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46)
EP.446 446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11)
446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11)
– 이은솔
선로를 따라 걸어갈수록 도시는 점점 살아있는 악몽처럼 변해간다.
들끓는 괴물과 어딘가에서 쉼 없이 들려오는 신음, 그리고 조명이 켜있는 건물들은 여러 가지를 시사했다.
– 작고 나약하다.
어느 시점이었을까?
우리는 지하도시의 가장 큰 비밀을 자연스레 알아챘다.
낙원 심층부는 시간의 흐름이 지상과 다르다.
이렇게 생각하면 모든 의문이 손쉽게 풀린다.
시체에 살점이 남아있는 이유?
종이로 된 노선표가 여전히 멀쩡한 이유?
수백 년 전 괴담이 뒤늦게 튀어나온 이유?
단순하게 지하에선 아직 시간이 그리 오래 흐르지 않았을 뿐이다.
천기누설이 경고했던 ‘날짜 확인’의 문제는 시장의 회귀 때문만이 아니었던 셈이다.
– 미천하며 벌레와 같다.
또 한 가지 의문도 손쉽게 풀렸다.
지금 내 어깨 위에서 보들보들한 깃털로 비비적거리는 페로에 관한 이야기다.
송이가 없으니까 내가 엄마 같은 걸까?
날 송이 대체로 생각하는 것이라면 미묘하게 불쾌한데.
이 귀엽고 똑똑한 새가 ‘자신의 위치’를 설명하지 못했던 이유 또한 간단하다.
‘낙원 심층부’의 존재 자체를 모두가 206호에 다시 들어온 후에야 알았으니, 페로도 자신의 위치를 몰랐을 뿐이다.
– 비참한 인생.
자질구레한 이야기는 각설하고 중요한 부분에 주목하자.
첫째, 어처구니없게도 지하도시는 ‘아직’ 멸망하지 않았으며 멸망은 현재진행형이다.
둘째, 내 정신은 점점 병들어가고 있다.
*
— 따다닥!
날개를 부딪치며 내는 불쾌한 소음.
아까부터 주변을 날아다니는 괴생물체, ‘침묵의 도살자’가 자기들끼리 소통하며 내는 소리다.
아리의 다급한 설명에 따르면, 시각이 없고 극도로 예민한 청각을 통해 사냥감을 찾는 괴물이라고 한다.
저 괴물이 내 팔을 뜯어가기 전에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물론, 하늘에서 벼락같이 날아들었으니 아리를 탓할 문제는 아니다.
진철이가 아니었으면 팔이 아니라 머리를 뜯어갔겠지.
유미의 고마운 응급처치 덕에 출혈은 물론이고 통증까지 사라졌지만, 과도한 마법 사용의 대가로 그녀는 사라졌다.
또, 저 괴물들 때문에 아까부터 피리를 쓰지 못한 채 도시를 꿰뚫어 봐야 했다.
그래서일까?
아까부터 시야 한편에 이상한 문자가 보인다.
– 이룰 수 없는 이상.
뻐끔뻐끔.
아리가 입 모양으로 ‘몇 마리 있냐?’라고 묻는다.
이럴 때는 할아버지가 쓰러져 대화창이 사라진 게 참 아쉽네.
검지, 중지, 약지. 이렇게 셋을 피자 아리가 끄덕였다.
— 따다닥!
그새 한 마리 늘어서 새끼손가락까지 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눈이 없는 놈들이라 헤드램프를 끌 필요는 없었다.
반쯤 무너진 선로의 외벽 틈새로 고개만 빼꼼 내밀어 바깥을 살폈다.
희뿌연 빛과 기이한 진동을 뿜어내는 거대한 건물.
기이하게도 이 ‘빛’은 나 말고는 아무도 볼 수 없었다.
노선표에 따르면 ‘연구소’라고 한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다.
바로 그때!
— 고오오오!
천지를 뒤흔드는 아득한 울음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강대한 충동을 느꼈다.
– 실패한 꿈.
절망, 고통, 슬픔, 후회, 불안, 공포, 혼란, 분노, 걱정, 회의, 두려움, 혐오, 증오, 허무함, 비참함, 우울함.
인간의 두뇌가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부정한 감정의 집합이 흡사 폭탄처럼 뇌리를 후려친다.
죽고 싶다.
보답 없는 노력, 비천한 인생, 나약한 –
어렵겠네.
이 정도의 충동은 피리의 도움 없이는 견뎌낼 수 없어.
딱 하나의 문제가 있다면….
피리는 소리가 난다.
그래서 나는 웃었다.
