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65)
EP.465 465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24)
465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24)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552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 – ‘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야, 너 말투부터 좀 고쳐야겠다.”
“…”
처음에는 NPC들 앞에서 신비로움을 보이기 위한 연기였는데, 어느새 뜬금없이 무게 잡는 말투가 ‘태양 가인’의 입에 붙은 느낌이다.
그때, 상대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태양 가인이라니. 내가 태양 가인이면, 넌 마도 가인이냐?”
“그건 너무 유치하잖아….”
실체 가인과 비 실체 가인은 어떨까.
적어도 지금은, 몸이 있는 건 나 뿐이다.
“누가 몸을 차지하는가는 너무 애매한데. 그건 언제든 바꿀 수 있잖아.”
문득, 내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생각’을 상대가 읽고 있음을 알았다.
“너도 마찬가지야. 네가 무게 잡는 말투라고 한 것 중 일부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어. 물론, 지금 내게 물리적인 입이 있는 건 아니지만.”
기억은 물론 현재 하는 생각을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이런 존재들이 정말 ‘타인’일 수 있을까?
타인이 아니라면, 지금 나는 대체 누구랑 대화 중인 것인가.
애초에 대화 같은 건 없는 게 아닐까?
나 혼자서 환상을 보며 망상에 빠진 것과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 –
“그만, 그만. 이제야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알았다. 나는 정상 가인이고, 너는 정신병 가인이다.”
“…”
“아까 생각했지? 마도서는 초이성적이고 태양은 감정적이라고? 그건 네 생각이지, 내 생각은 달라. 마도서는 정신병적이고, 태양은 인간적이다.”
우습게도 이 말 또한 아주 틀린 것 같진 않았다.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미로가 우리에게 해준 조언 말이지. 너의 정신병적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알겠다. 태양의 영향력이 네게는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어.”
어젯밤, 서의 두 번째 문장을 깨닫고 내가 나뉘었을 때.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서로의 역할이 나뉘어있지 않았다.
당연하다.
애초에 마도서는 독립적인 유산이지, 무슨 신성한 태양의 침식을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가 아니니까.
쪼개진 각 자아에게 유산을 나누어 ‘격리’하자는 기발한 아이디어는 미로가 제공했다.
그 결과가 지금이다.
후원자가 좋아하는 물감에 비유한다면, 물그릇을 둘로 나누어 검은 물감과 흰 물감을 격리한 느낌.
“이게 그럴듯한 해결인지는 글쎄, 잘 모르겠지만 이전보다는 나은 것 같네. 미로의 첫 번째 조언은 유용했던 셈이야. 두 번째 조언도 기회가 된다면 확인해보자고.”
미로의 첫 번째 조언, ‘격리’는 유용했다.
두 번째 조언, ‘과유불급’은 어떨까?
“그리고 206호의 해결법 말인데, 좋게 말하면 기발하고 나쁘게 말하면 빈틈이 너무 많아.”
“…”
“비어있는 부분이 죄다 우리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길 비는 느낌인데…. 어쩌겠어. 열심히 해 봐야지.”
동의한다.
아니지, 그의 생각은 곧 나의 생각이니 동의한다는 표현보다 계획을 복기했다 정도가 정확한 표현일지도 –
“아오! 네가 무슨 데카르트냐? 우울증 걸린 독일 철학자 흉내 좀 그만 내라. 나까지 머리 아프네. 대화는 이쯤 하자.”
그 말을 끝으로 일렁이는 불꽃과 같던 존재가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계획의 부족한 부분은 내가 메꾸면 되는 거야.”
지금 이 말은 누가 했지? 내가? 아니면 저쪽이?
… 나도 이만 자는 게 좋을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206호의 네 번째 시도가 시작되었다.
*
– 김아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과 숨 막힐듯한 적막.
곧, 206호의 시작을 알리는 신비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가오는 파멸 속에서 기도하나이다. 흔들림 없는 이치가 세상을 지탱할 수 있기를. 이로써 우주에 가득한 혼돈이 우리의 작은 새장을 침범할 수 없기를 바랍니다.”
