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39)
EP.439 439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4)
439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4)
– 김아리
전기가 잘 통하지 않아 조명은 어둡고, 환기가 부족해 탁해진 공기에서 불쾌한 냄새까지 난다.
이처럼 열악한 지하 공동에 수백 명의 사람이 모여들었다.
마왕 교단의 집회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오늘의 말씀은 ‘평등’에 관한 것입니다. 모두가 영광된 자손이며, 위대한 시선 아래 각자의 계급은 허울과 같고 -”
연단에 선 목자가 우렁차게 떠드는 사이, 나는 복잡한 상념에 잠겼다.
206호의 두 번째 시도, 우리는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 채 진행 중이다.
유송이, 이은솔, 차진철, 김묵성, 박승엽.
여기까지를 편의상 ‘도시지배 팀’이라고 하자.
송이가 시장의 딸이라는 점을 활용해 도시의 실권을 쥔 후, 시장이 감추고 있는 각종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 목적이다.
한가인, 김아리.
나와 가인이는 편의상 ‘교주 팀’이라고 하자.
가인이를 섬기는 다수의 신도를 확보해 신성한 태양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 1차 목적이다.
신성한 태양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거기서부터는 또 여러 가지 계획이 있지만, 그때 가서 고민하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김상현, 엘레나 이 둘은 양쪽 모두를 오가는 ‘지원팀’이다.
상현이는 2급 시민이자 비밀 요원이라는 신분 덕에 여기저기 쏘다니기 편해.
애초에 현재 진행 중인 지하 집회 어딘가에도 신분을 감춘 채 잠입한 상태다.
엘레나는 인기 배우라 상현이처럼 행동이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재산이 많고 집이 커서 좋고.
동료들은 그렇다 치고 나와 가인이 역할에 집중해보자.
사이비 교단을 세우는 일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관리국에서 어지간한 사람이 평생 하지 못할 희한한 경험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은 또 처음이다.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모를 괴상한 혼돈체를 찾아서 신이랍시고 섬기는 놈들은 많이 봤지만, 발견하는 대로 죽였을 뿐 그런 집단을 만들려고 한 적은 없으니까.
해괴한 생각을 많이 하기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동료, 한가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의견을 나누다 보니 나와 가인이의 의견이 하나로 모였다.
‘이게 바로 내가 아는 가장 유명한 ‘신흥 교단’의 방식이라니까?’
‘으음…. 일리 있네.’
뭐든지 처음부터 만드는 것 보다는 남들이 열심히 모아둔 걸 홀라당 집어삼키는 게 편해.
마침, 206호에는 모든 것이 예정된 것처럼 ‘먹기 좋은 떡’이 준비되어 있었다.
마왕 교단 말이다.
— 짝!
연단에서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 주목하십시오. 아리 사도께서 놀라운 소식을 전하신답니다.”
기적을 부린다는 소문이 도는 교단의 사도, 평소 집회에선 거의 입을 열지 않는 내가 연단으로 나갔다.
웅성거리는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모여들었다.
“…”
바로 입을 여는 대신, 1분 정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무게를 잡았다.
“여러분, 나는 오늘 영광스러운 소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어느새 지하 공동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마침내 진실한 구주의 계시를 받으신 선지자께서 올라오셨습니다.”
교리에 따르면, 마왕의 선지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지하에서 올라온다.
마왕 본인부터가 하늘이 아니라 도시의 지하에 있기 때문이다.
*
집회가 끝나자마자 교단의 고위층이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아리 사도! 이런 이야기를 상의도 없이 갑자기 꺼내다니 -”
“상의? 선지자께서 나셨다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전했을 뿐인데, 상의하고 말고 할 게 있나요?”
“아니…! 그,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우리도 한번 봐야 할 것 아니오!”
“내가 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여러분을 속였다는 건가요?”
대놓고 당당하게 나가자 교단 사람들이 되레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그런 말이 아니지 않소! 아리 사도는 물론 신령한 힘을 타고나셨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시니 착각을 -”
“그만. 더 듣지 않겠어요.”
“아리 사도!”
누군가는 내가 외견만 그럴듯한 사기꾼에게 속았다고 여겼다.
누군가는 내가 시장이 꾸민 음모를 간파하지 못했다고 여겼다.
교단의 고위층은 다들 내가 속았다고 말했는데, 아무래도 206호의 설정상 내가 10대 소녀라 믿지 못하는 모양이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다들 날 따라오시죠.”
“그게 무슨 -”
“파울로, 아까 말했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여러분도 한번 봐야겠다고?”
“… 그렇소.”
“보러 가면 되잖아요?”
그 말에 좌중이 조용해졌다.
잠시 후,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대체 그놈이 어디 있단 말이오?”
“낙원 바깥.”
“바, 바깥? 설마 ‘진실의 문’의 위치를 그놈에게 알려준 겁니까?”
낙원 바깥으로 향하는 도시의 틈새, ‘진실의 문’은 교단의 비밀 중 하나다.
