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19)
EP.419 419화 – 104호, 저주의 방 – ‘입시 명문 호텔고’ Re (18)
419화 – 104호, 저주의 방 – ‘입시 명문 호텔고’ Re (18)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282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4호 – 저주의 방 ‘입시 명문 호텔고’
현자의 조언 : X]
– 한가인
…
컴컴한 계단에서 정신이 들었다.
휙 지나간 상태창 날짜, 눈앞에서 겁먹은 듯 날 바라보는 미로.
시간대여기다.
“지금 당장 전투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응! 그건 아니야.”
“상황을 알려줘.”
미로가 다급한 표정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이미 104호에 진입해 꽤 시간이 흐른 상황이고 아리와 미로 둘이서 성역에 잠입했다.
문제는 아리마를 흡수한 듯한 아우렐리아가 미로만 내려가라고 했다는 것.
지하에서 성녀와 싸우는 건 위험이 너무 크다.
그래서 미로는 일단 성녀의 말을 받아들인 체하고 혼자 내려가던 중, 날 불러냈다.
“대체 뭐야? 왜 아리는 불가능한데 나만 -”
“잠시 조용히 해봐. 나도 생각 좀 해볼게.”
“응.”
지하에 있는 것은 아마도 신성한 태양, 주의 분신이다.
“아리가 아니라 너만 지하에 갈 수 있는 이유는 네 축복 때문이겠지. 불변, 그 힘은 초자연적인 힘에 대해 강력한 저항력을 주는 모양이니까.”
“그, 그러면 나 혼자서 더 내려가?”
“기다려 봐.”
104호의 모든 문제는 신성한 태양이 대체 뭐 하는 물건인가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한 번은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신성한 태양과 마주할 필요가 있다.
다만, ‘미로’가 내려가는 게 맞을까?
“… 설마.”
“가인아! 뭔가 알았어? 뭔가 -”
“처음엔 이런 생각을 했어. 주가 나 대신 널 택한 게 아닐까?”
“가인이 대신 나를 골라?”
돌이켜보자.
최초에 주가 날 택한 이유는 뭘까?
이 질문은, 사실 시작부터 잘못됐다.
104호의 첫 번째 시도에서 주는 ‘한가인’을 고른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지하에서 아우렐리아를 죽여서 신성한 태양의 등장 조건을 충족했고, 주는 내게 강림을 내렸다.
호텔 파티가 104호에 진입한 시점부터 ‘한가인’이 아우렐리아를 죽일 것이라 예상했다?
이런 건 너무 운명론적인 해석이다.
우리가 저주의 방을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죄수를 가둔 호텔조차 완벽히 예측하지 못하며, 죄수에겐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주는 ‘한가인’을 고른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간에 처음으로 지하에서 신성한 태양을 불러낸 자를 골라 강림을 내렸다.
주가 한가인의 승리를 노린 것은 두 번째 시도부터다.
“더 생각해보니까 아닌 것 같다. 그의 선택은 강림을 내린 시점에서 이미 끝났어. 아마 강림을 사용해본 나만 신성한 태양을 완벽히 쓸 수 있지 않을까?”
“그, 그럼 왜 나보고 내려오라는 거야?”
“너보고 내려오라고 한 게 아니야. 아우렐리아가 아리마를 통해 우리 정보를 얻었다며? 당연히 그 정보를 주에게도 전달했겠지.”
미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시간대여기의 존재를 알았으니깐!”
“그러니까 이제부턴 내가 내려갈게.”
이해할 수 없는 상황, 혼란에 빠져있던 미로의 눈이 맑아지며 기쁘게 미소 지었다.
“잘 다녀와!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그래.”
미로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이런 생각도 했다.
주가 정말로 신성한 태양의 새 주인으로 미로를 택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여기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지만….
그만두었다.
104호의 유산은 내가 얻어야 한다.
— 철컥!
신성한 땅으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나는 낙원에 도착했다.
…
…
…
*
— 철컥!
“가인아! 어떻게 됐-”
“허억!”
머리가 터질 듯이 아프다.
빛으로 가득한 세상, 살아서는 도착할 수 없는 땅!
낙원이 만들어낸 혐오감이 뇌를 비벼서 집어삼킬 것 같았다.
“가인아?”
“주, 주 이 새끼가 기괴한 놈인 줄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
“지, 진정해! 시, 시간이 많이 없어!”
시간, 그렇지 시간!
나는 미로가 유산으로 불러낸 소환체이니, 1시간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얼마나 지났어?”
“54분!”
남은 시간은 5분 몇 초, 주저할 시간이 없다.
“나에게 -”
“미안, 미로 네게 설명하긴 힘들어.”
보고, 느끼고, 알았다.
신성한 태양이 존재하는 이유, 주의 목적!
104호의 모든 것을 알았다.
