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56)
EP.456 456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18)
456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18)
– 차진철
— 부우웅!
‘이것’은 마치 헬리콥터처럼 날개를 회전시켰다.
몸이 반쯤 떠오른 것을 보아하니 부족하나마 비행 능력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또 실패네.”
옆에서 한숨 쉬는 흑발 소녀의 말대로 ‘이것’ 역시 실패작이다.
“으악! 또, 또 이래!”
“승엽이를 잡아먹으려고 하잖아. 엘레나는 왜 자꾸 식인 괴물을 만드는 거야?”
사람을 음식으로 보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딱 봐도 덩치에 비해 날개가 너무 작았다.
“내가 처리하지.”
어제부터 대체 몇 마리의 실패작을 처리했는지 숫자가 헷갈릴 지경이다.
다행히 이번 녀석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 키에에엑!
이계의 별 조각이 주둥이에 꽂히자 마치 버터처럼 녹아내리는 괴물을 뒤로한 채 낙원의 톱스타,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아이고…! 엘레나. 어려운 모양입니다.”
“그러게요.”
“잠깐 쉬었다 합시다.”
“… 네.”
저주의 방 다 회차 진행의 핵심은 탈출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다.
206호의 경우, 낙원 심층부에 있는 도시 제어장치를 손에 넣으면 탈출이다.
문제는, 심층부 시간의 흐름이 지상과 다르다는 것.
정확한 계산은 불가능하나 심층부에서 1시간은 지상의 일주일 이상이다.
그러므로 심층부에 널려있는 괴담 속 괴물 하나하나와 싸울 시간이 없다.
비행 능력이 필요하다.
괴물과 각종 지형을 무시한 채 목적지로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낙원의 톱스타께서 방송 출연이고 뭐고 다 무시한 채 도시 밖으로 나와서 비행 괴물만 미친 듯이 만들고 있는 것.
물론 방송국 사람들이 미친 듯이 연락하고, 낙원의 연예가 뉴스에선 연일 ‘톱스타의 실종’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마왕 교단 수뇌부인 아리도 상현 형님을 ‘성역’이라는 곳에 보내자마자 교단 일 때려치우고 이쪽에 합류한 상황이니까.
시간의 흐름을 고려할 때, 심층부로 내려간 사람은 사실상 이탈이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출발하기도 전에 막힐 줄은.”
“끄응…. 원래도 엘레나 양이 공장처럼 원하는 괴물을 탁탁 찍어내진 않았잖냐.”
“그건 그래.”
엘레나의 불길한 상상 숙련도가 부족하다기보다는, 능력 자체의 한계다.
훨씬 긴 세월 저 힘을 다룬 원래 주인, 201호의 베아트릭스도 원하는 괴물을 매번 만들어내지 못했다.
“저 능력은 볼 때마다 가챠 같아요.”
“가챠?”
승엽이가 든 예시에 아리가 고개를 갸웃거려서 한마디 보태줬다.
“인마, ‘누님’이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를 꺼내야지. 50년 전에 가챠가 있었겠냐?”
“아, 아, 그건 -”
— 휘이익!
아리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손을 휘젓자 날카로운 기운이 내 머리를 쿡 찔렀다.
“내가 가챠라는 단어를 모를 줄 알아? 엘레나가 SSR을 뽑을 때까지 얼마나 오래 걸릴지 불안해졌을 뿐이야.”
“엘레나 누나가 SSR을 뽑는 시간? 그렇게 말하니까 숨이 막혀요.”
모든 유산에는 약점이 있다.
이계의 별은 위력이 강하고 비교적 장기간 쓸 수 있지만 통제가 어렵다.
최후의 섬광은 역시 위력이 강하고 통제도 쉽지만 단발성이다.
오래된 피는 능력이 몇 개인지 헷갈릴 정도로 다채롭지만, 고점이 낮다.
불길한 상상은?
범용적이고 고점도 높으나 통제가 어렵다.
그 한계가 지금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셈.
“안 되겠다. 내가 도와줘야겠네.”
