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27)
EP.427 427화 – 뼈대 있는 가문 (3)
427화 – 뼈대 있는 가문 (3)
– 한가인
굵고 단단한 실이 내 목을 조여든다.
손에서 힘을 빼는 순간 의식을 잃을 것 같아서 저항이고 자시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윽! 흐으읍! 흐으읍!”
고통 속에서 눈을 떴을 때, 내 앞에는 울고 있는 동생들이 있었다.
“흐읍! 대, 대체! 끄으윽!”
민석이, 민아, 수지, 철민이 – 시골집에 남아있던 동생들이 죄다 공포에 질린 채 벽에 붙어있었다.
몇몇 아이는 벌써 소변까지 지린 상태였는데, 잠깐 사이에 정체 모를 존재에게 심신이 억눌린 것 같았다.
“크으윽!”
천천히, 고개를, 조금씩 돌려서 정면을 보았다.
대체 누가! 어떤 새끼가 내 목을 –
“…”
희강이다.
내 하나뿐인 여동생이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 아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오빠, 날 사랑하지?”
“으읍!”
동생의 가슴팍엔 ‘한민상’이라는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이름표는 또 뭐지?
게다가 한민상? 한희강이 아니고?
“크으읍!”
속절없이 끌려갔다.
단단한 실이 내 목을 조이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애초에 ‘저것’의 힘이 너무 세다!
고통 속에서 방 두 개를 지나쳤을 때, 눈앞에 항아리가 나타났다.
항아리의 뚜껑은 열려 있었다.
“제발…. 제발…. 민상아….”
아주 지치고 늙은 목소리.
증조할아버지다.
“하하하! 형, 갑자기 왜 그래?”
“민상아…. 부탁이다. 그 – 그 아이에겐 죄가 없으니 -”
“죄가 없으니?”
“부디, 부디 내 몸으로 -”
“꺄하하하!”
‘그것’은 어린 소녀처럼 웃으며 답했다.
“형, 아무리 그래도 형 몸은 좀 아니지 않아? 다~ 늙은 몸으로 뭘 어쩌게? 그게 어린 시절의 내 몸과 같은 가치라고 생각해?”
“… 민상아.”
“걱정하지 마. 나도 이 애는 불쌍하게 생각하니깐!”
그것은 한 손으로 내 목줄을 끌며 증조할아버지에게 다가가더니, 다른 손으로 할아버지 가슴팍에도 붙어있는 ‘한진성’ 이름표를 떼어냈다.
이름표를 떼는 순간, 증조할아버지가 마치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형…. 사랑하는 우리 진성이 형. 형이 허무하게 죽는 꼴을 내가 어떻게 봐? 못 보지. 내가 형에게 영생을 선물해줄게.”
— 딸그락!
뚜껑 열린 항아리 내부로 이름표가 쏙 들어갔다.
그리고, 동생의 몸을 빼앗은 ‘그것’이 날 바라보았다.
“안녕?”
“…”
“힘들지? 숨 쉬는 것도 힘들지? 온몸이 파들거려서 꼼작도 못 하겠지?”
“…”
“걱정하지 마. 너는 곧 편하게 해줄 테니까!”
“…”
어느새 모든 사람의 가슴팍에 생겨난 이름표.
내게도 ‘한가인’이라고 적힌 천 조각이 있었다.
그것, 아마도 ‘한민상’은 밝게 웃으며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내게서 이름표를 떼어냈다.
의식이 흐릿해진다.
이 순간, 나는 너무나 두려웠다.
이다음에 일어날 일을 몰라서가 아니라, 어렴풋이 깨달았기에 너무나 두려웠다.
…
…
…
처음으로 느낀 것은 ‘무거움’이다.
누군가 묵직한 쇳덩어리를 끼운 것 같은 고통이 전신을 짓눌렀다.
절망 속에서 손을 까딱하는 순간, 뼈마디가 낡은 톱니바퀴처럼 불쾌하게 달각였다.
눈꺼풀을 뜨는 간단한 동작조차 힘겹고, 숨 한번 쉴 때마다 폐가 힘겹게 요동쳤다.
나는, 중학교 1학년 한가인은….
아흔 가까운 노인의 몸에 갇혔다.
이곳은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감옥이다.
“아흐그르읅!”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목에 가득 낀 가래가 발성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대체 어떻게 이런 몸으로 움직이고 말했을까?
절망 속에서 눈을 뜨자 내 앞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는 소년이 보였다.
‘나’다.
내 몸을 차지한 괴물이다.
“이야~! 역시 남자애 몸이 좋아.”
“끄르륵!”
“미안~! 다른 애들은 성별이 다르거나 너무 어렸거든. 그것도 좀 불편하더라. 딱 네 나이가 괜찮아 보였어.”
“끌…. 너…. 너 이 자식!”