주가 그토록 강조해온 모두가 이길 수 있는 판이 무슨 의미인지도 알았다.
미친 신인지, 빛의 신인지 모를 존재는 내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거래는 이루어졌다.
“가인아?”
관리국 요원들의 비밀주의를 이해하고 말았다.
내가 알아낸 사실을 모든 사람이 알 필요는 없다.
진실로 끔찍한 지혜는 알 사람만 아는 것으로 충분하리라.
“그, 그건 펜?”
104호의 모든 것에 대해 적고 또 적었다.
“대체 뭘 봤길래 그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신성한 태양을 얻기 위해 이 방에 돌아왔다.
그런데, 이 끔찍한 흉물의 진실을 인지한 채 쓸 수 있을까?
“어? 지우는 거야? 뭔가 잘못 썼어?”
끔찍한 진실은 알 사람만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알 사람’에 ‘한가인’이 들어갈 필요는 없겠지.
“미로. 이 쪽지를 아우렐리아에게 전해.”
“뭐라고 적었는데?”
“그대로 전해. 읽지 말고.”
“… 알았어.”
1시간이 끝나며 의식이 흐릿해지는 순간, 생각했다.
마침내 고통스러운 기억으로부터 해방되었구나.
구교사에 있을 한가인은 오늘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영원히 알 수 없으리라.
나는 나에게 무지의 낙원을 선사하기로 했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282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4호 – 저주의 방 ‘입시 명문 호텔고’
현자의 조언 : X]
– 한가인
구교사의 빈 교실에서 쉬고 있던 시점.
“어? 어? 뭐야?”
상태창에 엄청나게 많은 글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시간대여기가 불러낸 ‘나’ 뿐이다.
…
“…”
내용 자체는 그렇게까지 놀랍지 않았다.
주가 신도들에게 약속했던 불멸의 지상낙원은 실존했다.
오랜 세월 전부터 주를 섬겨온 자들은 사후에 신성한 태양 내부의 낙원으로 이동했다.
주에 대한 신앙심으로 가득 찬 신도들은, 말하자면 하나의 점이다.
그 점들이 무수히 모여서 ‘주의 분신’을 만들어냈으니 이게 곧 신성한 태양이다.
그것 외에도 다양한 정보가 적혀있었다.
“이야~ 역시 한가인! 가인이 엄청 유능해! 세상에 나만큼 믿을만한 사람이 없다니까?”
주와 했다는 ‘거래’는 조금 희한하긴 했는데,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내게 손해날만한 부분은 없었다.
남은 방, 206호를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충족할 수 있는 조건이다.
대충 104호를 어떻게 끝낼지 감 잡았으니, 슬슬 출발하자.
— 틱!
교실의 불을 끄고 나서던 중, 조금 기묘한 생각이 들었다.
“…”
상태창에 쓰인 글씨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 글씨체다.
당연히 단어 선택이나 글씨체를 보면 여기에 담긴 감정도 어렴풋이 느껴진다.
“… 뭐가 그렇게 무서웠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동료들이 구교사로 모여들었다.
한참 동안 내 설명을 들은 아리가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요약했다.
“그니까, 신성한 태양은 신도들의 영혼을 담은 일종의 방주라는 말이지?”
방주라. 적절한 예시다.
“맞아.”
“주에 대한 충실한 신앙심으로 가득한 신도들, 그들은 말하자면 레고블록이야. 무수히 많은 블록들이 모여서 신성한 태양을 이룬 상태고.”
“정확해.”
“유산, 신성한 태양이 저주의 방 바깥으로 나가는 일련의 과정. 이건 주의 탈출이기도 하지만, 저주의 방이라는 연옥에 갇힌 신도들의 탈출이기도 해.”
여기까지 들은 은솔 누나가 감탄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 지금 좀 눈물 나올 뻔했어.”
“예?”
“흐아…. 예전부터 하도 야단법석을 부리길래 주는 대체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가 했는데, 그런 느낌은 아니었네.”
“그렇다고 무슨 선한 존재는 아니죠. 죽인 사람이 몇인데.”
“그건 그렇지만, 적어도 신도들은 아낀 것 아니야?”
과거의 내가 상태창에 남긴 기록에 따르면 그렇다.
그때, 송이가 입을 열었다.
“원래 이 방에서 걱정한 건 어떻게 해결하냐가 아니라 보상이 이상하다는 점이었죠?”
“맞아.”
“그 부분은 걱정할 필요 없나요? 신성한 태양은 일종의 자아를 가진 유산이고, 주인을 세뇌하려 들지도 모른다고 염려했었는데.”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 부분은 주와 ‘거래’를 통해 합의했지만….
그 거래를 동료들에게 말하기가 꺼림칙했다.
내가 알아낸 사실을 모든 사람이 알 필요는 없다.
