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64)
EP.464 464화 – 휴식일 – 해결에 대한 고찰 (3)
464화 – 휴식일 – 해결에 대한 고찰 (3)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552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제2회 206호 완벽 해결법에 대한 고찰」
… 제2회인 이유는 어제 회의를 제1회로 치는 건가?
은솔 누나가 화이트보드에 적은 제목에서 묻어나는 장난스러움과 별개로 동료들의 태도는 한없이 진지했다.
“어제 미로 양이 말한 우주선 탈출 계획 말입니다, 밤새 고민했는데 -”
상현 형은 진지하게 우주선, 정확히는 ‘우주 거주구’를 100일 이내에 어떻게 만들지 고민한 모양이다.
너무 전문적인 이야기라 어설프게나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리뿐이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100일은 무리라는 결론이 나왔다.
“시간의 지배자에는 회귀 능력이 있잖아, 아예 마왕이 지구에 도착하기 전 시점으로 돌아갈 수 없어?”
일견 그럴듯한 송이의 생각은, 소장의 기억을 얻은 미로가 슬픈 표정으로 반박했다.
“그렇게 많이는 못 돌아가…. 아무리 길어도 1년 정도?”
“헉!”
어떻게든 시간을 번 후 ‘강제 출산’ 정책을 펼치자는 루마니아의 독재자나 떠올릴법한 의견부터 – 시간을 벌 방법을 찾을 수 없어서 기각되었다. – 인간의 정신만 컴퓨터에 옮겨보자는 흡사 SF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상상까지.
초반부터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이디어 대잔치였다.
다만, 상당수의 견해는 조금만 생각해도 허점이 많았다.
당연한 이야기다.
손쉽게 떠올릴 수 있는 해결법이 있다면, 이성의 결사에서 떠올렸겠지.
그때, 승엽이가 평소와 달리 결의에 찬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저, 저기!”
“승엽아?”
“어제 밤새도록 떠올린 놀라운 아이디어가 있는데요!”
미안한데, ‘밤새도록 고민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미묘하게 신뢰성이 떨어졌다.
“사람들의 생각 혹은 믿음이 마왕에게 영향을 끼치잖아요? 그래서 신적인 존재로 숭배하면서 마왕이 사람을 해치지 않게 하는 게 결사가 시도하려 한 해결법이고!”
“그렇지.”
“신이 아닌 다른 것이라고 믿으면 되는 것 아닐까요? 그러니까, 음, 세상을 지키는 방어막? 아니면 엄청 거대한 방패? 혹은 결사가 만든 위대한 도구?”
“…”
순간적으로 주변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터무니없이 들려서가 아니다.
반대로 굉장히 그럴듯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신으로 숭배하며 마왕에게 굴종해 운명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도구, 혹은 무생물이라는 인식을 퍼트린다?
성공만 한다면, 마왕은 인간을 해치지 않을 테고 인간도 자신의 운명을 마왕에게 바치는 게 아니니 ‘마왕 숭배 계획’의 상위호환이나 다름없다.
“…”
하지만, 이 방향은 아니라는 강렬한 느낌이 왔다.
나와 달리 이런 ‘직감’을 느끼지 못한 동료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오! 승엽이 너, 이거 뭔가 그럴듯한데? 누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꼭 무생물일 필요는 없지? 206호 사람들은 시조를 숭배하니까, 시조와 계약한 정령 비슷한 존재라고 우긴다면 -”
안타깝지만 이 방향은 아니다.
그런데, 아닌 이유를 모르겠다.
직관적으로 오답임은 알았는데, 왜 오답인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
문득, 아까부터 조용한 아리는 무슨 생각인지 궁금해졌다.
“…”
슬쩍슬쩍 훑어보면서 생각한다.
어제 아리는 왜 미로의 꿈에 들어가려 했을까?
“…”
말해주지 않으려나?
하찮은 이유는 아닐 –
— 탁!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아리가 고개를 들었다.
“어제, 미로와 대화하면서 떠올린 생각이야.”
움찔거리는 미로를 보며 직감했다.
정황상 아리가 말하는 ‘미로’는 지금 눈앞의 중학생 소녀가 아니라 다른 미로다.
“206호의 해결법까진 모르겠고, 마왕 자체에 대한 고민이랄까?”
마왕 자체에 대한 고민?
다음 이야기는 굉장히 익숙했다.
“마왕은 왜 신처럼 행동할까? 그 이전에, 애초에 왜 인간의 상상에 반응할까?”
