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13)
EP.413 413화 – 영광과 초월 (2) Fin
413화 – 영광과 초월 (2) Fin
– 한가인
“가인아. 저기…. 나, 하고 싶은 말이 있어.”
“…”
인정할 건 인정하자.
오랜만에 가영이를 보니까 조금 두근거렸다.
“예전엔 그…. 미안했어. 이후로 여러 번 연락하고 싶었는데,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어.”
“부, 부끄럽다니….”
“가인아. 나, 나랑…!”
“…”
“나랑…! 사귀-”
“으악! 지, 진짜 못 듣겠다!”
“에엑?”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신없이 뛰었다!
아오! 대체 여기서 뭘 보여주려고?
가영이가 내게 고백해서 사귀는 장면?
쉼 없이 입으로 욕하면서 길가를 달리던 중, 계시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행복한 장면은 지금부터 시작인데 왜 도망갔지?」
“행복은 진짜 지랄! 저게 진짜 가영이도 아닌데 무슨 -”
「물론, 지금의 장면은 환영이다. 허나, 실현할 수 있는 환상은 단순한 꿈 이상의 의미가 있다.」
실현할 수 있는 환상.
내 앞에 놓은 무한한 영광.
계시의 의도는 알고 있다.
애초에 그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으니까.
예전에 올빼미에게 들었던 말의 연장선이다.
「사람의 정신은 그릇에 담긴 물과 같다.」
“…”
「그 물에 마(魔)의 힘이 담긴 검은 물감이 과도하게 섞였지. 꼭 나쁜 일은 아니야. 그 물감엔 위대한 지혜가 섞여 있으니까.」
“…”
「어떻게 대응해야 하지? 올빼미가 네게 가르침을 내렸다.」
첫 번째 방법,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인간성을 품는다.
올빼미는 이를 ‘물을 얼린다’라고 표현했다.
아리가 바로 이 상태다.
그녀는 영원히 녹지 않는 미로에 대한 사랑을 품고 태어났다.
이 방식은 내가 따라 하기 쉽지 않다.
두 번째 방법, 마도서와 다른 방향성의 힘을 얻는 것.
올빼미는 이를 ‘하얀 물감을 들이붓는다’라고 표현했다.
「신성한 태양의 격은 마도서에 비해 모자람이 없으니…. 주의 영광이 널 빛나게 하리라.」
“… 그래. 무슨 말 하려는지는 알겠는데, 이거랑 가영이가 나한테 고백하는 게 대체 뭔 상관이냐?”
「흘러간 시간,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미련. 이런 것조차 이룰 수 있게 하는 것이 주의 영광이니 -」
“아오! 진짜 이 새끼가! 너, 날 쪽팔리게 만들어서 멘탈을 흔들 생각이지? 그런 수작에 내가 -”
「오해로다. 그게 목적이었다면, 이걸 보여줬겠지.」
— 카톡!
“…”
이 소리를 듣는 순간 숨이 탁 막혔다.
이 상황에서 나올만한 카톡이 하나 떠올랐기 때문이다.
— 카톡!
“아니지?”
에이~! 아니겠지.
아무리 계시 이놈이 사람 같지 않은 놈이라 해도 설마 이 정도는 아니겠지.
양손을 덜덜 떨면서 핸드폰 카톡 창을 켰다.
“꺅!”
꺄아악! 꺄아악! 꺄아악! 꺄아악! 꺄아악! 꺄아악! 꺄아악! 꺄아악! 꺄아악! 꺄아악! 꺄아악! 꺄아악! 꺄아악!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진짜 농담이 아니고 자살하고 싶다!
지금 내가 느낀 절망은 도무지 말 몇 마디로 표현할 수 없어.
좀 과장하면 저주의 방에서 죄수를 만났을 때의 기분과 비교할 만하다.
평생 내 머릿속에 구겨 넣고 잊고 싶었던 기억인데!
중학생 때 가영이에게 했던 끔찍한 카톡 고백!
이걸 씨발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알고 있다고?
「난 엄밀히 말해 너와 다른 사람이 아니 -」
“꺄아아악!”
정신이 반쯤 나간 채 마도서의 힘으로 꿈을 찢어발겼다.
정확히는, 찢으려고 시도했다.
그 직전에 누군가 내 팔을 잡지 않았다면 그랬겠지.
— 덥석!
“…”
그는 어둠을 두른 채 나타났다.
그는 계시보다 훨씬 익숙한 존재였다.
