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30)
EP.430 430화 – 뼈대 있는 가문 (6)
430화 – 뼈대 있는 가문 (6)
– 한가인
엘레나는 항아리에 갇힌 한민상에게 빙의 당한 것처럼 행세했다.
증조할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적으로 무너졌고, 곧 넋 나간 사람처럼 사과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닌 모습이다.
결국 집안을 긴 세월 보필했다는 박 변호사님을 비롯한 고용인들이 증조할아버지를 침실로 모셔갔다.
물론, 나와 엘레나는 그 전에 제법 많은 사실을 알아냈다.
*
“알아낸 정보를 정리해보죠. 우선 ‘이름표 뺏기 게임’부터.”
“게임이요?”
“비슷한 걸 예능에서 많이 봤거든요.”
“…”
“물론 예능에선 이름표를 뺏는다고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진 않죠.”
선대가 일본에서 얻어왔다는 항아리는 집안에 부귀를 가져다주었으나 공짜가 아니었다.
한 명의 영혼이 항아리에 갇힌 채 얼어붙은 지옥 속에서 고통받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인신 공양을 통해 재화를 얻어내는 보물이나 다름없다.
이름표 뺏기 게임은 바로 그 희생양을 정하는 절차다.
“규칙이 너무 간단해서 뭐 고민할 것도 없네.”
“그러게요.”
그래도 한번 정리할 필요성은 있다 싶어 굴러다니던 필기구로 끄적였다.
1. 이름표 뺏기 게임은 항아리가 열리며 시작한다.
시작과 동시에 주변은 일종의 폐쇄 공간으로 변해 함부로 나가거나 들어올 수 없다.
2. 주변의 사람들은 참가자, 항아리 내부에 있던 희생양은 술래가 된다.
3. 술래가 참가자 중 1인의 이름표를 빼앗아서 항아리에 담으면 게임이 끝난다.
담긴 존재가 다음 희생양이 된다.
“한진성의 말에 따르면, 이 게임이 약 75년 전에 한번 일어났다고 해요.”
“…”
“당시 술래, 즉 항아리에 갇혀있던 희생양은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소년이었다고 하네요. 아마 일본인이었겠죠.”
빌어먹을 항아리가 아주 오랜 세월 사람을 해쳐왔다는 의미다.
“한진성과 그 가족, 가인 씨의 선조들은 당연히 적절히 대응할 수 없었어요. 게임의 규칙을 그 시점에선 전혀 몰랐을 테니까. 애초에 이름표가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겠죠.”
한진성 본인도 그 당시엔 게임의 규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규칙을 우리에게 설명해줄 수 있을 정도로 이해한 건 한참 후의 일이다.
아마 관리국에서 일하며 얻은 일본 쪽 정보와 본인의 기억을 대조해서 알아냈을 것 같다.
“당시의 술래는 한진성의 동생, 한민상의 영혼을 항아리에 가둔 후 한민상의 몸에 빙의한 채 도주했다고 하네요. 이후에 어떻게 됐는지는 한진성도 모른다고 하고.”
“… 나이를 생각하면 이미 죽었을지도.”
“재미있는 건 – 아니, 비극적인 일이니까 재미는 아니고 -”
“괜찮아요.”
“으흠! 중요한 건 한진성의 증언과 가인 군이 경험한 한민상의 말이 매우 다르다는 거죠.”
“…”
증조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악몽보다 더했던 공포 속에서 동생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술래를 막아섰다고 한다.
그는 이 일을 동생이 몸을 희생해서 가족을 구한 비극적인 희생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반면, 항아리에서 나온 한민상은 이렇게 말했다.
‘그게 어린 시절의 내 몸과 같은 가치라고 생각해?’
‘나도 이 애는 불쌍하게 생각하니깐!’
‘사랑하는 진성이 형, 형이 허무하게 죽는 꼴을 내가 어떻게 봐?’
‘내가 형한테는 당했지만, 너 같은 꼬마에게 당할 줄 알아?’
당시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보자.
명백히 한진성이 자신을 함정에 빠트려 항아리에 가뒀다는 투의 말이다.
실제로 한민상은 원한 가득한 태도를 감추지 않으며 한진성의 영혼을 항아리에 밀어 넣었다.