결사의 수장인 궁극자가 상현 형에게 던진 의문이며, 형이 내게 전달한 의문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에 대한 나름의 답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걸 의태의 일종이라고 분석했어. 말하자면, 늑대가 사냥을 위해 양의 탈을 쓰는 것과 비슷하지.”
의태의 일종이자 본질적으로 사냥 수단.
“어떤 뱀은 꼬리 끄트머리를 흔들어서 작은 벌레, 혹은 지렁이를 흉내 내. 그걸 먹으려고 다가온 먹잇감을 사냥하기 위해서지. 어떤 물고기는 심해에서 작은 빛을 만들어서 먹잇감을 유인해.”
이해했다는 듯, 상현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은 인간을 잡아먹기 위해 인간의 상상에 반응하고, 때로는 신처럼 행동한다는 겁니까?”
“인간이라기보다 작은 피식자, 작은 지성체라는 말이 맞겠지. 결사의 기록에 따르면 마왕은 우주에서 날아온 존재니까.”
206호의 인류는 결사가 무너지는 순간까지도 ‘행성 이주 수단’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103호의 아타나시아나 203호의 미래 인류는 별을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냈다.
마왕은 이런 먹잇감들의 도주를 막기 위해 ‘진화’했다.
먹잇감들이 마왕을 신비롭게 여기거나, 숭배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도주하긴커녕 몰려들 테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승엽이의 아이디어는 성공하기 어렵겠네.”
“아.”
“그래도 승엽아, 이번 생각은 정말 그럴듯해서 놀랐어.”
“… 네.”
마왕이 인간의 상상에 반응하는 것은 일종의 사냥 수단에 불과하다.
따라서 괴담 속 존재가 되어 인간을 죽이거나, 신이 되어 인간을 영적으로 착취하는 ‘의태’는 마왕 또한 받아들인다.
그러나 마왕이 순수하게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식의 의태는 받아들일 리 없다는 것.
“…”
나와는 전혀 다른 분석이다.
신성한 태양을 사용하며 어렴풋이 느낀 ‘신적 존재에 대한 통찰’에 기반한 것이 내 가설이라면, 아리의 가설은 전형적인 관리국 스타일.
방향성 자체가 너무 달라서 누구 말이 맞고 틀렸다고 따지긴 어렵다.
풀죽은 승엽이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은솔 누나와 할아버지가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평소엔 회의할 때 별말 없더니, 어제오늘은 아주 활발하네! 의견도 세 번이나 내고. 이 정도면 완전 호텔 전문가야. 나가서 요원 하겠는데? 그죠 할아버지?”
“그럼. 지금도 머저리 같은 후배들보다 훨씬 낫지!”
승엽이가 벌써 의견을 세 번이나 냈어?
신성한 태양 때문에 정신이 혼란스러워서 느끼지 못했나?
“앞에 두 번은 뭐였지?”
내 말에 승엽이가 멋쩍은 듯 답했다.
“형, 앞에 두 번은 그냥 고민 없이 대충 떠든 거라 -”
“고민 없이? 대충?”
“뭐, 뭔가 저만 조용히 있으려니까 눈치 보여서….”
“눈치 보여서 즉흥적으로?”
“헉! 혀, 형. 왜 그러세요.”
다그치거나 혼낸다고 생각했는지, 승엽이가 당황하며 물러섰다.
반면, 내 말에서 이상함을 느낀 사람도 있었다.
“… 고민 없이, 즉흥적으로, 대충, 아무렇게나 두 번 던진 아이디어인데 우연히 두 번 다 똑같네.”
아리의 강조를 들은 다른 사람들도 슬슬 무언가를 느끼고 눈을 크게 떴다.
“승엽 군, 어제 뭐라고 했었죠?”
“예? 예?”
웃기게도 승엽이는 자신이 뭐라고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물론, 다른 사람은 아니었다.
“… 사람들을 다 죽인 다음에 시간을 돌려서 살리자고 했어.”
도시, 아니 별 전체의 사람을 다 죽인 다음에 되살린다.
황당무계한 소리지만 206호에선 가능하다.
결사가 인류 전체를 ‘원 버튼’으로 통제하기 위해 생존자를 죄다 도시들에 가두었고, 시간을 돌리는 수단이 실제로 있으니까.
애초에 ‘다 죽인다’와 ‘되살린다’를 따로따로 나누면 이미 206호에서 발생한 현상이다.
두 번째, 세 번째 회차에서 우리는 23억 4천만 생존자를 몰살하며 탈출했고, 첫 번째 회차에서 시장은 원 모어 찬스를 사용해 낙원의 사망자들을 되살렸다.
