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45)
EP.445 445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10)
445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10)
– 김아리
「이번 역은 회 뜨기, 회 뜨기 역입니다. 고객 여러분은 옷을 벗고 맨살을 보여주세요.」
“이 변태 새끼들이 또 뭐라는 거야?”
차진철이 황당하다는 듯 외치던 때, 나는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전의 ‘꾸물거리는 하얀 형체’와 열차에서 들려오는 ‘이번 역은 회 뜨기 역입니다’하는 안내까지.
둘 다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 아니야?
굉장히 유명한 일본 쪽 도시 전설이잖아!
첫 번째 것은 ‘쿠네쿠네’고 두 번째 것은 ‘원숭이 꿈’이다.
희미하게 괴담의 내용 또한 떠올랐다.
“이게 원숭이 꿈이라면!”
“무슨 꿈? 아리 너만 아는 소리 하지 말고.”
“문 너머에 칼을 든 괴물이 있을 거야! 그 녀석들이 -”
— 끼이익!
뒤 칸의 문이 열렸다.
과연, 원숭이 꿈의 내용대로 괴이한 고깔모자를 쓴 난쟁이가 나타났다.
장난기 어린 잔혹한 표정과 넝마 조각 같은 너저분한 옷.
양손에는 시퍼렇게 빛나는 날붙이까지!
“흥! 조막만 한 칼 하나 있다고 겁먹을 줄 아냐!”
기세등등한 차진철은 물론이고 승엽이조차 그리 겁먹지 않은 기색이다.
고작해야 칼 든 난쟁이들 몇 마리 봤다고 겁먹을 시기는 지났잖아?
게다가 우리는 맨몸으로 온 게 아니다.
— 탕! 탕!
승엽이가 벽으로 붙은 사이, 나와 차진철이 낙원에서 가져온 소총의 방아쇠를 연신 당겼다.
핏덩이로 변하면서도 히쭉거리는 난쟁이들이 혐오스럽긴 했지만, 소총의 위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아까 뭐라고? 무슨 꿈?”
“원숭이 꿈.”
“별거 아닌데? 총알이 아깝다.”
“총알은 확실히 아깝긴 하네. 이건 애초에 꿈이니까 싸울 필요가 없는 -”
「다시 한번 안내 말씀드립니다. 이번 역은 회 뜨기, 회 뜨기 역입니다.」
“…”
“…”
끝이 아니었다.
열차 전체에서 철컹거리는 소음이 나는가 싶더니, 또 뒤쪽에서 고약한 냄새와 함께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괴물이…. 또 오는 것 같은데.”
분명 이번엔 더 큰놈이다!
“다들 주목! 이건 꿈이야. 우린 지금 악몽에 빠진 상태라고!”
“꿈? 아, 그래서 아까부터 원숭이 꿈이라고 했냐? 그, 그러면 깨야 하냐? 어떻게 깨지?”
정체불명의 악몽에 빠진 채 허우적거리는 경험을 불과 얼마 전에 했기 때문일까?
동료들이 기민하게 반응했다.
‘이것이 꿈이다’라는 사실을 뇌에 때려 박기 위해 다 같이 이른바 RC 체크(Reality Check)를 시작한 것!
서로서로 손가락을 기괴한 각도로 꺾거나 코를 막고 숨을 쉬며 ‘현실에선 불가능한 동작’을 하느라 난리가 났다.
RC 체크 자체는 초자연현상을 자주 겪는 관리국 요원들도 쓰는 방법이니, 대응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두 번이나 부러트렸는데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재생하는 차진철의 손가락과 코를 막았더니 피부호흡을 시작한 유미에게 – 얘는 대체 몸에 무슨 짓을 해놓은 거야?
의도치 않게 모두가 서로의 ‘괴물 같음’에 감탄하는 시간이 지나간 후, 다 같이 표정이 굳었다.
“아무리 우리 몸이 특이하다 해도, 이렇게까지 깨지 않는 게 정상이냐?”
“… 아니야. 그냥 이 괴담, 원숭이 꿈의 내용이 문제야.”
“내용이 어떤데?”
원숭이 꿈 괴담에서 ‘화자’는 꿈임을 자각하면 자유롭게 꿈에서 깰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악몽에 휘말린 화자는 쉽게 깨어나지 못했다.
