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52)
EP.452 452화 – 휴식일 – ‘꿈의 왕국’ (2)
452화 – 휴식일 – ‘꿈의 왕국’ (2)
– 김아리
“가인 씨, 곧 촬영 시작이니까 올라가죠!”
“네?”
한가인이 꿈에 나왔는데도 전혀 놀라지 않은 채 태연하게 촬영 시작을 말하는 엘레나.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인이가 나오는 꿈을 혼자서도 자주 꿨다는 이야기잖아!
“으앗! 에, 엘레나 얘 진짜!”
“뭐, 뭐야?”
“이리 오기나 해!”
재빨리 가인이를 뒤로 밀치며 내가 대신 다가갔다.
엘레나는 얼빵한 표정을 지었다.
“에…. 어? 아리야? 지금은 -”
— 덥석!
엘레나의 상체를 잡고 이리저리 흔들며 말했다.
“정신이나 좀 차려! 이건 꿈이 아니라 -”
꿈이 아니라고 말하려 했는데, 생각해보니 꿈은 맞잖아?
엘레나의 꿈인데 우리가 멋대로 난입한 상황이니까.
당황해서 어물거리자 엘레나가 기묘한 반응을 보였다.
화내거나 당황하기보다는 뭔가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는 표정!
이거 뭔가 위기 아니야?
— 쿠르릉!
잠시 후,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에 나와 가인이는 말 그대로 압도당했다.
방송국이 허깨비처럼 사라지고 아무것도 없던 평원에 거대한 건물이 솟아난다.
삽시간에 수십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활기찬 분위기로 사방을 걸어 다니는 풍경.
찰나의 생각만으로 천지개벽을 일으키는 이 모습은 정말이지 조물주와 같았다.
물론, 누구나 자신의 꿈속에선 신이다.
“여, 여긴 대체….”
“대학가인데?”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K 대학 과 점퍼를 입고 있는 가인이가 보였다.
“나, 합격하고 몇 번 탐방 와서 잘 알아. 딱 대학가 풍경이야. 아마 엘레나가 한국 와서 본 대학가 아닐 – 으헛!”
— 탁!
나와 가인이는 동시에 말문이 막혔는데, 엘레나의 행동이 평소와 달랐기 때문이다.
외견은 조금 어려졌고, 행동에는 장난기가 깃들었다.
무엇보다도….
“야, 한가인! 바보같이 뭐 하고 있어?”
“에, 엘레나.”
특유의 ‘가인 씨’ 하는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싹 사라졌다.
“빨리 가. 늦으면 웨이팅 엄청 길단 말이야.”
“어, 어?”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처럼 격의 없는 분위기.
그 광경을 보자 무언가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호텔에서 함께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도 여전히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남아있는 게 내심 싫었을까?
“으읏! 야! 아, 아리야! 좀 도와줘!”
달라진 엘레나의 분위기에 당황하며 도와달라고 하는 가인이가 좀 우습긴 했다.
어찌 됐든, 이런 어색한 분위기는 끝낼 필요가 –
— 멍! 멍!
?
— 으르르…! 왈!
???
“아리야아아!”
“가인아, 늦는다니깐? 가자.”
갑자기 뒤에서 튀어나온 승엽이만 한 골든레트리버가 내 옷을 물고 뒤로 끄는데?
이거 우연 아니지?
100% 엘레나가 소환한 꿈속의 파수꾼 이런 것 아니야?
“저 이상한 애는 경찰이 도와줄 테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엘레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 ‘메롱’까지 했다.
뭐랄까, 뭔가 당하긴 당한 것 같은데 상황이 너무 유치해서 화가 난다기보다 웃음이 나오네.
가인이는 뒤늦게 상황을 이해한 것 같아.
“에, 엘레나! 일단 커피숍부터 가요! 커피숍! 근처에 커피숍 있지?”
“어? 있긴 있는 -”
“저 개도 좀 쫓아내고!”
“…”
“나 개 공포증 있다니까요!”
“…”
엘레나는 개를 쫓아내라는 말에는 반응하지 않았지만, 개 공포증이 있다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에는 반응했다.
— 끼이잉!
조금 전까지 날 잡아먹을 것처럼 굴던 골든레트리버가 갑자기 조그마한 강아지로 변했으니까.
강아지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린 채 생각했다.
내가 오래 살긴 오래 살았나 봐.
진짜 별의별 희한한 경험을 다 하고 있잖아!
*
커피숍에 도착한 후, 나와 가인이는 곧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 가인 씨.”
“네, 아리 양.”
