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57)
EP.457 457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19)
457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19)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500일 차
현재 위치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고통을 느꼈다.
눈앞에 있는 남자의 삶이 너무나 애달팠기 때문이다.
“흐어억…. 카디로프 님….”
습한 병상에 누워 헐떡이는 늙은 남자의 손을 강하게 잡았다.
자연스럽게 그 남자의 삶을 ‘느꼈다.’
주름진 피부와 달리 나이는 고작해야 40대 초반.
어릴 때부터 낙원의 신발 공장에서 일하며 고생했기에 빨리 늙었을 뿐이다.
그는 바다나 호수는커녕, 하늘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신선한 고기 한 점 먹어본 적도 없다.
사람의 삶이 아니라 톱니바퀴로 살아가다가 자기 자신을 전부 소모해버린 셈이다.
마침내 남자가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몸이 되었을 때, 낙원이 그를 위해 준비한 것은 이 낡은 침대 하나가 전부였다.
“…”
꿈도 희망도 없는 삶이다.
그래서 나 또한 고통스러웠다.
“카디로프 님…. 뵙게 되어…. 영광….”
“…”
그때,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인아, 사진 찍었으니까 가자!”
“… 네.”
나는 카디로프의 후계자로서 일종의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왜, 현실에서도 정치인들이 주기적으로 얼굴을 꺼멓게 칠하고 연탄을 나르지 않던가.
뻔한 쇼인 걸 시민들도 알고 나도 알지만, 정치는 원래 쇼다.
“어제, 엘레나에게 이제 출발한다는 연락이 왔어.”
엘레나, 아리, 승엽, 진철 이렇게 네 사람이 낙원 심층부로 떠났다는 이야기다.
“다행이네요. 위쪽 전력이 많이 빠진 느낌이긴 한데.”
“어쩔 수 없지. 탈출 확보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맞는 말이지만, 사실상 절반의 전력이 이탈했다.
“상현 아저씨에겐 아직 소식 없어요?”
“… 아저씨?”
누나가 살짝 당황하길래 덧붙였다.
“우리가 함께 지낸 지도 꽤 오래됐는데, 아직도 선생님 선생님 하니까 뭔가 어색해서.”
“… 나중에 본인에게 물어봐. 내 생각에 ‘아저씨’보다는 차라리 ‘선생님’이 나은 것 같네.”
“소식 없어요?”
아저씨가 교단의 성역이라는 괴상한 장소로 들어간 후, 할 일을 끝낸 아리도 심층부로 떠났다.
기존에 마왕 교단에 있던 호텔파티가 전부 이탈했기에 송이와 은솔 누나는 또 다른 요원을 교단에 파견했다.
“글쎄…. 별다른 보고는 없어.”
“이상하네. 그, 레이먼드? 교단 장로 말대로라면 보통 일주일 내로 나온다고 들었는데.”
2주가 넘은 상태다.
상태창이 없었다면, 아저씨가 그곳에서 죽었다고 착각할법한 시간.
“상현 씨 아직 살아있는 것 맞지?”
“네.”
“그러면 기다려야지. 때 되면 나올 테니까.”
“으음….”
저번 회차에 이어서 이번 회차에서도 내 역할은 뭔가 미묘하다.
마왕 교단 연구, 심층부 잠입 후 탈출 확보, 도시 지배.
이번 회차에서 진행 중인 일들인데, 모두 내가 아닌 다른 동료들이 열심히 하는 중.
나는 오직 유산 충전에 집중하고 있다.
딱히 이 문제로 동료들이 날 타박한 적은 없다.
애초에 신성한 태양은 조건 및 ‘부작용’이 다른 유산에 비해 극도로 큰 만큼 위력도 막강하리라 예상 중이니까.
대부분 문제에 있어서 충분한 힘은 곧 충분한 답이다.
“그래, 충전은 어때? 요번엔 신도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잖아! 혹시 다 끝났다거나?”
기대감을 드러내며 슬쩍 웃는 누나에게 나도 웃어 보였다.
“훨씬 빠르죠. 이번 회차에서 충전은 끝날 겁니다. 어쩌면 지금도….”
“지금?”
문득, 아까 느꼈던 미묘한 감정을 되새겼다.
평생을 소모해버린 늙은 남자.
꿈도 희망도 없는 삶.
낙원의 톱니바퀴.
남자에 대한 동정심이 내 마음을 채웠고, 내 몸에서 희뿌연 빛이 일어났다.
그의 잃어버린 시간을 돌려줄 수는 없으나 적어도 병든 몸을 일부라도 고쳐주고 싶었다.
남아있는 약간의 시간이라도 편히 보낼 수 있도록.
“…”
딱, 거기까지였다.
불가해한 억지력이 빛의 유동을 억지로 잡아 찢었기 때문이다.
