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33)
EP.433 433화 – 뼈대 있는 가문 (9) Fin
433화 – 뼈대 있는 가문 (9) Fin
– 한가인
항아리의 뚜껑을 만지며 생각했다.
이번 일의 마지막 변수이자 두 번째 게임의 술래.
항아리에 갇힌 증조할아버지, 진짜 한진성의 영혼.
“…”
그는 어떤 사람인가?
반복되는 꿈, 나와 함께 여러 번 나락으로 떨어진 증조할아버지를 경험하며 깨달았다.
제정신인 한진성은 결코 사악한 인간은 아니었으며, 다소 심술 맞을 뿐이지 자손을 아끼는 선량한 노인에 가까웠다.
애초에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을 바친 관리국도 근본적으로는 세상을 지키는 집단이니까.
— 끼익!
항아리가 열리는 순간, 갑자기 생겨난 이름표를 본 고용인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헛! 이, 이건 뭡니까?”
“이름표 같은데? 어르신! 괜찮으십니까?”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모두를 진정시켰다.
“거 진정들 하라! 이 항아리가 본디 신령한 물건이니, 놀랄 일이 아니다. 승찬아!”
“예!”
“가인이는 잘 붙잡고 있제?”
“꼼짝도 못 합니다.”
반나절 동안 거친 체벌과 얼차려에 당한 한민상은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그는 게임이 다시 시작했음을 알면서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만 살짝 든 채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을 뿐.
“…”
저놈이 내 몸을 차지한 채 저러고 있으니 뭔가 복잡미묘한 생각이 든다.
— 툭!
가슴에 붙어있는 [한민상] 이름표를 떼어내자 내 몸이 전기가 끊어진 기계처럼 바닥에 축 늘어졌다.
“…”
이제 내 가슴에 나타난 [한가인] 이름표를 고용인 시켜서 내 원래 몸으로 옮기면 끝난다.
“다들 내 말 들리제?”
“예!”
“네!”
“별일 아니니께 걱정하지 말고 옆 방으로 가라. 집 밖으로 나갈 수는 없을 테니 헛수고들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고용인들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 지시대로 옆 방으로 떠났다.
이제 이 방엔 나, 항아리, 바닥에 쓰러진 내 몸과 내 손에 들린 한민상의 이름표만 남았다.
“이만 나오라. 아니, 나와보시죠.”
…
“할아버지, 사람도 다 치웠습니다. 동생 분은 이름표만 제 손에 잡혀 있습니다.”
…
“말 없으시면 동생 분 이름표 항아리에 도로 넣고 닫습니다?”
증조할아버지와 대화하기 시작하자 내 말투가 빠른 속도로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곧 가래 끓는 소음과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기야…. 잠깐만 멈춰보라.”
“…”
“내 말 들으라.”
“멈췄습니다.”
어느새 허공에 희뿌연 연기 같은 형체가 나타났다.
육신을 잃었으면서도 항아리의 마력 때문에 망자의 세계로 떠나지 못한 증조할아버지의 영혼이다.
“고맙다. 내, 항아리에 을매나 있었나?”
“어제저녁에 갇히셨죠. 한 16시간 정도 됐습니다.”
“겨우 그 정도구나…. 고작 16시간 갇혀있었는데 이리 춥고 가혹하구나….”
“…”
“민상이, 내 동생은 참말 가엾은 아이다.”
그 말 자체는 부정할 생각 없다.
“할아버지, 질문이 있으니 솔직히 대답해 주세요.”
“그러마. 일이 이 꼴이 되었는데 내게 무신 비밀이 있겠나.”
현재 진행 중인 두 번째 게임은 누가 시작했는가?
바로 나다.
항아리 밖에 있는 내가 항아리를 가져와서 뚜껑을 열자 두 번째 게임이 시작됐다.
이 점을 인지하면 자연스레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첫 번째 게임은 대체 누가 시작했지?
항아리 속의 한민상?
“아무리 생각해도 항아리 속에 갇힌 제물이 자기 힘으로 항아리에서 탈출할 수는 없을 것 같거든요? 그게 가능했다면 한민상이 왜 수십 년을 갇혀있었겠습니까?”
“…”
“누가 항아리를 가져와서 풀어준 거죠.”
“…”
“가능한 사람이 할아버지뿐입니다. 왜 풀어주셨습니까?”
첫 번째 게임을 시작한 사람은 증조할아버지다.
이 사실을 내가 지적했을 때, 부유하는 희뿌연 연기가 갑자기 뒤틀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 비슷한 장소에 있던 시커먼 눈구멍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자 자연스레 깨달았다.
지금, 증조할아버지는 영혼 상태로 울고 있었다.
“… 할아버지.”
돌이켜보면, 할아버지가 첫 번째 게임을 시작했다는 증거가 대놓고 있었다.
그는 항아리의 존재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자 첫 번째 게임이 시작할 때마다 항아리 옆에 쓰러져 있었으니까.
“왜 그러셨습니까?”
