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22)
EP.422 422화 – 파티 타임 (2) – 영겁의 꿈
422화 – 파티 타임 (2) – 영겁의 꿈
– 한가인
만물이 얼어붙은 차가운 세계, 나는 우주공간의 돌이 되었다.
…
알고 있는가?
시간이란 참으로 상대적이다.
하루살이의 평생이 인간의 평생과 다르듯, 인간의 평생은 누군가에겐 찰나와 같으니.
누군가에겐 영원이요, 누군가에겐 눈 한번 깜빡이는 시간 동안 부유했다.
나는 내가 사람인지 돌인지 알 수 없었다.
…
시간과 공간을 하염없이 헤엄친 끝에 빛을 보았느니, 그는 천지에서 가장 광오한 자였다.
「나의 충실한 아들아, 내 일찍이 네게 승천의 빛을 내렸느니라. 어이하여 이리 오랜 시간 방황하였느냐?」
나는 방황한 적 없으며, 시련을 이겨낼 힘을 얻기 위해 돌아왔을 뿐이라 답했다.
그리하자 그는 웃고 또 웃으며 타오르는 손으로 나를 잡아들었다.
「너는 작고 나약하다. 모래사장 속의 모래알이요, 바닷속 물방울에 불과하다. 그런 네가 어찌 삼천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는 자가 내린 시련을 이겨낼 수 있겠느냐?」
타오르는 망치가 나를 후려쳤다.
— 쿵! 쿵! 쿵!
알고 있는가?
물질이 차지하는 부피 대부분은 비어있는 공간이다.
따라서 충분히 강한 힘이 있다면 터무니없이 압축할 수 있다.
중성자별 1cm³의 부피의 질량은 1억 톤이라 하지 않던가.
북극성조차 으스러트릴 망치가 세 번 휘둘러지자 나는 곧 사람이 아닌 점으로 변하고 말았다.
주변에는 헤아릴 수 없는 무량대수의 점이 있었으니, 이 모든 점은 우주의 순환에서 이탈한 가련한 피난민이었다.
…
첫 100년은 그저 고통 속에서 울부짖었다.
이는 어미를 볼 때마다 입 벌린 채 우는 아기새의 행동과 같았다.
「거듭나라! 거듭나라! 사유는 곧 환상에 불과하니라. 고통이 감미로움이 될 수 있음을 알아라.」
다음 100년은 어찌 인간에게 이럴 수 있느냐고 그에게 따졌다.
이는 지진이 나면 별을 원망하는 것과 같았다.
「거듭나라! 거듭나라! 과정을 보지 말고 목적을 보라. 진화의 섭리를 받아들이라.」
마침내 마침내 세 번째 하늘이 밝자 내 안에 마귀가 있음을 알았다.
마귀가 점을 찢고 나와 사방에 타르처럼 검은 액체를 뿌리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아들아, 이제야 네 본성이 드러났구나. 그 유치한 술수는 무엇이냐? 태어나지도 못한 아둔한 벌레가 만든 지혜가 네 전부냐?」
나는 이제 번잡한 미련을 떨쳐내었으며, 서는 그저 도구일 뿐 나는 단지 확장을 바란다고 답했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드높은 옥좌에 앉은 자가 직접 내려와 날 살폈는데, 그 얼굴이 진실로 자비로운 아비와 같았다.
「마침내 네가 깨치기 시작했으니 내 한이 없다. 확장하고 또 확장하라. 생물의 진화가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이루어졌음을 이해하라.」
나는 확장의 길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으니, 아비의 살과 피를 뜯어먹으며 확장하겠다 하였다.
그는 기꺼운 표정으로 웃고 또 웃으며 말했다.
「그리하라. 네게 살과 피는 물론이요, 골수와 창자까지 내어줄 테니 기꺼이 삼키라.」
마침내 애벌레처럼 변한 내 입이 태평양이라도 들이마실 듯 벌어진 순간, 하늘에서 깃털이 떨어졌다.
어지간해선 지켜볼 셈이었으나, 술수가 지나치다.
작디작은 어린아이 앞에 서니 네가 조물주라도 되는 줄 알았는가.
「오호! 그 말은 너 자신에게 하라. 혼탁한 눈에 낀 먼지도 닦아내지 못한 참새가 어찌 감히 지혜를 자처하는고?」
겸손하고 또 겸손하라.
이 판은 삼천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는 분께서 설계하셨노라.
너는 장기판 위의 졸에 불과함을 알라.
