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62)
EP.462 462화 – 휴식일 – 두 번째 문장
462화 – 휴식일 – 두 번째 문장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551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206호의 세 번째 탈출.
덕분에 206호는 101호 이후로 가장 여러 번 시도한 방이 된 셈이다.
심신이 지쳤는지, 복도를 걷는 동료들의 표정에 피로함이 가득했다.
그래서일까?
벽면의 디스플레이에서 내일은 휴식일이라는 안내가 떴다.
은솔 누나가 반응했다.
“오. 206호는 휴식일만 두 번이나 주네. 어려운 방이라서 그런 건가?”
단순한 난이도 보다도 ‘길어서’가 아닌가 싶다.
다른 방은 한번 한 번의 시도가 시간상으로 2, 3일인 경우도 있었는데, 206호는 몇 달씩이니까.
물론, 낙원에 머무른 사람 기준이다.
심층부로 이동한 사람들이 느끼기엔 하루도 채 지나기 전에 끝났겠지.
“우선,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각자 겪은 일부터 말해봅시다.”
자연스레 다과 테이블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번 회차, 파티는 크게 셋으로 나뉘었다.
1. 나(가인), 유송이, 이은솔, 김묵성
2. 김상현
3. 김아리, 엘레나, 차진철, 박승엽, 미로
우리는 도시를 지배하고 시조 신앙을 빙자한 ‘가인 신앙’을 퍼트리는 일을 담당했다.
역할의 특성상, 딱히 대단한 정보를 얻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성과가 없는 건 아니다.
“가인아, 태양의 충전은 끝났어?”
아리의 질문에 모두가 기대감 섞인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가벼운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신성한 태양을 최초 얻었을 때만 해도 아득했던 14만 4,000명의 신앙과 혼.
전부 채웠다.
“형, 그러면 뭔가 대단한 것 할 수 없어요? 하늘을 난다던가?”
흥미진진한 표정의 승엽이를 보자 제법 귀여웠다.
다소 유치하긴 하나 아직 어린 소년이 아닌가!
즐겁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미안해. 충전형 유산이라 함부로 힘을 쓰면 또 충전해야 해.”
다행히 이 녀석은 머리가 좀 많이 나쁠 뿐, 성격은 착해.
“아, 그렇겠네요! 다음에 필요할 때 꼭 보고 싶어요.”
“그래.”
내게 약간의 존경심까지 품은 눈동자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시간이 난다면, 이 녀석을 유용하게 바꿀 수 있을 텐데.
너무나 유용한 능력이 형편없이 부족한 꼬마에게 들어간 상황 아닌가?
비효율적이다.
어쨌든, 다채로운 정보를 얻은 사람들이 한참 동안 의견을 나누었다.
상현이 성역에서 겪은 신비로운 일, ‘궁극자’로 추정되는 불가해한 존재와 접촉한 경험을 말했다.
설명하던 중, 그는 갑자기 날 보며 물었다.
“참, 그놈이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왜 마왕은 진짜 신처럼 행동할까? 그 의미는 무엇인가?”
“…”
“네게는, 그러니까 김상현 너는 더 들을 자격이 없다. 그러나, 네 동료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저는 그 동료가 가인 군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짐작 가는 바가 있으십니까?”
마왕이 진짜 신처럼 행동하는 이유?
단순한 답이라면 이미 모두 알고 있다.
마왕은 원래 사람의 상상에 반응하는 존재고, 사람이 신으로 섬기니 이에 반응했을 뿐.
물론, 상현 형이 이미 다들 알고 있는 뻔한 답을 구하는 것은 아니겠지.
“…”
“하하, 넘겨짚었을 뿐이니, 떠오르지 않으면 무시하셔도 됩니다. 방 해결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것 같으니까요. 개인적인 호기심에 가깝지요.”
마왕은 왜 신처럼 행동하는가.
이 질문은 이렇게 바꿔야 한다.
왜 신은 신처럼 행동하는가.
자신에 비하면 미천하기 그지없는 나약한 존재의 소원을 들어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은 길가의 개미를 본다 해서 지켜주지 않는데, 왜 신들은 신도를 아끼는가.
나는 그 답을 안다.
내가 겪고 있는 현상이므로.
“… 구분할 수 없으니까.”
“네?”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부터 내 밖인가.
인간은 육신의 굴레에 속박당한 존재.
내 몸이 곧 나이며, 몸 밖의 존재는 타자이다.
