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58)
EP.458 458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20)
458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20)
– 김상현
흉(凶)하다.
검고, 붉으며, 탁하고, 비릿하다.
공간 자체도 흉했지만, 중앙의 존재는 불길함이라는 단어를 인간형으로 빚어낸 듯했다.
“아저씨, 커피라도 한 잔 드실래요?”
“…”
여태 봤던 수많은 가짜 동료들처럼, 눈앞의 가짜 가인은 적어도 외견이나 목소리는 원본과 유사했다.
이점이 나를 더욱 불쾌하게 만들었다.
“이야~! 너무 긴장하신 것 같은데. 여기까지 오셨으면 고생은 끝났거든요.”
“…”
심호흡하며 언제든 최후의 섬광을 쏠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우왓! 그건 좀 무서운데! 아저씨, 살살 좀 하세요. 그걸 맞으면 저라도 즉사인데.”
이전 회차에서, 가인 군은 신성한 태양을 통제하지 못한 채 반쯤 미친 신으로 변했었지.
최후의 섬광은 단 일격에 그 미친 반신을 재로 만들었다.
그 광경을 보며 확신을 얻었다.
죄수 정도가 아니라면 최후의 섬광 앞에 버틸 수 있는 존재는 거의 없을 터.
“자, 자, 긴장 푸시고 이거 보이시죠? 이거! 교단 사람들은 성배라고 부르던데.”
성배?
우습지도 않은 단어지만, 청년이 들어 올린 잔은 확실히 그런 느낌이긴 하다.
내부엔 먹물처럼 검은 액체가 찰랑였다.
“이걸 마시면 되거든요.”
“마시면 교단 수뇌부처럼 초능력이라도 생기나?”
“그렇죠. 교단은 이걸 마왕의 선택이라 생각해요.”
“… 장로들은 다 시련을 거쳐 여기에 도착했던 사람들인가?”
“당신 같은 시련을 겪진 않았죠. 걔네는 길어야 4, 5일짜리 약식 시련. 당신은 마왕의 특제 시련!”
“…”
— 팅!
“콜라 비슷하니까 드시죠.”
“…”
초능력을 주는 성배라.
제법 대단하긴 한데, 별 의미 없는 이야기다.
애초에 나는 이 장소에 왜 들어왔지?
마왕의 선택을 받아 강력한 힘을 얻으려고?
그딴 게 아니다.
방 내부에서 마왕이 만든 가짜 축복, 가짜 유산 따위를 얻어서 뭐 어쩌자고?
나는 그저 답을 구하고자 한다.
마왕은 어떤 존재인지, 교단은 어떤 비밀을 품고 있는지.
“내 생각에, 내가 원하는 건 이런 술잔 보다는 네놈이 가지고 있을 것 같다.”
청년이 슬쩍 웃으며 답했다.
“교단에 대해 궁금한 게 많으시죠?”
그래서 들어왔다.
“이상하긴 하죠. 한번 붙어본 경험도 그렇고, 결사의 기록도 그렇고, 마왕은 분명 제대로 된 이성이 없는 폭풍 같은 존재인데.”
“…”
“이런 존재에게 어떻게 교단이 생겼을까? 애초에 숭배는 왜 하는 겁니까?”
“…”
“이해를 위해 교단의 역사를 배워봅시다. 참, 이성의 결사가 무슨 조직이니, 낙원은 왜 건설했니? 따위는 넘어갑시다. 왜?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깐!”
“…”
새삼스레 느꼈다.
눈앞의 존재는 우리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
마왕과 연결된 존재이니까?
마왕은 그렇다 치고, ‘이놈’은 대체 뭘까?
“마왕 교단은 왜 생겼을까요? 마왕은 인간을 잡아먹는 존재입니다. 얼마나 미친 사슴이길래 늑대를 숭배하는 겁니까?”
“… 듣겠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마왕 조각이 떨어졌죠. 평화롭던 세상은 그날로 망했답니다.”
“…”
“마왕이 떨어지기 전만 해도 이성의 결사는 비밀 조직! 평범한 인간은 세상의 이면에 얼마나 많은 괴물이 도사리고 있는지, 그 괴물을 누가 제압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죠.”
“우리 세상과 비슷하군.”
“지구는 몇 순을 돌아도 비슷하죠.”
“뭐?”
“하하! 넘어갑시다. 마왕 낙하라는 초유의 사태, 결사는 말 그대로 전력을 다해 버텼습니다. 시간을 뒤틀고 인간의 목숨을 총알처럼 소모하면서! 이 친구들도 참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
“그런데 아저씨, 관점을 좀 바꿔볼까요?”
