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36)
EP.436 436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1)
436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1)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낙원의 평화로운 오후.
2급 시민, 이은솔 이사관은 상체가 가려질 정도로 높이 쌓여있는 서류와 씨름 중이었다.
— 똑똑!
“이사관님, 오늘 저녁 회의 안건이 -”
“나가.”
“긴 이야기는 아닌 – 으앗!”
“바쁘다고 했잖아!”
“죄, 죄송합니다.”
제임스 서기는 ‘감히’ 이사관의 업무를 방해한 죄로 딱딱한 서류가 종이비행기처럼 날아와 머리를 강타하는 진기한 경험을 해야 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주변 사람들은 오늘따라 이은솔 이사관의 심기가 매우 불편한 것 같으니 건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은솔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지금 그녀가 처리 중인 업무는 ‘쓸데없는’ 낙원 서류 업무 따위보다 훨씬 중요했고, 무척 은밀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곧 시작할 계획에서 동료들이 체스의 말이라면, 은솔은 그 말을 배치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경질적인 상사를 연기해서라도 주변에 사람이 오지 못하게 해야 했다.
‘상현 씨 일정 조정이 생각보다 까다롭네….’
잠시 의자를 뒤로 젖힌 채 은솔은 계획에 대해 생각했다.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의 두 번째 시도는 어떻게 진행해야 할까?
206호의 기본 배경은 ‘낙원’이라는 디스토피아적인 도시 국가다.
모든 시민은 왕족에 준하는 1급부터 노예나 다름없는 4급으로 분류된다.
도시 지하에는 ‘마왕’이라는 끔찍한 존재가 봉인되어있고, 이것을 ‘불굴의 이성’이라는 206호의 유산으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억누르고 있다.
‘불굴의 이성’은 주기적으로 인간을 희생시켜야 작동하는 끔찍한 물건이며, 이것을 관리하는 존재가 도시의 독재자인 시장, 레온 카디로프이다.
‘여기까진 일반적인 배경이고.’
첫 번째 시도에서 호텔파티는 무엇을 알아냈는가?
여러 가지 정보가 은솔의 머리를 스쳤다.
봉인 당한 멤버는 미로이며, 시나리오 내적인 정체는 알아내지 못했다.
불굴의 이성을 작동시키기 위한 인신 공양이 멈추면 마왕이 부활한다.
‘이것도 의미 있지만, 다음 정보들이 정말 가치 있는 정보지.’
낙원 바깥세상은 멀쩡하며, 다른 도시가 존재한다.
‘다른 도시에도 가봐야 할까?’
마왕이 완벽히 부활하면 절대로 막을 수 없다.
그러나, 부활 초기 단계에선 마왕을 잠깐이라도 억누를 수 있다면 불굴의 이성과 원 모어 찬스를 동시에 써서 탈출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까다로운 조건은 ‘깨어난 마왕을 잠깐이라도 누르는 힘’의 확보인데, 강림이 사라진 현시점에선 쉽지 않은 이야기다.
당황스러운 정보도 떠올랐다.
206호에서 페로의 위치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 페로 본인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송이에게 설명하지 못했다.
‘201호 때처럼 페로의 위치 자체가 떡밥인가?’
정보를 정리하던 중, 은솔은 크게 한숨 쉬었다.
분명 첫 번째 시도 때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여전히 모르는 게 너무 많고 해결을 위한 길은 어둡기만 하다.
그러니까 정보를 더 얻어내야 한다.
다행히 206호의 비밀을 품고 있는 존재들의 정체와 위치까지는 알아냈다.
시장 레온 카디로프, 그는 부유 저택과 도시 내 업무실을 왔다 갔다 하며 생활한다.
시조 메이, 그녀는 승엽이의 시작 지점인 보육원에서 신분을 감춘 채 머무르고 있다.
— 똑똑!
“그, 이사관님!”
“…”
“저녁 회의 기억하시죠? 요번에 시장님이 – 으악! 나, 나갑니다!”
