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43)
EP.443 443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8)
443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8)
– 김아리
레온 카디로프의 죽음이 공표된 후 5일이 흘렀다.
시장이 죽는 과정에서 묵성이를 데려갔다는 우울한 소식 또한 전달받았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아침 일찍 엘레나의 집에 모였다.
“시조의 행동은 시장의 예측대로였어.”
은솔이는 2급 이사관이라는 직책 덕에 송이를 쉽게 만날 수 있어 소식이 빠르네.
그런 이유가 아니라 해도 대부분 회의에서 가장 말이 많긴 해.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송이에게 찾아왔다고 하네.”
“송이가 꽤 획기적인 정보를 들은 모양이죠? 다음 시나리오가 나왔던데!”
가인이의 ‘시나리오 이해’는 며칠 동안 갱신을 멈춘 상태였지.
다음 단계가 나왔다는 건, 이전 단계는 클리어했다는 이야기야.
“아, 그래? 뭐래?”
“난데없이 ‘낙원 심층부’에 가보라던데…. 송이 이야기부터 듣죠.”
시조는 송이와 장시간 대화하며 낙원의 역사를 들려줬다.
“역사책 들고 강의해주는 느낌은 아니고, 엄~청 나이 든 노인이 회상하는 분위기였다고 해. 그래서 온갖 이야기가 다 나왔다네.”
“다 같이 들었으면 재밌었겠네요.”
개중에는 흥미롭긴 한데 근본적으로 쓸데없는 이야기가 많았다.
“레온 카디로프는 시장이 되기 전만 해도 여성 편력이 꽤 화려했다는데, 믿기 힘들지?”
이외에도 카디로프 가문이 3대째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있다는 정신 나간 이야기도 있었다.
“참, 시조가 송이 보고 빨리 남편을 구하라고 닦달했대. 빨리 애 낳아서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면서.”
“헛!”
“가인이 너, 한 번 더 고백해봐도 재밌겠다.”
“…”
시조에게야 중요하겠지만 우리에겐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네.
물론, 이런 하찮은 이야기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낙원 심층부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어. 사실, 시조는 지나가듯이 언급한 거라 송이도 이게 중요한 내용인지 헷갈렸다는데, 시나리오 이해 덕분에 확실해졌네.”
정보라는 게 우리에게 딱 필요한 것만 쏙쏙 들어오는 일은 드물다.
보통은 혼란스러운 데이터 집합처럼 난잡하게 모여드니 그중 무엇이 중요한 정보인지 선별해야 한다.
시나리오 이해는 이런 점에서 유용한 능력이다.
‘낙원 심층부’라는 키워드를 얻는 순간 갱신되며 그 장소로 가라고 안내해주니까.
“가인이 너, 1회차 때 불굴의 이성을 본 적 있다고 했지?”
“네.”
“시조가 말하는, 그리고 시나리오 이해에서 언급한 ‘낙원 심층부’는 네가 본 불굴의 이성이 있는 장소보다 더 밑층을 말해.”
불굴의 이성 자체도 도시 지하에 있지만, 그보다 더 아래가 있다.
마왕 교단이 거점으로 삼았던 도시 기반 시설이 있는 장소보다 더 아래, 말 그대로 심층부다.
전기가 통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최소한의 지형도도 없는 완전한 암흑의 세계.
물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마왕과 가장 가까운 장소.
기적이 살아 숨 쉬는 땅을 말함이다.
“그 장소는 불굴의 이성이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해.”
“으음…. 이로써 초능력을 쓸 수 있는 장소가 셋으로 늘었네요. 낙원 바깥 세계, 낙원 최상단의 부유 저택 그리고 낙원 심층부.”
낙원 심층부로 가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시조의 말에 따르면, 오래전엔 ‘이성의 결사’라는 조직이 있었어. 그들은 지구에 떨어진 마왕의 유해 위에 연구소를 비롯한 각종 시설을 짓고 마왕을 연구했지.”
206호의 관리국, 이성의 결사.
가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낙원 심층부에 이성의 결사가 마왕을 연구한 기록 같은 게 많이 있겠네요. 그래서 심층부에 가라는 건가?”
“아마도.”
듣고 있던 진철이가 손을 들었다.
“무슨 결사? 그 조직 아직도 멀쩡합니까?”
“낙원 역사 초기만 해도 멀쩡했다고 하네. 심층부의 연구원들이 보급 및 인적 자원 확보를 위해 주기적으로 도시 지배층과 연락했다고 해.”
“그 말은 지금은 망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시조의 말에 따르면, 심층부와 연락이 끊긴지 100년이 넘었어.”
100년이면 설령 소수 생존자가 있었다고 해도 다 늙어 죽었을 시간이다.
“어이구야…. 그럼 낙원 심층부는 대체 어떤 상태입니까?”
“몰라. 연락 끊기기 전에도 낙원 심층부는 지옥 같은 장소였어. 위치상 마왕에 가까운데 불굴의 이성의 범위 밖이기까지 하니까.”