이런 것을 외부인에게 알려줬다고 하니 교단 사람들이 경악하는 것도 당연하다.
물론, 나는 당당했다.
“선지자께 비밀을 숨길 이유가 있어요?”
“아리 사도! 대체 -”
“그만.”
그때, 묵직한 목소리가 공동을 채웠다.
교단 고위층 회의에서 가장 발언권이 강한 장로, 레이먼드다.
“어떤 사람인지 한번 보기나 하지. 혹시 알겠나? 정말 마왕께서 선지자를 보내셨을지도.”
*
– 유송이
정원에 나와 속이 탁 트이는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자 마음이 맑아진다.
새삼스럽지만, 도시 국가나 다름없는 낙원에서 이런 넓은 정원을 누린다는 건 정말이지 대단한 사치야!
내 성이 ‘카디로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권리에는 곧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법.
나는 시장에게 ‘카디로프의 책임’이 무언인지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계승’이 시작된 것이다.
레온은 이 사실을 주위에 알렸고, 내 신분 또한 공주님에서 왕위 계승자로 바뀐 느낌이다.
덕분에 여러 가지가 편리해졌어.
예컨대, 은솔 언니는 더 이상 날 만나기 위해 머리를 싸맬 필요가 없다.
그냥 내가 불렀다고 하면 되니깐!
“송이야, 레온도 마왕의 정체 같은 건 모른다고?”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가 새어나갈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경호원을 시장이 붙인 사람들 대신 진철 오빠랑 묵성 할아버지로 교체했으니까.
하! 이게 바로 공주님과 계승자의 차이라고?
레온에게 부탁하며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이 그냥 시키면 된다!
“송이야? 왜 갑자기 혼자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어?”
“의기양양이라니….”
은솔 언니, 2급 시민 주제에 하늘 같은 1급 시장 후계자 앞에서 너무 버릇없는 것 아니야?
…
지나친 메소드 연기는 자제하자.
이러다 진짜 인포서 시켜서 언니를 혼내려고 하겠네.
“에헴. 아빠, 아니 레온 말로는 마왕이 마치 운석처럼 여러 조각으로 쪼개진 채 우주에서 날아와 지구 여기저기 떨어졌다고 하네요.”
“문서에 충격적인 이야기가 많아. 마왕을 억제하는 건 인류 그 자체라니….”
시장은 내게 많은 비밀을 알려주었다.
별의 심연에 웅크린 마왕을 인류는 대체 어떻게 억누르고 있는가?
마왕이 물이라면 불굴의 이성은 페트병의 뚜껑에 불과하다.
물을 담고 있는 것, 다시말해 마왕을 봉인하고 있는 존재는 뚜껑이 아니라 병 그 자체다.
병은 다름 아닌 낙원의 인류 그 자체였다.
좁은 장소에 수천만 단위로 몰려있는 인간의 영적 질량이 여러 조각으로 쪼개진 마왕을 억누르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불굴의 이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병이 멀쩡하더라도 뚜껑이 열리면 물이 새기 마련이니까.
“‘영적 질량’이라는 게 대체 무슨 의미야?”
“저도 몰라요.”
“으음…. 아리나 할아버님은 이해할지도. 할아버님 징계 풀려서 돌아오면 물어봐야지.”
“우리는 결론만 이해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마왕을 억제하려면 지구에 흩어진 마왕의 조각 위에 수천만 명의 인류가 몰려 살아야 한다?”
“그거죠.”
은솔 언니가 크게 한숨 쉬었다.
“낙원을 보면서 품었던 의문 상당수가 해소되는 느낌이네.”
왜 낙원의 삶은 이토록 가혹할까?
고작해야 조금 큰 도시 정도의 영역에 수천만에 달하는 사람이 억지로 모여 사는 중이니깐.
그 무슨, 도시화, 인구 과밀의 부작용 그런 것 있잖아?
“문서대로라면, 낙원은 자연스러운 도시가 아니구나.”
“네?”
“본래 자연스러운 도시는 발전 과정에서 효율적인 위치에 생겨나기 마련이잖니? 보통은 강과 항구를 끼고 있지.”
“서울처럼요?”
“한강, 인천. 그래, 서울처럼.”
“… 낙원 근처에는 강이 없네요.”
“효율적인 위치에 생긴 도시가 아니야. 우연히 마왕 조각이 떨어졌으니, 그 위에 억지로 인구 수천만의 도시를 지은 상태지.”
난 은솔 언니처럼 지식이 많지는 않지만, 그런 내가 느끼기에도 자연스럽지 못한 장소에 억지로 세운 도시이니 부작용이 더 심할 것 같았다.
“낙원보다 더 심한 도시도 있겠구나.”
“그렇겠네요.”
“여기, 지도 봐. 히말라야산맥이 있는 장소잖아?”
“…”
“이런데에도 인구 3,000만이 넘는 도시를 억지로 지었어. 이 사람들은 낙원보다도 훨씬 힘들게 살고 있겠네.”