다시 한번 방해하는 직원을 쫓아낸 후, 은솔은 차근차근 계획을 가다듬었다.
시조 메이는 모두가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낙원에서 마음껏 초능력을 쓰는 존재다.
그녀보다는 시장을 공략하는 게 그나마 수월하다.
문제는 레온 카디로프를 요리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는 것.
이 때문에 은솔과 동료들은 전날 밤 정신이 혼미해질 때까지 온갖 계획을 만들어야 했다.
“됐다!”
— 똑똑!
“이사관님, 저녁 -”
“응~! 지금 나가!”
“가, 감사합니다! 또 맞을 줄 알았네….”
“…”
*
부유 저택의 저녁 시간, 부드러운 안심 스테이크를 바라보던 1급 시민, 송이 카디로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빠.”
“음? 할 말 있니?”
자상하게 웃는 레온 카디로프를 보자 송이는 살짝 가슴이 아려왔다.
이 부성애는 ‘사랑받는 자’가 만들어낸 거짓된 감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요즘 어디 아프세요?”
“뭐? 하하! 공주님이 또 나를 걱정하는 -”
“아빠, 진지하게 하는 말이에요. 혈색도 안 좋고, 잠깐씩 어지럼증도 있으신 것 같고….”
딸의 난데없는 말에 레온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그랬다고? 으음, 송이가 잘못 본 게 아닐까?”
“아빠. 제가 이런 문제로 거짓말이라도 하겠어요?”
“아, 아니 거짓말이라는 게 아니라….”
결국, 송이는 도시를 지배하는 레온 카디로프의 숨 가쁜 일정 상당수를 취소하고 ‘종합건강검진’을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레온 카디로프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계급이 낮은 자는 사회에 불만이 많을 테니 의심하고, 계급이 높은 자는 욕심이 많을 테니 의심한다.
시장의 경호를 담당하는 고등 인포서들 또한 온전한 신뢰의 대상은 아니며, 신뢰 대상은 원 모어 찬스와 송이 카디로프뿐이다.
이 때문에 시장은 결코 낙원 내의 평범한 병원을 가지 않았다.
마취당한 채 신뢰할 수 없는 의사 따위에게 목숨을 맡기는 일은 그의 취향이 아니었고, 번화한 병원에선 그의 경호원들도 운신이 자유롭지 못했으니까.
무엇보다 낙원 내에선 불굴의 이성 때문에 원 모어 찬스를 쓸 수 없다.
그러나 시장 또한 인간인 이상 건강 검진이나 치료는 받아야 한다.
그래서 레온 카디로프는 의사와 관련 장비 상당수를 부유 저택으로 가져오는 쪽을 선호했다.
시장이기에, 도시의 지배자이기에 가능한 호사다.
그리고 호텔파티가 노리는 ‘약점’이기도 했다.
부유 저택에서 호텔파티는 다시금 초인이 된다.
*
시장의 건강 검진은 반나절 동안 이어졌다.
덕분에 도시의 일류 의사들이 섬세한 의료기기와 함께 부유 저택을 반복해서 들락거렸고, 경호원들 또한 신경이 곤두섰다.
저녁 무렵, 이번에도 주사기와 다채로운 호스가 꽂혀있는 의료기기를 끌며 의사 한 명이 나타났다.
“이름!”
“김상현입니다.”
“음? 김상현? 리스트에 적힌 의사와 다른데?”
“아, 에이드리언이 어제 업무 중 허리가 다쳐서 제가 대신 왔습니다. 여기, 제 신분증명서입니다.”
신분증명서를 내미는 김상현의 태도는 당당했다.
문서 그 어디에도 거짓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면 에이드리언의 허리를 김상현이 몰래 두들겼다 정도인데, 에이드리언 본인도 범인을 모르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화려한 경력을 본 인포서가 감탄했다.
이 또한 김상현이 살면서 수 없이 보아온 반응이다.
“경력이 화려하신데?”
“살다 보니 그리되었습니다.”
“좋아. 당신은 문제없고. 이 사람은?”
