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48)
EP.448 448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13)
448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13)
– 김아리
지상에서 시장과 시조로부터 얻은 정보에 따르면, 그동안 마왕을 억누른 힘은 크게 두 종류이다.
첫째는 전 세계에 흩어진 마왕 조각 위에 건설한 도시 내부의 인간 그 자체다.
둘째는 그 모든 도시 지하에 결사가 만들어둔 불굴의 이성이다.
여기서 첫째, 도시의 경우 단기간에 건설할 수 없으니 최초에 마왕을 억누른 힘은 아니다.
이성의 결사는 도시를 건설하기 전에 어떤 방법으로 마왕을 잠재울 수 있었는가?
나는 이 정보를 얻기 위해 낙원 심층부에 들어왔으며, 마침내 소장의 정신 속에서 그 답을 알아냈다.
지상의 시조 혹은 시장은 그 존재조차 몰랐던 결사의 진정한 저력.
시간을 돌려 우리를 경악하게 했던 시장의 원 모어 찬스조차 ‘열화품’ 취급하는 위대한 기적.
시간의 지배자가 바로 그 답이었다.
현대 물리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우주에서 가장 긴 수명을 가진 블랙홀조차 언젠가 증발하는 필멸적 존재라고 한다.
재미난 사실은 블랙홀의 수명은 ‘상대적’이라는 것.
외부의 관측자가 보기엔 수천억, 수조의 시간조차 찰나처럼 느껴질 만큼 영겁의 시간을 버텨내는 존재가 블랙홀이지만, ‘블랙홀의 관점’에선 다른 이야기란다.
블랙홀은 우주에서 가장 극심한 시간 왜곡을 만들어내는 천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블랙홀의 관점에선 10분 만에 폭발적으로 증발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극심한 시간 왜곡이 블랙홀의 10분을 바깥의 영원으로 바꾸었을 뿐.
블랙홀에겐 10분이 우리에겐 영겁의 시간으로 느껴질 수 있다.
블랙홀에겐 폭발적인 현상이 우리에겐 우주에서 가장 느린 현상으로 보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시간 왜곡이다.
또한, 시간의 지배자가 최초에 마왕을 억누른 원리가 바로 이것이다.
불굴의 이성에 매일 10만 명씩 바친다고 치자.
엄청난 숫자 같지만, 전성기 지구 인류가 80억에 달하고 매일 태어나는 인간의 수는 30만에 달한다.
그러니 관리국이나 이성의 결사 같은 조직이 보기엔 충분히 가능한 숫자다.
문제는 매일 10만의 인신 공양은 마왕을 억누르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치였다는 것.
이성의 결사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최소’ 매일 5,000만 이상의 인간을 바쳐야 했다.
매일 5,000만 명?
이건 인류가 은하계를 정복해서 인구가 100조쯤 되는 게 아니고서는 감당할 수 없는 숫자다.
그래서 이성의 결사는 마왕 조각이 떨어진 장소 일대의 시간을 뒤틀었다.
블랙홀의 10분이 우리에겐 영원인 것처럼, 마왕의 하루가 인간에겐 10년이 될 수 있다면.
인간이 10년 동안 희생한 1억의 영혼으로 빚어낸 압력이 마왕에겐 단 하루 동안 가해질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인류를 존속시키고자 했던 결사의 소망은 이루어졌다.
물론, 시간의 지배자는 끊임없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으므로 위 방식은 일시적인 평온함에 불과했다.
시간의 지배자는 결사에 도시를 건설할 시간을 벌어준 것이다.
*
“아리야! 제발! 뭔가 알아낸 거 맞지?”
“어? 어?”
“당장 해! 지금 당장!”
가인이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깨달았다.
바깥세상의 시간은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대체 지금이 며칠 차일까?
80일 차 정도면 얘가 이렇게까지 겁에 질렸을 리가 없는데!
90일 차, 아니, 95일 차 이후다. 어쩌면 –
갑자기 가인이가 눈을 크게 뜨며 시선을 허공에 고정했다.
올빼미가 무슨 조언을 줬나?
그때, 가인이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게 무슨 -”
— 뭉클!
부드럽고 따뜻하다.