“어이쿠!”
“그래서 도시 지배층은 심층부와 낙원 상층을 초합금과 콘크리트로 막아버렸어.”
우린 그런 장소에 제 발로 가야 한다.
이성의 결사가 남긴 마왕을 연구한 자료를 얻기 위해서.
“예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해? 마왕을 억누르는 건 별에 흩어진 마왕 조각들 위에 건설된 도시 내부의 인류 그 자체다. 그런데, 도시는 하루아침에 건설할 수 없다.”
따라서 낙원을 건설하기 전, 결사는 별도 수단으로 마왕을 억누르는 데 성공했다.
“분명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마왕의 약점과 관련한 이야기가 지하에 있을 거야. 어쩌면, 미로나 페로도 그 위치에 있을지도.”
“가능성 있네. 애초에 마왕이 부활할 때 미로가 튀어나왔으니까.”
*
송이가 얻은 정보 덕분에 목적지는 정해졌다.
그러므로 ‘누가’ 낙원 심층부로 갈 것인지의 문제가 남았다.
이 지점에서 은솔이가 살짝 머뭇거렸다.
“직접적인 상관은 없지만, 할아버님이 쓰러지셔서 하는 말인데, 아무래도 심층부는….”
그래서 그냥 내가 입을 열었다.
“내려가는 사람 상당수는 죽을 것 같네. 절반은 죽는다 생각하자.”
그 말에 주변이 조용해졌지만,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저주의 방을 오랜 세월 공략하다 보면 자연스레 ‘여기가 위기다!’하는 감이 생기기 마련.
그 감이 지금 경고했다.
낙원 심층부가 바로 206호의 가장 큰 고비 중 하나라고.
애초에 이런 감 없이 논리적으로 생각해도 같은 결론이야.
지형도 따위는 당연히 없고, 어떤 괴물이 있는지도 모르는 암흑의 세계.
전기는 물론이고 최소한의 치안도 보장할 수 없는 땅.
세상을 긴 세월 지켜온 이성의 결사조차 버티지 못한 지옥.
이런 곳을 가서 다 같이 살아나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이런 장소는 알지? 일부만 가야 해. 빠질 사람은 빠지자.”
동료들이 차마 내가 빠지겠다고 말할 수 없어 머뭇거리는 사이, 내가 골라냈다.
“송이는 이 자리에 없지만, 당연히 빠져야지. 체스의 킹 같은 위치니까.”
송이가 죽으면 도시를 통제할 방법이 없어.
205호에서 승엽이가 맡은 황제 역할과 비슷하다.
“엘레나는 빠지는 게 좋겠는데? 지하의 적은 인간이 아닐 테니 정의는 무용지물이고. 불길한 상상은 특성상 스케일이 너무 크잖아?”
불길한 상상은 위력 조절이 어려운데, 낙원 심층부 같은 장소에선 위험성이 커 보였다.
함부로 건물을 무너트렸다가 내부에 있던 마왕 연구 자료가 날아가면 큰일이니까.
“그, 그건 내가 힘을 주의 깊게 쓰면 -”
“아리 양이 지적한 문제도 있고, 엘레나 양은 지나치게 유명합니다. 함부로 죽기라도 하면 지상에서 수습하기 힘든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상현이까지 이렇게 말하자 엘레나도 수긍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상현이도 내가 보기엔 남아야 한다.
“상현이 너도 위에 남는 게 좋겠어.”
“음? 진심입니까?”
차진철만은 못하지만, 김상현도 일종의 무투파다.
그래서인지 심층부 같은 위험한 장소를 향하며 자신을 뺄 줄은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모두를 돌아보며 다시 한번 강조했다.
“낙원 심층부에 가는 사람 상당수는 죽을 확률이 높아. 즉, 탈출은 지하에 가는 사람이 아니라 위에 남은 사람들이 잘 해야 해.”
가인이가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위에도 전력을 많이 남겨둬야 한다?”
“그거야. 진철이랑 상현이처럼 물리적인 싸움에 능한 사람이 둘 다 지하에서 죽으면 곤란해.”
상현이가 ‘2급 시민’이니 상층에서 운신의 폭이 더 넓다.
마지막으로 가인이를 보았다.
“넌 무조건 남아.”
“…”
이미 짐작했는지, 가인이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번 회차에서 가인이의 가장 큰 역할은 신성한 태양을 충전하는 것.
이 과정에서 ‘유사 강림’의 힘을 회복한다면, 1회차와 비슷한 방식으로 다시 한번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체할 수 없는 역할이고 낙원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은솔이는 어떨까?
고민해봤지만, 역시 우리와 함께 내려가야 할 것 같다.
2급 이사관이며 송이의 측근 같은 위치인 만큼 지상에서 할 수 있는 역할도 많았지만….
그 이상으로, 은솔이는 괴물이 넘쳐날 심층부에서도 꼭 필요하다.