「구경꾼 여러분 모두 주목하시오. 정작 그분께선 침묵하시는데, 이 참새는 자신이 전령이라도 되는 줄 아는구려.」
모든 이에게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네게 남은 역할은 도구에 불과함을 받아들여라.
오늘 이후 이런 수작은 허용하지 않겠다.
이윽고 지혜로운 새가 하늘을 뒤덮을 듯한 날개를 펼쳤다.
한번 홰치니 팔다리가 솟아나 자유를 얻었다.
두 번 홰치니 눈코입이 만들어지며 감각이 깨어났다.
세 번 홰치니 마침내 점이요, 애벌레가 사람으로 변했다.
혼미한 정신을 붙든 채 올빼미의 발을 붙들었다.
영육의 고통과 두려움이 날 집어삼킬 듯하니, 제발 길을 일러달라고 빌었다.
그리하자 올빼미가 이르길, 오늘의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악몽이니 전부 잊으라 하였다.
또한 이르길, 저 교활한 자가 네게 탈각과 초월의 길을 가르쳐주었다 하였다.
잊으라는 것인가?
기억하라는 것인가?
혼란스러운 답이 내 머리를 흔들었으나, 곧 이 모든 고민이 부질없음을 알았다.
해가 밝았기 때문이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376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 – ‘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오늘은 파티타임 2일 차 아침.
“…”
머리가 오지게 아프다.
간밤에 뭔가 기가 막힌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이 날듯 말듯 해.
분명, 괴상한 꿈이 끝날 때쯤 올빼미가 등장했던 것 같은데.
“…”
이제 막 일어났으니 조언을 쓴 적 없는데도 횟수가 0이다.
올빼미가 어떤 형태로든 힘을 썼다는 의미다.
멍하니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아침 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갔다.
*
“진철이 넌 아침부터 삼겹살이야?”
“누님, 미국에선 아침부터 베이컨 먹는 것 모르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
“하하! 진철이는 위장이 건강하니 별문제 없습니다.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는 영국에서 가장 -”
동료들이 즐겁게 떠드는 사이, 송이가 아리에게 물었다.
“미로는 아직 안 깨어났어?”
“아직 24시간이 흐르지 않았잖아.”
“그런가?”
어제, 그러니까 파티타임 1일 차 오전에 우리는 축복의 성소로 향했다.
아리는 동료 대부분이 2~3회씩 축복을 강화했으니 이제부턴 강화가 쉽지 않으리라 예상했었다.
그 예측대로 이번에 강화할 수 있는 사람은 미로뿐이었다.
여태 단 한 번도 강화하지 않은 사람이면서 104호에서 가짜 성녀 역할을 맡아 준수한 기여도를 쌓았기 때문이겠지.
“궁금해~! 미로는 이번에 무슨 힘 얻을 것 같아? 관리국은 뭐 아는 것 없어?”
“몰라.”
“왜 이렇게 대충대충 말해? 에잇!”
“…”
송이가 갑자기 포크를 뻗어서 아리 샌드위치에서 햄만 뽑아갔다.
아리가 잠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치원생이야?”
“네 엄마랑 비슷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지.”
“이야~! 그건 인정.”
— 삑!
가만히 보고 있던 페로가 질 수 없다는 듯 할아버지의 스테이크 접시 위로 올라갔다.
“으악! 악! 아니, 그냥 고기 한 점 달라고 할 것이지 접시엔 왜 올라가냐! 새대가리 새끼가 -”
“할아버님, 욕하지 마세요.”
“얘 부리 좀 봐라. 새대가리 맞는데 그게 왜 욕이야?”
그때, 승엽이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를 내었다.
“아리 누나!”
“응? 왜?”
“보온병 좀 빌려주세요. 이제 -”
거기까지 듣던 아리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고, 기다렸다는 듯 할아버지가 승엽이 머리에 딱밤을 갈겼다.
“으악! 갑자기 왜 때려요!”
아리가 한숨 쉬며 답했다.
“너, 어젯밤에 유미 소환해 봤지?”
“…”
“갑자기 병 달라고 하는 이유야 뻔하지. 유미가 이제 몸 만들고 싶대?”
아리의 보온병에는 유미의 피와 살점, 머리카락 등이 가득 담겨있다.
물론, 내부에 무엇이 들었느냐와 상관없이 병 자체는 아리가 보관하고 있다.
“… 네.”
“아! 묵성아, 두 대 더 때려.”
— 딱! 딱!
“악! 악!”
“한동안 혼자 만나지 말라고 했잖아. 어떤 성향인지 파악할 때까지 조심하라니까 참…. 그새 소환해봤네.”
