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37)
EP.437 437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2)
437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2)
– 유송이
“오늘 오리 콩피가 아주 맛있구나.”
“그러게요. 요리사 실력이 점점 좋아지시는 것 같아요.”
그냥 하는 말이야.
이게 오리 콩피인지 수비드인지 구이인지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고기 한 점, 샐러드 한입, 물 한 모금 먹을 때마다 레온의 안색을 살폈다.
결국 레온이 어색하게 웃었다.
“송이야, 내 얼굴이 제법 잘생기긴 했지만, 너무 열심히 보고 있으니 부담스럽구나.”
그냥 대놓고 묻는 게 낫겠어.
어차피 아빠와 딸 사이잖아?
“검진 결과 왔죠? 아까 비서가 봉투를 전달하는 것 봤어요.”
“하하하! 그게 그렇게 걱정스러웠니?”
“별일 없었나요?”
“너도 참! 며칠 전에 이미 건강하다고 했잖니? 걱정하지 말고 식사에나 집중하거라.”
“… 네.”
이게 무슨 의미야?
혹시 유미가 실패한 거야?
낙원에서 대화창을 쓸 수 없다 보니, 동료들로부터 소식을 듣지 못했어.
아니면, ‘사랑’ 때문에 내가 걱정할까 봐 숨기는 건가?
이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지며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죄책감이 느껴졌다.
시장은, 레온 카디로프는 날 사랑한다.
물론 내 축복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지만.
나는 어떨까?
레온을 진짜 아빠처럼 여기며 사랑한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어.
정말 그랬다면 동료들과 함께 시장을 시한부로 만드는 계획을 짜지도 않았겠지.
“괜찮니?”
“그럼요. 아빠가 건강하다니 저도 기뻐요.”
“하하! 송이 너는 가끔 낯부끄러운 말을 대놓고 하는구나.”
“… 잘 먹었습니다.”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내 방으로 돌아갔다.
*
“아가씨.”
“…”
“아가씨!”
“아.”
늦은 밤, 오랜 세월 가문을 모셔 온 저택의 고용인이 찾아왔다.
“레온 님께서 찾으십니다.”
“곧 가요.”
황급히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레온의 침실로 향했다.
그는 어딘가 복잡한 표정을 지은 채 소파에 기대있었는데, 탁자에는 반쯤 비어있는 와인 병이 있었다.
“아빠?”
레온은 정신을 흐리게 만든다는 이유로 술을 잘 마시지 않는 사람이다.
“…”
“아빠?”
“송이와 긴히 할 말이 있으니 다들 나가보게.”
“알겠습니다.”
레온은 고용인을 내보낸 후, 내게 다가오라며 손짓했다.
침묵 끝에 입을 연 그의 첫 마디는 사과였다.
“미안하다.”
“…”
“아까 저녁 식사 때 이야기 해야 했는데.”
“…”
“그때는 나도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상태였거든.”
“… 아빠.”
“검진 결과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병원에 몇 번이나 확인했지.”
레온은 이런저런 설명 대신 검진 결과가 적힌 종이를 내게 내밀었다.
“…”
동료들은 실패하지 않았다.
단지 시장이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이를 깨닫자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유송이는 일이 계획대로 풀리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다.
송이 카디로프는 가짜 아버지가 겪은 심적 고통에 어렴풋이 공감하며 슬퍼하고 있다.
“미안하구나. 내가 너에겐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최소한 10년은 별일 없을 줄 알았다.”
“…”
“그랬다면 네가 내 밑에서 카디로프의 성에 따르는 책무를 훈련받을 수 있었겠지.”
이후, 레온은 꽤 오랫동안 아버지가 딸에게 할 법한 이야기를 꺼냈다.
… 이런 말을 계속 듣다 보면, 후유증이 제법 심할 것 같았다.
“송이 네가 어렸을 때 – 음? 방금 팔찌에서 불빛이 번쩍하지 않았니?”
“잘못 보셨어요.”
오래전 103호의 선생님은 내게 가르쳤지.
감각이란 뇌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나, 인간은 이 환상에 쉽게 흔들리는 나약한 생물이다.
