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40)
EP.440 440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5)
440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5)
– 김아리
선지자를 한번 만나기로 한 후, 교단의 수뇌부는 집회에 모인 평신도들을 데리고 낙원 바깥으로 나왔다.
언제나 그렇듯 낙원 바깥은 저주받을 도시와 공기부터 달랐다.
평소 같으면, 교단 사람들은 순수함을 되찾은 채 아름다운 바깥세상을 향유하며 모든 이를 지옥 같은 도시에 가둔 카디로프 가문을 비판하곤 한다.
오늘은 달랐다.
모든 이가 대자연이나 카디로프 家 대신 한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지자, 한가인은 광산에서 데려온 광부들과 함께 보드라운 잔디밭을 거닐고 있었다.
광부들은 생전 처음 도시 밖을 본 사람처럼 넋이 나가 있었는데, 우리가 다가가자 경계심을 느꼈는지 가인이 옆으로 모여들었다.
저런 친위대 혹은 추종자 같은 행동 하나하나가 저들 사이에서 한가인이 어떤 존재인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교단이 가인이를 살피는 사이 가인이도 교단을 살폈다.
그는 처음엔 맨 앞의 나와 잠시 시선을 맞추더니, 뒤쪽의 평신도들을 쭉 살폈다.
아마 그들 사이에 숨어있는 2급 시민이자 비밀 요원, 김상현을 찾는 모양이다.
곧, 상현이가 나 여기 있다는 듯 가볍게 발로 바닥을 두드렸다.
침묵을 깨트린 사람은 레이먼드였다.
“아리 사도에게 이야기 들었소. 계시받으셨다고?”
“그렇습니다.”
“혹시 그 내용을 말해줄 수 있겠소?”
“물론이지요.”
곧, 가인이는 꿈속에서 봤다는 마왕의 압도적인 형상을 실감 나게 묘사했다.
한 호흡에 도시 전체를 광기로 몰아넣는 마력.
단박에 낙원을 으스러트리는 거대한 손.
여기에 끓어 넘치는 무궁한 충동의 소용돌이와 생물이라기보다는 우주적 재해와 같았다는 표현이 덧붙여졌다.
가인이의 설명을 듣던 뒤쪽의 평신도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마왕에 대한 가인이의 묘사는 종교단체에서 신적인 존재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반면, 교단의 수뇌부는 눈을 크게 뜨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교단이 전승해온 마왕에 대한 기록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저 묘사는 가인이가 상상해서 지어낸 게 아니라 마왕하고 직접 붙어보고 느낀 ‘기억’이니까.
물론, 회의론자도 있었다.
“이봐! 젊은 친구! 교단의 기록을 어디서 우연히 구한 모양이지?”
곧, 태연한 답이 돌아왔다.
“여러분은 신을 묘사한 신성한 기록을 길가에 흘리고 다니십니까?”
“하! 그건 아니지만, 교단의 역사가 기니 기록이나 경전이 외부로 새어 나갔을 수도 있지!”
“흐음….”
가인이는 회의적인 사람과 말싸움하는 대신, 태연히 뒤로 한 발자국 움직이는가 싶더니 –
“헛!”
“으어억! 뭐, 뭐야?”
뒤로 5M 정도 순간이동 했다.
1층 관문의 방 보상으로 얻은 날개 문신이 이럴 때 참 유용하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도 있잖아?
입으로 나 선지자요! 하고 백번 떠드는 것보다 순간이동 한번 보여주는 게 제일 확실해.
이러니까 세상에 널린 사이비 교주들이 이상한 쇼를 준비하는 거지.
‘기적’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나타나자 레이먼드가 감탄하며 말했다.
“인정하지. 당신은 어딘가 비범한 면이 있는 것 같긴 하구료.”
“어딘가 비범한 게 아닙니다. 마왕께서 제게 비전을 보여주셨다 하지 않았습니까?”
“글쎄? 교단에 특별한 힘을 가진 사람은 당신 말고도 있으니.”
그 말과 함께 레이먼드는 가볍게 손뼉 치며 하울링 했다.
— 고오오오오!
레이먼드의 입에서 인간의 성대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괴음파가 발생했다.
그러자 평범한 신도들은 균형을 잡지 못한 채 바닥에 연거푸 엎어졌고, 사방의 나무에서 잎사귀가 우수수 떨어졌다.
이 노친네도 초능력자인 걸 알고는 있었는데, 이런 종류의 힘인 줄은 몰랐다.
힘의 근원이 뭘까?
가인이가 쓴웃음을 지었다.
“목소리 한번 우렁차시군요.”
“일찍이 마왕께서 내게 티끌 같은 힘을 내리셨지. 별것 아닌 재주요.”