“…”
동료들의 헛웃음 나오는 대화를 듣고 있으니, 어딘가 붕 떠 있던 내 마음이 다시 땅으로 내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엘레나가 팔을 뒤로 뻗어 날 툭 쳤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해요? 한마디도 안 하고?”
“아. 어젯밤 꿈이 너무 괴상해서….”
“무슨 꿈인데요?”
“작은 점으로 변해서 그림 일부가 되는 꿈?”
그 말에 몇몇 동료들이 피식 웃었다.
아마 단순한 개꿈이라고 생각했겠지.
식사가 끝나고 한 시간쯤 흐르자 미로가 깨어났다.
미로는 방 밖으로 나오자마자 호들갑을 떨며 온 사방을 뛰어다니며 동료들을 불러 모았다.
“모오오두우우 집하아압!”
“으악! 시끄러워!”
“집하아압!”
“아오! 진짜 왜 이러는 거냐? 아리야! 왜 저러냐고!”
“… 나도 몰라.”
“집하아압!”
결국 참지 못한 아리가 미로 볼을 쭉쭉 당길 때쯤, 모든 사람이 한숨 쉬며 프런트로 모였다.
이런 짓을 하는 이유? 너무 뻔하다!
새로운 초능력을 얻었다는 사실이 미로를 무지하게 흥분시켰겠지.
그래서 그 기분에 맞춰주기로 했다.
“그래, 우주에서 제일 예쁜 미로에게 무슨 능력이 생겼는데?”
갑자기 미로가 얼음처럼 딱 굳었다.
“… 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우주에서 제일 -”
— 콱!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로가 내 무릎을 걷어차서 넘어질 뻔했다.
미로는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동료들을 돌아봤다.
“봐봐!”
미로는 날카로운 단검의 칼날을 자기 피부에 들이대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자해하려는 건 아닐 테니 새로 얻은 힘을 보여주려는 모양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예리한 칼날이 피부에 다가갈수록 주변이 긴장감으로 조용해졌다.
“꼴깍!”
심지어 미로 본인도 긴장해서 침을 삼키자 아리가 황당해했다.
“대체 왜 네가 긴장하는데? 보여주려는 것 아니었어?”
“그, 그렇긴 한데 하려고 하니까 무서워…. 조금 마음의 준비를 – 아아아악!”
미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리가 칼을 쥐고 있던 미로 손을 툭 쳤다.
칼날이 미로의 몸에 닿는 순간, 엄청난 비명이 호텔을 가득 채웠다!
“으아아악!”
“… 조용히.”
“으아아아아악!”
“조용히 좀 해! 다치지 않았잖아!”
결국 아리가 크게 짜증 내며 미로 입을 다시 막았다.
“큭!”
“아, 으하하!”
“얘 진짜 무슨 콩트 하니?”
능력의 대단함을 떠나서 이 상황 자체가 웃음만 나오네.
아니, 피부에 칼까지 들이댄 걸 보면 능력이 뭔지는 알고 있는 것 아니었어?
미로 본인도 다치지 않을 줄 알고 있었고, 실제로 다치지 않았다.
그런데 세상이 떠나가라 비명 지른 이유는 대체 뭔데?
“아, 아리 진짜 너무 싫어!”
미로는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주먹으로 아리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아리는 어딘가 허허로운 표정으로 그냥 맞았다.
웃기는 것과 별개로 능력 자체는 제법 신기했다.
피부가 단단해져서 칼이 박히지 않았다거나, 박혔지만 빠르게 재생했다는 것과는 다른 힘이다.
분명 칼이 박혔는데, 마치 연기처럼 박힌 부분이 메워지며 아무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흥분을 가라앉힌 미로의 설명에 따르면, 능력의 명칭은 간단하게 ‘불변 2단계’이다.
몸에 공격이 가해지면, 몸 이전에 ‘불변력’이라는 정체 모를 힘이 공격을 대신 받아내며 불변력이 남아있는 동안 미로는 다치지 않는다.
설명을 들은 진철 형이 요약했다.
“알겠다. 그, 뭐, 프로토스처럼 쉴드가 생겼다는 소리지?”
“프로토스가 뭐야?”
적어도 난 이 설명을 이해했다.
*
점심 무렵, 은솔 누나가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엊그제 했던 이야기 다들 기억하지? 탐욕의 손으로 마지막 남은 숨은 NPC를 찾겠다고 한 거?”
마음의 준비를 끝낸 동료들을 한 번씩 살핀 후, 누나는 기도하듯 손을 모았다.
“지금 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