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26)
EP.426 426화 – 뼈대 있는 가문 (2)
426화 – 뼈대 있는 가문 (2)
– 한가인
관리국.
문명을 위협하는 악마, 사교도, 귀신, 괴물 등을 처리하는 비밀 조직을 말한다.
일개 중학생이 그 존재를 알고 있는 시점에서 ‘비밀’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긴 하나, 일반인이 알고 있는 것은 ‘관리국이라는 조직이 존재한다.’ 정도가 끝이다.
“TV에서 가끔 들었어요….”
“뭐라카든?”
“악마, 귀신, 괴물 이런 걸 처치하는 사람들인데 -”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증조할아버지가 킬킬대며 손짓했다.
“애기야. 할애비 말 잘 들어라.”
“네.”
“본래 이런 말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다가는 모가지 동강나기 딱 좋지마는, 봐라, 할애비 나이가 몇이가?”
“… 아흔 살 가까이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이 나이 묵고 새삼 모가지가 아깝겠나?”
“…”
“가인아. 할애비는 젊은 시절에 관리국 사람들하고 이런~저런 일을 많이 했다. 밤낮없이 열차 타고 추운 나라 지하에서 꿈틀거리는 살덩이도 쑤셔 봤고, 하와이, 하와이 알제?”
“네.”
“하와이까지 가서 머리 셋 달린 거인하고 말도 해봤지.”
“…”
“그짓말 같지?”
“아니에요. 할아버지는 그, 관리국 요원이셨나요?”
“요원이라…. 뭐, 비슷했지. 내 평생 가장 가혹한 기억이 관리국 있었던 일이지마는, 또 가장 재미난 기억도 관리국 일이다. 그곳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세상이 얼~마나 요지경인지 이 나이 되도록 하나도 몰랐을 것 아니냐!”
증조할아버지는 다시 킬킬거리더니 이번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애기야. 너, 무서운 이야기 좋아하니?”
“아니요.”
“그럼 꼭 들려줘야겠다.”
“…”
“내 어린 시절에 말이다. 아버지께서 요상~한 항아리를 일본에서 얻으신기라.”
“일본이요?”
“일본에서 얻었는지, 일본 사람이 항아리를 가지고 조선 땅에 왔는지, 그거까지는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 이해했습니다.”
“그 항아리를 준 일본 사람이 말하기를, 항아리를 잘 보관하면 집안이 번창하고, 농사가 잘 풀리고, 여자들은 두꺼비 같은 아들을 턱턱 낳고, 남아들은 관직 운이 탁 트인다 했제.”
무슨 황금 두꺼비 따위에 자주 붙는 미신이다.
“증조할아버지의 아버지, 그니까 고조할아버지는 그런 말을 믿으셨나요?”
“꼭 믿었다기보다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창고에 보관하고 잊으셨지. 느이 집에도 그런거 꽤 있지 않드냐?”
“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 집안일이 술~술 국수처럼 풀리드라. 하나하나 예시를 들기는 뭣하다마는, 간단히 말하면 3년 사이에 땅이 세 배가 됐다는 말이지.”
일본에서 얻어온 신비한 항아리를 얻자 3년 만에 재산이 세 배가 됐다.
이런 괴상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신기한 일이네요. 그런데….”
“그런데?”
“…”
“아이고~! 말을 할 거면 끝까지 해야지 뭐하나?”
“그, 그런 일은 보통 무서운 대가가 따르지 않나요? 고조할아버지가 항아리에 얽혀서 돌아가셨다든가?”
“…”
갑자기 증조할아버지의 표정이 굳었다.
“… 할아버지?”
“대가…. 대가…. 그렇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나. 항아리에 신이나 악마가 있었다면, 분명 원하는 게 있기 마련이제.”
“…”
“애기야, 너 동생 있지?”
“동생? 희강이요?”
“이름이 한희강이었나?”
“그럼요. 할아버지, 제 이름은 기억하시죠?”
“아이고야! 내 기억력이 구멍 숭숭 뚫렸다고 타박하는 거이가?”
“그, 그건 아니에요.”
“봐라. 내 아들이 셋이고, 딸이 둘이다. 손자 손녀는 열 네 명이고, 증손자 증손녀는…. 아이고야! 몇 명인지도 헷갈린다.”
“…”
“너는 이게 다 외워지겠니?”
“그렇네요.”
들어보니 증조할아버지 말도 이해가 갔다.
사실, 아흔 살 가까운 분이 이렇게 말 잘 통하고 멀쩡히 걸어 다니는 것만 해도 엄청 대단한 일이 아닐까?
“네 동생, 희강이, 말은 잘 듣나?”
“네.”
“착하고? 귀엽고?”
“그럼요.”
“눈에 넣어도 될 만큼 이쁘제?”
“어…. 눈에 넣으면 아플 것 같아요.”
“…”
“…”
“어흠! 내 말은, 동생을 많~이 사랑하냐 그 말이지.”
“많이 사랑해요.”
“애기야. 사랑, 사랑이라는 건 말로만 끝나면 아~무 의미 없는 거이다.”
“네?”
사랑은 말로만 끝나면 아무 의미 없다.
갑자기 이런 말은 왜 하시는 걸까?
“네가 누군가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그거는 사랑한다는 말을 100번 1000번 하냐에 달린 것이 아니고, 네가 실제로 얼마나 베풀 수 있는가에 달려있는기라.”
사랑의 정도는 말의 횟수가 아닌 실제로 베풀 수 있는 정도에 달려있다.
“느 아버지, 내 손자 민석이가 널 을마나 사랑하는가? 이거는 그놈이 널 키우는데 들어간 돈으로 설명할 수 있는기다. 사람은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생물이거든.”
