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32)
EP.432 432화 – 뼈대 있는 가문 (8)
432화 – 뼈대 있는 가문 (8)
– 한가인
“하하하! 난 이만 가볼 테니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재밌게 살아. 재산은 곧 내 손에 들어올 테니 함부로 쓰지 말고~!”
한민상은 마지막까지 노인의 몸에 갇힌 날 비웃었다.
그 말에 반응하는 대신, 마지막까지 한민상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소년은 곧 뚜껑이 쉽게 열리지 않게끔 항아리를 봉인한 후, 그것을 조심스레 든 채 한옥 밖으로 도망갔다.
“다행이네.”
밖에서 걱정했던 부분이 있다.
한민상이 내 몸을 빼앗은 후 항아리를 깨트려버린다면?
어린 소년의 몸을 빼앗는다는 목적을 이루었으니 더 이상 항아리를 남겨둘 이유가 없지 않나?
이런 경우 내가 역전할 방법이 사라진다.
다행히 한민상은 항아리를 깨트리는 대신 챙겨서 도망갔다.
아마 본인이 항아리에 갇힌 악령이다 보니, 항아리를 부수면 한진성의 천억 재산에 저주가 걸린다는 사실을 알았겠지.
상속을 통해 자신이 재산을 받을 미래까지 생각해 항아리를 파괴하지 않았다.
그 탐욕이 곧 한민상의 패착이다.
침착하게 생각해보자.
옛말에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이 있으니,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움이 없다.
역전을 위해선 한민상과 내가 어떤 상황인지 고려해야 한다.
한민상은 어떤 존재인가?
시간대를 고려하면 1930년대 말 혹은 1940년대 초, 1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항아리에 갇힌 악령이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악령이 주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객관적으로 보면, 2010년대인 현시점의 세상 물정은 개뿔도 모르는 꼬맹이라는 소리다.
초자연적인 능력? 힘이 조금 강하긴 했으나 대단한 정도는 아니다.
엘레나와 함께 힘겨루기했던 기억을 떠올리자 성인 남자 정도면 능히 제압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반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
90살이 넘은 한진성의 몸에 들어간 한가인이다.
내부의 영혼이야 나만 아는 것이니 의미 없고, 외부에서 보기엔 ‘한진성’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나는 1,000억 자산가다.
…
두 시간 정도 흐르자 날이 밝았다.
“어르신, 좋은 아침입니 – 헛!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밤새 울다 쓰러진 아이들과 악령이 날뛰며 난장판이 된 집을 본 고용인이 화들짝 놀랐다.
“현석아!”
“예, 예! 어르신, 이게 대체 -”
“잡소리 말고 사람들 부르라! 그리고 그, 차밭에 간 아새끼들 지금 호텔에 있제?”
이야~ 할아버지 몸에 들어가니까 늙은 말투가 저절로 나오는데?
“그렇습니다.”
“당장 다 부르라. 늦게 오는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는 각오하라 전하고!”
“아, 알겠습니다.”
*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중학생 한가인도 한민상과 증조할아버지가 형, 동생 하는 걸 들었으니 이 정도는 떠올릴 수 있었겠지.
1930년대에 항아리에 갇힌 꼬맹이가 2010년대 세상에 대해 알면 뭐 얼마나 알겠어?
그 시절 조선에 택시나 버스, 지하철이 있었을까? 기껏해야 인력거지.
한민상이 대단한 탈출이라도 할 것처럼 한옥 밖으로 나가긴 했지만, 결국 그놈이 할 수 있는 건 중학생 체력으로 두어 시간 열심히 걷는 정도다.
심지어 무거운 항아리까지 들고 있으니, 함부로 산에 오르지도 못하고 대로로 걸어갔겠지.
나는 1,000억 갑부고, 내가 부리는 고용인들은 이 지역에서 10년 넘게 산 사람들이다.
그들이 도망간 한민상을 잡아 오기까진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아이고야…. 우리 손주 고생 많았제?”
“너…. 너 이 새끼!”
“날씨가 이리 더운데 어딜 그리 바쁘게 쏘다니나? 체력도 좋다~!”
“야! 너 이 – 으읍!”
옆에 있던 고용인이 어색하게 웃으며 한민상의 입을 막았다.
“하하…. 가인이 이 녀석, 어제까지만 해도 예의 바른 아이였는데, 오늘은 좀 이상하군요.”
“우으읍!”
“왜 이렇게 기운이 좋아?”
한민상이 버둥거리자 의외의 힘에 고용인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딱 그 정도였다.
그에게 용기의 축복이 있는것도 아니니 중학생 소년의 몸으로 낼 수 있는 힘이 뻔했기 때문이다.
곧, 건장한 체격의 고용인이 간단히 제압했다.
“거 승찬아, 아새끼들은 원래 어제오늘이 다른 법이니 놀랄 것 없다.”