“가인 씨, 엘레나를 깨우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아리 양,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관문의 방, 퍼펙트 라이프때도 그랬지만 엘레나는 이런 꿈에서 잘 깨어나지 못하는 편이다.
“아리 양, 그런데 이 말투 좀 재미있지 않았나요?”
“… 내 쪽을 쳐다보지 마세요. 엘레나 ‘님’이 불쾌해할지도 모르니까. 저는 그냥 카페 알바랍니다.”
“아, 으흠. 엘레나, 할 이야기가 있는데 -”
꿈속의 엘레나는 나와 가인이가 편하게 대화하는 걸 기분 나빠했다.
덕분에 나와 가인이는 다시 거대화한 골든레트리버가 날 집어삼키기 전에 괴이한 말투로 돌아가야 했다.
“에헴! ‘가인 님’. 이렇게 노는 게 재밌는지 모르겠지만, 빨리 ‘엘레나 님’에게 할 말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에, 엘레나. 여기, 아리 양을 소개할게.”
“누구죠?”
“… 정신과 의사?”
“의사? 의사가 이렇게 어릴 리가 없잖아요! 그보다 내가 아는 사람 같은 -”
재빨리 엘레나 어깨를 흔들면서 우겼다.
“차별하지 마세요!”
“에? 에?”
“나이 든 사람만 의사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차별이야!”
대충 우기자.
“아, 아니, 차별이 아니라 네 나이면 의대를 졸업했을 리가 없 -”
“의대를 졸업해야만 의사 할 수 있다는 건 차별!”
아, 이건 너무 나갔나?
가인이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한숨 쉬더니 –
— 쿵!
갑자기 탁자를 쾅 내리쳤다!
“야! 엘레나! 그냥 말 좀 들으라고!”
“… 으, 으응.”
와! 세게 나가니까 먹히네?
처음부터 그냥 이렇게 해야 했나?
그리고 가인이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206호에서 엘레나의 기도를 들었으며, 신성한 태양은 엘레나를 ‘신도’라고 판단한다는 것.
여기에 신성한 태양은 본질적으로 신도를 잡아먹는 유산이라는 사실까지.
꿈꾸는 엘레나가 이런 호텔에서나 나올법한 대화를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으응….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흥미롭게도 엘레나는 이 대화를 이해했고, 더 흥미로운 답변을 돌려줬다.
“내가 음, 가, 가인이를 믿고 의지하는 건 사실이지만!”
엘레나는 이 말을 하고서 잠시 얼굴을 붉혔는데, 가인이까지 같이 부끄러운 표정을 지어서 보는 나까지 부끄러워졌다.
“신 비슷한 무언가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 바보도 아니고, 하나님 같은 존재가 왜 호텔에서 고생하겠어?”
“…”
“네가 강림을 썼을 때 굉장한 카리스마를 느끼긴 했지만….”
엘레나는 점차 뒤끝을 흐렸고, 잠시 커피숍이 고요해졌다.
복잡한 상념 속에서 엘레나의 현재 상태를 떠올렸다.
평소와 달리 친구처럼 가인이를 대하는 태도.
내가 친구처럼 가인이를 대하자 숨김없이 드러낸 상당한 질투심.
지금의 엘레나는 ‘과도하게’ 솔직한 상태다.
꿈에선 아무것도 숨길 필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인이를 신적인 존재라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은 ‘절반은’ 진실이다.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엘레나의 문제는 이성이 아닌 ‘본능의 문제’다.
“기, 기도는 왜 한 거야?”
“패트릭을 죽여달라는 것? 그게 들렸을 줄은 몰랐어. 동료가 ‘사이비 교주’ 흉내 내는 상황 자체가 재밌어서 장난스럽게 했던 건데….”
가인이도 순간 할 말을 잃고 머뭇거렸다.
신앙심의 위험성을 경고하려 했는데, 애초에 널 신이라 생각한 적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 상황.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가인아, 아니, 가인 님. 일단 밖으로 나가죠.”
“그, 그러자.”
밖에 나가서 다시 한번 대화해봐야 –
섬뜩한 목소리가 귀를 찌르는 순간, 한 호흡에 세상이 흑백으로 바뀌었다!
말 그대로 꿈의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에서 호러로 바뀌고 있잖아!
“으악! 무, 문아, 열려라! 참깨! 참깨! 열리라고!”
“왜 이렇게 느려!”
— 쿠르릉!
*
혼자 105호에서 깨어났다.
덕분에 꿈의 왕국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즉시 깨달았다.