부모님의 사랑은 곧 부모님이 날 키우며 쓴 돈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니가 엄마 배에서 나와 잉잉거리면서 먹은 분유부터 해서, 매일같이 먹고 있는 밥. 이런 것이 다 사랑이제.”
“그, 그런 기준은 좀 이상하지 않을까요?”
“이상하니? 어디가 이상하니?”
“아무래도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일수록 자식에게 더 많이 쓸 수 있잖아요. 부자 부모님이 꼭 그렇지 못한 부모님보다 자식을 사랑하는 건 아닐 텐데.”
증조할아버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부연했다.
“가인이 네 말도 맞다. 다만 할애비 말은, 절대적인 금액이 아니라 ‘귀한 정도’를 말하는 게다.”
“귀한 정도요?”
“가난한 부모가 쓰는 돈이 절대적으로는 작을 수 있지마는, 그 돈이 그 부모에겐 굉장히 귀한 돈일 것 아니냐?”
“아, 이해했어요.”
더 설명을 들으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디, 이 할애비가 말한 것을 잘 요약해보거라.”
“내가 누군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내가 가진 귀한 것을 누군가에게 얼마나 베풀 수 있냐에 달려있다?”
“키야!”
“…”
“키야! 니가 지금 국민학생이가?”
“중학교 1학년입니다.”
“똘똘하다. 누구 닮았나? 나 닮았제?”
“…”
솔직히 이런 요란한 칭찬을 들을 정도는 아닌데.
“그라믄, 애기야. 네가 가진 가즈아앙! 귀한 것이 뭐이가?”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것?
“목숨이겠죠?”
“하하! 그라지. 사람에게 가장 귀한 거이 목숨이제. 돈으로 살 방법도 없고, 평생 딱 하나 있으니 그보다 귀한 것이 있을꼬.”
“그렇죠.”
“그라믄, 목숨 다음으로 귀한 것은 뭐이가?”
“어….”
“비슷한 게 하나 더 있지 않나? 돈으로 살 방법도 없고, 평생 딱 하나고.”
목숨과 비슷할 정도로 귀한 것.
돈으로 살 방법도 없고, 평생 딱 하나다.
“… 몸?”
“키야! 동네 사람 여기 보소! 아인슈타인 머리를 다섯 번을 후릴 천재가 났소!”
진짜 왜 이러시는 거야!
“할아버지! 마, 맞추긴 한 거죠?”
“그럼. 몸이다. 몸이야말로 사람이 가진 것 중 목숨 다음으로 귀하고, 사실 목숨하고 거의 비슷하지.”
“네….”
낡은 창고가 잠시 조용해졌다.
이제야 이 정신 이상한 노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때, 증조할아버지가 날 또렷이 바라보았다.
“애기야.”
“네?”
“너, 동생 사랑한다 했지?”
맨 처음에 나왔던 이야기다.
“그럼요.”
“네 몸을 내어줄 정도로 사랑하나?”
“…”
지금까지 할아버지와 나눈 긴 대화의 종착역이 바로 이 문장이다.
나는 동생을 사랑한다.
사랑은 내가 가진 귀함을 누군가에게 베풂으로써 증명된다.
내가 가진 귀한 것 중 으뜸은 몸이다.
그러므로 극한의 사랑이란 곧, 몸까지 내어줄 수 있는 사랑이다.
“… 사랑하긴 하지만, 몸을 내줄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사람이 다 그렇지.”
“…”
“그게…. 사람이다.”
“…”
“가인아.”
“네?”
“할애비는 일찍이 몸까지 내줄 수 있는 사랑을 보았느니라.”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당황한 눈으로 증조할아버지를 바라보았지만, 할아버지는 대답 대신 이만 한옥으로 돌아가라며 손짓했다.
*
한옥에 돌아오자 전화기가 요란히 울리고 있었다.
“네? 내일 오신다고요?”
증조할아버지의 변덕 때문에 어른들이 다 함께 찻잎을 따러 가셨는데, 하루 더 있다 돌아오신다고 한다.
갑자기 폭우가 왔다는 둥, 차에 문제가 생겼다는 둥 이런저런 말이 덧붙여졌는데 중학생인 내가 듣기에도 뭔가 핑계 같았다.
과연, 전화를 끊자 근처에 있던 ‘박 변호사’라는 분이 쓴웃음을 지으셨다.
“찻잎이 예상보다 부족한 모양이네.”
“예?”
“가인이 넌 잘 모르겠지만,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단다. 도시 사람들끼리 차밭에서 하루 구른다고 성과가 팍팍 나오면 그게 이상하지.”
“…”
오늘 딴 찻잎 분량이 모자라니, 내일 딴 분량까지 합쳐서 오늘 땄다고 우기시려는 걸까?
헛웃음이 나올 뿐 새삼 어른들에게 화가 나거나 하진 않았다.
증조할아버지께서 1kg당 1,000만 원이나 쳐주신다는데, 죽어라 해야지.
덕분에 오후 내내 기운 넘치는 아이들을 데리고 대나무숲에서 고생해야 했다.
*
늦은 밤.
몽롱함 속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또 여기네. 이번에도 여기서 멈추겠는데?」
「가인이 얘, 밖에서 평범한 고등학생이라고 하지 않았어?」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누가 알겠어? 어쩌면 승엽이나 송이도….」
「으악! 모두 닥쳐! 중요한 건 가인이가 -」
기이하게도 목소리 하나하나가 그리우면서도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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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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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악!
무언가가 목을 조르는 격렬한 고통 속에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