“그, 그렇지요.”
“어떻게 잡아 왔나?”
“다들 흩어져서 찾아보니까 길 중간쯤에서 항아리를 내려놓고 쉬고 있던데요?”
듣자마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야 손주야! 그니까 운동을 좀 했어야지. 거 을매나 체력이 부족하길래 이리 금방 잡혔나?”
“으읍! 으으으읍! 이야압!”
“거 단디 잡아두라. 항아리는 잘 챙깄나? 내 그거 30억짜리라 했제?”
고용인들에겐 미리부터 항아리가 매우 고가의 물건이라고 강조했다.
과연, 건너편의 다른 고용인이 항아리를 부드러운 천에 감싼 채 가져왔다.
“물론입니다.”
“차밭에 간 놈들은 왜 이리 늦나?”
“곧 온답니다.”
10분 정도 흐르자 어제 찻잎을 따러 갔던 어른들이 돌아왔는데, 맨 앞에는 부모님이 계셨다.
이미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는지 두 사람 다 얼굴이 하얗게 변한 상태였다.
곧, 내 아버지이자 증조할아버지의 손자인 한민석 씨가 내 앞에 달려와 무릎 꿇었다.
“할아버지! 이, 이상한 말을 들었습니다!”
“무슨 말을 들었는데?”
“가, 가인이가 할아버지 창고에서 물건을 훔쳐서 도망갔다고….”
“그래, 그 말 들으니 무슨 생각이 들었나?”
애초에 이 시골 한옥에 이 많은 사람이 모인 이유가 무엇인가?
오늘내일하는 1,000억 자산가의 눈에 들어 유산을 한 푼이라도 더 받고 싶어서다.
그런데, 어린 아들이 자산가가 아끼는 항아리를 훔쳐서 도망가다가 잡혔네?
아버지는 농담이 아니라 툭 건드리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셔서 보는 나를 당황하게 했다.
“할아버지…. 죄, 죄송합니다. 가인이가…. 대체 왜 그런 짓을….”
“그르게 말이다. 원래 그 아가 참 똘똘하고 착했는데….”
난 어릴 때 똘똘하고 착했어.
“갑자기 왜 이랬을까? 나도 이게 뭔 소린가 싶지마는…. 보라, 이리 증인이 많다.”
주변의 고용인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들로선 창고에 있던 항아리를 들고 도망가던 소년을 두 눈으로 봤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때, 근처에 있던 친척 정호 아저씨가 슬쩍 끼어들었다.
“하~ 요, 요 버르장머리 없는 눈 봐라? 도둑놈 주제에 왜 이리 뻔뻔해? 할아버님, 원래 애를 보면 그 부모를 알 수 있는 법 아닙니까?”
“…”
“가인이 심성이 이렇게 뒤틀린 이유가 뭐겠습니까? 보나 마나 민석이 저놈이 -”
“으흠!”
아무리 유산 앞에서 다들 경쟁자인 상황이라지만, 내 심성이 뒤틀렸다니까 아주 불쾌하다.
난 어릴 때 똘똘하고 착했다니까?
“정호 이놈아! 가인이가 이 모양인 게 민석이 때문이면, 민석이가 저 모양인 건 그 애비 때문이고, 그놈이 이상한 건 나 때문이다. 그 소리냐?”
“네? 네? 아, 아닙니다!”
“너는 저 가서 정원 관리나 하고 있으라!”
“…”
“안 가나?”
“가, 갑니다!”
시답잖은 말을 지껄이는 친척을 정원으로 보낸 후, 다시 무릎 꿇은 아버지를 보았다.
“할아버지….”
“민슥아. 일단 니가 가인이 고것을 잘 타이르고, 아가 얌전해졌다 싶으면 보내라.”
“아, 알겠습니다.”
즉시 아버지가 눈에서 레이저라도 쏠 기세로 한민상을 노려보았다.
70년 만에 항아리에서 나온 악령에게 기다리는 첫 번째 스케줄.
그것은 바로 사랑의 매다.
*
— 착! 착!
“아악!”
“한가인 이 자식! 조용히 안 해!”
“네, 네가 뭔데 날 이렇게 -”
“이 새끼가 아직 덜 맞았나!”
— 착!
“으악! 아, 아빠….”
“입 다물어! 이 미친놈!”
— 착!
“으앙!”
“여보.”
“말리지 마! 도둑질은 처음 했을 때 크게 혼내야! -”
“아니, 회초리 부러졌다고. 새것 가져다줄 테니 제대로 혼내고 있어.”
엄마는 생각보다 무서운 분이셨네.
어쨌든, 밖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회초리 소리와 어느새 고분고분하게 변한 한민상의 말소리를 듣다 보니 실실 웃음이 나왔다.