그렇다면, 하찮은 제약에서 벗어난 지고한 자는 어떠한가?
그들에게 아(我)와 비아(非我)의 경계는 지극히 모호하다.
만물이 곧 나 혹은 ‘나의 일부가 될 무언가’라 여긴다면.
모든 것을 블랙홀과 같은 거대한 인력에 빨려가는 흐름이라 느낀다면.
“…”
궁극의 자아를 얻은 이들에게 ‘신’과 ‘신도’를 구분하는 개념은 무의미하다.
인간이 세포 하나하나를 타자라 여기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마왕은, ‘나’는 신도의 소원을 들어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이루었을 뿐이다.
“아닙니다. 다음 주제로 넘어가죠.”
아리, 엘레나 등이 낙원 심층부에서 미로의 봉인을 해제한 후 알아낸 정보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듣던 중,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비슷한 정보네요.”
마왕 교단이 숨긴 정보와 미로를 통해 얻은 정보는 모두 유사한 해결법을 말하고 있다.
“… 더 신뢰성이 높아졌다는 의미지.”
아리의 말대로 일종의 교차 검증이 이루어진 상황이니, 신뢰성이 더욱 높아졌다.
“서로 다른 루트에서 같은 해결법을 발견했어. 마왕숭배를 통해 마왕을 덜 위험한 존재로 바꾸는 것.”
잠시 침묵한 후, 아리는 상황을 정리하듯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이게 호텔이 준비한 해결법인 것 같아. 구체적인 수단도, 심층부의 제어장치에 있었고.”
순간, 고개를 숙였다.
거침없이 일그러진 표정을 양손으로 가려야 했기 때문이다.
아리, 보기보다 나이가 많은 관리국 요원.
바깥에서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경험을 쌓은 사람.
그런데 떠올릴 수 있는 해결법이 이 불쾌한 방식뿐이야?
한번 거슬리게 느껴지니 과거의 일들이 속속들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과거 104호에 들어가는 일을 여러 번 반대했던 사람이 아리였잖아?
그 멍청함 덕분에 내 성장만 느려진 셈이다.
“여러분, 잠시 제 말을 들어보세요.”
참을 忍을 마음에 새기며 입을 열었다.
분명 호텔이 준비한 해답으로 여겨지는 ‘마왕숭배’의 길을 발견했는데, 왜 그 길을 가선 안 되는가?
다행히 동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가 떠올랐다.
이은솔이나 차진철 같은 사람은 ‘마왕숭배’라는 단어에서 이미 거부감을 느끼는 게 보였다.
그래서 그 길이 얼마나 비윤리적인지, 인류의 운명을 악마의 노예로 만드는 선택이라고 강조하자 금방 넘어왔다.
엘레나, 미로 등은 더 쉬웠는데, 이들에겐 ‘내가 반대한다’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해 보였다.
유송이나 박승엽 등은 분위기를 보아하니 애초에 자기 생각이라는 게 없어 보였다.
그냥 다른 사람들이 정하면 네 하고 따라가는 느낌.
얘네는 신성한 태양에 담지 않아도 이미 반쯤 담겨있는 느낌인데?
두 관리국 요원에겐 우리에게 이미 0.5장의 티켓이 있으니, 가능하면 206호에서 0.5장을 마저 채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리야, 잊지 마. 206호의 유산이 ‘세상을 구할 수단’이라는 건 알고 있지?”
“… 호텔 시네마에서 그런 정보가 나오긴 했었지.”
“정황상 불굴의 이성과 원 모어 찬스 혹은 시간의 지배자가 유산 후보야. 이것 중 무엇이 세상을 구할 물건일까?”
“…”
“정확히 뭔지 모르지? 내 생각엔 둘 다야. 둘 다 있어야 해. 그러니까 ‘더 좋은 해결법’을 찾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야. 할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어, 어? 그, 그런 것 같다. 오늘따라 가인이 네 의견이 꽤 단호하구나.”
“답이 있는 문제니까요.”
마지막으로 김상현은,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양손을 들었다.
“그렇게 합시다.”
“…”
“이미 가인 군이 다른 분들을 다 설득하셨군요. 옆에서 들어보니 꽤 논리적인 의견이었습니다. 그 방향에 저도 따르지요.”
*
회의는 늦은 밤까지 이어졌고, 정말 별의별 개소리가 다 튀어나왔다.
호텔이 안배한 답과 ‘다른 답’을 찾아낸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
“에잇! 지킬 게 없으면 마왕과 싸울 필요도 없잖아! 그냥 제어 시스템으로 인류를 몰살해!”