불굴의 이성이다.
그것에게 이름대로 ‘이성’이 있다면, 지금 내게 ‘더는 허락하지 않겠다’라고 경고한 것 같았다.
“… 요란한 힘은 역시 무리네.”
가볍게 한숨 쉬는 순간, 은솔 누나가 토끼처럼 눈을 크게 떴음을 알았다.
“바, 방금 뭐 한 거야?”
“뭘 한 게 아니고, 하려고 했는데 실패한 겁니다. 불굴의 이성이 -”
“그, 그래도! 몸에서 빛 정도는 났잖아! 히, 힘으로 불굴의 이성을 억지로 밀어낸 거야?”
“밀어내려다가 실패했죠.”
누나는 숫제 내 말을 듣지도 않았다.
“대단한데! 마왕도 불굴의 이성 앞에선 꼼짝하지 못했는데 -”
“…”
마왕과 비교할 일은 아니다.
시간의 지배자로 인해 마왕은 수백 배 혹은 수천 배 강해진 불굴의 이성에게 억눌려있는 상황이고, 난 아니니까.
마왕이 지금 내 위치에 있었으면 불굴의 이성 ‘따위’는 종잇장처럼 치워버리고 세상을 집어삼켰을 터다.
“시조가 보면 놀라겠는데!”
“정작 시조도 힘 잘 쓰잖아요.”
“걔는 알고 보니 꼼수였잖아.”
“꼼수는 아니고, 불굴의 이성 관리자 권한 같은거였죠.”
시조의 방식은 우리가 따라 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니었다.
어찌 됐든, 불굴의 이성 범위 내에서 기적을 반쯤 성공한 것은 사실이다.
요전의 신비로운 연설에 이어서 이번이 두 번째.
“…”
충전이 다 끝난다면 어떨까?
내 마음도 누나처럼 들뜨기 시작했다.
그때, 누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려고 했어?”
간단히 설명했다.
아까 봉사활동 중에 만났던 남자의 인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내가 그에게 무슨 마음을 느꼈는지.
그리고 누나는, 내가 초능력을 썼을 때보다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와….”
“누나?”
“네가, 네가….”
“갑자기 왜 그래요?”
“나나 진철이도 아니고 가인이 네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는데.”
“…”
“‘너, 작고 작은 자여. 인간의 목숨은 깃털과 같으니, 네 고통의 가치는 깃털에 묻은 때에 불과하니라.’ 이게 원래 네 컨셉 아니야?”
“그게 대체 무슨 말투입니까?”
“가인이 네가 좋아하는 말투. 솔직히 비슷하지?”
나도 모르게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쌌다.
“크흠! 장난치지 마세요.”
“나쁘진 않네. 괜찮을지도?”
“… 누나 눈에는 지금 제가 어떻게 보이죠?”
“글쎄…. 예전보다는 편해진 느낌. 네 후원자가 너에게 ‘하얀 물감’을 부으라고 했었지?”
“네.”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네. 나는 괜찮다고 생각해.”
“괜찮다라.”
마도서와 신성한 태양은 분명 방향성이 다르다.
전자는 ‘네 몸은 내 도구다’고 후자는 ‘너는 곧 나다’인 느낌?
이게 뭔 소리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전자보다는 후자가 사람에게 ‘진심’이라고 하겠다.
진심이라는 게 꼭 좋은 의미는 아닐 뿐이지.
나는 언제나 소고기에 진심이다.
평소, 누나는 아리 혹은 내가 너무 냉혹하다 생각했겠지.
그런 맥락에서 보면 고통받은 NPC를 동정하는 내 변화를 기뻐하는 것도 당연하다.
누나는 신성한 태양에 잠식당한 내가 전 회차에서 했던 일을 모르니까.
이 점을 떠올리자 또 묘한 생각이 들었다.
“축복은 항상 날 보호하고 있죠.”
“뭐?”
상태창, 지혜의 축복이 사라지면 신성한 태양의 극단적인 영향력을 제어하기 힘들다.
뒤집어보면 상태창이 있는 동안에는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제어가 된다는 의미다.
지금처럼, 동료가 보기엔 과거보다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
오래전에 아리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호텔 파이오니어의 탈출 방법은 하나가 아니며, 탈출 방식에 따라서 축복이나 유산을 잃을 수 있다.
이 정보는 한여름 밤의 꿈 이벤트를 통해 일시적으로 바깥으로 나갔을 때 진실임이 드러났다.
당시의 나는 지혜의 축복을 거의 상실했기 때문이다.
…
지금의 내게 ‘축복이 사라지는 탈출’은 위험하다.
상태창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졌다는 뜻이다.
“아아….”
“왜 그래?”
마도서의 부작용을 자각한 내게 새로운 유산의 획득을 권한 건 올빼미였지.