그는 내가 마도서를 얻는 순간 깨어난 존재다.
그리고 그는, 203호에서 보낸 기나긴 세월 속에서 완성되었다.
처음으로 들은 것은 웃음이었다.
“하하하하! 지, 진짜 너무 웃기다!”
“…”
“아니, 와! 계시 저 새끼 완전히 미친놈 아니야?”
“…”
“가인아, 너도 어렴풋이 이해했지? 계시 저놈은 딱히 널 놀리거나 괴롭힐 생각이 아니었어.”
“… 알고 있어.”
“진짜 순수하게! 너한테 행복한 장면을 보여준다고 한 게 이거라니까?”
“그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까.”
“그거지! 네게 이루지 못한 사랑조차 이룰 수 있다, 뭐 이런 동화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답시고 이 등신짓을 벌였어. 크! 나 같으면, 그냥 엘레나랑 아리, 미로에 송이까지 -”
“제발 좀 조용히 해라.”
“그래, 그래. 조용히 할게.”
“…”
“와~! 근데 이 카톡은 진짜 미쳤다. 아니, 진심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보낸 거야?”
내 인생에서 가장 숨기고 싶은 비밀을 아는 존재가 셋으로 늘어났다.
“와! 카톡 고백도 병신 그 자체지만, 만우절 드립은 진짜 뭐냐? 대체 누가 이런 거 가르쳐줬어?”
이 새끼를 트럭에다가 밀어버리는 게 어떨까?
어차피 심상 세계라 아무 의미 없나?
“안 되겠다. 나도 보여주고 싶은 게 있긴 했는데,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생겼어.”
“… 급한 일?”
“너도 알다시피, 나는 딱히 너와 다른 존재가 아니야. 무슨 빛 가인? 어둠 가인? 인간 가인? 이런 구분은 아무 의미 없어.”
“…”
“따라서 현 상황은, 한 명의 한가인이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과정이지.”
“…”
“그래서 너에게 ‘초월’의 길을 보여주고 싶었어. 그런데, 생각해보니 지금부터 하려는 것도 비슷하네.”
“뭐가 비슷하다는 거야?”
“초월이란 무엇인가.”
“뭐?”
“세상이 날 규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곧 세상을 규정하는 것. 이것이 곧 초월이 아닐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를 -”
“보여줄게. 이건 일종의 심리치료기도 하니까.”
*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일에는 아주 논리적이고 합당한 이유가 있다.
내 기억 속에서 가영이와 관련한 일은 일종의 트라우마다.
평소에 자극당할 일이 없어서 잊고 살았을 뿐이다.
아까 느꼈지만, 누군가 이 상처를 찌르면 엄청나게 고통스럽다!
「그게 지금 이 괴상한 행동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넌 진짜 조용히 안 하냐?”
마음의 상처와 몸의 상처는 크게 다르지 않다.
둘 다 고통스럽고, 내 약점이 될 수 있고, 고쳐야 한다.
그러니까 이 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
굳게 마음먹으며 반짝이는 눈을 빛내는 가영이를 바라보았다.
“가, 가인아! 아까 내가 했던 말…. 어떻게 생각해? 저기, 나는…. 나는….”
흔들림 없이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미안해.”
도내 A급 미소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는가 싶더니, 입을 반쯤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영아, 나 사실 여자친구 있어.”
이거지~!
“그, 그런 말 못 들었는데!”
“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 적 없어서 몰랐구나? 여기, 전에 찍은 사진인데 -”
행복하게 웃는 아리와 함께 찍은 투 샷을 보여줬다.
당연히 사진은 그냥 만들어냈다.
어차피 상상 세계인데 안될 게 있겠어?
“흑, 흐윽!”
속이 뻥!
통쾌한 기분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순간, 계시가 참을 수 없다는 듯 끼어들었다.
「이게 ‘트라우마 해소’와 대체 무슨 상관이 있지?」
기다렸다는 듯, 옆에서 나타난 소년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야, 야! 저 멍청이는 무시해. 그보다 한 번 더 하자.”
“한 번 더?”
“한 번 더! 야, 한 번으로 치료가 끝나겠어?”
마도서의 자아가 그리 말하니 어쩔 수 없었다.
내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이니까!
「…」
*
이렇게 커피숍, 대학교 캠퍼스, 고등학교 운동장 등 세 번에 걸쳐서 환상 속의 가영이를 찼다.