경호원의 눈이 옆으로 향하는 순간, 김상현의 뺨에 식은땀이 맺혔다.
이 자리에 김상현이 오는 일은 이은솔의 도움 없이도 쉬웠다.
호텔은 애초부터 그에게 2급 시민이자 특수 요원이라는 역할을 주었기 때문이다.
특수 요원을 아무나 시키겠는가?
김상현의 신분은 206호 내부에선 이미 검증된 상태다.
문제는 그 옆 사람이다.
“조수, 유미 양입니다. 3급 시민이며 -”
“이름을 묻는 게 아니라 신분증명서를 내밀라는 말이야.”
“예? 유미 양의 증명서는 1층에서 인포서분들이 가져가셨습니다만….”
“무슨 소리야? 이봐!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206호에 유미의 정상적인 신분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이은솔 이사관이 온갖 눈속임을 해놔서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결국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건 1층의 동료들이다.
“제, 제 말이 거짓 같으면 1층에 연락해보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 말에 경호원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1차 검문을 담당했던 낙원의 인포서들, ‘차진철’과 ‘김묵성’에게 연락했다.
…
…
…
잠시 후, 연락을 끝낸 고등 인포서들이 불평하며 돌아왔다.
“허 참. 확인은 했는데, 원래 신분증명서는 우리 쪽에서 최종 확인을 해야 하는데.”
“그렇습니까?”
“하…. 김묵성 이 새끼, 나이도 처먹은 놈이 이런 실수를 해? 차진철 그 새끼야 원래 저능한 놈이긴 했지만! 이래서 3급 놈들은 안 된다니까?”
이 순간, 김상현은 그저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은솔이 심혈을 기울여 배치한 1층의 동료들이 멍청이 흉내를 제법 잘 낸 모양이다.
“다시 1층에 다녀올까요?”
“… 됐다. 시장님 시간 낭비도 적당히 해야지. 들어가쇼.”
간이 진료실로 변한 부유 저택 내부엔 지친 표정의 시장과 삼엄한 기세를 드러내는 경호원이 함께 있었다.
김상현과 유미는 훌륭한 의사와 간호사처럼 레온 카디로프의 건강 상태를 세심히 점검했다.
두 사람 다 여러 가지 의미로 진짜 의료전문가였기에 흉내는 어렵지 않았다.
중간중간, 유미는 상현의 눈치를 보며 ‘언제 신호하는지’ 확인했다.
… 상현은 진료가 끝날 때까지 신호하지 않았다.
“끝났습니다.”
상현이 검진 종료를 선언하자 유미는 순간적으로 표정이 무너질 뻔했다.
아직 ‘작업’을 하지 않았는데 이게 대체 무슨 짓이란 말인가!
유미가 당황하거나 말거나 상현은 피로한 표정의 시장과 인포서들에게 가볍게 눈인사한 후, 부유 저택을 나섰다.
…
“다, 당신 뭐야? 미쳤어? 계획을 -”
“조용.”
“아니 -”
“아직 인포서들이 근처에 있어.”
“…”
“유미 양, 저녁에 다 설명하겠습니다. 저쪽에 승엽 군이 보이는군요. 돌아가십시오.”
“… 알겠어.”
*
저녁 무렵, 낙원 최고의 인기 배우인 엘레나의 넓은 집에 여러 사람이 모였다.
이은솔, 엘레나, 김상현 여기에 쓴웃음을 짓는 차진철이 박승엽을 데리고 나타났다.
은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철아? 왜 너랑 승엽이만 왔어? 할아버님은?”
“경호 쪽에서 실수했다는 이유로 징계받고 갇혀가지고….”
차진철과 김묵성은 신분이 불분명한 유미가 시장 앞까지 갈 수 있도록 빈틈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묵성이 책임지게 되었다.
“아으…. 어쩔 수 없네. 우선 다들 수고했어! 상현 씨, 일은 어떻게 됐어요?”