책임감 넘치는 시장, 송이의 의견이다.
“들어가자마자 우주선 만들어서 지구 버리고 튀자!”
“… 결사가 다 만든 우주선을 찾는 것도 아니고, 우주선을 만든다?”
“소장 기억 다 뒤져도 우주선 같은 건 없던데?”
“미로 양, 우주선은 100일 만에 뚝딱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미로의 우주선 계획과 단박에 퇴짜 놓는 전직 우주비행사.
“그냥 다 죽인 후에 그, 시간을 돌려서 되살리면 안 되나요?”
“… 인마, 아리가 전에 왜 불가능한지 말해줬잖아. 불굴의 이성에 바친 사람은 시간을 돌려도 살아나지 않는다니까. 원 모어 찬스 말고 시간의 지배자로도 불가능하다더라.”
“그, 그런가?”
나이도 어린데 기억이 오락가락하는지, 똑같은 생각을 두 번 떠올린 박승엽과 핀잔주는 차진철.
이렇듯, 모두가 머리를 싸매는 골 아픈 시간이 지나갔다.
“으으…. 머리 아파. 다들 조용!”
피곤했는지, 은솔 누나가 갑자기 피리를 소환했다.
— 삐리리~!
마치, 초등학생이 리코더를 부는 것 같다.
유산 형태가 피리일 뿐, 은솔 누나가 딱히 피리 부는 법을 배운 적 없기 때문이겠지만.
“아아~! 왜 효과가 없는 거야?”
“언니, 머리를 많이 써서 두통이 오는 건 자연 현상 아닐까요?”
“아이, 참! 이놈의 피리는 은근히 쓸모가 없다니깐.”
“이놈아! 유산 있으면 기쁜 줄 알아!”
“여기 없는 사람은 한 명뿐 아닌가요?”
“뭐, 뭐야?”
자기들끼리 가벼운 농담을 건네며 피로함을 푸는 사람들.
그리고….
“…”
정신이 번쩍 든다.
누군가 깊은 바다에서 퍼 올린 차가운 물을 내게 들이부은 것 같다.
“누나.”
“음? 가인아?”
최대한 별일 아닌 것처럼, 나도 농담하는 분위기로 말했다.
“하하, 제가 어릴 때 플룻 배웠거든요? 피리 한번 다시 불어보세요. 자세 잡아드릴게요.”
“이야~ 가인이 어릴 때 교양 있게 컸네!”
자연스럽게 다시 한번 피리 소리가 퍼져나가자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니지, 두 번 연속이라 그런지 더 심했다.
차가운 물에 돌처럼 단단한 얼음이 섞인 채 내 머리를 쉼 없이 두드리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러자 모든 것을 장막 뒤에서 지켜보던 ‘내’가 깨어났다.
…
지금 ‘내’가 깨어났다면, 장막 앞에 선 자는 대체 누구인가.
“으읏!”
“뭐야? 왜 그래?”
“… 저, 잠깐 쉬고 올게요.”
“피곤한가 보네. 그래, 내일은 휴식일이니까. 잘 쉬고 와.”
105호에 도착하자마자 무너질 것 같은 몸을 억지로 벽에 기댄 채 물었다.
[조언 : 3 -> 2]‘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균형을 잃었다. 오랫동안 미뤄둔 일을 다시 시작할 때.]균형을 잃었다?
“…”
저주의 방에서 내심 떠올렸던 생각.
어쩌면, 이 모든 상황을 올빼미가 유도한 것 아닐지.
‘당신입니까?’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것처럼.
“…”
오랫동안 미뤄둔 일.
이상하게도 이 말을 듣자마자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다.
한쪽 추가 너무 강해져서 균형을 잃었다면, 다른 쪽 추를 더 무겁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윽고 한 권의 책이 나타났다.
서(書)는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자마자 스스로 펼쳐졌다.
— 휘리릭!
오래전에 이해했던 첫 번째 문장.
변하지 않는 자아는 실존하지 않는다.
나는 이 이치를 터득했을 때, 내가 더 이상 ‘하나’가 아닐 수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타자의 것이 네 것일 수 있다면, 너 또한 타자일 수 있지 않겠는가.」
“… 이게 뭔 소리야?”
— 파지직!
불꽃이 튀었다.
벼락이 나를 쪼갰다.
이 순간, 나는 돌이킬 수 없는 한 걸음을 내디뎠음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