그의 조언을 따른 결과, 나는 올빼미에게 더 의존할 수밖에 없어졌다.
이런 미래를 과연 올빼미가 몰랐을까?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네요.”
“원래 그랬잖아? 언제는 아니었던 것처럼 그래.”
“하하! 누나, 방금 그 말은 고마워요.”
“갑자기?”
오랜만에 누나가 ‘어른’이라는 사실을 체감했다.
그렇다.
세상에 믿을 놈은 원래 없다.
“작은 목표가 하나 생겼어요.”
“뭔데?”
“뭔가, 내 정신을 지킬만한 수단이 하나 더 있어야겠네요.”
*
– 김상현
— 두두두두…!
지면을 흔드는 진동을 느끼며 나무 위로 올라가자 잠시 후, 집채만 한 멧돼지가 콧김을 뿜어내며 나타났다.
괴물의 등 위에는 너무나 잘 아는 귀여운 소년 한 명이 있었다.
“어디 있냐! 나, 나와!”
‘불길한 상상’을 사용 중인 ‘박승엽’이다.
있을 수 없는 존재요, 당연히 가짜다.
“흡!”
숨 쉬는 것조차 인내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이윽고 멧돼지가 거구를 이끌고 나무 근처로 다가왔을 때 –
— 펄쩍!
“으아 -!”
내 손이 가짜 승엽 군의 목을 꺾기까진 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곧, 멧돼지 또한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후유…. 이것으로 또 한 명입니까? 정말이지 쉽지 않군요.”
바깥에선 며칠이 흘렀을까?
206호는 시간의 흐름이 뒤틀린 경우가 잦고, 마왕이 만든 이 괴상한 장소에선 시간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적어도 열흘은 넘은 것 같은데.
“마왕, 이젠 나도 화났으니 말 놓겠습니다. 개새끼야! 이런 병신 같은 장소는 왜 만들었냐?”
처음으로 도착한 장소는 좀비로 가득한 쇠락한 도시였다.
그 장소엔 성실이 아닌 괴상한 축복을 얻은 ‘또 다른 나’가 가득했고, 놈들은 마왕에게 지령받아 날 죽이려 달려들었다.
그런 놈을 네 명 정도 죽이다 보니 자연스레 이상한 문을 발견했다.
… 문 너머에는 또 다른 저주의 방이 있었다.
호텔 속의 호텔.
저주의 방 속의 저주의 방 속의 저주의 방 속의 –
“이게 대체 뭐냐? 어디서 프랙탈 구조라는 단어를 주워들었냐?”
다음 방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시골 마을이었고, 이번엔 가짜 차진철이 달려들었다.
순수한 신체 능력만 따져도 운동 선수급인 사람이다 보니 정말 죽을 뻔했었지.
그다음은 출입문이 없는 빌딩과 가짜 은솔 양.
미안한데, 은솔 양이 전투에 약하다 보니 앞선 방보다는 훨씬 쉬웠다.
…
끝이 없다.
분명 교단의 장로는 내게 일주일을 말했는데, 그 정도 시간은 진즉 지났는데.
“어, 어디 있어! 나와!”
또 한 명의 승엽 군의 목을 조르는 순간, 소년이 울먹거리며 중얼거렸다.
“엄마…! 아리 누나! 가인 형!”
“…”
— 콰직!
이 가짜들은 우리의 기억까지 비슷하게 가지고 있다.
그 사실이 날 제법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제발, 마왕. 다시 공손히 말할 테니 좀 나오십시오. 대체 이 변태 짓은 왜 하는 겁니까?”
입으로는 모르겠다, 모르겠다 하고 있지만 내심은 조금 다르다.
정확한 시점은 모르겠지만, 어느 시점부터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김상현은, 매 순간 마왕에게 다가가고 있다.
나의 연약한 정신이 공허한 세상, 머나먼 심연 속에 빨려 들어간다.
“…”
언젠가부터 눈을 감을 때마다 마왕을 느꼈다.
끝없이 꿈틀거리는 무궁한 충동의 집합을 본다.
그 충동이 서서히 내게 손끝을 뻗어옴을 느낀다.
“나를 조각이라도 하는 겁니까? 당신이 원하는 무언가로 만들기 위해서?”
또다시 나타난 다음 방으로 향하는 문.
어딘가 홀린 것처럼 문을 열고 그다음 장소로 향했다.
거대한 방이었다.
온 사방은 검붉은 벽으로 가득했고, 다른 장소로 향하는 통로 따위는 없었다.
조금 전에 내가 들어온 문 역시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방의 중앙에는, 내가 가장 경외하는 청년이 있었다.
“아저씨, 수고하셨어요!”
“… 아저씨?”
그는 첫 말부터 날 불쾌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