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21)
EP.421 421화 – 파티 타임 (1) – 신성한 태양
421화 – 파티 타임 (1) – 신성한 태양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374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복도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으윽!”
누가 머리에 못을 박는듯한 격한 두통을 느끼며 무릎 꿇었다.
이럴 때면 호텔의 모든 인테리어가 고급이어서 복도에도 보드라운 양탄자가 깔린 것이 다행이었다.
“괜찮아?”
당황한 티를 내며 다가오는 동료들의 모습이 흐릿했다.
이 순간조차 누군가 내 머리에 수많은 문자열을 때려 넣고 있었다.
새로운 유산, ‘신성한 태양’을 얻자 호텔이 설명서를 내 머리에 욱여넣은 것.
30분가량이 흐른 후에야 정신이 맑아졌다.
*
다 함께 다과 테이블에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동료들이 다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길고 길었던 104호의 문제가 마침내 풀리며 나타난 최종 보상, 신성한 태양.
모두가 궁금해함이 당연하다.
은솔 누나가 가볍게 운을 뗐다.
“이번엔 선택의 시간이 아예 없었네. 특이하지?”
여러 사람이 방 해결에 기여했고, 생존자가 여럿이면 선택의 시간을 통해 유산을 분배한다.
이번에도 열렸어야 했는데 생략되었다.
아리가 가볍게 하품하며 말했다.
“어차피 가인이가 얻을 테니까 무의미한 절차라고 생각했겠지. 심지어 이번엔 죄수와 직접 담판까지 지었으니까.”
말없이 테이블을 향해 손을 뻗자 주변이 조용해졌다.
“…”
마침내 내 손에 들어온 신성한 태양.
대략적인 사용 방법은 호텔이 알려주었지만, 막상 소환하려 하니 조금 떨렸다.
— 화르르!
신비롭게 타오르는 붉은 화구와 금빛 손잡이, 보자마자 떠오른 단어는 불꽃의 성배다.
교단 지하에서 처음 마주했을 땐 위쪽의 화구만 나타났었는데, 유산으로 변하며 외형이 다소 바뀌었다.
곧 신성한 태양은 모든 이를 억지로 무릎 꿇릴 것만 같은 압도적인 기세를 내뿜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유무형의 압박 속에서 모두가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무거운 침묵을 깨트린 사람은 미로였다.
“엄청 신비롭고 예쁘다. 내 시계는 그냥 오래된 회중시계처럼 생겼는데. 괜찮아?”
“…”
“이건 그니깐, 작은 신 같다고 하지 않았어? 자아가 있는 유산이라고 들었는뎅….”
“원래는 그랬지.”
그래서 이 유산을 얻는 것을 두려워했다.
태양에 담긴 초월적인 정신이 우리를 집어삼킬 것 같았으니까.
타오르는 불꽃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 순간만큼은 밀랍으로 된 날개를 믿고 태양에 다가가 추락사한 이카로스가 된 것 같았다.
동료들도 굳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
그 어떤 신비로운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어떤 ‘인격체’ 비슷한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미로가 참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어쩌면, 불변 때문에 다른 사람들만큼 압박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가 막 떠들지 않아? 너, 작고 멍청한 가인아, 당장 무릎 꿇고 기도하지 않으면 -”
“그런 것 없어. 주에게 약속받았으니까. 신성한 태양에 담긴 초월적인 정신은 깨어나지 않아.”
이것이 바로 104호에서 내가 주와 맺은 계약이다.
그때, 침묵을 지키던 아리가 물었다.
“그래서 이 유산의 힘이 뭐야?”
“복잡해.”
“에? 그냥 미니 강림 같은 것 아니었어?”
“미니 강림?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따지면 강림은 무슨 힘이라고 생각하는데?”
“어….”
아리가 붕어처럼 뻐끔거렸다.
애초에 강림부터가 무슨 힘이라고 딱 정의하기 애매했는데, 신성한 태양도 마찬가지다.
범속한 이를 억누르는 카리스마, 지배의 힘.
약속을 어긴 자를 벌하는 언령의 힘.
태양이라는 이름답게 불꽃을 부리는 화염의 힘.
신체를 여러 방면에서 강화하는 초월의 힘.
굵직굵직하게 따져도 4개나 되는 힘이 유산 하나에 담겨있고, 이게 다가 아니다.