분명 인간의 정신을 뒤흔드는 괴물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진철처럼 정신 공격에 취약한 동료를 제대로 보호해줄 수 있는 유산은 은솔이의 피리뿐이다.
이렇게 지하로 내려갈 사람이 결정되었다.
간만에 힘쓸 일이 생겼다 싶어 기분이 좋았는지, 진철이가 일어서서 손뼉 쳤다.
“그러면 나, 아리, 누님 이렇게 셋이서 가는 건가? 준비합시다! 야투경 같은 장비는 송이랑 상현 형님이 -”
한 명 빼먹었네.
“승엽이도 가야지.”
“뭣?”
“예?”
그 말에 차진철은 물론이고 옆에 있던 승엽이까지 놀랐다.
아무래도 위험하다 싶은 일에 승엽이가 자연스레 빠질 때가 많았기 때문일까?
혹은, 비교적 최근에 진행한 205호에서 승엽이가 대부분의 일에 불참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봐. 부모 없는 꼬맹이가 위층에 남아서 뭘 하게? 지하에서 살아있는 카나리아 역할을 해줘야지. 조기경보기 역할 몰라?”
정보가 없는 위험한 장소에서 행운만큼 중요한 능력은 없다.
사흘 후, 우리는 오랜 세월 전 결사의 연구원들이 사용했다는 은밀한 장소의 기계식 승강기를 통해 심층부로 내려갔다.
다행히 하강 도중 승강기가 부서지며 뜬금없이 전멸한다거나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
…
…
…
전기가 끊기며 모든 조명이 사라진 세상은 어둠으로 가득하다.
우리가 내려오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을 터.
지금은, 네 개의 불빛이 어둠을 몰아내고 있다.
“진철.”
“아리.”
“은솔.”
“승엽.”
주기적인 생존 신고 타임.
다행히 아직은 다들 멀쩡한 모양이다.
계획할 때만 해도 기괴한 존재가 많으니 빛과 소음을 줄이자고 했었지만, 내려오자마자 불가능함을 알았다.
빛이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한 줌도 없으니 야간 투시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헬멧 상단의 램프를 켜야 했다.
게다가 네 사람이 여기저기 부딪혀가며 걷는 시점이니 소음을 줄이자는 말도 공허한 소리다.
“이, 이건 뭐죠?”
“… 자동차 아닐까?”
승엽이가 가리키는 대상은 질척이는 이끼 혹은 그와 비슷한 무언가가 덮여 있었다.
그러나 녹슨 쇳덩어리의 형상은 분명 작은 자동차를 닮아 있었다.
그때, 은솔이가 경고했다.
“진철, 뒤로 세 걸음.”
“어?”
진철은 뒤로 물러서며 헤드램프로 은솔이 지목한 것을 비추었다.
녹슨 쇳덩어리, 흡사 덫 같은 물건이다.
“이런 게 길가에 있어?”
“길가에 덫으로 잡을만한 게 돌아다녔다는 소리지.”
“…”
은솔이는 잠시 침묵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우리 중 유일하게 야간 투시경을 착용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많은 것을 보는 동료다.
“참…. 이상한 장소네.”
“어떤 면에서?”
“전체적으로 지하 도시 비슷한 장소야.”
“실제로 지하 도시였을 테니까.”
“마치 얼마 전에 멸망한 것 같네.”
“누님?”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시조의 말에 따르면, 낙원 심층부가 상층과 연락이 끊긴지 100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시체가 걸려있어. 뼈가 아니라, 멀쩡히 살점이 남은 덩어리.”
“…”
시체의 살은 100년은커녕 1년도 버티지 못해야 정상이다.
“저 앞쪽, 전방 200m 정도. 가로등 비슷한 게 있는데 거기에 사람이 십자가처럼 매달려있어. 표정을 보니 아주…. 고통스럽게 죽은 모양이네.”
아무리 헤드램프를 켰다지만, 이 어둠 속에서 200m 떨어진 시체의 표정까지 읽어내는 은솔이의 눈이 새삼 놀라웠다.
“그 옆에는…. 아니다. 여하튼, 이제부턴 내가 맨 앞에 설게.”
“누님, 뭔가 움직이는 건 없습니까? 거대한 건물이나?”
“글쎄…. 조금 더 보자. 아직은 잘 모르겠어. 승엽아.”
“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네.”
“예?”
“찍어.”
“어, 어 -”
“생각하지 말고 찍어.”
“오, 오른쪽!”
“그래. 오른쪽으로 가자.”
다른 동료들이 대화하는 사이, 몸을 숙인 채 보호 장갑으로 바닥을 쓸었다.
매끈거리는 점액질의 액체.
무언가 생물의 몸에서 분비된 것 같다.
그리고….
“다들 주의하자.”
동료들보다 조금 더 후각이 민감하기 때문일까?
아까부터 정체 모를 시큼한 냄새가 느껴진다.
문득, 여기서 몇 명이나 살아서 나갈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