“… 괴담 내용 속에 ‘꿈인 걸 알아도 깨어나기 힘들다’가 포함되어 있어.”
“이런 씨발!”
「다시 한번 안내 말씀드립니다. 이번 역은 회 뜨기, 회 뜨기 역입니다.」
다시금 들려오는 불길한 안내문.
결국, 유미가 긴장한 표정으로 승엽이의 손을 잡았다.
“에? 유, 유미야?”
“꿈에서 깨려면 충격요법이 필요한 모양이네. 신체적으로 평범한 사람의 손가락을 꺾으면 다를지도.”
“어? 어?”
“꺾을게.”
“어어어! 이, 이건 아닌 -”
“왕자님, 먼저 깨어나서 우릴 깨워줘요.”
“으아아악!”
소녀가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가여운 승엽이의 손가락을 부러트리려는 순간.
갑자기 뒤쪽에서 밝은 빛이 나타나며 은솔이가 바닥에 픽 쓰러졌다.
“에엑? 누나?”
“뭐야? 야! 아리야! 누님이 왜 쓰러진 거냐?”
“괴물이 아직 우리 칸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대체 무슨 -”
— 꼬옥!
“어?”
누군가 날 강하게 꼬집는 느낌.
곧 진철이와 승엽이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뺨을 어루만졌다.
분명히 나는 여기 있고 누구도 날 건드리지 않고 있는데, 명확히 느껴지는 꼬집는 감각.
이건 그러니까….
은솔이가 깨어난 것이다.
‘다들 좀 일어나!’
…
“아.”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녹슨 쇳덩어리의 잔해 틈새에서 깨어났다.
은솔이는 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을 하나하나 깨우고 있었다.
“은솔이 너, 방금 어떻게 깼어?”
조금 전, 우리는 꿈에 빠졌음을 알면서도 쉽게 깰 수 없었다.
‘꿈인 줄 알아도 쉽게 깰 수 없다’ 까지도 ‘원숭이 꿈’의 내용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솔이는 어떻게 깨어났지?
“나비의 힘으로.”
“호접몽?”
“꿈의 내용 자체가 깨어나기 힘든 꿈이라 문제라며.”
“맞아.”
“그래서 나비를 내 몸에 넣어서 악몽의 내용을 바꿨어.”
“어떤 내용?”
“빌딩에서 떨어지는 꿈. 머리가 바닥에 부딪히는 순간 깼어.”
새삼스럽지만, 은솔이도 관리국 요원 다 된것 같다.
*
행운의 주인이기 때문일까?
원숭이 꿈 덕에 고생하긴 했지만, 열차 내부를 확인해보자는 승엽이의 의견은 성공적이었다.
정말로 열차 내부에 반쯤 삭은 노선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 말도 안 돼. 이건 그냥 종이잖아? 지하랑 연락 끊긴지 100년 넘었다며?”
은솔이 말대로 이상한 일이긴 했지만, 어찌 됐든 노선표는 여전히 알아볼 수 있는 상태였다.
덕분에 우리는 어둠으로 가득한 지하도시에서 나아갈 방향을 알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선로를 따라가되, 선로가 이리저리 갈라질 때는 노선표를 참고하면 된다.
“아까 은솔이가 발견했던 흰색 형체는 ‘쿠네쿠네’라고 해. 조금 전의 열차는 ‘원숭이 꿈’이고. 둘 다 일본 쪽 도시 전설인데, 굉장히 유명하지. 들어본 사람 있어?”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서로 살아온 세계가 다르기 때문인지, 단순히 호텔에 들어오기 전엔 이런 도시 전설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그때, 은솔이가 쓴웃음을 지었다.
“쿠니쿠니? 그건 모르겠지만, 저건 알겠어.”
“저거?”
“저거.”
1분쯤 지나자 은솔이가 말한 ‘저거’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어둡고 탁한 지하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성.
그녀는 ‘빨간 마스크’를 착용한 채 나타났다.
차진철이 앞으로 나섰다.
“호호호…!”
“…”
“저기요…. 아저씨. 내가 -”
“예쁘냐고?”
“…”
“예쁘냐고? 그거 묻는 거 맞지?”
“내가 예쁘니?”
“아니? 존나 못생겼는데?”
“뭐어어 -”
— 쿵!
