과 초월 (1)
– 김아리
누군가 ‘김아리’라는 전등 스위치를 누른 것처럼 갑작스레 의식이 돌아왔다.
주위를 돌아보자 익숙한 얼굴들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차진철이었다.
“그러니까…. 해결은 아닌 거지?”
가인이는 조금 창백한 표정으로 벽에 기댄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으…. 아쉽다. 하기야 첫 시도로 해결은 무리지.”
엘레나가 살짝 웃었다.
“가인 씨, 제 믿음이 맞았죠?”
뭐가 맞았다는 지는 모르겠지만, 정황상 엘레나와 가인이가 마지막까지 남은 두 사람이었나보다.
“… 마지막 남은 강림, 썼습니다.”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206호는 가장 어려운 저주의 방이고, 저주의 방에서 제일 위험한 게 아무것도 모른 채 들이받는 첫 번째 시도다.
그래서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잘 썼네. 살아 나왔으면 됐어. 이제 각자 모은 정보 좀 모아보자. 난 승엽이가 어디서 뭘 했는지가 제일 궁금해.”
다른 사람들은 어디서 뭘 하는지는 알았고, 미로도 봉인 당했다 정도는 알아.
승엽이는 대체 뭘 하고 있었을까?
곧, 승엽이가 활기찬 표정을 지으며 –
— 탁!
가인이가 창백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벽에 기댔다.
미로가 놀라서 다가갔다.
“어? 어? 왜 그래? 어디 아파?”
“좀 피곤하네. 아마 미로가 괴롭혀서 그런가 봐.”
“뭐?”
“미로가 마왕으로 변신해서 나랑 엘레나를 산채로 악어 입에 넣어서 -”
“꺄아앗! 거, 거짓말!”
이 와중에 미로를 놀리는 게 기가 막힌다 싶으면서도, 죽을 정도의 위기는 아닌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무슨 문제야?”
그리고 그의 입에서 폭탄 발언이 튀어나왔다.
“주의 목소리가 들리네요.”
“…”
삽시간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곧, 송이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뭐, 뭐라고 하는데요? 강림 3번 써서 그런가? 대체 무슨 일인데요!”
“이게 주의 목소리 맞나? 아니면 ‘계시’의 말인가?”
“네?”
“104호로 다시 오라고 하네. 마지막으로 거래하자. 이번엔 분명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판을 준비하겠다….”
어찌할 바 몰라 모두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인이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화 좀 하고 올게요.”
듣자마자 외쳤다.
“누구랑! 누구랑 대화를 하겠다는 건데!”
“나도 몰라.”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벽에 기댄 채 쭉 미끄러졌다.
*
가인이가 괴상한 소리를 늘어놓다가 기절했다.
비상사태다.
어떤 의미에선 206호 진행 보다 훨씬 큰일이야.
물론, 그 와중에 승엽이의 말이 충격적이긴 했지만.
“제, 제가 곰 두 마리랑 호랑이 세 마리를 쓰러트린 후에야 발견했는데요!”
곰하고 호랑이? 갑자기?
“낙원 밖에 또 다른 도시가 있었어요. 그 도시도 낙원처럼 돔으로 덮여있었고 -”
은솔이가 다급하게 외쳤다.
“승엽아, 그건 일단 화이트보드에다가 적어두고 나중에 이야기하자. 가인이 상황부터 살피고!”
— 탁!
가볍게 탁자를 쳐 주의를 끌었다.
“들어봐. 상황 자체는 우리가 종종 예상했던 범주 내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가인이가 자주 언급했잖아? 강림을 쓰다 보면 무슨 일이 생기긴 할 것 같다. 그래서 얘는 항상 104호로 돌아가서 주와 담판을 짓고 싶어 했어.”
가인이는 강림을 얻고 사용한 당사자다.
다른 사람은 감지할 수 없는 어떤 불길한 미래를 직감했겠지.
그때, 은솔이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 내가 전에 했던 말 다들 기억하니?”
“무슨 말?”
“205호 들어가기 전날 밤, 무슨 방에 갈지 회의했었지? 104호, 205호, 206호에 관해 의견 나눴었잖아?”
당시 우린 ‘다음 방의 죄수를 억제해주겠다’라는 호텔의 약속을 받은 상태였고, 어떤 방을 골라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엘레나가 한숨 쉬었다.
“생각해보니까 무조건 206호 가야 했네요…. 마왕을 봉인했다면 206호는 그냥 날로 먹는 건데!”
은솔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미래를 볼 수 있어야 가능한 결정이지. 지나간 일은 신경 쓰지 마. 그보다, 내가 했던 말 다들 잊었어?”