항아리에 갇혀서 고통받은 동생이 불쌍해서?
여기까진 같은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 심리인데, 그다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굳이 본인의 어린 자손들이 모여있을 때 풀어줬지?
“돌아가실 때가 되니 동생이 불쌍하셨나요? 본인이 죽고 나면 아무도 풀어주지 않을까 봐?”
“애기야….”
“그런데 왜 굳이 이 집에서, 우리가 모여있을 때 풀어주셨습니까?”
그때, 노인의 허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참 똘똘한 아이다마는, 이 할애비에 대해 한 가지 오해했구나.”
“그게 뭡니까?”
“나는 동생을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생각해보라! 민상이가 내 착한 동생이던 건 70년 전 일 아이가?”
“그렇죠.”
“네가 민상이를 눌렀으니 나보다 더 잘 알것제. 이 아이가 어떤 존재로 보이나?”
“… 사악한 악령이요, 마귀입니다. 세상에 있어선 안 되는 존재입니다.”
“내는 관리국에서 수십 년을 일했다. 그걸 모르겠나?”
증조할아버지는 관리국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이다.
설령 선량한 인간이라 해도, 이런 사악한 마도구에 휩쓸려 수십 년에 거쳐 뒤틀리고 나면 악독함만 남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나는…. 항아리를 부술라 했다.”
“…”
“항아리를 부수고! 동생은 고마 풀어주고! 관리국에 연락해서 재산을 가져가라 할 생각이었다.”
순간 감탄이 나왔다.
할아버지가 하려고 했던 일이 내가 세운 계획과 완전히 똑같았기 때문이다.
항아리를 부수면서도 자손들이 저주를 피할 방법은 내가 봐도 재산을 관리국이 가져가는 것뿐이다.
“그라믄 느그는 아무 일 없이 잘 살았을 테지.”
“그렇다고 해도 할아버지는 저주를 받으실 겁니다.”
항아리를 부순 후, 관리국이 1,000억 넘는 재산을 전부 가져간다면 자손들은 해방될지 모르나, 증조할아버지는 그런 식으로 벗어날 수 없다.
이미 항아리가 만든 재산을 잔뜩 쓰시며 살아오셨으니까.
“그기 뭐가 두렵나? 팔자에도 없는 복락을 수십 년 누렸으니 고마 죽으면 될 일이제!”
“어쩌다가 실패하신 겁니까?”
“… 악마가 내 손을 붙잡더구나.”
악마?
항아리 속의 한민상의 모종의 수를 썼다? 그런 게 가능한가?
“느 눈만 봐도 알겠다. 민상이가 날 방해했나 생각중이제?”
“아닙니까?”
“아니지. 민상이랑 비교도 할 수 없는 진짜 악마가 따로 있었다야.”
할아버지가 항아리를 깨트리지 못하게 한 진짜 악마.
희뿌연 안개가 팔을 뻗는 듯한 동작과 함께 사방을 가리켰다.
“니, 이 집이 얼만지 아나?”
“…”
“느그 애비가 찻잎 따고 있는 녹차밭 가치는 아나?”
“…”
“강남의 세륙 빌딩 시세가 지금 220억이다.”
“…”
“손자야. 느, 돈이 많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니?”
“할아버지….”
“너는 이 조선 땅이 정말 평등하다고 생각하니?”
“…”
“그럴 리가! 엄연히 위아래가 있고, 나는 평생을 위에서 살았다. 그거이 내 복이었제.”
증조할아버지는 흥분한 목소리로 1,000억이 넘는 돈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설명했다.
“이 모든 것을…. 관리국에 넘긴다. 그리 생각하니 내 손이 다 떨리더라. 내가 평생을 누린 복락을…. 너희에게 노나줄 수 없다는 소리 아니냐.”
“그래서 항아리를 깨지 못하신 겁니까?”
“깰라고 했는데, 갑자기 이 한옥이 눈에 들어오면서 손에 힘이 빠졌다. 그래서 어어어 하다 보니 뚜껑만 열리고 말았지 뭐냐?”
간밤에 벌어진 일의 진상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어처구니없었고, 어떤 의미에선 허무하기까지 했다.
“그런 문제라면, 이젠 됐습니다. 제가 이미 박 변호사를 통해 관리국에 연락했으니까요. 내일이나 모레쯤 사람이 올 겁니다.”
“뭐이? 네가 이미 연락했다고?”
“1,000억이고 지랄이고 저주받은 재산 가져서 뭐 합니까? 다 가져가라고 할 생각이었습니다.”
희뿌연 연기가 파르르 떨리며 맥동했다.
몸이 없는데도 증조할아버지가 얼마나 놀랐는지 느낄 수 있었다.
“너는 대체! 어려서, 어려서 그게 되는 거이가? 1,000억이 어떤 돈인지 모르는기가? 그걸 어찌 그리….”
“…”
“아니다. 내가, 이 할애비가 참으로 못난 놈이었구나! 1,000억이고 자시고 사람 목숨보다 귀한 게 없는데, 어찌 어린 너도 아는 걸 내가 이 나이 먹고도 몰랐을꼬….”