다양한 관점으로 내 인지를 ‘조금씩’ 바꿨다.
레온의 목소리가 괴상한 기계음처럼 울리고, 그의 외형은 처음 보는 냉막한 인상의 중년 남성으로 변한다.
딱 이 정도 변화만으로 내 본능은 이 남자를 더 이상 ‘레온’으로 여기지 못했다.
그러자 불필요한 공감 능력을 발휘하던 나약한 정신이 얼어붙었다.
다양한 관점이 한번 번쩍하면 깃털처럼 날아가는 것.
딱 이 정도가 내 일시적인 마음의 무게였다.
나는 유송이, 호텔을 오르는 사람이다.
“네 엄마가 살아 있을 때 말이다, 나는 -”
“아버지.”
“어?”
“정말 당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면, 이런 이야기보다 꼭 필요한 이야기를 해 주세요.”
“…”
아버지, 몸 상태가 심각하잖아요?
병원에서 심혈관 질환이 한둘이 아니라고 했죠?
머지않아 무지개다리 건너간다고 했죠?
그러면 슬슬 ‘계승’을 준비하셔야죠.
“후우…. 송이 네가 나보다 낫구나. 그래, 보여줄 것이 있으니 이쪽으로 오렴.”
카디로프 家는 낙원을 지배하는 일족.
구성원은 나와 아버지 말고도 더 있고 그들 또한 1급 시민이다.
그러나, 특별한 물건을 이어받은 사람만이 시장직을 이어받을 수 있다.
레온의 원 모어 찬스, 나의 다양한 관점이 그 예시다.
따라서 레온 카디로프가 죽으면 다음 시장은 나다.
— 삑! 삑!
머지않아 ‘전 시장’으로 변할 남자가 테이블 하단에 숨겨진 기기를 조작하자 동그란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송이야, 이게 뭔지 알아보겠니?”
“…”
너무 잘 알아서 순간 당황했다.
행성, 그것도 명백히 지구다.
내가 잘 아는 아시아, 아메리카와 같은 대륙들이 보였다.
“우리가 사는 행성이란다. 하긴, 2급 시민부터는 교육 과정에 있으니 너도 봤겠지.”
“…”
호텔에서 온갖 경험을 쌓아온 요즈음, 우리는 저주의 방 내부 시나리오를 호텔이 마음대로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아.
저주의 방은 우주 어딘가에서 실제 발생했던 사건을 각색한 것이다.
그렇다면, 206호는 지구의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일까?
관리국이 ‘마왕’에 의해 파멸한 평행세계의 지구?
다양한 방향으로 뻗으려는 생각을 억눌렀다.
지금은 눈앞의 일에 집중해야 하니까.
“낙원은 어디에 있나요?”
“여기지.”
206호의 배경, 낙원의 위치는 지구로 치면 대충 북미대륙에서도 캐나다 쪽이었다.
더 자세히는 내가 세계 지리에 약해서 잘 모르겠어.
그때, 레온이 기기를 툭툭 건드리자 홀로그램 여기저기에 붉은 점이 생겨났다.
“이 점들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니?”
“…”
알 것 같았다.
“이것은 현시점 인류가 생존 중인 보호 구역의 위치란다.”
‘보호 구역’
무척 의미심장한 단어였다.
레온이 다시 한번 버튼을 눌렀다.
이번엔, 지구본 여기저기에 파란 점들이 나타났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384일 차
현재 위치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 테엥! 테엥!
“으윽…. 벌써 아침이야?”
“조금 전에 잠든 것 같은데?”
“씨부럴! 수면시간이 짧아도 너무 짧-”
– 4급 시민 파울로, 욕설 감지하였습니다.
“어, 어? 이건 그냥 실수로 -”
– 오늘 점심을 박탈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낙원의 좆 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좆’이라는 천박한 단어를 불쾌하게 여기겠지만, 본래 현실이 끔찍하면 이를 표현하는 단어 또한 무식해지기 마련이지.
그렇다고는 해도, 오늘의 하루는 조금은 새롭다.