“아하하하!”
결정을 내렸으니, 더 이상 침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예 눈알이 뒤집힌 채 기절하려 하는 승엽이와 진철이, 그와 달리 유일하게 상황을 이해한 아리.
– 피할 수 없는 죽음.
“나도 알아, 안다고!”
다시금 피리를 쥐었다.
— 라아아아!
나는 여기까지다.
*
– 김아리
— 쿠르릉!
천둥과도 같은 폭음이 하늘을 뒤흔들었다.
피리를 불어 소음을 낸 대가로 침묵의 도살자에게 잡혀간 은솔이가 허공에서 수류탄을 터트린 것.
무슨 영화에서나 나올만한 장면이다.
“키야~! 누님 거참 멋있게 가시네!”
차진철의 정신 나간 말에 잠시 얘 혹시 돌아버린 게 아닌가 당황했다.
언젠가부터 차진철은 ‘전투’에 관해 이상할 정도의 집착을 보이곤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지금 이 말은 진짜 미친놈 같았어.
투쟁심을 강조하는 후원자의 영향일까?
아니면 호텔에서 드러난 본연의 모습?
어느 쪽이든 새삼스레 따질 일은 아니다.
괴물이 무섭다고 뒤에서 덜덜 떠는 것 보다는 100만 배 나으니까.
“달리자!”
물론, 그 말 하기 전부터 다 같이 달리고 있었다.
지금처럼 은솔이가 괴물들의 이목을 끌며 죽은 타이밍이 아니라면 뛰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 아리야!”
어느새 승엽이를 허리춤에 낀 채 차진철이 말했다.
“아까! 지하의 시간이 이상하다는 말 나왔을 때부터 한 생각인데! 지하의 일은!”
지하의 일은?
“속도가 중요해! 지금처럼 괴물들과 드잡이질할 시간이 없어!”
“나도 알아.”
“다음번에 올 때는!”
“다음번 이야기는 나가서 해.”
차진철이 하려는 이야기는 나도 알고 있다.
지하도시의 시간이 지상과 다르다면, 지하의 일은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
괴물하고 하나하나 싸우는 게 아니라 무시하고 빠르게 목적지로 가야 한다는 뜻.
이걸 알았다 한들 이제 와서 뭘 어쩌겠어?
기동성이 부족한 은솔이나 승엽이는 말할 것도 없고, 차진철도 땅을 걷는 이상 각종 지형지물에 얽매이는 데다가 대놓고 길을 막는 괴물과의 싸움을 피할 수 없다.
다음에 지하에 또 온다면 –
“하늘을 날 수 있어야 해!”
“안다니까?”
하늘을 날 수 있는 사람이 와야 한다.
복잡한 지형지물이나 대다수 괴물을 날아서 피할 수 있는 사람이!
“너는 날 수 있잖아!”
신성한 태양을 충전한 후의 가인이.
비행 괴물을 만들어낸 엘레나.
그리고 윙 부츠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나.
나는 지금도 비행할 수 있다.
“하늘에도 괴물 있는 것 안 보여?”
“누님이 수류탄 까서 여럿 죽였잖아.”
“남아있는 놈들도 많아.”
다만, 비행하면서 싸울 자신이 없을 뿐이다.
찰나의 순간, 차진철이 어딘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생각이 떠오르긴 했는데 본인도 확신이 없는 분위기.
— 콰광! 우르릉!
“요호호! 오늘은 축제다!”
기다렸다는 듯, 외벽을 부수며 나타난 해골 선장.
선장의 손에는 콘크리트 건물이라도 단박에 자를듯한 거대한 시미터가 들려 있었다.
“병아리 친구들 안녀엉!”
또! 또! 또!
가뜩이나 뒤틀린 시간의 흐름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괴물이 진로를 방해한다.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
“안 되겠다. 확신은 없지만, 그냥 하자.”
갑자기 차진철이 쓰게 웃으며 승엽이를 밀어서 내 쪽으로 보냈다.
“뭐야? 무슨 -”
“승엽이 들고 같이 날아가.”
“…”
“윙 부츠 출력으로 두 사람은 무리냐?”
“본래는 1인용 탈출 도구지만, 나랑 승엽이는 가벼우니까 이렇게 둘이면 어떻게든 될지도.”
“다행이네. 내가 던져줄게. 승엽아. 아리에게 매달려라.”
“어? 어? 누, 누나 괜찮을 -”
“페로 너도 그냥 가라.”
— 삐이익!
당황하는 승엽이를 등 뒤에 매달리게 한 후, 차진철을 바라본다.