“어? 어?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어디 아파요?”
화가 난다.
심장 깊은 곳에서 울화가 치밀자 전신이 떨려왔다.
“참으세요. 연세도 있으신데, 그 나이에 너무 화내면 위험한 것 알죠?”
“…”
미친 듯이 화가 났다.
동시에 숨이 멎을 듯 두려웠다.
어떻게 해야 내 몸으로 돌아갈 수 있지?
그때, ‘한가인’의 가슴팍에 붙은 ‘한민상’의 이름표가 보였다.
이름표! 바로 저게 이 사태를 일으킨 원흉이다.
이름표가 영혼이고 저걸 옮기면 혼이 육신을 갈아타는 건가?
그렇다면, 지금 이 늙은 몸의 가슴팍에 붙어있을 ‘한가인’ 이름표를 떼어서 다시 내 몸에 붙이면 –
“무슨 생각 하는지 보인다~ 보여. 이름표 다시 옮기면 된다고 생각 중이지?”
“…”
“아~ 알겠다. 내일이면 어른들 오니까 시키게?”
“너….”
“그런데 어쩌지?”
이제 ‘소년’이 된 존재가 킥킥거리며 뚜껑이 열린 항아리로 다가갔다.
— 딸그락!
항아리의 뚜껑이 닫혔다.
이름표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끝~! 아하하! 눈 봐라 눈! 왜, 너한테도 기회가 있을 줄 알았어?”
“…”
“바보 멍청이! 내가 형한테는 당했지만, 너 같은 꼬마에게 당할 줄 알아? 아, 이젠 꼬마 아니구나. 할아버지~! 여생 편안히 보내!”
절망, 공포, 고통, 두려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부정적인 감정의 무저갱 속에 떨어져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비명을 지르고 또 질렀다.
남은 삶을 아흔 살 노인으로 살다 죽느니, 차라리 지금 죽여달라고 빌고 싶었다.
그렇게 주저앉으려던 때.
— 촤아악!
세상이 흑백 영화처럼 변하더니, 단숨에 둘로 쪼개졌다.
휘날리는 흑발.
루비처럼 빛나는 붉은 눈동자.
살아있는 인형을 연상케 할 정도로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그녀를 보는 순간, 거짓말처럼 머리 한편을 막고 있던 둑이 사라졌다.
아리다.
내 진짜 동료다.
난데없는 이변에 당황한 ‘그것’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순간, 아리가 주저 없이 손을 그었다.
— 서걱!
‘그것’의 머리 – 정확히는, 내 머리가 허공을 빙글빙글 돌더니 땅에 떨어졌다.
이것으로 내 몸은 확실히 죽 –
“으악!”
“…”
“뭐, 뭐야! 방금 내 몸을 아예 죽였어? 그러면 돌아갈 방법이 -”
“정신을 완전히 차리진 못한 모양이네.”
“뭐?”
“이 시점에서 이미 패배야.”
“그게 무슨 -”
“설명해줄 시간이 없어. 넌 이미 여러 번 실패했으니까. 아무래도 너 혼자서는 깰 수 없는 모양인데….”
“뭐라고?”
“참 이상하지. 분명 이건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의 각색. 과거의 중학생 가인이는 이 상황을 대체 무슨 수로 이겨낸 걸까?”
아리가 하는 말을 절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리 말대로 정신을 완전히 차리지 못한 걸까?
“분명 아직 알아내지 못한 무언가가 있어. 그걸 보기 위해 너 혼자 더 놔둘 생각이었는데….”
“…”
“가만히 구경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네. 그러니까….”
아름다운 소녀가 살짝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부드러운 손이 죽어가는 노인의 머리를 쓸었다.
떨리는 입이 아무렇게나 움직였다.
“나…. 나….”
“…”
“가, 갑자기 늙었어. 이, 이상한 괴물 때문에 하, 할아버지로 변해서 -”
“괜찮아. 별로 안 늙었어.”
“어?”
“몸 기준으로 쳐도 100살도 안 된 애기가 뭘 자꾸 늙었대?”
“…”
“가인아, 걱정하지 마. 우리가 곧 깨워줄 테니까. 다음번 꿈은 나랑 같이해보자. 실패하면, 또 다음 사람이 도와줄 거야.”
— 서걱!
얼어붙은 섬광이 허공을 갈랐다.
이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
— 솨아아!
부드러운 바람이 뺨을 스치자 근처의 대나무 숲에서 잎새가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코를 간지럽히는 흙냄새를 맡는 것도 잠시, 눈앞의 꼬마가 꿈틀거리는 벌레 한 마리를 손으로 –
“에잇!”
“어? 가, 가인혀엉….”
“민석아, 벌레 만지지 말라고 했잖아.”
사촌, 아니 오촌이었나?
여하튼 민석이가 벌레를 삼키려 하는 걸 제지하니 이번엔 뒤쪽의 민아가 난리였다.
