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55)
EP.455 455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17)
455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17)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486일 차
현재 위치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아늑한 집무실에 앉아서 계획을 차근차근 정리했다.
2회차에서 내 역할은 교단 운영을 통한 신성한 태양 충전이었지.
3회차에선 어떠한가?
비슷하다.
아직 신성한 태양 충전이 덜 끝났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중대한 변화가 있다면….
“가인 카디로프 님.”
나는, 마왕 교단의 비밀스러운 교주가 아닌 ‘카디로프 일족’이 되었다.
“3시간 후에 연설이 시작됩니다. 준비는 끝내셨는지요?”
“아아…. 걱정하지 말아라. 뒤틀렸던 흐름이 바로잡히고 있나니, 모든 이는 자기 자리를 찾으리라.”
곧, 양복을 입은 남자가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며 나갔다.
보는 눈이 사라지자 역시 공손한 태도로 앉아있던 송이의 자세가 당장 바뀌었다.
“오빠. 방금 그거 무슨 의미죠?”
“나도 몰라.”
“… 뒤틀렸던 흐름이 어쩌고 했잖아요.”
“그럴듯하지? 멋있지?”
“…”
잠시 송이가 말문이 막힌 사이, 화려하고 아늑한 주변 환경을 돌아봤다.
“이야~! 송이 참 좋은 데서 살고 있었네?”
“…”
“이제 이 집은 내 거야.”
“헛소리 좀 그만 해요.”
1회차 때는 광산 노동자 일에 고통받다가 혁명을 일으켰고, 2회차 때는 엘레나 도움을 받아서 괜찮은 집으로 옮겼었지.
“어제, 시장이 의회에 오빠가 카디로프의 숨은 혈족이라고 알렸어요.”
이번 회차에선 앞서와 비교할 수 없는 대단한 신분, ‘가인 카디로프’가 되었다.
도시를 지배하는 독재자의 권세는 유명 배우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기에 가능했다.
참고로 시장은 날 심층부에서 탈출한 이성의 결사 생존자라고 생각한다.
정확히는 마왕과 접촉한 끝에 괴상한 힘을 얻은 결사의 후예라 믿는다.
그런 존재가 낙원의 불행한 광산 노동자 몸을 강탈했다는 것.
왜 이렇게 계획을 180도 틀었나 하면 단순하다.
신성한 태양을 충전하기 위해선 대량의 추종자가 필요하고, 2회차에선 마왕 교단을 접수해서 해결했다.
마왕 교단을 접수하려면 교단의 고위층이 내가 가짜임을 알아채니까 죽여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이번 회차에선 교단을 연구하기로 했으니, 고위층을 마구 죽여선 곤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단과 별개로 추종자를 모을 방법이 무엇인가 연구하다가 조금 해괴한 결론을 얻었다.
따지고 보면 낙원에는 마왕 교단 말고도 유사 종교가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시조 숭배’다.
물론, 도시 사람들이 시조를 신이라 여기진 않는다.
그러나 엘레나가 입증하지 않았는가?
신성한 태양의 ‘신도 판정’ 기준은 생각보다 넓다.
꼭 나를 손짓 한 번에 빅뱅을 일으킨 우주의 전능자라고 믿을 필요 없다.
그냥 유산이 만들어낸 카리스마에 압도당하고, 자신이 이룰 수 없는 일을 내게 기원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이번 회차에서 나는 카디로프의 숨은 후계자이자 시조의 환생을 연기할 것이다.
이 계획은 두 사람이 협조해야 하는데, 시장은 이미 내게 협조 중이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
— 펄럭!
커튼이 휘날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 ‘진짜 시조’가 나타났다.
“… 레온에게 연락받았다.”
“…”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결사에서 왔다는 증거를 보여!”
“우습구나, 아이라바타. 결사에서 네 계급이 무엇이었느냐? 고작해야 위계 3 또는 4 아니었나?”
“하! 멀쩡한 조직도 아니고, 이미 망한 조직의 계급을 새삼스레 따지겠다?”
틀린 말은 아니다.
세상이 망한데다가 잔존 세력은 낙원 심층부에 갇혔으니, 결사는 망한 세력이다.
그렇지만 내가 진짜 결사의 생존자라면, 이런 고압적인 말투를 썼을 것 같다.
비슷한 사람들인 관리국 요원들도 선민의식이 상당한 사람들이니까.
“받아들일 수 없구나. 너와 내가 살아있는데 어찌 결사가 멸망했다 하는가? 결사를 부정하겠다면, 너는 왜 이 긴 세월 고통받으며 도시를 지켜왔느냐?”