엘레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둘 중 한 사람은 거짓말 중인 걸까요?”
“…”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둘 다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네?”
한진성은 동생이 가족을 위해 희생했었으며, 이것이야말로 지고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한민상은 형이 자신을 함정에 빠트려 지옥 같은 항아리에 밀어 넣었다고 생각한다.
한 발 떨어져서 보면, 두 기억은 모두 이상한 부분이 있다.
첫째, 한진성의 기억은 말이 안 된다.
사건이 벌어진 당시 한민상은 고작해야 10대 초반이었다.
어린 소년이 귀신이 쫓는 상황에서 갑자기 가족을 위해 일부러 잡혔다?
이런 책임감이 생길만한 나이도 아니고, 무엇보다 항아리에서 나온 귀신의 목적을 모르는 상황이다.
“그냥 항아리에서 괴물이 나오니까 다들 겁이 나서 도망쳤겠죠. 그러다가 한민상이 붙잡힌 겁니다. 무슨 영웅적인 희생이 아니라 단순히 어리고 약하니까 잡힌 거죠.”
“…”
“다만, 이 일은 할아버지께는 평생의 악몽이었을 테니까요. 동생을 버리고 도망갔다, 이런 식의 가책에서 도망치기 위해 머릿속에서 동생의 희생이라는 판타지를 만든 게 아닐까요?”
“일리 있네요. 그러면 한민상의 기억은요?”
둘째, 위와 비슷한 맥락에서 한진성이 자신을 항아리에 가두었다는 한민상의 주장도 이상하다.
“역시 틀렸죠. 당시 할아버지도 ‘이름표 뺏기 게임’의 규칙을 몰랐는데, 동생을 항아리에 가두면 난 살아날 수 있다 이런 걸 알았을 리가 없잖아요.”
다시 말하지만, 할아버지가 게임의 규칙을 이해한 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다.
엘레나가 다소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둘 다 나이 어린 소년이었으니, 서로 붙어서 도망갔나 봐요. 그러다가 조금 더 약한 동생이 잡혔고, 형은 공포에 질린 채 살아남았고.”
“살아난 형은 동생이 감동적인 희생을 했다고 믿으며 합리화했다, 동생은 고통스러운 장소에 갇힌 채 형이 날 함정에 빠트렸다는 망상에 빠졌다. 이게 제 결론입니다.”
정리가 끝나자 나와 엘레나의 표정이 동시에 우울해졌다.
생판 모르는 남이 겪은 일이라 해도 가슴 아플 판인데, 증조할아버지와 그 동생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러자 엘레나가 손으로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고개를 들자 내 동생이라는 ‘배역’을 맡기 위해 10대 초반 정도로 어려진 엘레나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과는 많이 다른, 어린 시절의 엘레나.
엄청 예쁘고 귀여웠다.
보다 보니까 증조할아버지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머릿 속에서 싹 날아갔다.
“괜찮아요?”
“…”
“가인 씨?”
“자, 작전부터 세우죠! 옛날 일은 옛날 일이고, 이 꿈을 잘 해결해야 화가에게 뭔가 받아낼 수 있을 테니까!”
*
늦은 밤, 초승달이 뜬 하늘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이름표 뺏기 게임’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게임의 발생 자체를 막는 것도 고려해봤다.
항아리를 함부로 파괴하면 곤란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꼭 파괴할 필요는 없으니까.
관리국에 신고하는 건 어떨까?
이 세상의 관리국은 아리가 아는 ‘그 관리국’보다는 존재감이 작긴 하지만, 그들 또한 초자연적인 사건에는 나설 테니까.
더 쉬운 방법도 있다.
그냥 나랑 엘레나 둘이서 한옥을 떠나 하루 이틀 밖에 있으면 그만이다.
한옥 내부에서 난리가 나겠지만, 우리에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고심 끝에 이런 방향성은 포기했다.
이것은 나의 ‘가장 끔찍한 기억’이므로 발생 자체를 막는 건 실제 역사와 전혀 다를 것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화가가 정상적인 결말로 인정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게임은 해야 하고, 이겨야 한다.
— 쉬이잉! 쾅!