오늘은 206호에 도착한 지 3일 차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내 계획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낡아빠진 침대에서 일어나 지금부터 할 일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살면서 이런 황당한 짓을 할 줄은 몰랐는데.
“야!”
“…”
“야! 한가인 이 등신 새끼야!”
피터슨 반장이다.
“침대에 가만 앉아서 뭐 하냐? 당장 정리하고 일어나지 못해?”
“…”
“이 자식은 꼭 주먹으로 패야 말을 듣나?”
성큼성큼 걸어온 거한이 내 멱살을 틀어쥐자 주변 광부들이 걱정스러운 시선이 내게 모여들었다.
“… 피터슨 반장님.”
“인마! 시간 없으니 빨리 말해!”
“어젯밤, 위대한 분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뭐, 뭐?”
주변의 모든 사람, 심지어 피터슨 반장조차 내 난데없는 말에 넋 나간 표정을 지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많은 이의 관심이 내게 모인 이 순간.
나는 신화의 시작이 될 첫 문장을 내뱉었다.
“기뻐하십시오. 주께서 영광스러운 소식을 전하셨나니, 위대한 분께서 몸을 일으키셨나이다.”
*
이후의 일과가 특별히 바뀌진 않았다.
광부들이 내 말을 듣자마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일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광산 노동에 지친 청년이 정신이 나갔다 정도의 반응만 돌아왔고, 피터슨 반장이 황당해하며 주먹으로 한 대 쳤을 뿐.
오늘도 난 광부들과 함께 13구역으로 이동해 땀 흘리며 광산 일에 매진해야 했다.
숨 한번 돌리는 잠깐의 휴식 시간, 나이 든 광부 한 명이 다가왔다.
“젊은 친구, 괜찮나?”
“로이, 물론입니다.”
“허허…. 아침에는 놀랐지 뭐야. 간밤에 개꿈이라도 꿨어?”
로이의 말에 주변 광부들이 일제히 웃었다.
고통스러운 노동과 형편없는 식사.
행복을 찾기 힘든 힘겨운 삶 속에서 잠깐의 웃음은 참으로 귀하다.
“이 친구! 보기보다 약골인 모양인데? 나이도 젊은데 벌써 헛것을 보면 쓰나!”
“하하! 이렇게 덩칫값을 못 해서 일은 제대로 하겠어?”
“나이만 젊지, 허약하기 짝이 없어!”
“…”
모두가 날 놀리는 상황이다.
사람에 따라선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거나 놀리지 말라며 화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진실로 신의 뜻을 영접한 자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어린애처럼 화낼 필요도 없다.
나는 계시받은 자요, 복음을 들은 자이므로.
선택받은 자는 곧 신비로운 자다.
신비로움이란 곧 불가해(不可解)의 다른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난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여러분. 지금부터 제 말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주변 광부들의 놀림을 아예 듣지 못한 것처럼 행동하자 사람들이 살짝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자네, 아직도 정신이 헤까닥한 상태라면 -”
“명심하세요. 주께서 이르시길, 더 나아갈 자격이 있는 자만 내일의 태양을 볼 수 있다 하셨습니다.”
“뭐?”
“이봐!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젊은 친구가 단단히 미친 모양 -”
“오늘, 이 자리에서 살아남을 사람은 딱 스물입니다.”
주변 광부들의 시선이 내게 쏠린 이 순간.
— 쿠르릉!
요란한 진동과 함께 광산 지하의 허약한 조명이 꺼지며 어둠이 내려앉았다.
“뭐, 뭐야!”
“으아악! 저, 전선이 끊어진 것 같은데?”
“피터슨 반 -”
혼란 속에서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모든 이가 내 말을 듣고 있음을 확신했다.
“축하합니다.”
“어? 가, 갑자기 무슨 -”
— 쿠르릉!
다시금, 요란한 진동과 함께 이번엔 비명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딱 스무 명만 살아남습니다.”
넋 나간 시선을 느끼며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여러분은 나와 함께 살아남습니다. 주께서 그리 정하셨으니, 그리될 것입니다.”
한가인, K 대학교 신입생, 호텔 참가자.
오늘부터 교주 1일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