“도움? 엘레나 양 알아서 할 문제지, 외부에서 해줄 게 있나?”
“물론!”
그 말에 나와 승엽이가 동시에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참고로 네가 도와야 해.”
“뭐? 뭐? 내가?”
갑자기 이건 무슨 소리냐?
나보고 뭘 도우라고?
기세 좋게 다가가는 아리를 발견한 엘레나가 뒷걸음질 쳤다.
“에엣! 아리야 왜 그래?”
“엘레나, 난 네게 간절함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어.”
“어? 어?”
간절함의 가치?
“그럴듯한 괴물을 단번에 만들어낸 적도 몇 번 있었지?”
“그, 그건 -”
“지옥처럼 끔찍한 상황,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위기감. 이런 상황에서 네 힘은 강하고 정교해지는 면이 있어.”
지옥처럼 끔찍?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
벌써 불안한데!
“갑자기 무슨 말을 -”
“‘아리 랜드’ 개장!”
“뭐? 무슨 랜드?”
“자이로드롭 스타트!”
“???”
— 투 쾅!
바닥을 박차는 땅울림과 함께 –
아리가 엘레나를 데리고 하늘 높이 치솟았다!
“꺄아아악 – !”
귀를 찌르는 듯한 엘레나의 비명, 그리고 아리의 차가운 목소리.
“살고 싶으면 날아!”
그리고 – 아리는, 하늘에서 엘레나를 놓아버렸다.
“날아라! 네 힘으로 살아라!”
“꺄아악-! 아리 너 진짜아아아-!”
이 시점이 되어서야 아리가 말한 ‘내 도움’이 무엇인지 알았다.
“미친!”
엘레나의 몸 이 천 천 히 떨 어
진
다.
‘찰나’에 의해 세상의 흐름이 느려졌다.
내 사고의 흐름이 빨라졌다는 말이 정확하려나?
엘레나가 다칠 가능성을 생각했는지, 승엽이는 유미를 소환했다.
나는 황급히 달려가서 깃털처럼 느릿하게 떨어지는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어느 위치로 떨어질지 가늠한 후, 미리 그 위치에 서서 팔을 뻗고 –
— 풀썩!
“흐아앗! 사, 살았다! 진철 씨? 고, 고마워요!”
“…”
“아리 너 진짜! 내가 아리 사냥용 괴물을 만드는 꼴 보고 싶어!”
“…”
어느새 아리와 나, 승엽이의 시선이 멍하니 엘레나를 향했다.
더 정확히는 엘레나 등 뒤를 향했다.
“엘레나.”
“아리! 너 정말 -”
“등 뒤를 봐. 지금 진철이가 널 들고 있는 게 아니야.”
“어?”
구름이 살아있다면 이런 느낌인가?
살아있는 솜사탕 같은 존재가 허공에 고정된 채 엘레나를 지탱하고 있다.
멍하니 엘레나가 손짓하자 그에 따라 엘레나를 내려놓기까지 했다.
비행 능력은 확실하고, 지시를 알아듣지 못할 만큼 저능하거나 난폭하지도 않다.
어제부터 엘레나가 만든 괴물 중 가장 우수한 개체.
다만,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근데 너무 작다. 진철이랑 승엽이도 태울 수 있어야 하는데.”
“…”
“SSR은 아니고 SR 정도? 성공할 때까지 자이로드롭 좀 더 해야 할 듯!”
…
30분 정도 지난 후, 아까의 그 구름을 확대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과도한 능력 사용 덕에 성격이 난폭해졌기 때문인지, 잔뜩 화가 난 엘레나는 구두로 아리를 내려치느라 바빴지만….
“출바알! 출발하자. 엘레나도 화 풀어!”
“닥치지 못해!”
나는 내심 생각했다.
엘레나에겐 미안하지만, 자이로드롭을 진작 시작해야 했다고!
저주의 방에서 시간이란 귀중한 자원이다.
“30분이면 끝날 일인데 이틀 날렸네. 다음에는 쟤를 절벽에서 밀자. 그러면 10분 컷일지도!”
