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17)
EP.417 417화 – 104호, 저주의 방 – ‘입시 명문 호텔고’ Re (16)
417화 – 104호, 저주의 방 – ‘입시 명문 호텔고’ Re (16)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281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4호 – 저주의 방 ‘입시 명문 호텔고’
현자의 조언 : X]
– 한가인
호텔고가 쑥대밭이 된 후 5일이 흘렀다.
상황은 예전과 비슷하다.
아리와 엘레나는 주기적으로 공포영화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해가며 주의 신도들을 괴롭혔다.
당연히 구원을 요청하는 신도들의 목소리가 일대에 가득했는데, 아우렐리아는 거처에서 나오지 않은 채 침묵했다.
그동안 미로는 매번 ‘신성력’을 써 악마의 손에서 교단을 구했고, 덕분에 미로를 보고 도망가는 아리 목소리를 10번은 들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미로의 권위는 날로 올라갔고, 교단 내에서 미로는 명실상부한 두 번째 성녀로 여겨졌다.
교단이 사실상 둘로 쪼개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여기까진 큰 틀에선 계획대로인데….
“아우렐리아가 이렇게까지 꼼짝하지 않을 줄은 몰랐는데.”
그녀의 반응은 내 예상을 벗어났다.
자신을 죽이려는 주의 목적을 깨닫고 하루 이틀 정신을 놓을 줄은 알았지만, 5일 내내 방에 틀어박히다니?
이렇게 멘탈이 약했나?
덕분에 진철 형 쪽 계획이 살짝 어그러졌다.
“으음….”
“고민이 많은 모양이네. 샌드위치라도 하나 먹어.”
“아, 누나 고마워요.”
나는 며칠째 은솔 누나와 묵성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구교사에 숨은 채 시간을 보냈다.
“누나, 계획이 미묘하게 어그러진 것 아시죠?”
“응. 아우렐리아가 생각보다 충격을 많이 받았나 봐. 아예 방에서 안 나오네.”
“그래서 말인데, 제가 한번 지하 도시로 가봐야겠네요.”
“숙주를 데려다줄게.”
그 말과 함께 누나는 교실을 떠났다.
… 숙주?
말이야 맞긴 하지만, 표현이 좀 그렇네.
…
…
…
“하하, 은솔 선생, 정말 성녀님이 절 보고 싶으시다고 하셨습니까?”
“그럼요.”
— 드르륵!
*
새롭게 얻은 몸의 신분은 권일환 집사라고 하며, 세속의 일에 어두운 아우렐리아를 보좌해온 실세라고 한다.
“집사님,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덕분에 구교사 아래의 지하 도시까지 막힘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유산을 잔뜩 얻고 1층 방을 재도전하니 모든 게 너무 순조롭다.
여기가 2층 방이었다면, 지금쯤 빙의를 막아내는 교단의 신물 따위가 등장했을 가능성 100%다.
“집사님, 지하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용무가 있으시다면 -”
“별일 아닙니다. 잠시 오래된 경전 공부나 하려 합니다.”
“하하! 역시 신실하신 분이라 -”
총을 든 교도들이 방긋방긋 웃으며 날 보내줬다.
“…”
지하 도시의 교도들은 모두가 섬뜩할 정도로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것 역시 과거의 내가 한번 확인했던 부분이라 놀라지 않았다.
그렇다고 방심할 상황은 아니다.
애초에 104호는 해결이 어려운 방이 아니라 해결 다음이 문제인 방이니까.
보상인 신성한 태양 자체가 의심스럽기에 모두가 이 고생이다.
신성한 태양, 104호의 유산.
이건 대체 뭐 하는 물건일까?
이미 알고 있는 정보들도 꽤 있다.
첫째, 신성한 태양은 주의 분신이다.
둘째, 교단이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나타난다.
셋째, 신성한 태양을 ‘내’가 얻어야 주의 목표가 실현된다.
셋째 정보는 104호에 두 번째 도전할 때 얻은 정보인데, 주는 신성한 태양을 내가 아닌 다른 동료가 얻는 것을 막기 위해 온갖 술책을 부렸다.
왜 그랬을까?
나 말고 다른 사람의 정신은 집어삼킬 자신이 없어서?
이건 아닐 것 같은데….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팠다.
새삼, 104호가 얼마나 기묘한 방인지 느껴졌다.
이 방의 의문은 해결 과정에 있는 게 아니라 해결 후 얻게 될 유산에 집중되어있다.
실마리는 있다.
천기누설은 ‘교단의 신화와 교리’를 확인해보라고 알려주었으니까.