관점을 바꾼다.
“여러분은 이미 초인입니다.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평범한 인간보다 세상을 지탱하는 비밀 결사의 일원에 가깝죠.”
우리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우리는 평범한 시민보다 관리국 요원에 가까운 존재다.
“마왕과 결사의 장렬한 투쟁이 평범한 인간에게 어떻게 느껴졌을까요?”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데.”
“지금 해보시죠.”
“아무래도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겠지.”
“정확히 어느 부분이 헷갈렸을까요?”
“…”
평범하게 회사에 다니던 A에게 파멸의 순간은 어떻게 느껴졌는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고, 세상이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결사’를 자처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튀어나와서 세상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을 납치해 제물로 바친다.
인간이 살 수 없는 험지에 억지로 도시를 건설한 후 사람을 몰아넣었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인간이 죽었을 것인가.
“결사가 악역처럼 느껴졌겠군.”
“재미있죠? 모든 것을 아는 여러분이 보기엔 마왕이 악역이고 결사는 이 악물고 인류를 보호했을 뿐이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일반인이 보기엔 전혀 달라요.”
“…”
일반인이 보기엔, 마왕은 어찌 됐든 결사가 억눌렀으니 얼마나 끔찍한 존재인지 잘 모르겠다.
반면 결사는 눈앞에서 내 가족을 이상한 불꽃에 제물로 바치는 악당들이다.
“그때 최초의 마왕 숭배자들이 탄생했습니다.”
마왕을 선한 존재라고 믿어서 숭배한 게 아니다.
정체불명의 우주적 재해, 근본적으로 괴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숭배했다.
더 증오스러운 결사와 싸우고 있으니까.
적의 적이며, 엄청나게 대단한 존재니까.
“이 정도면 교단이 왜 생겼는지에 대한 답은 되었지요?”
“… 그래.”
이해했다.
미친 사슴이 자연재해 같은 늑대를 신으로 섬긴 이유를 알았다.
“다음 질문은 이것이죠? 왜 마왕은 진짜 신처럼 행동할까?”
숨이 턱 멎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우리가 가장 궁금해했던 부분이다.
아마도 206호의 가장 큰 비밀.
사슴이 늑대를 숭배하는 것보다 더 괴상한 일.
늑대가 사슴의 신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마왕은 ‘정말로’ 숭배자들에게 초능력을 내렸고, 가짜 선지자가 나타나자 일깨워주었다.
추종자들이 바라자 유사 저주의 방을 만들어 시련과 보상의 구조까지 만들었다.
신 같은 행동이다.
적어도 마왕 교단 사람들이 보기에, 마왕은 정말 신 같은 존재다.
신처럼 대하니 정말 신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지?
이 현상을 더 널리 확대할 수는 없나?
마왕이 평범한 인간을 상대로도 ‘신처럼 굴게’ 만들 수는 없을까?
“기억하라.”
“뭘 기억하라는 -”
“마왕이 신이었기에 숭배한 게 아니다. 숭배가 선행했고, 신은 그다음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라.”
문득, 상대의 말투가 바뀌었음을 알았다.
말투야 아무래도 좋지만,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신처럼 행동해서 숭배한 게 아니라, 숭배하니까 신처럼 행동했다?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을 때 –
“크윽! 이 자식이 -”
네게는 더 이상 들을 자격이 없다.
자격? 나에게는 없다?
불가해한 압력이 날 집어삼키는 순간, 깨달았다.
‘이것’이 바라는 존재는 내가 아니었음을!
네 동료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알면서도 그것이 답인 줄 모를 뿐.
마왕의 비밀을, 그 답을 이미 알고 있다고?
“개 같은 놈! 죽일 때 죽이더라도 좀 속 시원하게 말해주고 -”
아니, 넌 죽지 않으리라.
*
– 김아리
— 슈우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주변 풍경이 빠르게 바뀐다.
“으악!”
“조용! 이상한 소리를 내면 얘가 놀라!”
“꽉 잡아라!”
멀리서 들려오는 승엽이의 비명과 진정시키는 엘레나, 부들부들 떨며 살아있는 구름을 꽉 붙잡은 진철이까지.
다들 엘레나가 만들어낸 괴물의 난폭한 비행에 고통받고 있다.
물론, 윙 부츠를 사용 중인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 삐이익!
“…”
귀신같이 내 어깨 위에 올라탄 이 버릇없는 앵무새에게도 상관없는 이야기다.