“요호호! 병아리 친구들! 선장님을 대놓고 무시하면 못써요!”
차진철은 흡사 투포환 선수 같은 포즈로 나와 승엽이를 들어 올린 후 –
“이랴아아압-!”
날았다!
윙 부츠랑 상관없이 순수한 차진철의 힘으로 거의 20M는 떠올랐다!
놀란 해골 선장이 칼을 뻗으려 했지만, 곧 차진철이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악!”
승엽이의 비명이 귀를 마구 후벼판다.
“천운!”
“으아아악!”
순간적인 가속도가 너무 강했는지, 승엽이는 그새 의식을 반쯤 잃은 상황.
천운은 필요한 순간엔 저절로 작동하는 힘이니 상관없지 않을까?
그렇게 믿고 날았다.
— 끼에에엑!
고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하늘의 괴물들은 그냥 무시했다.
나는 ‘인간형 행운 방패’를 장착하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
— 철퍼덕!
혼란스러웠던 비행의 끝은 추락이었다.
새삼 다시 느꼈지만, 윙 부츠는 1인용 탈출 도구였다.
나와 승엽이의 체중이 가볍다고 해도 두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건 굉장한 무리수였다는 의미다.
그 증거가 지금 등 뒤에 남아있다.
“허어억!”
— 철컥!
간신히 숨을 고르며 몸을 일으키자 차가운 금속음이 들려왔다.
“누구냐! 신분을 밝혀라!”
시간의 흐름이 다른 지하, 멸망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일.
그랬기에 도시의 핵심부에 도착하자 아직도 군인이 남아있었다.
“드, 등 뒤에 시체는 뭐냐!”
“…”
험난한 여정 끝에 죽음을 맞이한 동료의 시신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 삐이이!
함께 날아온 페로도 슬피 울며 승엽이의 머리카락을 한 가닥 뽑았다.
뭐라고 말해야 연구소 내부로 들여보내 줄까?
“아이라바타.”
아이라바타는 지금은 메이라는 이름을 쓰는 시조 혹은 용사가 과거에 썼던 이름이다.
그녀의 정체는 종말 전 세계를 지켰던 이성의 결사의 구성원이다.
“저는 아이라바타의 후계자입니다.”
“증거는 -”
군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끝에서 뻗은 붉은 소용돌이가 연기처럼 주변을 감쌌다.
초능력은, 때로는 그 무엇보다 확실한 신분증이다.
“… 들어오시오.”
*
“23번 구역 폐쇄 절차 실시! 실시!”
“17번 구역 격리 실패!”
“4번 구역에서 마왕 감염 확인!”
사방에서 비명 같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폐쇄, 격리 실패, 감염 확인.
단어만 들어도 느껴진다.
이 연구소는 파멸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극도로 뒤틀린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외부에서 수 백 년이 흐르는 사이, 지하에선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던 것.
군인들은 나를 연구소 중앙의 거대한 방으로 안내했다.
그곳에서, 나는 마침내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만났다.
“… 엄마.”
“뭐?”
그녀는 날 알아보지 못한다.
아직 봉인이 풀리지 않아서 시나리오상의 인격이 남아있기 때문일까?
“아닙니다. 당신이 이곳의 책임자인가요?”
‘미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는 결사의 위계 9, 메이가스(대간부) 계급이야. 소장이라고 불러. 너는? 아이라바타가 모든 걸 물려줬니?”
잠깐의 문답에서 중요한 단어, ‘물려줬니?’가 나왔다.
마치 아이라바타가 지금쯤이면 죽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 이곳과 지상은 시간의 흐름이 다릅니다.”
“알아. 지금 지상에선 얼마나 흘렀지? 대충 150년?”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죠?”
미로가 피식 웃었다.
“저것 때문이지.”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새하얗게 빛나는 황금빛 덩어리가 있었다.
그것은 ‘동전’을 닮아 있었다.
“… 원 모어 찬스?”
“원 모어 찬스? 밖에선 그렇게 부르니? 한 번 더 기회를 준다라…. 어울리는 이름이네.”
소장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바깥의 물건은 원본을 어설프게 복제한 열화품에 불과해. 범위 제한이 심하지 않아?”
돌릴 수 있는 시간적 범위는 길어야 한 달.
공간적 범위는 낙원 내부.
“이게 진짜야. 그리고….”
그녀는 흔들림 없는 눈빛을 뿜어내며 말했다.
“우린 세상을 지킬 수 있을 거야. 분명히.”
“…”
나는 소장의 믿음이 실패할 것임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