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63)
EP.463 463화 – 휴식일 – 두 번째 문장 (2)
463화 – 휴식일 – 두 번째 문장 (2)
– 한가인
— 파지직!
벼락이 나를 내리쳤다.
두 번째 문장의 힘이 나를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끌어감을 느낀다.
화신이란 곧 나의 확장이오, 분열이라!
오래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다시금, 망치처럼 내 머리를 후려친다.
“이게 무슨 -”
그때, 사방에 수많은 거울이 나타났다.
재치 있는 농담을 던져 동료들을 웃게 하는 나.
허기를 느끼며 게걸스럽게 스테이크를 삼키는 나.
회의를 주도하며 의견을 제시하는 나.
피곤하다며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는 나.
아리에게 장난치다가 한 대 맞는 나.
엘레나에게 오늘도 예쁘다고 말하려다가 자제하는 나.
미로에게 –
“…”
이 모든 것은 나의 일부다.
내가 했고, 하고 있고, 할 수 있는 행동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그렇게 다짐하며 형언할 수 없는 불안함을 억눌렀을 때.
다시 한번, 문장이 빛을 발했다.
「타자의 것이 네 것일 수 있다면, 너 또한 타자일 수 있지 않겠는가.」
동시에 ‘그것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결국 이 단계까지 왔네.
신성한 태양을 충전해야지~ 하고 마음먹을 때 불길함을 느꼈어야 했나?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불쾌함을 느꼈다.
아니지, ‘불쾌하다’라는 표현은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이것은 ‘다른 방향’이다.
내가 가고자 했던, 나아가고 있는 방향과 다른 길!
“닥쳐라! 모든 것은 나의 일부이니, 너희 또한 내가 걸어온 삶의 발자국에 불과하다. 대화의 상대조차 아님을 왜 모르는가?”
네 말에 모순이 있지 않아?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면 지금 ‘우리’가 하는 건 무엇이지?
“사람의 마음은 본디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넓다. 그러므로 단 하나의 생각만 있을 수는 없으나, 이런 것들은 일시적인 환영과도 같다.”
곧 거품처럼 끓어오르는 존재가 속삭이듯 말했다.
오호라! 우리는 일시적인 환영이고, 너는 영속적인 자아인가?
지나치게 오만한 태도가 아닌가.
“나약한 이들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법.”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는데, 순서로 치면 네가 뒤고 내가 앞이 아니냐.
진실로 오만한 자는 자신의 오만함을 알지 못한다더니, 그 말의 의미를 오늘에서야 알았다.
“바보 같은 소리! 너희는 날 비춘 거울에 불과한데, 순서 따위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
바로 그때, 사방의 거울이 동시에 웃었다.
내가, 알 수 없는 망집에 사로잡힌 내가 너무나 우스워서 견딜 수 없다는 것처럼.
이봐, 그런 말을 할 때는 자기 자신부터 돌아봐야 하지 않겠어?
아.
아.
아.
깨달았다.
자각하지 못했던 진실, 받아들일 수 없던 고통스러운 지혜를 받아들이고야 말았다!
나 또한 거울이다.
나 자신이 거울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던 가장 어리석은 거울이다.
거울이 나를 비추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나부터가 거울이었다.
불립문자(不立文字).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적인 깨달음이 엄습한다.
거울에 맺힌 상을, 다른 거울이 반사하고, 또 다른 거울이 다시금 그 상을 반사했다.
이렇게 셀 수 없이 많은 나가 생겨났다면….
처음으로 거울에 상을 맺히게 한 최초의 나는 누구인지,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모든 믿음이 유한자(有限者)의 환상에 불과했던 것인지.
— 파지직!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것 – 즉, ‘나’를 쪼개는 벼락을 보며 생각했다.
다행이다.
적어도 오늘 이후로는 이 같은 고통을 다시 느끼진 않으리라.
변화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유일성을 잃었다.