피비린내가 나는 게 좀 아쉽지만, 어딘가 달콤한 향기가 –
“으악!”
“으아앗!”
“뭔데 대체!”
“후, 후원자가 당장 미로 몸에 들어가라고 해서 -”
“왜 만졌어!”
“이, 일어나려고 아무거나 잡았는데 그게 하필 -”
지, 진정하자.
이 멍청이가 조언 때문에 당황한 채로 정신없이 미로 몸에 들어가서 허우적거렸을 뿐이야.
“… 출발이나 하자.”
미로의 몸에 깃든 가인이와 나는 낙원 심층부에 결사가 만들어둔 ‘도시 제어 시스템’을 향해 출발했다.
문득, 조금 전에 벌어진 당황스러운 일이 나와 미로 사이에 벌어진 일인지, 나와 가인이 사이에 벌어진 일인지 궁금해졌다.
*
“크아악! 17, 17번 구역에서 -”
사방에서 결사의 연구원들이 비명을 지른다.
그 사이, 복도를 달리던 가인이가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이게 무슨 황당한…!”
“벌써 소장의 기억을 읽었어?”
소장의 몸에 빙의한 지 10초 정도 흐른 것 같은데, 가인이는 벌써 깨닫기 시작했네.
아무리 마도서가 이런 쪽에 특화된 힘이라지만, 오래된 피와 속도 차이가 너무 심해서 순간적으로 질투심까지 느꼈다.
가인이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왕을 최초에 어떻게 봉인했는지는 알았어.”
“빠르네.”
“시간의 지배자로 시간 지연 현상을 일으켜서 마왕을 잠재운 후, 도시를 건설했다. 이후엔 도시에 모인 수십억 인간의 질량이 마왕을 누를 수 있게 되었으니, 시간의 지배자는 작동을 멈췄어.”
“맞아.”
시간의 지배자는 끊임없이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시조의 말에 따르면, 바깥 기준으로 약 100년 전까진 심층부와 도시 간 교류가 있었다고 하니 그 시기엔 시간 왜곡이 없었겠지.
가인이가 다급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한시가 바쁜데 무슨 대화냐 싶지만, 지금 반드시 해야 하는 대화라는 것도 있기 마련.
“최근 – 낙원 기준으론 한 120년 전 같지만, 심층부 기준으로는 최근에 소장은 또다시 시간의 지배자를 사용했어. 왜지?”
“마왕이 또 날뛰기 시작했겠지. 그래서 최초에 썼던 방법을 한 번 더 쓴 거야.”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예전에 그랬듯이, 낙원의 수십 년을 마왕의 하루로 만들어서 불굴의 이성이 수십 년 동안 만들어낸 억제력을 마왕에게 단 하루 동안 가했을 뿐이다.
가인이가 더 다급하게, 더 빠르게 말했다.
“씨발! 모르겠어!”
“미로 입으로 욕하지 – 뭘 모르겠다는 건데?”
“왜 실패하는 건데? 소장의 기억을 탈탈 털어도 모르겠는데!”
가인이는 소장의 기억을 전부 얻어냈는데도 실패 원인을 모르겠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애초에 소장은 철석같이 마왕을 잠재울 수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인도 성공할 줄 알았는데, 소장의 기억을 뒤진다고 본인도 모르는 이유를 알 수 있겠어?
그러니 우리가 떠올려야 한다.
시간 지연을 통해 마왕을 억누르는 결사의 계획이 첫 번째는 성공했는데 이번엔 실패하는 이유가 뭐지?
우리가 개입하지 않은 실제 역사는 어떻게 돌아갔을까?
이미 발생한, 그러나 결사가 고려하지 못했던 변수가 뇌리를 스쳤다.
시한부 상태임을 본인도 몰랐던 레온 카디로프 시장.
원래 역사였다면, 갑자기 급사하는 바람에 불굴의 이성이 정지했겠지.
이건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시장 직위는 송이가 이어받아서 잘하고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 –
“끼야아아앗!!”
기다렸다는 듯,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비명이 바로 옆에서 터져 나왔다!
“으앗! 미, 미로?! 아니 한가인!”