슬슬 기억나기 시작했다.
“네가 104호에 대해 재밌는 이야길 했었지. 주가 다른 죄수와 달리 제멋대로 날뛸 수 있는 원리를 깨달은 것 같다고.”
은솔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한 가지는 명확히 하자. 아무리 강한 죄수라도 호텔의 법칙을 무시할 수는 없어. 그게 가능하다면 애초에 갇히지 않았겠지.”
203호의 아드라비타가 좋은 예시다.
그는 우리를 냉동 인간으로 만들었고, 참가자의 탈출 및 해결을 막아 203호의 영구존속을 꾀했다.
이런 짓은 호텔이 보기에도 과도한 꼼수였으나 규칙 위반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주도 비슷하지 않을까?
호텔의 규칙을 어긴 게 아니라 일종의 꼼수를 쓰고 있다.
은솔이가 당시 했던 이야기를 다시 했다.
“어쩌면 주의 본체는 최초의 시도, 가인이에게 강림을 내린 후로 개입한 적 없는 것 아닐까?”
송이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러면 두 번째 시도에서 가인 오빠의 몸을 빼앗은 건 누군데요?”
여기까진 당시 했던 대화와 같은 흐름이다.
“정답은! 사실 우리가 파악한 정보 내에 있어.”
주에 대해 우리가 파악한 정보.
그는 ‘정체성’이라는 관념을 탈피한 존재이며 자신을 복제한 분신을 유산으로 만들었다.
또한, 육체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인간을 벗어나게 하는 ‘강림’이라는 힘을 가인에게 내렸다.
*
– 한가인
…
…
…
— 딩! 딩!
익숙한 종소리를 들으며 정신 차렸다.
주변을 돌아보자 너무 잘 아는 풍경과 익숙한 사람들이 지나갔다.
신반포 고등학교, 내가 졸업한 학교다.
「잠시 후, 신반포 고등학교 제21회 졸업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졸업생 여러분은 -」
“이게 또 뭐야….”
처음 든 생각은 ‘저주의 방에 들어온 것 같다 ’이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101호에서의 경험이 떠올랐다.
다만, 그때와 달리 내 정신이 오염된 것 같진 않았다.
…
아니네.
미친 사람은 자신이 미쳤는지 아닌지 구별할 수 없지.
누가 알겠어?
어쩌면 현실의 고등학생들은 졸업식 때 다 같이 총 들고 배틀로얄을 해야 할지도 몰라.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과한 상상인가?
“가인아! 축하한다!”
“네.”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부모님이 내게 꽃다발을 건넸다.
이 순간만큼은 차라리 저주의 방이었으면 했다.
그랬다면 눈앞의 사람들이 진짜 부모님이라 착각했을 텐데.
그 어느 때보다 맑은 정신이 내게 속삭였다.
여긴 일종의 심상 세계고, 난 3번째 강림을 쓴 대가로 기이한 상황에 부닥쳤다.
이런저런 상상에 빠지는 동안에도 시간은 착실히 지나갔다.
졸업생 대표가 나와서 이러쿵저러쿵 떠들고, 수능을 잘 본 애들은 벌써 싱글벙글하며 대학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재수를 준비 중인 애들은 표정만 봐도 결연하기 그지없었다.
호텔에 들어오기 몇 달 전 시점의 기억이다.
“가인아, 함지박 사거리 중국집을 예약했는데 -”
“아빠, 저 잠깐 교실에서 뭣 좀 챙겨올게요.”
“어? 어? 가인아!”
환영 속의 부모님과 대화하는 일은 제법 괴로웠다.
요전에 아리 앞에선 당당하게 말했다.
호텔은 내게 해피엔딩을 약속했으니 걱정하지 않겠다고.
…
정말 걱정하지 않을 리가 있겠어?
절반 정도는 내 희망 사항이고, 나머지 절반은 아리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다.
애초에 이놈의 호텔처럼 기괴한 장소가 또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결말’과 호텔이 생각하는 ‘해피엔딩’은 전혀 다를 수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급격히 우울해졌다.
“그러니까 이쯤 하고 그냥 나와라 좀.”
내게 과거의 환영을 보여주는 존재는 누구지?
전에 아폴리온을 쓰러트린 후 대화했던 ‘계시’인가?
“내 말 듣고 있지? 네 정체도 대충 알아.”
…
“너, 주가 강림을 통해 만들어낸 인격이지?”
…
“내가 104호를 해결해서 신성한 태양을 얻었다 치자. 신성한 태양은 결국 뭐다? 유산이다. 거기에 설령 주의 분신이 담겨있다고 해도 결국 유산이야.”