“사흘 내로 시장에게 연락이 갈 겁니다. 경동맥협착증, 허혈성 심질환, 관상동맥질환 등 -”
“OK! 레온에게 당신은 얼마 안 가 죽을 수 있다는 연락이 간다 그 소리지?”
“비슷합니다.”
일이 잘 풀렸음을 깨달은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곧, 은솔이 싱글벙글 웃으며 계획의 목적과 현 상황에 대해 모두의 앞에서 브리핑했다.
“어제 이야기했던 내용이지만, 한 번 더 정리할게. 206호에서 우리가 처한 문제는 정보 부족이야. 낙원이 만들어진 목적은 뭘까? 바깥의 또 다른 도시는 대체? 마왕의 부활은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어? 등 의문이 많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의문의 상당수는 시장, 레온 카디로프와 시조, 메이가 그 답을 알고 있을 거야. 둘 중 적어도 한 명은 우리가 털어봐야 해.”
차진철이 그 말을 받았다.
“어제 말해보니 메이 고 여자를 파헤치는 건 어렵겠더구먼요.”
“시조는 불굴의 이성을 무시하고 온갖 초능력을 부리니까. 여러모로 어려워. 그래서 시장부터 털어보기로 했어. 문제는 시장 쪽도 만만치 않다는 거야.”
모두가 지난 회차의 일을 되새겼다.
광산 노동자가 주축이 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자 시장은 원 모어 찬스로 시간을 돌렸고, 악독하게 가인을 죽이려 들었다.
결국 가인, 아리 등은 살기 위해서 시장을 죽였고, 시장을 죽였더니 불굴의 이성 유지에 문제가 생겨 마왕이 부활하고 말았다.
“시장을 몰아붙이면, 그는 시간을 돌려서 상황을 해결해.”
그러므로 호텔파티는 유미의 힘으로 시장을 시한부 인생으로 만들었다.
전 회차에서 송이가 확인했듯이 원 모어 찬스는 필요하다면 사용자의 시간도 돌릴 수 있다.
그러나 전 회차에서 한가인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원 모어 찬스로 돌릴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한 달 내외다.
지병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해에 걸쳐서 쌓인 것이니, 시간을 한 달 정도 뒤로 돌린다 해서 해결할 수 없다.
보통은, 자연스럽게 생긴 질병은 그러하다.
시장은 자신의 병을 유미가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시장은 본인의 지병을 원 모어 찬스로도 해결할 수 없다고 믿을 거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카디로프 가문은 대대로 특별한 힘 혹은 물건을 계승해왔다.
시장에겐 본인처럼 ‘특별한 물건’을 계승 중인 딸이 있었다.
이은솔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후계자에게 모든 걸 물려줄 준비를 하지 않을까?”
후계자에게 물려줄 ‘모든 것’에는 당연히 카디로프 가문이 계승해온 비밀이 포함된다.
*
은솔의 브리핑이 끝날 무렵, 어느새 승엽 옆에 나타나 앉아있던 유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잠깐.”
“응?”
“이은솔. 당신이 세운 계획에서 심각한 문제가 하나 생겼어.”
심각한 문제라는 말에 은솔이 크게 당황했다.
“어? 문제? 뭔데?”
“난 시장의 몸에 손가락 하나 대지 못했어.”
“뭐라고? 아, 아니!”
계획대로라면, 초능력을 쓸 수 있는 부유 저택에서 유미가 사특한 힘으로 시장을 시한부로 만들었어야 한다.
“아니, 상현 씨가 신호하는 대로 몰래 손을 쓰라고 했 -”
“신호를 안 하던데?”
“뭐?”
“잊지 마. 난 조수 역할이었어. 의사가 신호하지 않으면 뭔지도 모르겠는 기계 옆에 있어야 했다고.”
모두가 당황하며 김상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자리의 유일한 ‘의사’가 일어섰다.
“손을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혼란에 빠진 동료들에게 김상현이 담담히 선언했다.
“레온 카디로프는 정말로 시한부입니다. 유미 양이 공연히 손댈 필요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