“유, 유미야. 나쁜 말 하지 마.”
“… 알았어.”
이제야 출발이다.
*
[사용자 : 김상현(지혜)날짜 : 488일 차
현재 위치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지령 : 3]
마왕 교단이 날 ‘성역’에 떨어트린 지 3일이 흘렀다.
나는 놀랍게도 아직 살아있다.
“이얍!”
— 키에엑!
사방에서 달려드는 괴물, 좀비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망치로 내리쳤다.
하나하나는 별것 아니지만, 숫자가 너무 많다!
“이랴압!”
미묘하게 아귀 지옥에서 겪은 상황과 비슷하다.
어쩌면, 바로 그 장소를 모티브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르고!
이곳은 도시다.
마왕이 낙원을 어설프게 흉내 낸 모형 정원 같은 장소다.
— 끼이익!
도시니까 아파트 비슷한 장소도 있었고, 철문은 제법 튼튼해 보였다.
잠깐 숨돌릴 틈은 낼 수 있지 않을까?
“후우욱! 이런 이런….”
살점이 썩어가는 독한 냄새가 뒤쪽에서 느껴진다.
안타깝게도 이 장소에 안전 구역 따위는 없었다.
“끼에-”
— 콰직!
하나하나는 별것 아닌 놈들이기에 어렵지 않게 눕힐 수 있었다.
이놈이 끝이 아니라는 게 진짜 문제지만.
심장이 거칠게 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이 슬며시 마음 한편을 물들인다.
“흐…. 하. 예상은 했지만, 정말이지 쉽지 않군요.”
새삼스럽지만, 이런 때는 내가 특수부대 출신이라 다행이다.
순수한 신체 능력만으로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으니까.
— 오오오오오!
아까부터 대기를 뒤흔드는 기묘한 파동.
파동의 근원을 내 눈으로 보는 건 극도로 위험하다.
다행히 내겐 이런 상황을 위한 능력이 있다.
[지령 : 3 -> 2]‘대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답답한장소에있지말고건물바깥학교인근창고에적이있으니 -]“…”
아파트에서 나가 학교 창고 쪽을 살피라는 지령이 나왔다.
“휴우…. 다들 잘 있을지 모르겠군요.”
가인 군은 이번에는 시장 도움을 받아 신도를 모으겠다고 했지.
아리 양은 날 성역에 보냈으니 지금쯤 심층부로 출발했을 터.
초능력 없이 시장을 설득해보겠다는 송이 양은 잘하고 있으려나?
동료들을 생각하자 음울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래, 호텔에서 이런 것은 결국 일시적인 고통에 불과하다.
설령 내가 죽더라도, 동료 중 한 명만 살아남으면 ‘다음’이 있는 장소다.
“나가자.”
그렇게 문을 여는 순간.
— 삐이익!
확성기를 귀 옆에 튼 것 같은 격렬한 이명.
산채로 망막을 태워버릴 듯한 열기.
전신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
“으악!”
바닥에 널브러진 채 구르고 또 굴렀다.
하염없이 비명 지르고 눈물 흘리며 내 나약함에 한탄했다.
…
“하아….”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다면!
아니다, 이런 말은 나약함의 소치일 뿐.
이 장소는 마왕이 만들어낸 모형 도시이자 호텔을 흉내 낸 장소.
방금 그것은 아마 마왕이 만든 ‘가짜 죄수’다.
가짜 죄수라고 생각하면, 왜 그것이 날 죽이지 않고 지나갔는지 알 수 있다.
아직 5회차가 아니기 때문이다.
5회차 전의 죄수는 능동성이 거세된 일종의 ‘배드 엔딩’ 역할만 가능하다.
“휴우….”
고통 속에서 벽에 기댄 채 생각했다.
가짜 죄수가 있다면, 가짜 대적자도 있을 터….
“…”
축복이, 지령이 내게 무어라 알려주었지?
학교 인근 창고에 적이 있다고 했었나?
“출발하자.”