“으아아앙!”
“왜, 왜 울어?”
“아아앍!앍끼에아아락카락!”
“제발 사람 소리 좀 내라!”
혼자 흙바닥에 넘어지더니 무릎에서 피가 난다고 이 난리다.
천으로 대충 닦아내고 있으니 갑자기 옆에서 즐거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꼬기다 무꼬기!”
듣자마자 심장이 덜컹했다.
무꼬기? 물고기? 애새끼 혼자 물속에 들어갔다는 소리 아닌가!
화들짝 놀라서 뒤를 확인하자 그새 철민이가 바지도 걷지 않은 채 계곡에 입수한 상태였다.
얕고 물살이 약해 딱히 위험한 장소는 아니지만, 이 나이대 아이들은 침대 위에서도 사고가 난다.
“아오! 너 진짜 형 말 안 듣냐?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
진짜, 이래서 애들은 –
“이래서 애들은 안돼.”
?
“난 이런 데서 쓸데없이 시간 쓰는 것 딱 질색이야.”
뒤로 돌아서자 동생, 아리가 살짝 짜증 난 표정으로 날 돌아보았다.
조금 전만 해도 다리 아프다고 훌쩍이지 않았었나?
“가인아.”
“뭐?”
갑자기 반말?
아니,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데 어떻게 동생 주제에 오빠에게 –
“이얍!”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아리가 벼락처럼 움직이더니 친척 꼬마들 머리를 호되게 쥐어박았다.
“어, 어! 아, 아리야?”
“으아아앙!”
“너, 내 앞에서 한 번만 더 울면 이빨 뽑아버린다?”
“… 히끅!”
아리는 같은 방식으로 네 명의 친척 동생을 죄다 울리더니 눈빛으로 제압했다.
“…”
이 엄청난 광경을 보고 있으니까 왠지 모르게 반말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가인아. 돌아가자.”
“그, 그래도 오빠라고는 해야…. 그리고 집에 친척분들이 -”
“신경 쓰지 말고 돌아가. 이상한 장소에서 체력 빼기 싫으니까 당장!”
동생은 오늘따라 이상할 정도로 박력이 넘쳤다.
*
시골집에 돌아오자마자 요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호 너! 평소엔 할아버지 댁에 발걸음 한번 하지 않더니 -”
“작은아버지는 뭐 다릅니까? 누가 보면 대단한 효자 나신 줄 알겠네!”
“이 자식 말버릇이 왜 이래? 민승이가 자식 농사를 개판으로 지었구나!”
“하이고~! 거 형님 아새끼 관리나 잘하소!”
“이 후레자식이 -”
“아니, 나랑 형님이 한배에서 나왔는데, 내가 후레자식이면 형님은 뭐 -”
— 우당탕!
어색하게 웃으며 동생들을 데리고 뒷산으로 돌아가려는 차, 아리가 픽 웃었다.
“오빵!”
“…”
“아, 이거 좀 힘드네. 그래도 오빵!”
왜 이렇게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왜, 왜 그래?”
“당장 주차장으로 가.”
그 말을 하는 아리가 바닥에서 날카로운 쇳조각을 찾아내더니, 돌에다 갈아서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지금 시점에선 피를 쓸 수 없으니까…. 이런 게 있어야겠네.”
피를 쓸 수 없다? 이런 것?
“가, 갑자기 주차장이라니? 그리고 그 쇳조각은 뭐야?”
“오빵!”
“아오! 가자, 가자!”
이상하게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농담이 아니라 토할 것 같았다.
*
시골집 오른편의 주차장엔 부모님을 비롯한 친척분들이 타고 온 차가 가득했는데, 그럴듯한 외제 차도 적지 않았다.
“아리야, 주차장엔 갑자기 왜 오자고 한 거야? 뭐 보고 싶은 – 야! 미쳤냐!”
으악!
숨 한번 고르기도 전에 아리가 번개처럼 뛰어나가서 쇳조각으로 타이어를 뚫어대기 시작했다!
황급히 달려가서 동생을 붙잡으려는 순간, 아리가 몸을 살짝 회전하며 날 쳐냈다.
딱히 대단한 동작을 한 것도 아닌데 어어 하다 보니 내 몸은 흙바닥에 뒹굴었다.
내 동생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에타이라도 익혔나?
“아니! 무에타이는 둘째치고 갑자기 뭔 짓이야! 차, 차를 이렇게 다 조지면 -”
사색이 된 나와 달리 아리의 표정은 한없이 태연했다.
“흐음…. 차를 작살내도 어른들만 밖으로 보낼 수 있으려나? 확인해봐야지.”
“뭐, 뭘 확인한다고?”
“가인아, 가자.”
“뭘 확인한다고!”
“오ㅃ”
난 그만 귀를 막아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