당연히 이 복잡한 기능을 한두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굳이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인간을 신과 비슷한 존재로 만들기 위한 힘?”
아리가 미묘하게 눈썹을 찌푸렸다.
“신? 별로 좋은 단어는 아니네.”
“아니면 ‘교주’가 되기 위한 물건이라고 하자.”
“더 끔찍해졌네.”
물론, 이 대단한 유산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꽤 심각한 약점도 있어.”
“뭐?”
“충전형이야. 심지어 지금은 텅 비어있고, 충전 방법이 굉장히 까다로워.”
“어떻게 충전하는데? 희생양을 이 불꽃에 잡아다 바쳐서?”
“쿨럭!”
몇몇 사람이 당황해서 기침했는데, 아리의 말이 잔혹한 것과 별개로 신성한 태양의 충전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그런 것 아니야. 작게는 신앙심, 나아가서 신도의 목숨과 혼을 바쳐야 충전할 수 있어.”
“…”
따라서 신성한 태양을 제대로 쓰고 싶다면, 종교단체를 세워서 교주가 되든지 해야 한다.
할아버지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뭔 놈의 유산이 그리 복잡 – 아니, 이거 밖으로 들고 가면 더 큰 일 아니여?”
— 탁!
“묵성아, 나간 후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 그래서, 호텔에선 어떻게 써야 해? 우리가 내일부터 아침마다 ‘한가인 님’을 보면서 기도하면 되는 거야?”
“… 끔찍한 소리 하지 마. 그냥, 206호에서 내가 알아서 할게.”
여기까지 조용히 듣고 있던 은솔 누나가 입을 열었다.
“가인아, 방에서 그런 이야기 했었지? 주와 담판 지어서 신성한 태양의 자아 침식을 억제했다고.”
“네.”
“그래서 신성한 태양이 지금 얌전한 거야?”
“그렇네요.”
누나는 어딘가 복잡한 표정을 지을 뿐, 더 물어보지 않았다.
나도 사족을 덧붙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주가 내게 무언가 주었다면, 나 역시 그에게 무언가 돌려주어야 한다.
거래란 본디 그런 것이다.
이 시점에서, 206호에 다시 들어갔을 때 방 해결과 별개로 해야 할 또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나는 신성한 태양에 14만 4천 명의 혼을 바쳐야 한다.
*
신성한 태양에 관한 이야기가 이 정도로 정리된 후, 대화 주제가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오랜만에 은솔 누나가 아닌 할아버지가 나서서 회의를 진행했다.
“이제 105호에 가면 내일부터 파티타임이다 어쩌고 하겠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번 파티타임에 뭐 할지 간단하게 생각 좀 하자. 가인이 너는 뭐, 그놈의 흉악시런 불덩이 들고 연구하면 될 것이고.”
“그렇게 할게요.”
“승엽아, 영혼의 함에 잘 담겼냐?”
“네. 뭔가 꽉 찬 느낌? 불러볼까요?”
“아니. 앞으로도 회의는 우리끼리 하자.”
“…”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다 같이 아우렐리아, 아니 유미보고 나가면 동료라면서 친절하게 말하지 않았었나?
그런데 나오자마자 할아버지 입에서 나온 첫 문장이 저거다.
‘회의는 우리끼리 하자.’
웃기긴 한데 현명한 판단이다.
유미가 없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영혼의 함에 담긴 존재는 바뀔 수도 있잖아?
게다가 유미의 정체성이 아우렐리아든, 아리마든 평범한 사람과 많이 달라.
1.0 동료라기보다는 0.5 동료 같은 느낌?
주변을 둘러보자 아리나 송이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승엽이나 은솔 누나처럼 어색하게 웃는 사람도 있었다.
“참, 유미 고것이 나오자마자 몸을 만들고 싶어 할 텐데, 바로 허락하지 마라.”
“…”
“승엽아, 할아버지 말 똑바로 들어라.”
“예, 예!”
“네 유산에 담겨있다고 만만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소리다. 부탁한다고 다 들어주지도 말고.”
“네….”
“영혼이 유산에 저당 잡혀있으니 함부로 날뛰진 않겠지. 그래도 조심해라. 사람이 아니라 요원으로서 계약한 혼돈체를 대한다 생각해.”
그 말에 승엽이가 당황했다.
“하, 할아버지! 전 요원도 아니고 혼돈체랑 계약한 적도 없는데요?”
“…”
아리가 픽 웃었다.