아직도 화끈한 고통이 느껴지는 눈을 닦고, 피가 흐르는 귀는 천으로 닦아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내 고통은 동료들을 위한 발판이 되리라.
*
— 덜컹!
□□고등학교라고 적힌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재빨리 담벼락에 기댔다.
뺨에서, 어깨에서, 복부에서 붉은 피가 흐른다.
잠깐 사이에 대체 몇 번의 혈전을 거쳤는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러 번 물렸는데도 딱히 감염이 일어나진 않았다.
피를 닦아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지령대로라면 학교 내에 ‘가짜 대적자’가 있을 터.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 팅!
“이 정도도 감지덕지 해야 하나.”
경비실 바닥에서 쇠 지렛대 하나를 주웠다.
도시 배경이 한국이니 총을 찾을 수는 없을 터, 쇠 지렛대 정도면 조금 전까지 썼던 쇠망치보다 사거리는 기니 양반이다.
“들어가자.”
낡고 거대한 고등학교로 들어가며 생각한다.
아마도, 이 장소는 마왕이 만들어낸 가짜 저주의 방이다.
가짜 죄수에 가짜 대적자도 있으니, 가짜 유산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가짜 보상’이야말로 마왕 교단 수뇌부가 가진 초능력의 비밀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교단의 수뇌부는 ‘성역’에서 마왕이 내리는 시련을 이겨낸 사람들인가?
이렇게 생각하니 교단의 여러 의문이 풀렸지만, 동시에 새로운 의문이 생겨났다.
“마왕, 분명 지금도 날 보고 있으시겠지. 대체 왜 호텔을 흉내 낸 겁니까?”
답변 따위는 돌아오지 않았다.
*
[지령 : 2 -> 1]‘적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습니까?’
[2층오른쪽세번째방으로들어가면적이있으니방심하지말것이며]“2층 오른쪽에서 세 번째?”
2층 복도로 이동한 후 발걸음을 죽인 채 쥐 죽은 듯 걸었다.
2학년 1반, 2학년 2반, 2학년 4 –
“…”
반 명패를 바꿔 끼었나?
유치한 수작이 아닐 수 없다.
이래서 지령이 2학년 3반이 아니라 2층 오른쪽 세 번째 방이라 알려준 모양이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은 후 –
— 덜컥!
문을 엶과 동시에 쇠 지렛대로 문 주변을 휘저었다.
누군가 문 뒤편, 혹은 옆에 숨어있었다면 피할 수 없는 공격.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디냐!”
지령에 따르면 분명히 이 교실에 있어야!
[지령 : 1 -> 0] [앞으로엎어져라]“뭐, 뭐? 앞으로 -”
— 쿵!
난데없이 앞으로 구르라는 말에 당황하는 순간, 화끈한 통증과 함께 묵직한 충격을 느꼈다.
“크아악!”
누군가, 뒤에서 나를 내리쳤다.
“이, 이게 무슨! 분명히 -”
뒤에서 나타난 남자를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정답을 알았다.
이 자는 지령이 나온 타이밍에는 교실 내부에 있다가, 내가 2층에 올라갈 때 장소를 옮긴 것이다!
“… 대체 -”
“궁금합니까? 내가 어떻게 당신의 능력을 ‘공략’했는지?”
“…”
“처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당신들’은 비슷비슷한 타이밍에 조언을 쓰더군요.”
“… 조언?”
“그 반응도 매번 비슷하군요. 혹시 여러분의 눈엔 다른 단어로 보입니까?”
“…”
혼란스럽다.
몸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이윽고 우비를 입은 남자의 손이 내 가슴팍으로 ‘들어가서’ 심장을 움켜쥐려는 순간, 알 수 없는 기억이 내게 알려주었다.
“이건…. 이게 내 힘이야…. 성실…. 내 힘!”
“당신 힘이 아니라 ‘내’ 힘입니다.”
— 콰직!
의식이 흐릿해진다.
나는 이 모든 일이 꿈이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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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호텔 탈출기-45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