*
– 미로
가인이가 두통을 호소하며 떠난 테이블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다들 나 몰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아리 어깨를 계속 꼬집 –
“… 미로, 제발 가만히 좀 있어.”
“가,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
“…”
결국, 아리가 주변을 훑은 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다들 느꼈지?”
“뭐 말이야?”
“미로 넌 조용히 하고.”
“무, 무슨 말이죠!”
“… 승엽이 너도 조용히 하고.”
이거 나이 차별 아님?
괴상하게도 나와 승엽이를 제외한 사람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곧, 할아버지가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가인이 녀석이 오늘따라 좀 단호하구나.”
단호하다?
원래 그렇지 않았어?
은근히 성격 나쁜 송이도 한마디 거들었다.
“오늘은 뭔가 그랬죠. 배려심이 부족하다?”
엘레나도 조심스레 입을 연다.
“살짝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구체적으로는 으흠, 아리와 선생님께?”
아리와 의사 선생님에게 화가 났다?
신기하게도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말할 때마다 은근히 표정이 구겨지더라.”
“처음엔 못 느꼈는데, 1시간 넘게 말하다가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듣던 중, 이해하기 힘들어서 솔직히 말했다.
“저기…. 그냥, 그럴 수 있는 것 아니야? 기분이 날카로웠을 수도 있고! 별것 아닌 이유로 아리나 선생님에게 화났을 수도 있잖아. 예컨대, 아리가 가인이 달걀을 뺏어 먹었다거나.”
“내가 넌 줄 알아?”
“…”
“아니야. 기분상의 변화 같은 게 아니라, 본질적으로 평소와 조금 달랐어.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라고 말한 후, 아리는 다른 동료들을 한 번씩 보았다.
아리의 의도를 이해한 은솔이가 입을 열었다.
“특정한 한 사람만 위화감을 느꼈다면 착각일 수 있지만, 이렇게 여러 명이 동시에 느꼈다면 정말 무슨 일이 생겼다고 봐야겠지.”
“…”
“만약 이 장소가 저주의 방이었다면, 정체불명의 존재가 가인이에게 빙의했다고 생각했을 거야.”
“빙의라.”
“혹은, 이런 생각도 했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호텔에서 이상한 이벤트를 일으킨 게 아닐까?”
“… 그래서 피리를 사용한 거야?”
“응.”
아리가 살짝 핀잔주듯 말했다.
“너무 어설픈 연기 아니었어? 갑자기 머리 아프니까 피리를 쓰겠다니. 피리는 원래 두통에 효과 없잖아.”
“으익! 가, 갑자기 피리를 꺼낼 명분을 떠올리다 보니 생각나는 게 없었다고.”
“뭐, 가인이는 느끼지 못한 것 같으니 상관없겠지.”
할아버지가 은솔이를 보며 물었다.
“은솔아, 들어보니까 네 눈엔 가인이가 해괴하게 보인다며?”
“… 그렇죠. 대부분은 평범하게 가인이가 보이지만, 흠칫흠칫 기괴한 모습이 스쳐 간달까?”
“지금은 어떤데?”
그 말에 은솔이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내 눈엔 예전보다 지금이 더 멀쩡해 보이긴 해요.”
“예전보다 지금이 낫다?”
“예전엔 아예 괴물 같은 모습이 스쳤다면, 지금은 그런 건 아니라서.”
“으음….”
다시 주변이 조용해졌다.
그래서 말인데, 방금 분위기 완전 뒷담화 그 자체 아니었어?
가인이가 먼저 자리를 비우자마자 다들 평소보다 성격이 더럽다는 둥, 배려심이 없다는 둥 하고 있잖아!
심지어 괴물 모습이 보인다고?
이건 완전 악담이야.
그래서 깨달았다.
나는 절대 먼저 자리 비우지 않아야지!
그때, 아리가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회의는 이쯤 하자. 가인이도 돌아오지 않을 것 같고, 내일이 휴식일이니까. 미로, 잠깐 같이 가자.”