어쩌면 이 내용에 오랜 고민의 답이 있을지도 모르지.
종교단체들이 으레 그렇듯이, 104호의 사교도들 또한 오래된 경전을 보관하는 장소가 있었고 보안도 그리 철저하지 않았다.
애초에 경전이란 다들 한번 읽어보라고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
[25:18]30분 가까이 경전을 읽었다.
“별거 없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들이다.
주께서 충실한 자들을 위해 불멸의 낙원을 준비하셨다.
그러니 세속의 부와 육신에 집착하지 말라.
솔직히 사이비 종교들이 다 이 비슷한 말 하지 않나?
저 교리는 결국 죽어서 천국 갈 수 있으니까 돈은 우리에게 다 바치라는 말이잖아?
“…”
아니지.
이렇게 평범한 사이비 종교처럼 생각하면 오히려 헛다리야.
왜냐하면, 이 종교는 ‘진짜’이기 때문이다.
습관적으로 사교, 사이비 같은 표현을 쓰고 있을 뿐 사실 이들은 가짜가 아니야.
별을 주름잡는 진짜 신을 모시고 있고 기적을 부리는 성녀가 있는데 이게 어떻게 가짜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경전의 내용을 뜯어봤다.
불멸의 낙원을 준비하셨다.
이 말을 진짜라고 생각하자.
주는 정말 교도들을 위해 낙원을 준비했고, 낙원에선 불멸을 얻을 수 있다.
세속의 부와 육신에 집착하지 말라.
이 말도 문자 그대로 믿어보자.
낙원이라는 건 물질계와 분리된 장소고, 지구의 재산이나 몸과 아무 상관 없는 장소다.
[19:27]주는 애초에 교단을 왜 만들었을까?
호텔에서 여러 죄수를 만났지만, 모든 죄수가 종교단체를 세우는 건 아니다.
필멸의 인간이 불쌍해서?
솔직히 그런 존재는 아닌 것 같은데.
인간에게 무언가 얻을 것이 있다?
예전에 TV에 나오는 유명 연예인이 ‘사이비 종교의 목적은 돈과 여자다’라고 했다.
적어도 ‘주’의 목적이 저런 것일 리는 없다.
“…”
불멸의 낙원.
부와 육신의 무가치성.
신적인 존재가 종교를 세운 이유.
섬뜩할 정도로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신도들.
마지막으로 신성한 태양을 ‘내가’ 얻어야만 하는 이유.
여기까지 생각하자 신성한 태양의 원리에 관한 어렴풋한 깨달음을 느꼈다.
나는 이 비슷한 존재, 혹은 현상을 호텔에서 이미 경험했다.
어쩌면, 신성한 태양은 ‘점묘화’같은 존재가 아닐까?
아직까진 가설에 불과하다.
확신을 위해선 증거가 필요한 법.
[14:11]증거가 있을 만한 장소가 떠올랐다.
*
두 번째 시도 때의 기억을 더듬어 이동했다.
목적지는 성역 중의 성역, 특별히 더 성스러운 장소.
“음? 권 집사님이십니까?”
“…”
중무장한 교도 네 명이 막고 있었는데, 느낌상 이런 장소는 아무리 교단의 실세라 해도 들어갈 수 없을 듯했다.
오직 성녀에게만 허용된 장소이리라.
“들어갈 수 있겠나?”
“예? 하하! 집사님도 참, 농담이 과하십니다.”
이 몸으론 통과할 수 없는 장소다.
다른 사람이라면 어떨까?
[05:13]이쯤에서 접어야 할 것 같다.
— 철컥!
“어, 어! 궈, 권 집사님! 갑자기 무슨 권총을!”
“죽기 싫으면 총 내려! 권총 따위로 뚫을 수 있을 것 같냐!”
방탄복도 입었으니 권총으론 못 뚫지.
그 정도는 나도 알아.
— 탕!
“으아아악! 궈, 권 집사님께서 자살하셨다!”
“으, 응급실!”
“성녀님께 알려라!”
*
몸으로 돌아와 눈을 뜨자 바로 앞에 아리가 있었다.
“뭔가 알아냈어?”
“그럭저럭.”
알아낸 정보와 몇 가지 가설을 아리에게 전했다.
“흥미로운 가설인데, 근거가 확실하다기보단 네 직감 아니야?”
“그렇지.”
“지하, 성역중의 성역이라는 장소에 한번 가 봐야겠는데.”
“맞아. 근데, 내가 가려면 사람을 잔뜩 죽여야 해.”
죽일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지하에서 교도들을 마구 죽였다간 신성한 태양이 나타나서 ‘이놈’할지도 모른다.
