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25)
EP.425 425화 – 뼈대 있는 가문 (1)
425화 – 뼈대 있는 가문 (1)
– 한가인
「이제는 기억도 흐릿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 내겐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증조할아버지도 살아계셨는데, 그분 성함은 ‘한진성’이었다.
증조할아버지는 재산이 대단히 많은 분이셨는데,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광활한 농지를 그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팔아넘기셨다고 한다.
심지어 그 돈으로 서울 강남땅을 가치가 오르기 전에 매입하셨다고 하니, 부동산 투자에 재능이 있는 분이셨다.
여하튼, 그런 분이시니 말년에는 유산을 탐낸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다고 한다.
우리 집 또한 다르지 않았다.」
… 지금 이 ‘지식’을 떠올리고 있는 사람은 누구야?
*
— 솨아아!
부드러운 바람이 뺨을 스치자 근처의 대나무 숲에서 잎새가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코를 간지럽히는 흙냄새를 맡는 것도 잠시, 눈앞의 꼬마가 꿈틀거리는 벌레 한 마리를 손으로 –
“에잇!”
“어? 가, 가인혀엉….”
“민석아, 벌레 만지지 말라고 했잖아.”
사촌, 아니 오촌이었나?
여하튼 민석이가 벌레를 삼키려 하는 걸 제지하니 이번엔 뒤쪽의 민아가 난리였다.
“으아아앙!”
“왜, 왜 울어?”
“아아앍!앍끼에아아락카락!”
“제발 사람 소리 좀 내라!”
혼자 흙바닥에 넘어지더니 무릎에서 피가 난다고 이 난리다.
천으로 대충 닦아내고 있으니 갑자기 옆에서 즐거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꼬기다 무꼬기!”
듣자마자 심장이 덜컹했다.
무꼬기? 물고기?
애새끼 혼자 물속에 들어갔다는 소리 아닌가!
화들짝 놀라서 뒤를 확인하자 그새 철민이가 바지도 걷지 않은 채 계곡에 입수한 상태였다.
얕고 물살이 약해 딱히 위험한 장소는 아니지만, 이 나이대 아이들은 침대 위에서도 사고가 난다.
“아오! 너 진짜 형 말 안 듣냐?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
간신히 친척 동생들을 뭍에 데려다 놓고 숨을 고르자 이번엔 여동생이 난리였다.
“오빠아…. 나 다리 아파.”
“…”
“집에 갈래에! 집에 갈 거야!”
사실 이 말만 들으면 큰 문제 없다.
희강이야 어린아이니까 이런 얕은 계곡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친척 동생들이랑 노는 게 재미없을 수 있어.
문제는, 어른들이 내게 아이들을 맡겨 밖으로 내보낸 건 시골집에서 ‘교육상 좋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30분만 기다렸다 가자.”
“… 응.”
지난 3일 내내 어른들은 밤낮없이 싸웠다.
본인들이 생각하기에도 이런 모습을 애들에게 보여주고 싶진 않았겠네.
*
점심 무렵, 동생들과 함께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고풍스러운 대문을 열자 광활한 마당이 나타났다.
여기저기엔 잘 가꿔진 소나무가 솟아 있었고, 주변을 새하얀 돌담이 둘러치고 있었다.
통풍과 채광이 잘되도록 설계된 고급스러운 창문, 흰색과 검은색의 대조가 뚜렷한 대청마루, 부드러운 한지로 만들어진 비싼 병풍과 여기에 새겨진 섬세한 그림까지.
드라마에 나와도 감탄을 자아낼만한 고급 한옥이다.
그러나, 나와 주변의 친척 아이들은 한옥의 고아한 모습에 집중할 수 없었다.
어른들, 나와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지금도 요란하게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호 너! 평소엔 할아버지 댁에 발걸음 한번 하지 않더니 -”
“작은아버지는 뭐 다릅니까? 누가 보면 대단한 효자 나신 줄 알겠네!”
“이 자식 말버릇이 왜 이래? 민승이가 자식 농사를 개판으로 지었구나!”
“하이고~! 거 형님 아새끼 관리나 잘하소!”
“이 후레자식이 -”
“아니, 나랑 형님이 한배에서 나왔는데, 내가 후레자식이면 형님은 뭐 -”
— 우당탕!
“으악! 아, 아버님 진정 좀 하십쇼!”
“다 늙은 양반들이 갑자기 왜 이래!”
한옥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려오는 통에 나와 아이들이 죄다 돌처럼 굳었다.
“으흠! 얘, 얘들아. 형하고 같이 이번엔 뒷산에서 놀까?”
“… 응.”
대체 증조할아버지 유산이 뭐길래 이 야단일까?