몇 번 하다 보니 예전에 미로가 내게 고백한 후에 갑자기 ‘내가 찬 거야!’라고 우기던 일이 떠올랐다.
대체 무슨 바보짓인가 싶었는데,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심혈을 기울여 ‘이미지’를 건드리고 있었는데, 지금까지의 ‘치료 과정’중 가장 중요한 절차였다.
“잘 되고 있어?”
“집중 중이니까 방해하지 마.”
입을 열 때마다 쉼 없이 장난쳤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찌나 몰입 중인지 말투부터 다르다.
“알고 있겠지만, 이건 단순한 이미지 조작이 아니야. ‘우리’의 머릿속 기억 자체를 조작하는 거지.”
“흡!”
“이곳은 심상 세계니까 가능한 일이야. 앗!”
“앗?”
“이, 이제 다 끝났다!”
마도서의 자아가 기쁜 표정을 짓는 순간, 내 머릿속 이미지가 교체되었다.
“휴…. 이제 됐다. 모든 진실은 역사 속에 묻혔어. 난 한 번도 차인 적 없는 -”
그가 의아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무슨 말이야? 뭘 차여? 아, 가영이를 ‘찼던’ 일 이야기하는 거야?”
오랜 세월 마음 한편을 차지했던 트라우마가 녹아내리는 순간,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가능하면 참고 싶었지만 물어야겠다. 이게 대체 ‘초월’하고 무슨 관련이 있지?」
“…”
「마(魔)가 너를 물들였는가? 아니면, 그 이상으로 네가 마(魔)를 물들였는가….」
이렇게 기묘했던 꿈이 끝났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274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밖으로 나오자마자 토끼 눈을 뜬 동료들이 내게 다가왔다.
“어, 어땠어요?”
엘레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어깨를 잡았고, 아리도 날 유심히 관찰했다.
미로는 이미 두어 번 운 것 같았다.
“… 예?”
어땠냐고?
갑자기 말문이 탁 막혔다.
송이가 눈을 크게 떴다.
“오빠! 주? 아니면 계시? 그런 존재와 대화하고 오겠다면서요? 아리가 그렇게 들었다던데.”
“…”
그러고 보니 그랬었지?
“계, 계시라고 주가 만들어낸 유사 인격 비슷한 게 있거든? 그놈이랑 대화했어.”
“무슨 대화를 했어요?”
“벼, 별것 아니야. 내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 심도 있게 토론했달까?”
아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렇게 말을 더듬어?”
“노, 놀라서 그렇지. 다들 이렇게 모여 있으니까.”
“그야, 네가 갑자기 쓰러져서 계속 잠만 자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나쁘지 않았어. 강림이나 신성한 태양에 담긴 의미를 명확히 깨달았으니까. 그리고….”
“그리고?”
“약간의 정신적인 성장이 있었지.”
“정신적인 성장?”
동료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별건 아니고, 어릴 때 있었던 약간의 죄책감을 떨쳐냈다고나 할까?”
정말 별일 아니었다.
그래서 다과 테이블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편히 이야기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나? 가영이라는 여자애가 나한테 고백했었거든.”
“으악! 어, 어떻게 됐어!”
고백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미로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고, 진철 형은 벌써 낄낄거리며 탁자를 치기 시작했다.
“아니, 뭐 별거 아니야. 이런저런 이유로 사귀긴 힘들다고 했지. 그랬더니 그 애가 아주 큰 상처를 받아서 -”
“아오! 가인이 이 새끼, 중학생 때부터 그러고 다녔냐?”
“으아…. 가인 형 부럽다….”
“승엽아.”
“하, 할아버지?”
“나중에 내가 꼭 네 또래 아이 한 명 소개해줄 테니 걱정 말거라.”
“헉!”
“하하, 요원님, 승엽 군은 호텔에서 인연을 얻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거대로 문제인데….”
“와하하!”
왁자지껄한 분위기, 즐거운 시간이다.
숨 가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침대에 눕자마자 잠드는 것도 실력이라지 않던가?
그 말처럼 우리는 시련 사이마다 잠깐이라도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게 우리의 방식이니까.
저녁 무렵, 마침내 긴 세월 묵혀두었던 방의 끝을 보기로 했다.
내일 우리는 104호로 간다.
조언 또한 104호를 위해 아낌없이 털어 넣었다.
“…”
잠들기 직전, 별 건 아니지만 사소한 의문이 들었다.
내가 가영이를 찬 일을 왜 이렇게 긴 세월 무슨 트라우마처럼 기억했을까?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