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44)
EP.444 444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9)
444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9)
– 김아리
어둡고 차가운 세상.
바람 한 점 없는 창백한 침묵 속에서 동료들 또한 고요해졌다.
모두가 광산에서나 입을법한 작업복을 입은 채 머리 위엔 헤드램프를 장착한 상태다.
마치 어두운 지하 동굴을 탐험하는 것 같다.
중간중간 차진철이 램프 광도를 더 올려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깊은 바다의 막막함을 촛불로 걷어내려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했다.
그때, 모두를 이끌던 은솔이가 갑자기 멈췄다.
“누님?”
“…”
“뭐가 보입니까? 나는 야투경을 껴도 영 보이는 게 없는데….”
문득, 아까부터 느꼈던 시큼한 냄새가 더 강해졌음을 느꼈다.
“…”
“누님?”
“누나? 왜 그래요?”
승엽이까지 질문했는데도 은솔이는 대답 없이 허공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연구소 비슷한 건물이라도 찾았나?
그때, 은솔이가 입을 열었다.
“뭔가 움직이고 있어.”
“네? 괴물입니까?”
“괴물…. 괴물? 그런 건가? 계속 꾸물꾸물 움직이는데. 대체 뭘까?”
꾸물꾸물 움직여?
“잘 안 보여. 조금 더 위에서 봐야겠는데. 진철아, 나 좀 들어줘.”
차진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은솔이의 몸을 들어 올렸다.
몸이 위로 올라가니까 더 잘 보이는 모양인지, 은솔이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게, 우리의 첫 번째 실수였다.
“이제 보입니까?”
“응. 이제 보이네. 뭔가 사람 같기도 한데?”
“사람? 설마 생존자?”
생존자라고?
연락 끊긴 지 100년 지난 지하도시에?
수명은 그렇다 쳐도 식량이나 물을 구할 방법이 없는데?
“하얀 옷을 입은 사람처럼 보이긴 해. 기묘한 수단을 써서 살아남은 연구원일 수도 있지만,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면그냥꿈틀거리는애벌레가계속꿈틀꿈틀꿈틀꿈틀꿈틀꿈틀꿈틀꿈틀꿈틀꿈틀꿈틀꿈틀꿈틀꿈틀꿈틀꿈틀꿈틀꿈틀 -”
“으아악! 누, 누님!”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지랄인데?
불과 몇 초 만에 은솔이가 새파랗게 질린 채 전신을 파들파들 떨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 입에선 희뿌연 거품이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눈알은 좌우로 떠는 모습.
뒤늦게 반응한 차진철이 은솔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진정시키려 했지만, 이미 잠깐 사이에 은솔이는 정신이 나가버렸다.
“으아악! 누, 누나! 이, 이거 무슨 정신 공격 같은데! 은솔 누나, 빨리 피리를 불어서 -”
“이 멍청아! 지금 누님이 쓰러지신 상황이잖아!”
“그, 그래도 피리 불러야 하잖아요! 누나!”
그 순간, 은솔이가 양손으로 자기 눈알을 –
“차진철, 으, 은솔이 손!”
“으악! 누님 갑자기 또 왜 이러는 겁니까!”
손에 얼마나 강한 힘을 줬는지, 잠깐 사이에 눈가에서 피가 줄줄 흐른다.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거야?
설마 눈알을 뽑으려고 했어? 완전히 돌았잖아!
애초에 정신 보호를 담당하던 사람이 은솔이인데, 그 은솔이가 돌아버린 상황이다.
대체 뭘 본 거야?
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이게 말이 되는 –
“서, 설마!”
“아리 누나?”
“은솔이 얘 혹시 마왕을 직접 봤나?”
“마왕은 지하에 갇혀있잖아요!”
“그렇지만 -”
바로 그 순간, 차진철이 표정을 굳히더니 손을 들어 올렸다.
— 짝!
시원하게 뺨을 후려치는 소리.
아주 잠깐, 신음하던 은솔이의 눈이 맑아졌다.
피리를 소환하는 데는 그 잠깐의 맑은 정신으로도 충분했다!
“피, 피리 나왔어요!”
“나왔다!”
가장 강력한 정신 보호 수단, 피리가 나타났다.
나타나기만 했다.
피리를 불어야 할 사람은 여전히 바닥을 나뒹군 상태다.
“누나! 누나! 에잇, 여기에 꽂으면 -”
승엽이가 피리를 대신 들어서 은솔이의 입에 꽂았다.
“불어! 불어요!”
“야 인마! 피리를 입에 꽂기만 한다고 소리가 나오냐?”
“형, 그럼 어떻게 해요!”
“고, 공기를 불어 넣어야 -”
— 삐리리!