“묵성이 넌 얘가 무슨 네 후배 요원인 줄 알아?”
“…”
“승엽아, 그냥 익숙해지기 전까지 유미랑 둘이서 있지 마.”
“네.”
내가 봐도 저게 제일 좋은 해법이다.
“영혼의 함 이야기는 이쯤 하자꾸나. 나머진 차후에 생각하고, 다음은 그, 축복의 성소?”
“내일 아침에 가면 될 것 같네요.”
성소 이야기가 나오자 음료수만 홀짝이던 진철 형이 끼어들었다.
“이번엔 누구 차례지? 이야~! 난 성소 갈 때가 제일 기대되는데!”
엘레나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104호의 기여도로 치면 유산을 얻은 가인 씨와 성녀 역할을 맡은 미로 양이 아닐까요? 저랑 아리도 나름대로 역할은 했는데.”
그때, 아리가 하품하며 중얼거렸다.
“솔직히 이번엔 그다지 기대 안 해. 다들 그렇지 않아?”
“…”
당황하는 진철 형과 달리 꽤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에도 이번엔 성소에서 딱히 많은 사람이 강화를 얻을 것 같지 않았다.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2층 후반을 진행하다가 104호를 깬 상황이다.
게임으로 치면 고렙 던전 템을 둘둘 말고 저렙 던전을 깬 것과 비슷하다.
경험치가 많이 나올까?
둘째, 축복 강화는 하면 할수록 요구하는 기여도가 높아진다.
강력한 강화를 2번으로 치면, 동료 상당수가 2~3번 강화했다.
나는 어떨까?
203호를 해결한 후, 올빼미는 내게 ‘적어도 두 개의 방’을 해결해야 네 번째 강화를 얻을 것이라 했다.
이후 205호, 104호를 해결했으니 숫자로 치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느낌이다.
이런 경우엔 가보기 전엔 모른다.
아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에, 은솔이 상현이 미로 이렇게 셋 말고는 앞으로 강화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
그 말에 은솔 누나가 반응했다.
“아아…. 상현 씨랑 미로는 뒤늦게 합류했으니 그렇다 치고, 왜 나도 그 라인업에 끼어있는 건데!”
“…”
아리가 실수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고, 누나는 피식 웃었다.
“됐어. 뭐, 요즘은 나도 이게 있으니까. 이거나 연습해야지. 생각보다 어렵더라.”
새로운 도구, ‘호접몽’을 얻은 후 누나는 부쩍 자신감이 생겼다.
주제가 누나 쪽으로 옮겨가자 할아버지가 자연스럽게 질문했다.
“탐욕의 손 또 찼냐?”
“그럼요.”
“이번에도 써야지? 어디다 쓸 생각이냐? 도구?”
누나가 고개를 저었다.
“도구는 한동안은 됐어요. 그보다, 아리야.”
“응?”
“아직도 숨겨진 NPC가 하나 남았다고 했지?”
“응.”
1층은 전부 해결했고, 2층도 후반인데 아직도 숨겨진 NPC가 남았다.
커피를 마시던 선생님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허 참, 무슨 아직도 NPC가 숨어있지? 아리 양, 축복 비밀의 힘으로 숨겨진 요소를 찾을 수는 없나?”
“근처에 있으면 느껴지긴 해. 그런데 느낀 적이 없어.”
마지막 숨겨진 NPC는 이 긴 시간 동안 아리가 근처에도 간 적 없다는 소리다.
그때, 은솔 누나가 가볍게 손뼉 쳤다.
“우리가 호텔을 대체 몇 번 뒤졌지? 아주 많아! 벽에 걸린 장식물 하나하나 다 뒤집어봤잖아? 그런데도 아리가 근처에도 간 적 없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아리가 답했다.
“평소엔 아예 호텔에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것 같은데.”
“일종의 등장 조건이 있을 거야. 그리고 그 조건이 무지무지하게 까다로운 거야!”
자연스레 얼마 전에 겪은 이벤트, ‘한여름 밤의 꿈’이 떠올랐다.
그 이벤트의 조건은 뭐였을까?
바에 모여서 술 게임을 하다가 다 쓰러지기?
숨겨진 NPC의 등장 조건이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종류다?
2층은커녕 3층 돌파할 때까지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이번에 탐욕의 손과 승엽이 능력까지 써서 그놈을 찾아내 보자!”
모두가 벌써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