분명 나와 가인이가 함께 엘레나의 꿈에 들어갔는데도, 내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
‘이동’은 현실에서 그림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만 하는 것 같다.
또, 중간에 여러 사람의 꿈을 거칠 경우, 마지막 사람 옆에서 깨어나는 것 같다.
그러므로 가인이가 깨어난 장소는 아마도….
— 철컥!
105호 문을 열고 나가자 과연, 당황한 표정의 가인이가 문 앞에 있었다.
“너, 엘레나 방에서 깨어났지?”
“… 응.”
“엘레나는?”
“깨지 않게 조심조심 나왔어. 아마 모를 거야.”
“휴우….”
현실은 이미 새벽이다.
다행히 호텔에서 임의로 휴식일을 준 상황이니 오늘 저주의 방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
프런트 쪽으로 걸어가며 가인이가 중얼거렸다.
“엘레나 꿈 완전 무섭네. 마지막에 개 머리가 셋으로 쪼개지더니 -”
“끔찍한 이야기는 그만둬.”
“그래.”
잠시 침묵한 후, 가인이가 다시 중얼거렸다.
“신성한 태양이 엘레나를 집어삼키려 드는 문제 말이지.”
“듣고 있어.”
“이성보다는 본능, 감성의 영역에서 동작하는 것 같은데.”
엘레나가 이성적으로 한가인을 신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강림이 발한 초월적인 카리스마에 압도당한 경험이 문제인 상황.
낮에 깨어있는 엘레나와 대화하겠다고 말하려는 순간, 가인이가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이 현상을 이용할 수 있겠는데.”
“뭐?”
뭘 이용해?
“모르겠어? 우린 신성한 태양과 관련한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고!”
“무슨 소리를 -”
뭘 깨달았다는 거야?
“신성한 태양의 ‘신도 판정’은 굉장히 넓다는 의미야! 주말마다 한가인 교회에 나올 필요 없고, 세례를 받거나 내 연설을 꾸준히 들을 필요도 없어.”
“…”
“유산으로 만들어낸 초자연적인 카리스마에 압도당한 기억. 그 정도로도 충분해!”
“…”
“아, 그래도 기도 정도는 해야 하는 건가? 엘레나도 기도는 했으니까.”
가인이가 하려는 말을 이해했다.
신성한 태양이 인간을 ‘잡아먹는’ 조건은 생각보다 폭넓다.
이 부분을 이용하면, 더 쉽고 빠르게 많은 사람을 집어삼킬 수 있다.
“…”
“이야~! 의외의 소득이네. 다음 회차 때 반영하면 훨씬 효율적으로 유산을 충전할 수 있겠다.”
순간적으로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엘레나가 그렇듯 나 또한 이 남자가 근본적으로는 선한 존재라 믿는다.
때로는, 이 믿음이 정말 내 판단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래. 유용한 깨달음이네.”
해봐야 답이 없는 고민은 멈추는 게 나아.
“가인아, 꿈의 왕국 좀 빌려줘.”
“음?”
“보고 싶은 꿈이 있어서.”
“어엇? 네가? 누군지 물어봐도 돼?”
“미로.”
“미로의 꿈? 나, 나도 좀 궁금한데 -”
“이야…. 너, 진짜 너무 뻔뻔한 것 아니야?”
크게 당황하는 청년을 살짝 놀려줬다.
“널 짝사랑하는 어린 소녀의 마음에 들어가서 뭘 어쩌게? 꿈속의 미로를 마음껏 농락하며 네게 저항할 수 없게 만들어서 -”
“으악! 안 들어가! 안 들어간다고!”
“그러면 꿈의 왕국은 이리 줘.”
“… 알았어.”
“잘 쓰고 돌려줄게.”
“…”
가인이는 살짝 삐진 표정을 지으며 방으로 돌아갔다.
이런 유치한 모습과 신성한 태양에 관해 말할 때 보였던 다소 섬뜩한 모습.
대체 어떤 것이 저 남자의 본질인지 모를 노릇이다.
…
“섬뜩함이라….”
우스운 이야기네.
내 마음을 뒤흔든다?
인간의 도덕에 구애받지 않는 초이성적인 면모?
선인과 악인의 풍모가 뒤섞인 복잡한 인격?
이 모든 면에서 가인이를 훨씬 능가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심한 존재는 따로 있지 않던가.
소원으로 날 빚어낸 존재.
나의 조물주이자 나의 근원.
그리고….
“나의 사랑.”
공허한 단어를 내뱉으며 그림을 강하게 쥐었다.
‘그녀’를 다시 한번 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