“거울을! 거울을 봐라 이년아! 니 흉악한 면상을 -”
앞에서 우습지도 않은 드잡이질이 벌어지는 사이, 나는 은솔이와 대화를 이어갔다.
“쿠네쿠네, 원숭이 꿈에 이어서 빨간 마스크까지. 너무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상해? 내 말은, 가인이가 ‘마왕’과 붙어본 경험을 말해줬잖아.”
“무궁한 충동의 소용돌이, 악의적인 상상의 집합.”
“그래. 그런 느낌이었지. 마왕은 인간의 끔찍한 상상을 마법처럼 부리는 존재인 것 같아. 네 말대로 유명한 도시 전설이라면 현실로 불러낼 수 있지 않을까?”
“은솔아, 나는 마왕이 이런 짓을 할 수 있어서 놀라는 게 아니야.”
“뭐?”
“이 세계, 지금이 몇년대지?”
낙원의 역사에 따르면, 약 180년 전 알려진 세계가 파멸했다.
이 세상은 지구의 비틀린 미래이니 현시점은 약 2200년대라는 의미다.
그제야 은솔이가 내 말을 이해했다.
“원숭이 꿈, 쿠네쿠네. 이런 괴담이 유명했던 건 2000년대일 테니까…. 낙원 시점에선 무려 200년 전에 유명했던 이야기겠네. 이 정도면 완전히 고전의 영역인데?”
“왜 ‘요즘’ 괴담이 나타나지 않은 걸까? 당연히 낙원에도 디스토피아적 현실에 걸맞은 온갖 도시 전설이 만들어졌을 텐데?”
“…”
장담할 수 있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 낙원의 사람들은 저런 괴담이 뭔지도 모른다.
고작해야 인터넷 어딘가에서 창작되어 떠도는 이야기 따위가 수백 년 후까지 남아있을 리 없으니까.
대체 이 지하도시에선 왜 수백 년 전 괴담이 뒤늦게 현실화한 걸까?
“이거는 뭐 겁나 약하네! 출발합시다!”
문득, 지하에 처음 들어왔을 때 발견한 이상한 점이 떠올랐다.
연락이 끊긴지 100년이 넘었는데 불과 몇 주 전에 죽은 것처럼 살점이 남아있던 인간의 유해.
조금 전에 발견한 여전히 내용을 알아볼 수 있는 종이로 된 노선표.
수백 년 전 괴담이 뒤늦게 나타난 지하도시.
“… 알듯 말듯 한데.”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466일 차
현재 위치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주여….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낼 수 있게 하시옵고 -’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감사의 말씀을 -’
‘선지자께서 교단을 이끄시는 영광의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 기쁩-’
매시간, 매분, 매초.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찬양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 목소리가 내 정신을 뒤흔들지 모른다는 상현 선생님의 말씀에도 일리는 있었지만, 어찌 됐든 ‘한가인 교단’이 무척 번창하고 있음은 명확하다.
신성한 태양도 언젠가부터는 묵직한 무게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영혼 자체를 바친 게 아니라 신앙만 바쳤기에 충전이 끝난 상태는 아니지만, 소소한 기적 정도는 어렵지 않게 일으킬 수 있는 단계.
훌륭한 성과다.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료들 또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송이는 죽은 시장 이상으로 도시를 철두철미하게 통치 중이다.
주기적으로 불굴의 이성에 이런저런 명분으로 잡아들인 ‘반동분자’를 바치는 일도 놓치지 않았다.
선생님과 엘레나 또한 최선을 다했고, 덕분에 나와 송이는 도시를 위와 아래에서 끊임없이 집어삼켰다.
그래, 여기까진 좋아. 좋은데….
진짜 큰일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엄청난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 상태창에 따르면, 지금은 466일 차야.”
“우리가 206호에 언제 들어왔죠?”
“380일 차. 방에 들어온 지 86일이 흐른 상태지.”
“… 동료들이 지하에 간 게 언제죠?”
“400일 차인가 그랬지.”
동료들이 지하로 떠난 지 두 달이 넘게 흘렀다.
“다들 살아있어요?”
“놀랍게도 전원 생존 상태야.”
“그, 그럼 왜 연락도 없고 나오지도 않아요?”
“그러게.”
206호의 제목은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이다.
이제, 마왕의 부활까지 14일 남았다.
“가인 오빠. 우리, 진짜 큰일 난 것 같아요.”
“… 나도 알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