신분제가 형성된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들이 선장에게 왕과 같은 권위를 부여했던 것처럼, 폐쇄된 환경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이었겠지.
심지어 불굴의 이성에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 이런저런 명분으로 사람을 갈아대는데 삶의 질이 높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이래서 도시 수뇌부가 외부 세계가 멀쩡하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구나.”
“… 탈출할까 봐?”
“하층민의 탈출을 막아야 하니까.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도시에서 마왕을 억누르다가 죽어야 하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진철 오빠가 입을 열었다.
“어우야…. 듣고 있으니까 머리 터지겠다. 신기하면서도 끔찍한 이야기긴 한데, 이런 건 결국 206호의 배경 설명이잖냐?”
“그건 그렇죠.”
“근본적으로 우리 목표는 첫째는 탈출이요, 둘째는 해결이란 말이지.”
“맞아요.”
“송이 네 설명을 듣다 보니까 왜 206호가 좆, 아니, 무진장 어렵다고 호텔에서 겁줬는지 알겠다.”
“…”
왜 206호가 다른 저주의 방보다 어려울까?
죄수가 강해서는 아니다.
약한 죄수라는 게 있긴 한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존재라 해도 우리보다는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병아리에게 여우와 호랑이의 강약은 큰 의미 없는 문제다.
“마왕의 성향 때문이었네.”
“…”
호텔에서 만난 다른 죄수를 생각해봤다.
101호의 죄수는 ‘병원 원장’같긴 한데, 마지막까지 등장하지 않아 모르겠으니 패스.
102호의 성운의 용 혹은 태어나지 못한 자인데 둘 다 반푼이다.
한쪽은 사실상 시체고 다른 한쪽은 그 시체에서 태어난 사생아니까.
103호의 선생님은 아예 아군이었다.
104호의 주는 애매한데, 방의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역시 아군이다.
해결한 후 외부로 나갈 유산에 자신을 복제해 넣은 미친 신이었으니까.
201호의 0차원의 눈은 미친 신이긴 하지만 인신 공양을 통한 협상은 가능했다.
202호의 해신도 마찬가지로 말이 통하는 존재였고, 돌이켜보면 사실 인간의 죄가 컸어.
203호의 아드라비타도 관점에 따라선 무조건적인 악역이라기보단 신세계의 신 같은 존재였다.
205호의 죄수는 차마 언급하기도 불쌍하니까 패스하자.
“… 하나하나 비교해보니까 206호의 마왕이 꽤 피곤한 존재긴 하네요.”
지하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전 인류를 집어삼키는 괴물이니, 0차원의 눈 이상으로 인류에게 적대적이면서 답이 없을 정도로 강대하다.
그런데, 마왕의 가장 끔찍한 점은 따로 있다.
은솔 언니가 한숨 쉬며 중얼거렸다.
“휴우…. 대화, 협상. 이런 것이 아예 통하지 않았다고?”
“레온의 말에 따르면요.”
“가인이가 했던 말과 비슷하네.”
카디로프 가문에 내려오는 기록과 강림을 쓰고 마왕의 본질과 접촉했던 가인 오빠의 경험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마왕은 소통이라는 게 불가능한 존재다.
끝없이 폭주하는 충동의 집합체와 같은 불가해한 존재다.
깨어나면 인류를 몰살하는데, 힘은 터무니없이 강하고, 대화와 협상은 아예 불가능한 존재.
우린 이런 괴물을 ‘해결’해야 한다.
“…”
“…”
무거운 침묵이 흐른 후, 은솔 언니가 입을 열었다.
“덕분에 정보를 많이 모으긴 했는데, 굉장히 중요한 정보가 하나 빠져있네.”
“어떤 부분인가요?”
“지금 마왕을 억누르는 힘의 정체가 뭐야? 여기저기 흩어진 마왕 파편 위에서 살아가는 수천만의 인류지?”
“네.”
“이 도시가 처음부터 있었을까?”
“예?”
“도시는 하루아침에 건설할 수 없어. 즉, 마왕 파편이 먼저 떨어졌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인류가 도시를 건설했겠지.”
“그렇죠?”
“그러면 도시를 건설하기 전엔 어떻게 마왕을 억눌렀지?”
“…”
“또, 밀집한 인류 그 자체가 마왕을 억누를 수 있다는 건 누가 알아낸 거야?”
마왕 조각 위에 도시를 지으면 된다는 사실은 누가 알아냈을까?
도시를 건설하기 전엔 어떻게 마왕을 억눌렀을까?
“뭔가 더 있어. 내가 느끼기엔, 너희 카디로프 가문도 일종의 ‘관리자’야. 그 관리자를 임명한 무언가가 있어. 그러니까….”
나, 은솔 언니, 진철 오빠.
세 사람이 동시에 똑같은 개념을 떠올렸다.
“관리국!”
이 모든 판을 설계한 집단, 카디로프 가문 같은 관리자를 임명한 집단.
206호에도 관리국 같은 조직이 있다!
어쩌면,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