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35)
EP.435 435화 – 파티 타임 (6) – 최종회의
435화 – 파티 타임 (6) – 최종회의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379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2]
– 한가인
괴상한 그림 덕에 제대로 쉬지도 못한 컨디션으로 점심 회의에 나왔다.
다른 동료들도 딱히 기분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회의 주제 한 번씩 확인해!”
이 와중에도 누나가 제법 기세 좋게 외쳐서 화이트보드에 적힌 회의 안건을 확인했다.
「206호 대비 회의
1. 가인이의 새로운 유산
2. 미로가 얻은 축복 강화
3. 화가의 보상
4. 영혼의 함과 유미
5. 206호 진행
」
보드에 적힌 내용을 보고 있으니 뭔가 대기업에 취직해 있는 것 같았다.
곧 은솔 부장님에게 보고해야 하는 건가?
재밌게도 우리 중 평범한 회사 생활을 해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은솔 누나도 재벌 집 둘째 딸 포지션이었으니 평범과는 거리가 있을 테니까.
“말 없으면 이 순서대로 할게.”
1번이 내 이야기였기 때문에 주변 사람의 시선이 저절로 내게 모여들었다.
“가인아, 신성한 태양에 대해선 딱히 할 말 없어? 새로운 사용법을 깨달았다던가?”
“없어요.”
얻자마자 화가와 얽혀 기묘한 이벤트를 겪느라 정신없었는데 대체 뭘 깨달아?
은솔 누나가 왜인지 모르겠지만 살짝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넌 시골집 기억에 휩쓸려 있느라 바빴으니까.”
“설령 깨어있어도 비슷했을걸요. 전에 말했지만, 신성한 태양은 충전형인데 지금은 텅 비어있어서.”
“그래?”
그때, 아리가 내게 질문했다.
“충전이라…. 신도들의 신앙심이나 영혼을 넣어야 한다고 했지?”
“그래.”
“여러모로 사용이 까다롭네. 그러면, 206호에서 넌 일단 충전부터 하는 거야?”
“아마도?”
“충전은 할 수 있을까? 알다시피 206호는 시작하자마자 불굴의 이성이 초자연적인 힘을 억누르니까.”
“…”
1번과 관련한 첫 번째 문제가 아리 입에서 튀어나왔다.
신성한 태양은 신도들의 신앙심이나 영혼을 통해 충전해야 작동한다.
즉, 206호에서 난 일종의 종교단체를 세워야 한다.
여기까진 206호의 설정을 고민해보면 어떻게 각이 나올 것 같은데, 다음이 문제다.
설령 세운다 해도 충전할 수 있을까?
분명 충전 자체가 초자연적인 현상일 텐데.
“종교 행사를 낙원 밖에서 한다든가 하면 될 것도 같은데.”
“그 부분을 잘 고민해봐.”
이 정도로 이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했다.
“다음! 미로, 새롭게 얻은 힘은 어때?”
은솔 누나의 시선을 받은 미로가 살짝 웃으며 팔에 단검을 들이대며 다시 한번 초능력을 선보였다.
“다들 봐! 이렇게 하면!”
단검이 피부를 푹 찌르고 들어갔다가 나왔는데 피가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봐도 미로가 축복의 성소에서 이번에 얻은 힘은 제법 신기한 힘이다.
“그쯤 해. 내일 저주의 방 가야 하니까 불변력인지 뭔지 미리 다 써버리지 말고.”
“응.”
아리의 말에 미로가 능력 자랑을 멈췄다.
불변 2단계는 몸에 가해지는 공격을 ‘불변력’이라는 힘이 대신 받아내는 능력이며, 불변력이 남아있는 동안 미로 본인의 몸은 다치지 않는다.
쉽게 표현하면, 게임 등에서 자주 나오는 쉴드와 유사하다.
미로의 능력 자랑이 끝나자 은솔 누나가 질문했다.
“저번에 보여준 것과 비슷하네. 추가적인 사용법 같은 건 깨닫지 못했지?”
“에? 추가적인 뭐?”
“3번으로 넘어가자. 화가의 보상, 그림 두 장. 가인아, 뭐 알아낸 것 있어?”
동료들 보는 앞에서 두 장의 그림을 꺼냈다.
“이거, 조언 하나 써서 그림에 비밀이 있냐고 묻다가 알아냈거든요?”
“벌써 썼어?”
“네. 보라색 문 그림은 제목이 따로 있었습니다. 보세요.”
그림을 뒤집어서 오른쪽 아래를 손가락으로 열심히 비볐다.
곧, 마찰열에 반응한 정체불명의 문자열이 나타났다.