「뭐긴 뭐야. 평범한 인간이 평생을 바쳐도 채 1%도 모을 수 없는 무지막지한 돈이지.」
“…”
“형?”
“오빵?”
“희강아. 방금 어디서 이상한 말 듣지 못했어?”
“응?”
“아니야.”
어른들이 흥분을 가라앉히기까진 제법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
아들인 내 입으로 말하긴 좀 웃기지만, 아빠 한민석 씨는 인간적이면서도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대단한 거부라는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가 되자 눈도장이라도 한번 찍으려고 어린 자식들까지 데리고 시골에 찾아온 것.
이건 분명 유산에 대한 욕심이며, 아빠의 인간적인 면모다.
다행인 점도 있다.
적어도 아빠는 시골집에서 벌어지는 추한 싸움의 참여자라기보다는 방관자에 가까웠다.
그렇다고는 해도, 요 며칠 동안 벌어진 일은 아빠의 인내심을 상당히 갉아먹은 듯했다.
“가인아. 너도 고생 많았다.”
“…”
“애들이 말 잘 안 듣지?”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어른들이 이렇게 욕심이 많으니 애들만 고생이다….”
“…”
“정호, 네게는 정호 아저씨지? 그 자식이 이렇게 욕심이 많은 줄 오늘 처음 알았다.”
「이런 말은 고작해야 중학교 1학년 소년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하…. 큰아버지도 참 너무하시지. 어떻게 우리에게 그런 말을 -”
“…”
“석현이도 그래, 따지고 보면 -”
“…”
“어험!”
아빠가 내 앞에서 친척들에 대한 이런저런 뒷말을 늘어놓자 듣고 있던 엄마가 살짝 헛기침했다.
처음엔 어린 아들이 있다고 아빠에게 주의하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어험! 나도 한마디 합시다. 솔직히 진짜 문제가 누군 줄 알아요?”
“…”
“당신 큰아버지? 사촌 형? 아니지, 아니야.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니까?”
“…”
“그 늙은 노친네가!”
“여, 여보!”
“당신 할아버지 되시는 분이야말로 진짜 문제라니까. 나이 90이 넘도록 유언장 하나 제대로 만들지 않으시고, 심지어 뭐라고? 너희 중 자격 있는 사람에게 전 재산을 몰아주겠다?”
“후우….”
“1,000억 넘게 모아둔 분이 다 모아놓고 그런 흰소리 하시면, 사람들이 안 싸우고 배기겠어요?”
아직 중학생인 내가 듣기에도 엄마 말에 설득력이 있었다.
재산을 어떻게 처리할지야 주인 마음이라지만….
수백억 넘게 모은 늙은 거부가 자손들 모아놓고 ‘너희 중 자격 있는 자에게 내 전 재산을 주겠다!’같은 소리를 한다?
당연히 난리가 날 수밖에 없지.
증조할아버지가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다.
「깔끔하게 변호사 불러서 법정 상속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유언장을 쓰면 좋지 않았을까?
생전에 도움받은 사람에겐 미리미리 살짝 챙겨주셨다면 분란의 소지도 없었을 것 같은데.」
*
다음날은 아침부터 난리였다.
“하, 할아버님! 그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가, 갑자기 기부라니요!”
“준슥아…. 그르케 요란히 떠들면, 내 귀가 찌르르 한다.”
“할아버님!”
“정호야. 요거, 요 나무를 보거라.”
“보, 보고 있습니다.”
“나무 둥치가 빼조롬~ 하지?”
“관리하겠습니다!”
곧 머리가 반쯤 벗겨진 친척, 정호 아저씨가 정원 가위를 들고 가서 작업을 시작했다.
그 광경을 구경하던 노인이 갑자기 웃었다.
“느리다~! 느려! 행동이 이리 굼떠서 무슨 큰일을 하겠나? 정호 너는 안 되것다.”
“할아버님! 아, 아닙니다! 제가 사람 불러서 -”
“사람 불러? 그럴 거면 내가 불렀지 니 시키겠나? 하이고야…. 아이고야….”
구경하는 어린 눈에도 뻔히 보였다.
저 늙은 남자, 증조할아버지, 한진성은 유산을 인질 삼아 자손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어느 날은 갑자기 재산을 기부하겠다며 모두를 식겁하게 하고, 어느 날은 갑자기 잡스러운 일을 시키며 그걸 핑계로 자격이 있니 없니 한다.
의도가 빤히 보이는 데다가 숨기지도 않으니 어른들도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것인가?
그는 1,000억 거부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재산을 자기 마음대로 분배하겠다 선언한 지 오래다.