이 방식에는 중대한 허점이 있다.
“어? 어? 제가 헷갈리는 건가요? 불굴의 이성에 바친 사람은 부활할 수 없잖아요?”
송이의 말대로다.
마왕을 억제하기 위해 불굴의 이성에 사람을 바치면, 바쳐진 사람은 방 내부 시간을 돌려도 살아나지 않는다.
영혼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시간의 지배자라 해도 이 한계는 마찬가지다.
불굴의 이성 혹은 마왕에게 사람을 바치고, 시간을 돌려서 되살리고, 되살린 사람을 다시 바친다.
이런 식의 ‘무한 동력 인신 공양’은 불가능하다.
부활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영혼은 멀쩡한 상태여야 한다.
이 지점에서 다시 한번 모두가 멈췄다.
분명 특이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 같은데, 희대의 행운아가 두 번이나 강조한 아이디어인데!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지?
“뭐지? 이거 뭐지? 승엽아, 이거 뭐야?”
“…”
처음 이 생각을 내뱉은 승엽이부터가 그냥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렇게 모두가 혼란에 빠졌을 때.
“… 나, 방금 뭔가 떠오른 것 같아.”
아리가 어딘가 멍한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
…
…
괴상한 이야기였다.
꿈속의 미로가 언급한 ‘마왕의 본질에 대한 고찰’과 승엽이가 떠올린 ‘시간 역행을 통한 부활’이 뒤섞여서 만들어진 기이한 해결법.
빈틈없이 완벽하다기보다 너무 빈틈이 많아서 어느 부분을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그런 계획.
좋게 말하면 창의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마왕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다.
적어도 시도해볼 만한 가치는 있어 보였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552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 – ‘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0]
긴 회의로 인해 모두가 지친 늦은 시각.
잠시 105호로 돌아와 침대 위에 널브러졌다.
“어제 이후로 마음이 맑아진 느낌이네.”
동료들에 대한 이상한 생각이 멈춰서 다행이다.
“… 올빼미 식으로 말하면, 검은 물감이 늘어났기 때문인가.”
마도서의 권세가 더 강해지며 신성한 태양이 한 발자국 물러섰다.
두 유산의 세력 다툼 사이에 끼어서 고통받는 새우가 된 느낌.
어찌 됐든,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사실은 깨달았다.
“마도서 쪽이 조금 더 이성적인가?”
마도서는 본질적으로 육신의 제약에서 벗어남을 추구한다.
몸은 언제든 갈아탈 수 있는 조금 비싼 옷에 불과한 것.
그런데, 인간의 욕망은 대부분 몸에 의존하고 있다.
식욕이나 수면욕은 물론, 성욕 같은 것 역시 육신이 만들어낸 충동이다.
마도서 자체가 딱히 금욕을 추구하는 건 아니지만, 육신을 하찮게 여기기에 육신에서 비롯된 욕망 또한 흐릿해지는 것.
이것이 마도서에 가까워질수록 초이성적으로 변하는 이유다.
신성한 태양은 이런 방향은 아니다.
신도들의 기도 혹은 갈망을 끝없이 들이마시며 자아를 확장하는 것.
이 기도라는 것은 대부분 ‘이것을 원한다, 저것을 원한다’라는 식이다.
욕망을 집어삼키며 강대해진 존재가 어찌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겠는가.
“… 어때? 이게 내 깨달음이야.”
문득, 웃음이 나왔다.
혼자 침대에 누워서 망상에 빠져있다가 존재하지 않는 비밀 친구에게 말을 거는 모양새잖아?
딱 중학교 2학년이 할법한 행동이다.
다만, 내게는 정말로 비밀 친구가 있었다.
— 파지직!
허공에서 – 또 하나의 내가 나타났다.
“그것은 너의 깨달음이나, 또한 내 깨달음이기도 하지.”
그는 단백질로 만들어진 생체가 아니었다.
빛과 그림자, 공허한 상상, 물질의 개념으로 포섭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내가 마도서에 더 가까운 무언가였다면, 그는 신성한 태양에 더 가까워진 존재.
“어제, 우리는 미로에게 신성한 태양의 침식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
“그녀는 두 가지 답변을 들려주었지.”
“…”
“그중 하나를 시험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허공에서 불길이 나타났다.
모든 문제의 시작이 된 나의 두 번째 유산, 신성한 태양.
불꽃처럼 타오르는 남자.
또 다른 내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래, 어떻지? 날 숭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나?”
“야, 너 말투부터 좀 고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