따지고 보면 회초리를 맞는 건 내 몸인데 왜 이렇게 재밌지?
내가 아프지 않아서 그런가?
“히야…! 역시 버르장머리 없는 놈에겐 매가 약이다. 그렇지 않나?”
“하하하…. 가인이도 이번에 혼나면서 많이 배울 겁니다.”
눈앞의 남자, 박 변호사는 오랜 세월 증조할아버지를 모셔 왔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고용인들과 달리 증조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관리국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 괴이한 일이 있어 관리국에 연락해야겠어.”
미래 시점에서 볼 때, 1,000억대 자산은 어디론가 증발했고 친척들은 이 사실에 의문 가지지 않았으며 항아리와 관련된 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식의 뒷정리가 가능한 집단은 관리국뿐이다.
“어르신, 아시다시피 관리국은 공식 신고 채널 및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은밀하게, 그리고 융통성 있게 처리하고 싶구나.”
“…”
“무슨 말인지 알제?”
“융통성 있게라…. 어르신, 그러면 KD에게 연락할까요?”
KD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증조할아버지가 사적으로 알고 있는 관리국 사람이겠지.
“그 부분은 자네 알아서 하고.”
“날짜는 어떻게 할까요?”
“내일이나 모래면 충분하겠지.”
“알겠습니다.”
박 변호사가 공손히 머리를 숙인 후 바쁜 걸음으로 나갔다.
항아리는 내 손에 들어왔고, 한민상은 여러 사람의 감시하에 회초리를 맞고 있으며, 뒷정리를 담당할 관리국도 불렀다.
이제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았다.
나는 내 몸을 되찾아야 한다.
*
점심 무렵, 고용인들이 파들거리는 한민상을 데리고 내 방에 들어왔다.
“어르신, 가인이를 데려왔습니다.”
한민상의 얼굴을 보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킬킬킬! 손자야! 니 울었나?”
“… 너 이 자식이 -”
“어어? 이거 말버릇이 왜 이러제? 매운맛을 덜 봤나?”
“…”
“승찬아! 대나무 회초리를 -”
“하,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민상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공손히 무릎 꿇었는데, 다리가 접히자 종아리 쪽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이고야…. 피는 또 뭐이가? 아부지가 많이 때맀나?”
“…”
“아프겄다! 아프겄다! 이거 큰일이네.”
진짜 큰일인데?
이거 결국 내 종아리잖아!
“그니까 도둑질하지 말고 착하게 살았어야지.”
“… 대체.”
“대체?”
“대체 당신의 목적이 -”
“당신?”
“하, 할아버지가 바라시는 게 뭔가요?”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인가?
나는 1,000억 갑부다.
수명이 많이 남지 않은 노인의 몸에 깃든 사람이다.
그러므로 하늘 아래 두려울 게 없는 사람인데, 지금 이 새끼 때문에 좀 화가 났다.
“거, 승찬아.”
“예, 어르신.”
“들어보니 느 예전에 군대에서 조교 이런 것 했다믄서?”
“그렇습니다.”
“내 무슨 말 하려는 지 알제?”
고용인이 의기에 찬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서 가장 착한 아이로 만들겠습니다.”
“내 증손자라 생각하지 말고, 버르장머리 없는 놈의 썩어빠진 마음을 뿌리부터 고친다, 그리 생각하라.”
“명심하겠습니다.”
곧, 앞에서 다시 곡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엎드려!”
“하, 할아버지, 제발 -”
“엎드리라고 했잖아!”
“으아악!”
누군가 내 몸을 차지한 채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는 광경을 보고 있으니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저게 결국 내 몸이 고생한다 생각하니 어딘가 꺼림칙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굉장히 통쾌했음을 인정한다.
한민상의 곡소리를 음악처럼 들으며 명령했다.
“항아리 가져오라.”
“예? 아, 알겠습니다.”
몸을 빼앗긴 내가 역전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이름표 뺏기 게임’에 반복 시행 금지 따위의 규칙은 없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증조할아버지가 알아낸 규칙에도 그런 것은 없었고, 애초에 그런 제한이 있을 이유가 없다.
항아리는 사악한 의도로 만들어진 인신공양 마도구다.
제물을 바치지 않는다면 그건 문제 삼겠지만, 제물을 자주 바친다고 문제삼을 이유가 있겠는가?
숨을 거칠게 헐떡이는 한민상을 내려다본다.
“손자야.”
“흐어억…. 허억….”
“이제 좀 착해졌네?”
“…”
절망이 깃든 소년의 눈을 보고 있으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동시에, 쩌릿한 긴장감이 늙은 몸을 타고 올라왔다.
아직 마지막 변수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 딸칵!
항아리에는 ‘진짜 한진성’이 담겨있으며 그가 이번 게임의 술래다.
나는, 증조할아버지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손주야. 할애비랑 게임 한 판 더 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