모두가 저 늙은 악동의 폭군 같은 행동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증조할아버지가 이런 분이셨어? 아무 기억이 없었는데…. 어릴 때 일이라 까먹었나?」
“느그들 게으른 꼬라지 보니까 못 참겠다! 당장 그, 차라도 캐온나!”
“아, 아버님! 갑자기 차라니요…. 애들 다 도시 사람입니다. 그런 말씀 하셔도 -”
“이 문디 자슥아! 도시 사람이면 어쩔긴데? 나는 젊어서 허리가 뽀사지도록 차 말렸는디, 느그는 못하겠다 이 말이제?”
“그, 그런 말이 아니라 -”
“1kg당 1000만원으로 계산해줘도 못하것나?”
찻잎 1kg당 1,000만 원.
이게 말이 되나 싶어 모두의 눈이 동그랗게 벌어지는 순간, 증조할아버지가 갑자기 오랫동안 자신을 모셔 온 변호사를 불러 종이에 무어라 적기 시작했다.
결국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어른들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찻잎을 따기 위해 출발했다.
— 부우웅!
이유야 어찌 됐든, 어른들이 사라지자 시골집에 고요함이 찾아왔다.
“큭! 큭큭! 크하하하하!”
“…”
“얘들아. 봤냐? 봤니?”
드라마 세트장 같은 고풍스러운 한옥.
남은 사람은 집을 관리하는 집사 비슷한 사람들과 ‘애들까지 데려가는 건 좀 아니다’하는 여론 덕에 남은 아이들.
그리고 미친 노인.
“할아버지….”
“가인아, 너도 봤제? 창식이 고 자식이 니 애비 차 타이어에 구멍낼라카는거?”
물론 봤다.
한창식, 아버지의 사촌 동생, 서울에선 꽤 큰 영어 학원 원장님이라는 사람.
분명 서울에선 원장님~ 원장님~ 소리 들으면서 점잖게 살아오셨겠지.
그런 사람이 몰래 철사로 아버지 차 타이어에 구멍을 내서 출발하지 못하게 하려다가 화난 아버지에게 얻어맞기까지 했다.
…
1,000억을 훌쩍 넘는다는 증조할아버지의 유산이 그 남자를 그토록 추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응? 뭐 질문 있나?”
“대체 왜 이러시는 건가요?”
“내가 뭐 요상한 짓이라도 했나? 다~ 느그 돈 주겠다고 이러는디 뭐가 문제가?”
“…”
화가 났다.
아무리 돈이 많고, 나이가 많은 선조라고 해도 이건 아니다.
유산이고 자시고 그냥 시원하게 패버리고 싶었다.
“히야…. 요, 요 작은 눈 보소.”
“…”
“니 삐짔나?”
“…”
“이거, 한대 치것는디?”
“…”
“하하! 귀여운 눈을 보고 있으니 이 또한 재미나다. 애기야. 날 따라오니라.”
한진성은 킬킬거리며 날 데리고 시골집 창고로 들어갔다.
「이상하다. 증조할아버지가 이렇게까지 특이한 사람이라면 잊었을 리가 없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
증조할아버지의 시골집 창고.
예전에 아빠가 말해주셨는데, 이 창고엔 증조할아버지가 젊어서부터 모아온 온갖 비싼 미술품이 가득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뭔가를 함부로 손대는 게 무서워서 얌전히 있었다.
“뭐하나?”
“…”
“이리 오니라. 이게 무언지 아나?”
한진성이 가리키는 물건은 날카로운 단검처럼 생겼는데, 손잡이에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몰라요.”
“30억 짜리다.”
갑자기? 시골집 창고에? 30억짜리 단검?
놀라서 휘청이려는 순간, 위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짓말이다.”
“…”
“생각 좀 하라. 30억짜리를 어찌 이런 데 올려두나.”
결국 못 참고 한마디 뱉었다.
“제정신이면 못하지만, 할아버지는 하실 수도 있죠.”
“이 늙은이는 정신이 돌았으니 할 수 있다 그 말이가?”
“그럼요.”
말은 바로 하자.
증조할아버지는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이다.
“큭! 큭큭! 아이고~ 역시 애들이 솔직하다.”
“…”
“가인아. 할애비가 재밌는 이야기 해주랴?”
“뭔데요?”
“할애비가 젊은 시절에 뭐 했는지 아니?”
“들었어요. 시골 농지를 물려받으셔서 -”
“그거 다 그짓말이다.”
“네?”
“그거 다 설정이야. 농지를 누가 줬니, 강남땅이 어쩌니…. 다~ 지어낸 소리다.”
이건 또 뭔 소리야? 또 장난인가?
“가인아.”
“네?”
“너, ‘관리국’이라고 들어봤니?”
그 단어가 나오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