‘Somnium regnum’
“영어는 아닌 것 같은데 아시는 분?”
은솔 누나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누나는 영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어나 스페인어에도 능했는데, 둘 다 아닌 모양이다.
역시 관련 지식이 출중한 아리나 할아버지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의외로 알아본 사람이 나왔다.
“라틴어군요. 앞 단어는 꿈, 뒷 단어는 왕국. 즉 ‘꿈의 왕국’입니다.”
선생님이었다.
화가가 준 두 번째 그림의 제목은 ‘꿈의 왕국’이다.
“라틴어? 아니…. 바티칸도 아닌데 화가는 이런 단어를 헷갈리게 왜 쓰는 거야?”
은솔 누나가 어이없어했는데, 나도 동의한다.
“언니, 바티칸이 뭐죠?”
송이는 바티칸이라는 단어 자체를 알아듣지 못했는데, 좀 특이했다.
바티칸 정도면 뉴스에 자주 나오지 않나?
“바티칸을 몰라? 가톨릭의 수장, 교황은 알지? 교황을 비롯한 추기경들이 밀집한 도시국가인데 -”
“가톨릭에서 교황이나 추기경을 없애지 않았어요?”
“…”
이 시점에서 주변이 조용해졌다.
서로가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왔다는 사실.
이제는 다들 알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당황스러운 순간이다.
“으흠! 바티칸 이야기는 그쯤 합시다. 중요한 건 그림 제목을 알았다는 것이죠. 가인 군, 꿈의 왕국에 대해 더 할 말 있습니까?”
“아, 꿈의 왕국은 살아 움직이는 그림입니다.”
놀랍게도 동료 중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이곳은 호텔, 그림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고 해도 그럴 수 있는 장소다.
“자고 있는데 갑자기 요거, 문이 열리면서 괴물 같은 눈이 나와요. 그게 절 유심히 구경하더군요.”
“이상한 짓을 하진 않았습니까?”
“뭐 하는 놈인가 보려고 나도 같이 노려보니까 갑자기 문을 쾅 닫고 사라지던데요?”
“… 부끄러움이 많은 모양이군요.”
꿈의 왕국에 대해선 딱히 더 할 말이 없었다.
은솔 누나가 확인하는 투로 물었다.
“꿈의 왕국 말고 네 초상화는? 뭐 없었어?”
“이건 화가가 평범한 그림이라고 했었죠. 거짓말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그건 그렇네. 다음 주제로 넘어가자.”
4번, 영혼의 함과 유미.
“승엽아, 요 며칠간 했던 말을 정리해서 해봐.”
아무래도 내가 악몽에 휘말려있는 동안 유미와 관련해서 동료들끼리 의견을 나눈 모양이다.
“에헴! 다들 유미랑 말해보고 느꼈죠? 유미는 착하니깐 -”
다들 말해보고 느껴?
이 말 만큼은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제대로 말해본 기억이 없는데.”
“어? 어? 아, 혀, 형은 화가랑 시간을 보냈으니까….”
“3번 주제의 핵심은 유미에게 몸만들기를 허락해야 하냐 맞지?”
“네.”
“다른 사람들은 다 허락하기로 했어?”
승엽이가 어물거리자 은솔 누나가 간단히 정리했다.
“결국 다 허락했지 뭐. 본인이 워낙 간절히 바라서.”
“으음.”
그때, 아리가 시원시원한 태도로 보온병을 꺼냈다.
여태 아리 근처에 있었기에 보온병 내부의 피와 살점, 머리카락 등은 매우 신선한 상태였다.
“우웨엑!”
보자마자 미로가 역겹다는 반응을 보이고 송이도 살짝 눈살을 찌푸렸으니 확실하다.
“승엽아, 가져가.”
“오! 오오!”
승엽이가 희희낙락하며 아리의 보온병을 챙겼다.
“신체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105호 가서 유미보고 몸 만들라고 해.”
“네~!”
“보온병이 내게 떨어지는 순간부터 신선도 유지 기능 사라지는 것 알지? 바로 출발해.”
“감사합니다.”
승엽이는 거의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회의장을 떴는데, 어딘가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동료들의 반응 또한 예상대로였다.
누나나 아리처럼 생각이 많은 사람은 물론이고, 평소 회의 시간엔 과자만 먹는 송이나 엘레나도 살짝 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제가 없는 사이에 의외의 일이 생긴 것 같은데요.”
다들 조용하다.
“혹시나, 진짜 혹시나 해서 묻는 거거든요?”