난데없이 바닥에 주저앉은 가인이가 눈을 까뒤집은 채 입으로 괴성을 토해낸다!
뒤늦게 떠오른 206호의 1회차 관련 기억.
가인이와 엘레나는 지하에서 마왕의 하수인이 된 미로를 보았다.
설마 지금 이 현상 때문에 미로가 마왕의 하수인으로 변하는 거야?
그럼 이건 마왕이 미로를 지배하는 과정 –
어느새 나타난 타르처럼 시커먼 마도서.
가인이는 눈을 부릅뜬 채 마도서를 붙들고 불길한 기운을 뿜어낸다.
찰나의 순간, 그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싸움이 벌어졌다.
불가해한 싸움의 전장이 된 미로의 입에서 거품이 흘러나올 때쯤 승부가 갈렸다.
“후우우…. 됐어.”
“괘, 괜찮아? 너 한가인 맞아?”
“맞아. 다시 출발하자.”
마도서의 힘이 미로의 몸을 강탈하려던 마왕의 힘을 몰아낸 것이다!
… 미로의 눈코입에서 시꺼먼 피가 쉴 새 없이 쏟아진다.
분명 오래 살 수 없겠지.
이 시점에선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만.
조금 전, 소장은 마왕에게 몸을 빼앗길 뻔했다.
원래 역사였다면, 폭주하는 소장이 자기 손으로 모든 것을 무너트렸겠지.
이것 역시 소장이 알지 못했던 ‘두 번째’ 변수였다.
하지만 이것조차 근본적인 실패 원인은 아니다.
*
마침내 낙원 심층부, 도시 전체를 제어할 수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
“…”
소장의 기억을 읽었으니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았으니까.
충분히 각오하고 왔다.
그런데도 막상 제어장치 앞에 서자 나와 가인이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 아리야. 이번에 밖에 나가면 할 말이 엄청 많을 것 같아.”
“그렇겠네. 많은 정보를 얻어냈다는 이야기니까 다행이야.”
“그렇지.”
두 번째 시도의 모든 것이 끝나가는 지금, 장담할 수 있다.
이번 회차에서 우린 정말 많은 것을 알아냈다.
딱 하나만 빼고.
“딱 한 가지를 도저히 모르겠어.”
가인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이 방은 어떻게 해결해야 해?”
“… 그러게.”
눈앞의 낙원 제어장치는 결사가 마련한 최후의 수단이다.
시간의 지배자조차 마왕을 억누르는 데 실패했을 때를 위한 마지막 희망이다.
우리가 이 끔찍한 206호에서 탈출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건 절대 206호의 해결 수단은 아니야.”
이런 방식으로는, 탈출은 가능해도 해결은 절대 아니다. 절대!
가인이가 자신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제어장치에 다가간다.
곧 피투성이가 된 미로의 몸에서 음울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 이성의 결사에 속한 위계 2=9, 대 간부 권한으로 명령한다.”
— 우우웅!
연구소의 최종 결정권자, 소장의 목소리에 반응해 ‘최종 수단’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분명 뼈아픈 희생이 있으리라. 그러나 그 대가는 인류의 존속이니…. 이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많은 이가 죽는다 해도 결코 과도한 희생이 아니다.”
가인이가 즉흥적으로 떠올린 말 같지는 않다.
아마도, 소장이 언젠가 다가올지 모를 참혹한 미래를 위해 준비한 일종의 시동어.
— 쿠르릉!
결사가 준비한 최후의 수단은 별것 아니었다.
새삼스레 상상도 못 한 제3의 수단이 나올 리 있겠어?
그런 게 있었으면 진작에 썼지.
시간의 지배자로 불굴의 이성을 증폭했는데도 마왕을 억누르지 못했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더 많은 제물.’
그리고 – 저주받을 일언(一言)이 흘러나왔다.
“이 시점까지 살아남은 23억 4천만 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리라….”
모든 것이 끝났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군가에겐 약간의 말미가 주어지리라.
그들은 신세계의 아담과 하와로 선택받았으니까.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밝은 섬광이 나와 가인이를 집어삼켰다.
이것이 206호에서의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근데, 이 방은 대체 어떻게 해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