“…”
“특별한 힘이 있다 해서 그게 곧 선지자라는 증거일 수는 없소.”
“…”
“물론, 당신이 어딘가 특별한 면이 있음은 인정하지. 교단에 합류하시겠소? 대우는 약속하지.”
레이먼드, 교단 고위층은 한 가지 협상안을 제시했다.
한가인 당신이 특별한 인간인 건 알겠는데, 초능력 정도는 우리에게도 있다.
그러니 마왕의 선지자라고 우기면서 우리 위에 서려고 하지 말고, 우리의 일원이 되라는 것.
…
시답지 않은 이야기네.
애초에 이런 엑스트라랑 조그마한 종교단체 나누어 먹으려고 들어온 게 아닌데.
당연히 이 정도 저항은 예상했다.
갑자기 내 밑에 꿇으라는데 좋다고 꿇을 사람이 있겠어?
강제로 꿇려야 한다.
그걸 위한 유산 또한 가지고 있다.
“참으로 오만한 자들이로다….”
이윽고 만물을 짓누를 듯한 위엄을 뿜어내는 신성한 태양이 나타났다.
아직 기능 정지 상태임에도, 신성한 태양이 발하는 초자연적인 카리스마는 평범한 인간이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곧, 장내의 평신도들이 정신을 놓은 채 엎어지기 시작했다.
“아아! 위, 위대한 손이시여….”
급기야 눈물 흘리며 절규하는 사람들까지 튀어나왔다.
“으아아악! 신이시여! 웅크린 구주시여!”
평범한 사람에게 신성한 태양의 카리스마는 이렇게나 압도적이다.
…
몇 주 전, 가인이는 모두가 모여있는 자리에서 신성한 태양을 소환했다.
그때 우리는 어땠더라?
나름대로 압박감을 느끼며 잠시 침묵하긴 했지만, 딱 그 정도였다.
그 반응과 눈앞의 ‘진짜 평범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마음이 살짝 복잡해졌다.
모두가 성장했으니 기뻐해야 하는 것인지, 점점 인간과 멀어지고 있으니 경계해야 하는지….
문득, 역시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상현이를 발견했다.
주변 사람들은 죄다 바닥에 나뒹굴며 울부짖는데 본인만 태연한 태도로 서 있으니 티가 났다.
눈을 마주치는 찰나의 순간.
우리는 서로가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음을 알았다.
그건 그거고, 난 몰라도 평신도로 위장 중인 사람이 저렇게 멀쩡하면 곤란해.
살짝 허리를 숙이는 시늉을 하자 상현이도 곧 상황을 알아채고 바닥에 엎어졌다.
감동, 충격, 두려움, 열정, 그리고 광기.
격정적인 감정의 폭풍우가 몰아치는 장내, 레이먼드를 비롯한 교단 수뇌부들도 입에서 침까지 흘리며 가인이를 바라본다.
상당수 장로는 평신도들처럼 눈물까지 줄줄 흘리며 ‘선지자’를 외쳤다.
“휴우…. 됐나?”
이 정도면, 마왕 교단은 우리 손에 들어왔다고 볼 수 있 –
“아니다!”
어?
“이, 이 사기꾼! 모두 정신 차리시오! 당장 눈을 뜨시오!”
레이먼드가 발작적인 적개심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모두 정신 차려라! 저놈은 가짜다!”
기다렸다는 듯, 근처의 다른 장로들도 호응하며 고함질렀다.
이게 뭐야?
가, 갑자기 일이 망했는데?
— 고오오오!
레이먼드가 예의 그 괴음파를 아까보다 몇 배는 강한 강도로 토해냈다.
순식간에 몽둥이로 전신을 두들기는듯한 충격이 가해졌고, 신성한 태양에 홀려있던 사람들이 서서히 정신 차리기 시작했다.
“네 이놈! 이 악독한 자! 당장 저놈을 죽여라!”
조금 전만 해도 자리 하나 주겠다면서 가인이를 포섭하려 하지 않았어?
난데없이 태도를 180도 바꿔 죽이라고 난리다!
평신도들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 모르고, 나와 상현이도 이게 대체 뭔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모든 혼란의 중심에 있던 남자, 가인이가 갑자기 무릎 꿇더니 –
“아버지…. 부디 이들을 용서하소서.”
난데없이 울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얘는 K대 신입생이 아니라 무슨 연기 학교 신입생 아니야?
눈에 양파 조각을 밀어 넣은 것도 아니면서 무슨 눈물이 저렇게 펑펑 나와?
이런 쇼는 계획에 없었는데!
“아버지, 부디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릅니다.”
한가인 이 인간 성경 문장은 언제 외워 온 거야?