그 말에 승엽이가 이번엔 자기가 피리를 들고 공기를 불어 넣었지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상황에 맞는 유산은 나타났는데, 그 유산의 주인이 맛이 간 상태.
어처구니없는 상황 덕분에 우리는 본의 아니게 안식의 피리에 대해 온갖 실험을 하게 되고 말았다.
은솔이 입에 피리를 쑤셔 넣어도 반응이 없다.
피리로 소리를 내야 하는 것 같아서 승엽이가 대신 불어도 반응이 없다.
유산 주인과 접촉해야 하는 것 같아서 은솔이가 피리를 쥐게 한 채 공기만 승엽이가 넣어도 역시 반응이 없다!
“으아악! 반드시 주인이 불러야 해? 판정이 왜 이렇게 빡빡해!”
“이걸 대체 어떻게 -”
“피리 이리 줘!”
다시 한번, 피리 주둥이를 은솔이 입에 꽂은 채 양 볼을 햄스터 볼 당기듯이 늘렸다 줄이기를 반복한다.
어떻게든 은솔이 입을 통해 공기가 피리로 들어가도록!
— 쉬이이
“제발 좀! 이 정도면 대충 소리 났잖아!”
“안 되겠다! 누님 볼을 아예 잡아 뜯을 기세로 -”
“… 됐어.”
“누나!”
됐어? 진짜 된 거야?
피리 소리라기보다는 ‘쉬이이’ 하는 바람 새는 소리 수준이었는데, 정말 그 정도로 뭔가 됐는지 은솔이의 눈이 초점을 찾았다.
지치고 피곤해 보이지만 분명 정상으로 돌아온 모습.
— 리이이~ 라아아!
은솔이는 잠깐 피리를 연거푸 불며 자기 자신을 가다듬었다.
“후우….”
“누님, 대체 뭘 봤길래 -”
“이제 잊었어.”
“네?”
“그냥 희뿌연 형체를 봤다 정도까지만 기억나. 그리고….”
“그리고?”
“건너편에 열차 같은 게 있었어.”
“열차? 그런 게 인제 와서 작동할 리가 – 아하!”
최소 수십 년 전에 멸망한 도시의 열차가 작동할 리가 없다.
하지만, 그 열차의 경로를 따라가면 분명 ‘중요한 시설’이 나타나겠지.
“읍….”
“누님, 괜찮으십니까?”
“눈하고 볼이 엄청 아파. 눈은 내가 찌른 건가? 볼은 뭐야?”
승엽이와 진철이가 동시에 날 바라보았다.
*
15분 정도 이동한 후, 은솔이가 다시 모두를 멈췄다.
“벌써 도착했습니까? 근처에 열차는 없 -”
“열차는 조금 더 가야 해. 지금은 괴물 때문이야.”
“… 누님이 본 꿈틀거린다는 그거?”
“모두 눈 감아.”
“그, 그럼 길은 -”
은솔이는 대답 대신 피리를 들어 올렸다.
“출발하자.”
“…”
진철이는 은솔이의 손을 잡고, 나는 진철이의 손을 잡고, 승엽이는 내 손을 잡았다.
서로서로 손을 잡은 채 맨 앞의 은솔이만 믿고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 라아아아!
귓가를 간질이는 피리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진다.
타락한 힘으로 가득한 대기를 정화하기라도 할 것처럼.
그리고,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다가왔다.
“으읍!”
“신경 쓰지 말고 걸어.”
“네, 네….”
꿈틀꿈틀
꿈틀꿈틀
꿈틀꿈틀
무언가가 계속 꾸물거린다.
“…”
눈을 뜨고 싶어.
당장이라도 눈을 뜨고 꾸물거리는 무언가를 보고 싶어.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존재일까?
너무 궁금해.
꾸물꾸물꾸물!
옆에서 같이 꾸물거리면서 –
— 라아아아!
“…”
관리국에서조차 겪어본 적 없는 기묘한 경험이다.
사람의 마음이 맑은 물이라면, 한쪽에선 시꺼먼 타르를 들이붓는데 다른 한쪽에선 쉴 새 없이 물을 정화하는 느낌.
잠깐, 두 명의 아리가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꾸물거리는 아리와 제발 정신 차리라고 외치는 아리.
“…”
물리적으로 따지면 길어야 5분 정도 아닐까?
그 5분이 50분이나 5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다행히 모든 일에는 끝이 있었다.
“이제 됐어. 다들 눈 떠.”
모두가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눈을 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로 옆에서 꾸물거리는 것 같던 희뿌연 형체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헤드램프의 불빛이 반파된 열차를 닮은 잔해를 비췄다.
“오, 이게 누님이 말하던 그 열차 – 으아악! 누, 누님!”
피, 피, 피.