딱히 내가 욕심이 없는 사람인 건 아니다.
이 모든 일이 어차피 과거의 환상에 불과함을 알기에 초연할 뿐.
“이만 제 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 내가 도와주마. 이름표를 떼는 순간 기절할 테니, 옮기기도 어려운 것 아니니.”
“그렇네요.”
…
…
…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다시 잘생기고 똑똑하고 착한 소년의 몸으로 돌아와 있었다.
… 돌아오자마자 비명부터 질렀다.
“으악! 미, 미친 엄청 아프잖아!”
“큭! 조금 전까지 똑똑한 행세는 다 하드만, 회초리 좀 맞은 게 그리 아프나?”
증조할아버지 또한 원래 몸을 되찾은 상태였다.
“진짜 엄청 아프거든요?”
“누굴 탓하겠나? 다 네가 민상이 그 불쌍한 아를 괴롭히느라 생긴 일인데.”
“…”
맞는 말이네.
어느샌가 증조할아버지가 씁쓸한 표정으로 항아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손에는 ‘한민상’의 이름표가 어느새 들려있었다.
“… 할아버지.”
“내 방금 이런 생각이 또 들었다.”
“…”
“민상이 이름표 도로 넣고, 항아리 뚜껑 닫으면 어떻겠나?”
“…”
“나야 곧 죽것지마는, 너희는 한평생 위에서 살다 위에서 죽을 것이니라.”
“…”
“사람이…. 이리 악독하다. 이게 마귀가 아니고 무엇이가?”
“제가 부숴드릴까요?”
“… 역시.”
“예?”
“네가 나보다 낫다.”
“…”
증조할아버지가 음울한 표정을 지으며 두 걸음 물러섰다.
나는 통증을 참으며 항아리로 다가갔다.
“깹니다.”
“묻지 말고 하라. 니가 나보다 낫다고 안 했나.”
옆에 굴러다니던 목침을 들어 올려서 –
— 찰칵!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단단한 손이 내 팔을 잡았다.
“아플 텐데 다시 앉는 게 어때?”
“…”
“어르신, 오랜만입니다.”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친다.
누구지? 고용인은 아니니 외부인인가?
아직 게임이 진행 중이라 주변 공간은 항아리의 마력에 의해 함부로 드나들 수 없을 텐데?
키나 체형은 적절히 단련된 성인 남성 같은데, 어두워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 KD. 가인이 말로는 내일이나 모레 온다고 들었네.”
“빨리 와서 아쉽습니까?”
“그럴리가. 오히려 고맙제.”
박 변호사가 호출한 KD?
그는 할아버지가 사적으로 알고 있다는 관리국 인연이다.
그렇다면, 항아리가 만든 폐쇄공간을 뚫고 들어온 건 그럴 수 있다.
이 사람도 평범한 존재가 아닐 테니까.
“항아리는 제가 가져가지요.”
“본래는 부술 생각이었네만.”
“안에 갇힌 동생 분 영혼을 풀어주기 위해서입니까? 아, 지금은 영혼이 나와 있네.”
“… 자네는 어찌 모르는 게 없는가?”
“한민상 이름표 주시지요.”
할아버지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이름표를 건네자 남자는 주저 없이 이름표를 찢어버렸다.
“어억! 가, 갑자기 -”
“이제 동생 분은 고통에서 해방입니다. 항아리는 챙겨가겠습니다.”
남자는 거리낌 없이 다가가 바닥의 항아리를 집어 들어 뚜껑을 닫았다.
그 순간, 나와 할아버지의 가슴팍에 있던 이름표가 사라졌다.
항아리에 그 어떤 이름표도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게임이 끝났다!
이 순간만큼은 기쁘다기보다 어이가 없었고, 다소 허탈하기까지 했다.
눈앞의 남자는 우리가 고생하며 알아낸 시련의 온갖 규칙을 전부 무시하면서도 아무 문제 없이 사태를 수습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넋 나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재, 재산은 -”
“안타깝습니다만, 이 재산은 상속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아시지요?”
“… 알지.”
“곧 회사에서 사람을 보낼 겁니다. 뒤처리는 깔끔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아무도.
그 누구도 이 남자에게 항아리의 규칙이나 저주받은 재산에 관해 설명해준 적 없다.
그런데도 KD는 이 자리의 그 누구보다도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 축하라고?”
“그럼요. 어르신의 마음을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했던 문제는 이제 끝이잖습니까? 여생은 편안히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내, 내 아이들은….”
“무슨 걱정이 그리 많으십니까? 1,000억 그거 없어도 알아서 다들 잘 삽니다. 여기, 가인이 아버지만 해도 대기업 잘 다니십니다.”
“…”
“축하드립니다.”
“… 고맙네.”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련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어둠 속의 단단한 손이 다시 날 잡았다.
“어?”
“밝은 데서 나랑 이야기 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