혼란스럽다!
갑자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면서 계획이 뒤틀렸는데, 장로는 물론이고 가인이까지 괴상한 짓을 벌이니 더더욱 머리가 아팠다.
“네 이놈! 네놈이 이단 신의 사도임을 내 모를 줄 아느냐?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
이단 신의 사도?
그때, 한가인이 음울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아아…. 웅크린 구주께서 계시하였노라. 용서받지 못한 죄를 지은 자가 이토록 많구나.”
모든 이의 시선이 한가인에게 쏠린 순간, 허공에서 칠흑의 서가 나타났다.
“그리하여 나는 살아있는 채찍이 되었도다. 나는 그분의 발톱이요, 주먹이라!”
나는 이 순간이 되어서야 상황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한가인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도 이해하고 말았다.
가인이는 이 자리의 ‘진짜’를 전부 죽이려 하고 있다!
태어나지 못한 자의 마력이 삽시간에 주변을 점거하자 공포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장면이 현실로 튀어나왔다.
제일 먼저, 고래고래 고함지르던 레이먼드는 갑자기 자기 손으로 본인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끄으윽! 끄허업!”
다음은 은근히 레이먼드의 편에 서려 했던 장로들 차례였다.
그들 중 몇몇은 기기묘묘한 이능력의 소유자였으나, ‘화신의 힘’에 의한 조종에 저항할 정도는 아니었다.
“흐어억! 으에엑!”
마왕 교단의 수뇌부가 연거푸 질식한 채 의식을 잃었다.
그들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조차 죽는 순간까지 본인 목을 졸랐다.
하나.
또 하나.
이번엔 둘.
다음은 셋.
곧 수십에 달하는 시체가 바닥에 연거푸 쓰러졌다.
조금 전까지 선지자가 나타났다며 감격하던 평신도들은, 이번엔 형언할 수 없는 공포에 압도당한 채 제발 살려달라며 기도했다.
그때, 누군가가 내 옷깃을 잡아끌었다.
상현이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
“사전에 가인 군과 여기까지 계획했습니까?”
“아니.”
원래는 교단 수뇌부를 이렇게 숙청할 생각은 없었어.
이들 중 상당수는 초능력자니까 꽤 유용한 인적 자원이라 생각했거든.
“이게…. 이게…. 갑자기 무슨!”
부릅뜬 눈, 땀에 젖은 상의.
김상현은 극도의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한가인은 우리의 동료다.
한 번도 우릴 위협한 적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도….
조금 전의 광경이 뇌리를 스쳤다.
손 한번 까딱하니 수백 명의 사람이 정신을 놓은 채 바닥을 구르고, 급기야 눈물 흘리며 기도한다.
책 한번 펴니 수십 명의 사람이 자기 손으로 목을 졸라 자살한다.
이런 존재를 ‘사이비’ 교주라고 할 수 있을까?
“상현아, 진정해.”
“… 화신의 힘이 예전보다 훨씬 더 강해진 것 같습니다.”
“그러게. 예전엔 이렇게 여러 명을 동시에 조종하진 못한 것 같은데.”
“그래서 조금…. 아주 조금 놀랐습니다.”
“…”
“가, 가인 군은 203호에서 수백 년을 고생하면서도 내 편이었죠.”
그때, 누군가 내 발을 잡았다.
“아, 아리 사도!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로이드.”
어떻게 살아남았지?
아, 가인이가 화신의 힘을 다 쓴 모양이네.
“저, 저놈은 괴물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저놈은 선지자가 아닙니다! 괴물입니다!”
아까 전 레이먼드가 그러했듯, 절망에 차 울부짖는 로이드의 눈에도 확신이 있었다.
한가인은 교단이 기다려온 메시아가 ‘아니라는’ 흔들리지 않은 믿음이 있었다.
“어떻게 알았어?”
“네? 아, 아리 사도?”
“가인이가 가짜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 마왕이 알려줬어?”
로이드가 넋 나간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손을 뻗어 그의 목을 쥐었다.
“인정할게. 너희는 ‘진짜’였구나.”
“끄으윽!”
“그래서 가인이가 신성한 태양을 꺼내자마자 가짜인 걸 알았구나. ”
“으읍!”
“고마워. 이 부분은 우리 실수였네. 다음 회차부턴 실수하지 않을게.”
— 콰직!
‘마지막’ 마왕의 사제가 죽었다.
이제, 이 자리에 남은 것은 자신이 누구를 섬기는지도 모르는 아둔한 인간들 뿐이다.
이윽고 거짓된 목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 두려워 말고 일어나십시오! 새로운 새벽이 밝았으니,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았을 뿐입니다.”
이것으로 교단은 우리의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