누나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냥 대놓고 말해. 혹시 승엽이가 유미를 좋아하는 것 아니냐 그 말 하려고 했지?”
“…”
아리가 가볍게 한숨 쉬었다.
“그리 큰 문제는 아니야.”
“큰 문제가 아니라고?”
“쟤는 원래 밥 먹듯이 사랑에 빠지니까.”
“…”
듣고 보니 또 그렇네.
“내 기억으로 처음에는…. 에헴! 아마 나였지.”
102호에 처음 들어갔던 시기의 이야기다.
그때만 해도 아리와 할아버지는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
모두가 기억하는 일이라 고개를 끄덕였는데, 비교적 최근에 합류한 두 동료 중 한 명이 반응했다.
“에에엑! 스, 승엽이가 아, 아리를 사, 사 -”
미로의 요란스러운 반응에 아리가 한숨 쉬었다.
“시끄럽게 하지 마. 네가 그러니까 더 이상하잖아. 그리고, 그 뒤로도 계속 바뀌었어.”
“뭐?”
“202호? 그 방에서 해신의 막내딸에게도 심상치 않았었는데. 걔 이름 뭐였지?”
내가 답했다.
“리링가노르.”
“맞다. 리링가노르! 걔도 좋아했던 것 같은데, 너희가 보기엔 어때?”
엘레나와 송이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옛말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승엽이에겐 해당 사항 없는 이야기인 모양인데, 참 솔직한 동료다.
그때, 미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202호 할 때 이야기야?”
“응.”
“왜 난 모르는 거야? 걔가 리딩가놀-”
“리링가노르.”
“리린간노? 여하튼 그런 애 이야기하는 거 들은 적이 없는데.”
“쉽게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쉽게 잊으니까.”
“…”
말하다 보니 뭔가 승엽이 없는 자리에서 뒷담화하는 기분이다.
비슷한 생각이 들었는지, 송이가 헛기침하며 승엽이를 감쌌다.
“승엽이는 어리니까요! 원래 어릴 때는 마음이 통통 튀는 거잖아요. 승엽이랑 별개로 유미, 그 애 이야기로 돌아가면, 몸은 결국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계속 의심할 생각이면 애초에 영혼의 함에 담지 말았어야지. 요 며칠 동안 주도권은 우리에게 있다는 점을 그 여자애에게 알려준 셈이야.”
우리는 언제든지 유미의 몸을 빼앗거나 쫓아낼 수 있다.
유미 본인도 이 사실을 지난 며칠간 느꼈으리라.
이미 함에 담았으니 최소한의 믿음은 줘야 한다.
광기에 찬 마녀 같은 짓을 벌이면, 그때 가서 생각할 문제고.
유미에 관한 이야기가 끝날 무렵, 미로가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나, 몬가 기분이 나빠.”
아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왜?”
“그 애는 처음엔 널 좋아했었다며?”
“…”
“다음엔, 그, 리딩딩노리?”
“… 응.”
“근데 왜 나한테는 아무 반응 없어? 나랑 아리는 완전 닮았는데!”
기가 막힌 이야기에 순간 말문을 잃었다.
미로가 이런 황당한 생각을 하는 것과 그 생각을 주저 없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중 뭐가 더 괴상한 일일까?
아리가 한없이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제발…. 엄마에 대한 내 아름다운 추억을 망가트리지 말아줘.”
“뭐?”
“에잇!”
“흐아앙!”
“이상한 소리 내지 마!”
아리는 참지 못하고 미로를 쥐어박았다.
왜 승엽이가 미로에겐 반응하지 않는지 알 것 같았다.
“… 조용히 해. 이제 206호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
…
…
회의가 끝날 무렵, 남아있던 두 개의 조언 역시 다 사라졌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379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 – ‘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회의가 끝나고 개인 방으로 돌아왔다.
206호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에 관한 동료들의 의견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마음 편하게 먹자.
다른 사람들과 별개로, 내가 할 일은 꽤 명확하니까.
“…”
침대에 앉아서 벽을 보자 벌써 익숙하게 느껴지는 내 흑백 초상화가 보였다.
화가가 한 5분 만에 그렸던 것 같은데, 그런 것 치고는 꽤 잘 그렸지.
문득,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림을 뒤집었다.
‘꿈의 왕국’이 그러했듯이 흑백 초상화 또한 뒷면은 그냥 거칠고 단단한 종이였다.
— 사사삭!
비볐다.
왼쪽 위부터 오른쪽 아래까지, 여기저기 마구 비볐다.
그리고….
이번에는 라틴어 대신 내가 아는 언어가 나왔다.
‘지옥에서 너 자신을 구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