기본적으로 1인용인 윙 부츠지만, 앵무새 정도는 상관없는 모양이네.
“낙원은 지금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소장에게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시간의 지배자가 만들어낸 시간 왜곡은 불규칙적이다.
심층부의 1시간은 낙원의 300시간이다 같은 명확한 비율은 없다는 의미.
장소에 따라, 시기에 따라 다르다.
그러므로 낙원이 현재 몇 일 차인지 정확히 파악할 방법은 없다.
가인이가 내려왔으면 달랐겠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전 회차보다는 훨씬,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진행이다.
벌써 연구소가 보이고 있으니까!
“저쪽이야!”
다른 사람들도 연구소를 발견했는지, 자세를 세우고 여차하면 싸울 준비를 했다.
그리고.
— 탕! 타당!
“저, 정지! 으악! 다, 다가오면 쏜다!”
괴물이 나타나자 군인들이 두려운 기색을 보이며 총을 겨누었다.
몇몇은 참지 못하고 방아쇠를 당긴 상황.
잠깐, 아주 잠깐 고민했다.
여기서 우리 중 누군가가 총에 맞으면 엘레나가 정의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예컨대 승엽이가 총에 맞아 죽는다면 –
“…”
전 회차에서 확인했으니 고통스러운 길을 택할 필요는 없지.
이들은 아이라바타, 카디로프라는 단어를 알아들으니까.
“낙원에서 왔습니다! 저는 아이라바타의 후계자입니다!”
“… 아이라바타의 후계자?”
*
연구소에 들어설 때쯤, 엘레나가 만든 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군인들은 여전히 두려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우릴 포위한 채 연구소 내부로 데려갔다.
언제라도 한바탕 할 것 같은 긴장 가득한 분위기.
2회차에서 나 혼자 왔을 때와 반응이 다르다.
사람 숫자도 여럿이고 하늘에서 괴물을 타고 왔으니 두렵긴 하겠지.
어찌 됐든, 곧 소장이 나타났다.
“으음…. 정말 아이라바타의 후계자야? 생각보다 일찍 왔네.”
힐끔힐끔.
동료들이 서로를 살피며 ‘언제 시작할지’ 눈으로 의견을 나누었다.
이미 경험했잖아?
소장 이 인간이랑 주절주절 떠들 필요가 없어.
— 짝!
바로 손뼉을 쳐서 신호했다.
— 피요오오오!
기다렸다는 듯, 그로테스크가 포효하며 군인들을 혼란에 빠트렸고, 차진철은 소장에게 벼락처럼 달려들었다.
“으악! 이, 이게 무슨 -”
크게 당황한 소장의 몸에서 시계가 깜빡이며 –
“이럴 줄 알았지! 받아!”
시계가 나타나자마자 차진철이 잡아채서 내게 던졌다!
이야~! 시간대여기야말로 최고의 사기 유산이라 생각하는데, 이렇게 쉽게 무력화할 수 있었네.
장비가 대단하다 한들 사용자가 운동신경 없는 소장이라 그런가?
“누, 누나는 제 뒤에 있으세요!”
“에? 그, 승엽아. 괜찮으니까 차라리 유미를 -”
승엽이가 어울리지 않게 용감한 말을 하자 엘레나가 당황했다.
그야, 승엽이 같은 애가 난전 속에서 엘레나를 지킬 수 있을 리가 –
“제, 제가 먼저 총에 맞아 죽으면!”
“???”
“누, 누나가 정의를 쓸 수 있을 테니까 -”
…
내가 죽으면 엘레나가 정의 쓸 수 있음!
이 말은 아주 살짝 멋있었다.
이런 미친 소리를 멋있다고 느끼는 내가 좀 이상해졌나?
그 사이, 차진철은 눈 한번 깜빡할 시간에 소장을 제압했다.
“됐다. 아리야!”
“잡고 있어!”
재빨리 주사기를 꺼내서 피를 뽑은 후, 소장의 입에 들이붓는다.
“읍! 이, 으읍! 역겨운! 새끼들! 내가 반드시 -”
“나쁜 말 하지 마.”
“역겨운 년놈들!”
얘는 은근히 입이 험하네.
분노로 부들부들 떠는 눈을 마주 보며 정신 속으로 파고든다.
…
미로를 깨울 시간이다.
2층에서 봉인이 가진 의의를 생각한다면, 분명 미로를 깨우는 일에도 의미가 있겠지.
이 연구소에는 뭔가가 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