갑자기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리는 아리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답했다.
“싫어.”
“… 넌 또 왜 이래?”
“아리 넌 모르겠지만, 이 자리에서 떠나면 안 돼!”
“…”
이 상황이 뭔가 싶었는지 우릴 바라보는 동료들과 얜 또 뭐야 하는 눈으로 날 쳐다보는 아리.
“다른 사람이 떠나기 전엔 일어서지 않겠어!”
“…”
잠시 후, 아리가 한숨을 푹 쉬었다.
“미로 널 볼 때마다 궁금해. 평생을 몸담은 직장, 관리국은 대체 뭐 하는 조직이었을까?”
“무슨 말이양?”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여자애를 피도 눈물도 없는 요원으로 길러내다니!”
그리고 아리는 날 힘으로 들어 올렸다!
“엇! 엇! 으악! 아, 아리가 날 납치해!”
“조용히 해!”
*
— 철컥!
여긴 어디야?
호텔 지하 어딘가의 방인데, 아리에게 들린 채 버둥거리면서 들어오느라 무슨 방인지 보지 못했어.
“꺄아악!”
“조용히 좀 해.”
“통나무집?”
“‘정오의 평온’. 호수와 별장이 있는 여유로운 장소인데, 넌 처음이겠네.”
곧, 아리는 날 통나무집 내부의 푹신한 침대 위에 올렸다.
“빨리 자.”
“…”
“눈 감고 자.”
“…”
이건 너무 노골적이야.
“저번처럼 이, 이상한 그림을 써서 내 꿈에 들어오려고 그러지!”
“잘 아네. 그림은 가인이가 가져갔지만, 없어도 흉내는 낼 수 있지.”
“절대 안 돼!”
“돼.”
“절대 – 읍!”
“미로, 엄마, 부탁이니까 제발 좀 자. 꿈속의 ‘미로 님’께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러니까.”
“으으읍!”
“…”
“…”
10분 정도 시간이 흘렀다.
“잠이 안 와.”
“…”
“아, 아리가 옆에서 쳐다보고 있으니까 잠이 안 오잖아.”
“… 뒤로 돌아설게.”
“그러지 말고, 음, 노래 불러줘.”
“…”
“자장가 불러주면 잘 수 있을 것 같아.”
“… 옛날 생각나네.”
옛날 생각?
그러고 보면, 지금 나보다 더 어린애 같은 또 다른 미로가 아리를 키웠다고 들었는데!
“오! 내가, 음, 또 다른 내가 아리에게 자장가 불러줬어?”
“…”
“음, 음. 아리도 엄마 자장가 들으면서 잠들던 시절이 있었구나.”
마음이 뭉클해졌다.
비록 지금의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우리에게 그렇게 아름다운 일이 있었다니!
“… 내가 불러줬어.”
“응?”
“난 생후 3일 차부터 네게 자장가 불러주면서 재웠어.”
“…”
곧, 귓가를 간질이는 노랫소리가 통나무집을 가득 채웠다.
잘 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덕분에 꿈을 꿨다. 아주 긴 꿈이었다.
괴상하게도 꿈속에서 아리 말고도 또 다른 사람을 만난 것 같다.
*
“이런 장소에서 널 만날 줄은 몰랐는데.”
“내가 할 말이야. 미로 꿈이 무슨 1호선 지하철이야? 오지 말라고 했잖아.”
“… 질문이 있어서.”
“저 너머에 누가 있는 줄 알고?”
“그것도 왠지 모르게 알 것 같았어.”
“…”
*
다음 날 아침, 모두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모였다.
다행히 동료들은 더 이상 가인이에 대해 뒷담화하지 않았다.
“자! 오늘은 다 같이 206호 해결법을 말해볼까요?”
“저, 저기!”
“승엽아?”
“어제 밤새도록 떠올린 놀라운 아이디어가 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