…
“유산은 결코 참가자를 속박할 수 없어. 애초에 내 마도서만 봐도 그래. 아주 긴 시간에 걸쳐 내 사고방식을 비틀긴 했지만, 그 정도가 끝이야. 무슨 태어나지 못한 자의 정신이 내 머리를 터트리고 나오는 일 따위는 없다고.”
…
“주의 계획이 완성되려면, 신성한 태양을 얻은 참가자가 거기에 담긴 주의 뜻을 거스르지 않아야 해. 즉, 유산만으론 불충분하고 참가자 자체도 개조해야 하지.”
…
“그걸 위해 강림을 내린 – 야, 이 새끼야! 여기까지 들었으면 좀 처 나오라고!”
한참 동안 교실에서 혼잣말하자 바보가 된 기분이다.
주의 의도, 신성한 태양, 강림의 목적.
이런 건 진즉 알아챘다.
은솔 누나도 대강의 전모는 파악한 것 같았다.
근데 이 새끼는 왜 안 나와?
“설마 날 이 기억 속에 영원히 가두는 그런 게 목적이야? 너, 내가 이 기억에서 나갈 방법이 없는 줄 알아?”
그 말과 함께 ‘마도서’를 불러냈다.
“난 마음만 먹으면 화신의 힘으로 이 공간 찢어버리고 나갈 수 있어. 계시, 네 생각을 듣고 싶어서 배려해주는 건데 -”
「그대, 생각보다 말이 많은 성격이로다.」
“…”
「조금 인내심을 발휘하라. 내 너에게 영광을 보이고자 한다.」
영광을 보인다.
이게 대체 뭔 소리일까?
“그냥 말로 해봐.”
「1,000마디의 말이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다.」
“은근히 귀찮은 성격이네…. 그리고, 내가 네 말을 들을 이유가 있어? 내 정신을 오염시키려는 수작을 뻔히 아는데 -”
「내가 그대를 오염시켰다? 정말인가? 그대 오른손에 들린 책이 범인이 아니고?」
“…”
잠시 후, 마치 꿈속의 꿈처럼 불쾌한 환영이 뇌리를 스쳤다.
불굴의 이성 앞에 선 내가 보였다.
그는 촉수 괴물을 지배해 수천 명의 민간인을 거리낌 없이 제물로 바치고 있었다.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
「그대가 206호에서 결단을 내리는 광경을 보았다. 분명, 이 정도로 무자비한 마인이라면 호텔의 시련을 이겨낼 수 있겠지.」
“…”
「이게 정말로 그대의 본질인가? 다시 묻겠다. 무엇이 그대를 오염시켰지? 나? 아니면 마도서?」
나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교실 밖으로 나오자 이제는 누군지도 헷갈리는 친구들이 나타났다.
그렇다고는 해도, 몇 마디 나누다 보니 예전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역시 그리운 얼굴들이다.
그때, 민석이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야, 야! 빨리 와!”
“뭔데 갑자기 이래?”
주변 친구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는지 킥킥거리느라 정신없었다.
심지어 부모님도 흥미진진한 기색으로 날 바라보았다.
“뭐야? 너네끼리 무슨 이벤트라도 만들었어?”
“아오~! 새끼야, 이벤트 이딴 게 뭔 필요가 있어? 네 인생이 이벤트인데!”
그 말엔 친구로서의 장난기에 더해 상당한 질투심이 느껴졌는데, 점점 더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이 기묘한 꿈을 만들어낸 건 ‘계시’다.
그는 내게 뭘 보여주려고 하는 걸까?
정처 없이 친구들에 이끌려 운동장 바깥쪽으로 움직였을 때, 다른 학교 학생이 멀리서 다가왔다.
“대체 누구길래 갑자기 -”
뭐야? 아니지?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진짜 아니지?
“야! 계시 이 새끼가 진짜!”
그냥 더 돌아볼 것도 없이 마도서를 꺼내서 꿈을 찢어버리려는 순간 –
악마의 유혹이 들려왔다.
「그러지 말고 얼굴은 한번 보는 게 어떤가?」
“…”
숨이 턱 막힌 채 덜덜 떠는 날 바라보며 – 그녀가 다가왔다.
나이는 동갑, 키는 송이보다 살짝 크다.
물결치는 고동색 머리는 어깨 아래까지 살짝 내려와 있다.
아리나 미로, 혹은 엘레나처럼 압도적인 미인은 아니지만, 그래서 현실에 있을법한 사람.
과거, 반포 중학교 남학생 수십 명을 손짓 한 번으로 휘둘렀던 전설의 도내 A급 미소녀!
가영이다.
“가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