은솔이의 두 눈에서 피가 흡사 눈물처럼 흐르며 뺨을 붉게 적신다.
승엽이가 하얗게 질린 표정을 지으며 가슴팍에서 함을 꺼냈다.
“도와줘!”
함에서 희뿌연 연기가 튀어나왔다.
처음엔 연기, 다음엔 표정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불투명한 형체.
여기까지가 영혼의 함의 영역이다.
곧이어 붉은 핏방울과 번들거리는 살점, 유백색 뼈가 허공에서 춤추며 유미가 ‘만들어졌다.’
지하도시에서 깨어난 소녀가 입을 열었다.
“나도 야투경좀 줘.”
곧 진철이가 미리 챙겨온 야간 투시경 여분을 유미에게 건넸다.
유미는 이런저런 질문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바로 은솔이에게 다가가 피 흘리는 눈을 살폈다.
“괜찮아?”
“… 좀 아파.”
유미는 한참 동안 손가락으로 은솔이의 눈 근처를 쿡쿡 찔렀는데, 효과가 있었는지 서서히 출혈이 멎었다.
응급처치를 끝낸 소녀는 음울한 기운이 감도는 주변을 살피며 쓴웃음을 지었다.
“여긴 거의 지옥이네.”
“…”
“조금 전에 힘을 꽤 많이 썼어. 안구 자체가 심하게 상한 상태였거든.”
승엽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러면 얼마나 있을 수 있어?”
“앞으로 힘을 얼마나 쓰냐에 달렸지.”
바로 이것이 승엽이가 유미를 평소에 잘 불러내지 않는 이유.
저주의 방 내부에선, 영혼의 함에 담긴 존재에게 일종의 시간 제약이 생겨난다.
기묘하게도 이런 제약은 저주의 방 밖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유산 자체의 성능 한계가 아니라 호텔이 임의로 만든 제약이라는 의미다.
제약을 만든 이유는 짐작이 갔다.
영혼의 함은 본디 두 가지 사용법이 있는데, 호텔 내 NPC의 영혼을 담아 동료로 삼는 길도 있지만 참가자 자신의 영혼을 담아서 유사 불멸자가 될 수도 있다.
시간 제약은 아마도 후자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닐까?
그때, 승엽이가 입을 열었다.
“열차 내부에 노선표 같은 게 있지 않을까요?”
그럴듯한 이야기라 모두가 열차의 잔해를 살피기 위해 들어갔다.
이게, 우리의 두 번째 실수였다.
*
— 빠아아앙!
「승객 여러분, 곧 열차가 출발하오니 자리에 앉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분명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녹슨 금속 잔해에 불과했는데, 들어오자마자 거짓말처럼 멀쩡해진 열차.
전기도 없는데, 그걸 떠나서 밖에서는 한 줌의 빛도 보지 못했는데 당연하다는 듯 들어온 조명!
— 철컹! 철컹!
급기야 열차가 곧 출발할 것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게 씨발 뭐냐아아!”
딱 봐도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진다는 생각이 들자 차진철이 참지 못하고 고함쳤다.
“제발 좀 싸울 수 있는 괴물이 나오든지 하라고! 열차를 부수라는 거야 뭐야?”
— 쿵!
차진철이 고함치며 어느새 닫혀 있는 열차 문을 후려쳤지만, 꼼짝도 하지 않는다.
「승객 여러분, 곧 열차가 출발하오니 자리에 앉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은솔이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제발….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해….”
「우리 열차는 지옥 순환 열차로서 -」
유미가 다급한 표정으로 내 팔을 흔들었다.
“빨리! 너 관리국인가 뭔가 하는 조직 요원이라며!”
“… 그래서?”
“뭔가 해! 비밀 도구 없어?”
“…”
얘는 또 뭐래?
그 말 하는 넌 마녀잖아?
“너야말로 비밀 마법을 – 이건 또 뭐야?”
— 쿠오오오!
코를 찌르는 악취와 괴성.
명백히 인간이 아닌 존재가 뿜어내는 이질적인 공기.
모두의 시선이 ‘무언가’가 다가오는 열차 뒤 칸을 향해 움직였다.
— 끼이익!
천천히 문이 열리고, 차진철은 코웃음을 터트리며 다가갔다.
“그래, 씨발 한번 붙자! 죽을 때 죽더라도 한번 싸우기나 하자고!”
기묘하게도 지금 차진철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차피 죽음이 끝이 아닌 호텔이잖아?
탈출은 가인이가 알아서 하지 않을까?
죽을 때 죽더라도 주먹 한번 휘두르고 죽으면 때깔이라도 곱지!
「이번 역은 회 뜨기, 회 뜨기 역입니다. 고객 여러분은 옷을 벗고 맨살을 보여주세요.」
“이 변태 새끼들이 또 뭐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