시조에게 도시를 지탱하라 명령한 집단은 이성의 결사였다.
그런 네 뿌리를 부정하겠냐는 말에 시조가 당황해 어물거렸다.
그 사이, 재빨리 의자에서 일어났다.
고압적인 태도도 한번 보였고, ‘너와 나’라는 단어로 유대감이 있다는 어필도 했으니, 이젠 ‘존중’을 보일 차례.
“허나, 내가 그대의 역할을 무시했다 여긴다면 사과하지. 아이라바타, 인류를 위한 네 헌신에 감사한다. 결사의 역사에 남은 영웅 중에서도 너처럼 150년을 봉사한 자는 드물 것이니라.”
다음의 일은 내 예상을 다소 벗어났다.
시조는 넋 나간 사람처럼 커튼을 붙잡은 채 덜덜 떨더니 – 결국, 한 방울의 눈물마저 흘리고 만 것.
그녀는 더 이상 내게 결사 출신이 맞냐고 따지지 않았다.
이후로는 평화로운 설득의 시간이 지나갔다.
심층부의 마왕 봉인은 한계에 도달했고 결사 또한 멸망을 피하지 못했다는 사실.
결사가 최후의 수단으로 ‘신성한 태양’을 만들어냈으며, 이것은 인간의 정신을 한데 모아 엄청난 힘을 얻는 도구라는 사실.
‘신성한 태양’으로 마왕을 막아내는 게 마지막 희망이라는 사실.
한참 동안 내 말을 유심히 듣던 시조는 저절로 다음 결론을 알아냈다.
“그러니까, 당신이 내 환생 또는 후계자 행세하면서 태양에 힘을 모으겠다?”
“그렇소.”
“… 그 힘으로 마왕을 막겠다?”
“정확하지.”
잠시 하늘을 바라보던 시조는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괴상한 사기극이네요.”
“그동안 하던 것과 비슷하지 않나?”
“… 그렇네. 우리는 이렇게 점점 심한 거짓말쟁이가 되어가는군요.”
“큰 차이가 있지.”
“뭐가 다르죠?”
마지막 멘트는 다소 즉흥적이었다.
시조는 잊었겠지만 나와 그녀의 긴 대화는 이번이 두 번째인데, 그래서인지 깨달음이 왔기 때문이다.
시조는 지쳐 있다.
“짐을 내려놓으시게. 이제, 그대를 고통스럽게 했던 거짓말은 내가 짊어질 테니.”
그 말에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더니,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이 행동을 허락으로 받아들였다.
다시금 집무실에 나와 송이만 남았다.
“느낌 괜찮지 않아? 일이 어떻게 잘 풀려가는 – 이런 말은 재수 없으니 그만해야지.”
“방금 그 말.”
“응?”
“시조 네 짐을 내가 짊어지겠다는 말. 시조가 힘들어 보여서 한 말이죠?”
“맞아.”
“… 나도 써야겠다.”
“뭐?”
“레온도 지쳐 보였거든요.”
“…”
잠시 후,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연락이 왔다.
“슬슬 출발해야겠네. 마지막으로 묻자. 연설문은 어때? 어제 밤새도록 썼는데!”
대중을 사로잡기 위해 밤새 작성한 연설문을 읽어본 송이의 감상은 간단했다.
“이게 대체 뭔 소리죠?”
“좋아! 그거면 됐네!”
“예?”
“어젯밤에 이상한 영감을 받았거든.”
“영감?”
*
광장에 나가 연단에 오르자 말 그대로 아찔했다.
이게 대체 몇 명이야?
사람이 한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끝없이 많다!
대중 앞에서 헛소리하는 건 2회차를 겪으며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랑 비교가 안 되는 숫자네.
새삼, 마왕 교단은 도시 전체 시민의 숫자에 비하면 한 줌도 안 되는 규모였음을 깨달았다.
이번 회차의 난 낙원의 독재자가 공인한 왕족 가문의 후계자이자 시조의 환생이 아닌가!
후우우…!
한차례 호흡을 가다듬은 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나의 가장 사랑하는 시민 여러분.
오늘은 우주의 심장에서 스며오는 파동, 천상의 음성을 통해 전해진 신비의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우주, 어떤 세상을 살고 계십니까?
우주에서 벌어지는 무한한 순환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천지가 개벽할 때 가스가 모여 최초의 별이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태양보다 수백 배 거대했습니다.
이런 별들이 수명을 마치며 블랙홀과 퀘이사, 은하로 변했으니, 죽음으로서 수많은 세계의 어버이가 된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시체로 세상을 낳은 우주의 반고입니다.