어떤 지식은 알 사람만 아는 것으로 충분하리라.
“그 부분은 크게 염려할 필요 없다고 하네. 이미 확인했어.”
그 말을 끝으로 모두의 표정이 밝아졌다.
누나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럼, 104호 당장이라도 끝내자!”
진철 형이 픽 웃으며 말했다.
“누님, 당장이라도 끝내자는 건 교도들을 다 죽이자는 겁니까? 그 사람들은 이제 미로 보고 성녀님, 성녀님 하던데?”
은솔 누나가 살짝 당황했다.
“그런 말 아닌 것 알잖아! 피 흘리지 않고 104호를 해결하는 계획을 만들었는데 왜 굳이 그렇게 하겠어.”
그 계획이라는 건 별것 아니다.
104호의 해결 조건은 사교 집단의 붕괴인데, 이 붕괴를 꼭 때려죽여서 할 필요는 없다.
‘다른 종교’를 믿게 해서 신앙심을 무너트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 아닐까?
재밌게도 이 부분을 ‘나’는 주에게 직접 물어봤고, 주는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방의 해결을 위한 모든 계획이 완성되었을 때, 승엽이가 슬며시 손을 들었다.
“형, 영혼의 함은 언제 쓸까요? 본래는 선생님이랑 같이 아우렐리아의 몸에 들어간 아리마를 담으려고 했는데….”
동료들은 아리마가 아우렐리아에 잡아먹혔다고 추측 중이다.
아우렐리아를 영혼의 함에 담아도 되는 걸까?
“내 생각엔 며칠 더 상황을 봐야 해.”
진철 형이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아리마 고것이 내 몸에 스며들고 꽤 오랫동안 꾸물거리는 형체만 보였거든?”
“그래요?”
“사람처럼 튀어나오기까지 꽤 오래 걸렸어. 아리마가 바이러스라고 치면, 바이러스 감염이 끝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지.”
“이제 모든 게 확실해졌죠? 계속 진행합시다!”
*
이후의 일은 어찌 보면 지루한 단순 작업의 반복이었다.
몇몇 동료는 계속해서 구교사를 공포로 물들였고, 미로는 계속해서 교단 내 입지를 늘려갔다.
기다렸다는 듯, 할아버지는 ‘군중심리’의 힘을 빌려 새로운 교리를 퍼트렸다.
이렇게 약 3개월이 흐른 어느 날, 아우렐리아가 내게 찾아왔다.
“오랜만입니다.”
그녀는 제법 지친 것 같았다.
“이제 교단 내에 진실한 신도라고 할만한 사람은 10명도 채 남지 않았군요.”
“방의 해결이 머지않았습니다.”
“참 수완이 좋은 분들이셔요. 신도들은 기적을 수없이 접했으니, 쉽게 배교시킬 수 없을 줄 알았는데.”
평범한 사이비 종교 신자도 아니고 ‘기적’을 수없이 본 신도들을 배교시킨다?
아우렐리아 말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쪽에게서도 기적을 무지하게 썼으니까요.”
이쪽에서도 군중심리나 미로의 목소리와 같은 초자연적인 수단을 쓴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군요.”
성녀는 어딘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는 솔직히 물어보기로 했다.
“지금 당신은 누굽니까? 아리마? 아우렐리아?”
당연히 진실을 말해주겠지~ 하는 나이브한 생각은 아니다.
뒤에서 엘레나가 ‘거짓말 탐지’를 발동한 채 아우렐리아를 보고 있었다.
“…”
“사실, 어느 쪽이든 별 상관없긴 합니다. 중요한 건 우리에게 협력하는가죠.”
그녀는 이 세계의 진실을 깨우쳤다.
평생 믿어온 신은 호텔에 갇힌 죄수에 불과하고, 자신을 비롯한 NPC들은 호텔이라는 연옥에 갇힌 존재다.
영혼의 함은 그런 그녀를 진실한 세계로 끄집어내 줄 수 있는 탈출구다.
침묵하던 아우렐리아가 입을 열었다.
“사실, 전 원래 자살할 생각이었습니다.”
“…”
“허무해서, 세상이 흐릿하고 내 인생이 허탈해서…. 그냥, 죽어서 낙원에 가고 싶었어요.”
낙원.
신성한 태양.
주가 신도들을 위해 준비한 사후세계.
“그런데, 당신이 이런 쪽지를 남겼죠.”
“예?”
내가? 아우렐리아에게? 쪽지를?
이런 말은 상태창에 없었는데?
당황하는 내게 그녀가 쪽지를 건넸다.
분명한 내 글씨체로 적힌 문장이 보였다.
「네게 자비를 베풀겠다. 절대 낙원에 가지 마라. 영혼의 함에 담겨서 이 방을 탈출해라. 이것이 내 마지막 양심이요, 인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