바람 부는 소리와 함께 한옥의 문이 요란하게 닫힌다.
벽에 기대 있던 엘레나가 에메랄드같이 빛나는 눈을 치켜뜨고, 나는 즉시 몸을 일으켰다.
가슴팍에 생겨난 이름표. [한가인].
이제 시작이다.
*
— 후오오오오!
괴상한 울음이 한옥을 점거하는 순간, 나와 엘레나의 지시로 깨어 있던 아이들이 죄다 겁먹은 티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도 이런저런 말은 해두었으나 표정만 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이 느껴졌다.
괜찮다.
우리도 딱히 이런 애들 믿고 작전을 세우진 않았으니까.
— 덜컹!
난데없는 바람이 불어오며 저택 전체가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조금 전만 해도 달빛이 한옥 내부를 은은히 비추었는데, 잠깐 사이에 대청마루와 방들, 미로 같은 복도 전체가 어두워진 상황.
정체 모를 힘이 한옥 안팎을 둘로 나누었다.
— 끼이익! 끼이익!
한옥 여기저기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항아리에서 나온 한민상이 아이들을 찾고 있는 것.
나와 엘레나는 아이들을 전부 한 방에 몰아두었다.
“얘들아…. 어디 있니?”
날카로운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한 목소리.
듣는 순간, 겁먹은 아이들이 결국 참지 못했다.
“으, 으아아앙!”
굳이 조용히 시키진 않았다.
한옥에 방이 무한한 것도 아니니 어차피 때가 되면 귀신은 이 방을 찾게 된다.
그 대신, 창호지로 덧댄 얇은 벽에 귀를 기울인 채 생각했다.
항아리에서 막 나와 누군가의 몸을 뺏기 전의 한민상은 대체 어떤 상태일까?
미리 사방에 물을 뿌려두었는데도 찰박거리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최소한 걸어 다니는 것 같진 않다.
“혹시 여기니?”
— 끼이익! 끼이익!
문을 여는 것으로 보아 몸을 뺏기 전에도 약간의 물리력은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 끼이익!
마침내, 한옥의 아이들이 모두 숨어있던 방의 문이 열렸다.
“하하하! 여기구나!”
한민상은 흡사 소용돌이치는 희끄무레한 연기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육신을 얻지 못한 그의 형체는 언뜻 보면 사람과 비슷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불규칙한 안개나 연기처럼 변덕스럽게 꿈틀거렸다.
얼굴 부분이 특히 이질적이었는데, 두 눈은 빛을 잃은 죽은 별처럼 시커멓게 물들어있었고, 입을 열 때마다 차가운 연기가 빠져나왔다.
당연히 이런 공포를 마주한 아이들은 이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정신없이 비명 질렀다.
“꺄아아악!”
“으아앙!”
“사, 살려주세요!”
겁에 질린 아이들이 제법 우스웠는지, 한민상은 킬킬거리며 손을 쭉 뻗었다.
맨 앞에 있던 남자아이, 민석이가 첫 번째 빙의 대상이 되었다.
“네가 좋겠구나!”
곧, 민석이의 가슴팍에 붙어있던 [한민석]이라는 이름표가 땅에 떨어지고 그 자리에 [한민상]이라는 이름표가 붙었다.
“후우…. 이게, 이게 대체 얼마 만에!”
수십 년 혹은 그 이상의 세월 항아리에 갇혀있으며 느낀 회한이 깊었던 걸까?
아이의 몸을 빼앗은 한민상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지, 아니지! 더 좋은 몸이 있었어. 자아아…. 얘들아. 너희 중 ‘한가인’이라는 애가 있지? 어디 있 – 어래? 뭐야? 이 실은 -”
민석이의 몸을 빼앗은 한민상이 ‘목을 감고 있는 실’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 나와 엘레나는 더 이상 인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 꽈아악!
“끄아압!”
비명 지르는 한민상을 보며 생각한다.
실 하나로 사람을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다는 사실을 내게 알려준 건 바로 저놈이다.
그랬기에 나와 엘레나는, 미리부터 모든 아이의 목에 실을 감아두었다.
귀신이 몸을 빼앗자마자 목을 조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