이러한 이치는 더 작은 곳에서도 벌어집니다.
바다 – 불행하게도 여러분은 평생 바다를 본 적 없겠습니다만, 세상에 그 어떤 육지보다도 거대한 호수가 있으니 이를 바다라 합니다.
그곳에 형상은 물고기와 닮았으되, 버스보다도 크고 작은 배만큼이나 거대한 생물이 있으니 바로 고래입니다.
고래 한 마리가 죽으면 그 시체는 끝없이 넓고 깊은 심해에 흩뿌려지며 100만 생명의 양식이 됩니다.
이해하셨습니까?
그렇다면 모두 한번 생각해봅시다.
우주의 이치 앞에서 어찌 인간만 예외일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죽으면 그 시체를 먹고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이 자라납니다.
반대는 어떨까요?
이 공허한 우주에 어쩌면 모든 사람의 근본이 되는 분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죽음으로서 모든 이의 어버이가 된 존재!
본디 한 점에 모여있던 영육을 별 전체에 흩뿌려 수십억 인류를 낳은 분!
이는 결코 헛된 상상의 산물이 아닙니다.
모여있는 거대한 덩어리가 흩어져 무수히 많은 작은 생명이 태어남은 우주의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흩어진 인간이 있다면, 그 전에 모여있던 무언가가 있었음은 자명한 것 아니겠습니까?
다시 한번 뒤집어서 생각해봅시다.
고래는 거대해지기 위해 무수히 많은 작은 것을 집어삼키지요?
가스와 물질이 모여 새로운 별이 태어나지요?
그렇다면, 사람이 한 점에 모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를 통해 우리 손으로 만물의 어버이를 다시금 만들어낼 수도 -”
잠시 연설을 멈췄다.
… 내용이 좀 이상한데?
“…”
군중들은 어딘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신성한 태양의 힘이 이들을 홀렸다?
그럴 리 없어.
이곳은 낙원 내부고 불굴의 이성이 모든 초자연성을 억누르는 장소다.
무엇보다 신성한 태양은 소환한 적도 없다고!
그런데도 사람들이 어딘가 홀린 것처럼, 넋 나간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
뒤늦게 심호흡하며 연설을 끝마쳤다.
“모, 모두 기도합시다! 우리의 삶에 무궁한 영광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연설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본래 시민들을 어떻게든 낙원 밖으로 데려가서 신성한 태양에 노출할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
– 김상현
“후우….”
심호흡하며 간밤에 아리 양과 벌인 연극을 떠올렸다.
어젯밤, 아리는 날 심문하는 시늉한 끝에 괴상한 결론을 내렸다.
김상현은 시장이 보낸 간자가 맞다.
하지만, 처음은 간자였다 해도 지금은 마왕에 대한 진실한 신심을 품은 것 같다.
이런 괴이한 결론을 내렸으니 교단 사람들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우스운 이야기긴 한데, 철저한 계급사회인 낙원과 달리 마왕 교단은 인간을 차별하지 않는다.
신분제 사회였던 고대 로마에서 태어난 기독교가 인간의 평등을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2급 시민이자 감찰 요원 출신이라 해도, 교리상으론 신도가 될 수 있다.
아무리 교리가 그렇다고 해도 교단 사람들이 날 어떻게 믿겠는가.
그래서 아리 양은 다시금 선언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 한낱 인간인 우리가 어찌 이 자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알 수 있겠습니까?”
“아, 아리 사도! 아무리 그래도 결론을 내려야 -”
“마왕께서 결정하시게 합시다.”
잘 모르겠으니 마왕께서 직접 결정하게 하자.
외부에서 보면 이 무슨 개소린가 하겠지만, ‘실존하는 신’을 섬기는 종교단체로선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래서 교단 상층부는 나를 ‘이상한 방’으로 데려갔다.
일주일 동안 살아남으면 마왕의 선택을 받은 것이니 무죄라고 했지.
“…”
이 방은 교단 상층부가 마왕으로부터 계시받은 성역이라고 한다.
과거의 우리는, 마왕은 소통할 수 없는 존재이므로 교단도 가짜라고 생각했지만….
교단은 가짜가 아니다.
그러니 이 방에는 ‘무언가’가 있다.
— 우오오오!
어디선가 괴이한 울음이 들려온다.
“대체 뭐냐?”
분명 들어오기 전만 해도 ‘방’이었는데.
문을 여는 순간, 터무니없을 정도로 거대한 ‘세계’가 있었다.
이 장소와 아주 비슷한 장소를 나는 안다.
호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