“미로에게 말해볼게. 지금 그 애는 0.9 성녀 취급이니까 가능하겠지.”
“좋아. 참, 진철이 형은 어떻게 됐어?”
“지금쯤 아우렐리아를 만났을지도.”
*
– 차진철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
누구는 성녀다, 누구는 귀신이다, 누구는 성녀 암살자다. 하면서 그럴듯한 역할을 탁탁 꿰찼으니까.
이 시각, 나 차진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
교단의 지하 감옥에 갇혀있다.
“아 시부럴!”
다들 톱니바퀴처럼 착착 굴러가고 있는데 왜 내 일만 이렇게 꼬인 거야?
원래 계획은 겁나 단순했다고!
가인이 녀석에게 칼침 맞고 멘탈까지 흔들린 성녀가 하루 이틀은 앓아눕겠지.
그러고 있는데 미론지 뭔지 하는 짝퉁이 나댄다?
당연히 진퉁 성녀께서 분노하며 몸을 일으켜 응징하러 나서야 할 것 아니냐고.
바로 그 순간!
내가 끼어들어서 목표를 이루면 그만이다.
그런데 아우렐리아는 5일째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고 있다.
아니, 멘탈 왜 이렇게 약하냐?
신이 본인을 죽이려고 한 게 그렇게 충격이야?
성녀라면서?
신께서 ‘아무개야, 기름 펄펄 끓였으니 퍼뜩 들어가라!’하면 ‘예!’하고 튀김옷 입고 들어가서 튀겨져야 참된 성녀 아닌가?
이건 좀 심했다 치자.
아무리 그래도 3박 4일쯤 쉬었으면 주님께서 큰 뜻이 있으신가보다, 사탄이 날 속였구나! 하면서 합리화하고 일어나야지!
그 정도 똘끼가 있어야 성녀든 뭐든 하는 것 아니겠냐고.
현실로 돌아오자.
중요한 건 아우렐리아가 지하의 본인 거처에서 한 발자국도 떼지 않았고, 속이 답답해서 성녀 얼굴 한번 보려던 내가 지하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오랫동안 존재감 없이 지내던 ‘어떤 존재’가 엊그제부터 난리다.
「왜 이러고 가만히 있어?」
“…”
「철창 따위는 뜯어내면 되잖아. 빨리 날 아우렐리아에게 보내줘.」
“…”
몇 달 이상 숨죽인 채 잘 지냈던 마녀는 요즘은 부쩍 어린애처럼 시끄러워졌다.
마침내 본인만의 ‘몸’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흥분했을까?
“그렇게 몸을 원하면, 적당히 악독한 NPC 하나 구해줄 테니 -”
「싫어.」
대답이 1초 만에 나왔다.
「그 여자, 아우렐리아를 보는 순간 결정했어. 저 몸이야. 너무 예쁘고, 마법 적성도 높고, 너무 예쁘고, 혼돈 저항력도 높고, 너무 예쁘고 -」
“예쁘다만 셋이네.”
「나도 예쁜 몸을 얻고 싶어.」
“어차피 넌 외모를 바꿀 수도 있잖아. 다른 몸으로 갈아탈 수도 있고.”
그러니까 첫 몸은 대충 고른 후, 마음에 드는 몸을 차근차근 고르면 되는 것 아닌가?
「쉽게 말하지 마. 네 지능으로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일이니까.」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조용히 생각하니 새삼 어처구니가 없었다.
육신이 무슨 명품 쇼핑백도 아니고, 멋대로 예쁘고 좋은 걸 골라서 들어가니 마니 한다는 게….
순간순간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비인간적인 대화다.
이런 대화에 내가 자연스럽게 끼어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왜 가만히 있냐니까?」
“말했잖아. 함부로 교도들 때려죽이면 그놈의 신성한 태양이 튀어나와서 ‘이놈’ 할까 봐 자제 중이라고.”
「그럼 계속 여기 있을 거야?」
“나도 생각이 있으니까 조용히 좀 해라.”
아무렴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지하에 누워있었겠어?
당연히 성녀를 만나기 위한 계획이 다 있다 이 말이야.
아우렐리아가 아무리 멘탈이 나간 상태라 해도!
내 계획대로면 반드시 만날 수 있다.
“조금만 기다려. 얼마 안 남았어.”
그때, 아리마의 흔적은 어딘가 불길한 소릴 했다.
「성녀가 정말 멘탈이 나간 걸까?」
“…”
「어쩌면 -」
“알아. 나도 ‘다른 가능성’도 고려 중이니까 걱정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