…
“불굴의 이성이여! 정명한 이치로 세상을 수호하라!”
이것은 일종의 프롤로그다.
낙원에 설치된 불굴의 이성에 처음으로 불이 붙었던 순간이겠지.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기상.
“…”
소박한 방에서 깨어났다.
밖으로 나가자 교단의 장로를 비롯한 고위층 몇몇이 이런저런 이야기 중이었다.
“매 집회 교도의 수가 늘고 있으니 실로 기쁜 일이며 -”
“저녁 집회에서 오디안 장로가 강론하실 예정이니 -”
“17번 루트에서 인포서들을 만났다는 보고가 많으니 주의하고 -”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가혹한 디스토피아에서 사교 집단을 운영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오, 아리 사도! 오늘은 늦잠을 자셨구려.”
“… 네, 레이먼드 님. 주의하겠습니다.”
“하하! 주의는 무슨! 아직 잠이 많을 나이지. 더 쉬어도 좋네.”
다행히 나까지 저런 귀찮은 일을 할 필요는 없었다.
아무래도 설정상 나이가 어리기 때문이겠지.
— 끼익!
교단의 보물창고로 향하자 몇몇 사람들이 내 쪽을 보았지만,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꽤 고위층이며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신실하고 선량한 소녀였으니까.
애초에 보물창고에 무슨 대단한 무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
적어도 교단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역사 깊은 물건들이 좀 있는 장소일 뿐이라고 말이지.
나도 1회차 때는 그런 줄 알았어.
“…”
“음? 아리 사도, 우주복에 관심이 생겼나요?”
싱글싱글 웃는 노인을 보고 있으니 나도 웃음이 나왔다.
200년 동안 방호복을 보관하면서 우주복이라고 착각했다고?
생긴 거야 우주복 비슷하긴 한데, 기능적으로 너무 다르잖아?
물론 이들은 NPC니까 방호복을 사용할 수는 없었겠지만, 비정상적인 튼튼함은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호텔이 만들어낸 무대는 이런 소소한 부분에서 어설픈 개연성을 드러내곤 한다.
“…”
방호복을 쓰다듬으며 마지막으로 고민했다.
마왕 교단에게 더 얻어낼 만한 무언가가 있을까?
…
없다.
신성한 태양의 충전이 끝났으니 더 이상 교단을 먹을 필요도 없고, 마왕 숭배 계획 또한 폐기한 상황.
딱 하나 ‘떡밥’이 남은 장소라면 성역인데, 성역은 이 사람들이 없어도 갈 수 있는 장소.
그러니까….
앞으로의 계획에서 불필요한 혼란을 불러올 수 있는 사람들은 사전에 처리하는 게 좋겠지.
— 철컥!
“어? 어! 어어어! 뭐, 뭡니까? 이, 이걸 어떻게 -”
방호복을 입었다.
“우오오! 설마 사도님, 마왕께 계시라도 받으신 -”
— 콰직!
낡은 보물창고를 관리하던 노인의 목이 꺾였다.
고통은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 아마도.
“꺄악! 사, 사람이 죽었 – 끄읍!”
“이런 미친! 아리 사도가 미쳤다!”
한 명, 다시 한 명, 또 한 명.
교단 수뇌부가 하나하나 쓰러져간다.
이들 중 상당수는 초능력자였기에 본래라면 이렇게 쉽게 죽일 수 없는 사람들.
그러나 이곳은 낙원 바깥이 아니라 낙원 내부다.
불굴의 이성이 지배하는 영역에서 이들은 모두 평범한 인간이 된다.
반면, 방호복은 불굴의 이성과 아무 상관 없이 작동함을 두 번째 시도에서 확인했다.
어째서? 순수한 과학의 산물이라?
그렇게 치면 최후의 섬광이나 팔찌는?
이렇게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206호는 호텔이 재현한 무대에 불과하니까.
어찌 됐든, 이들 중 그 누구도 날 제지할 수 없었다.
“으악! 제, 제발 살려주세요! 사, 사도님, 제 아들이 -”
“스파이다! 이 미친년은 분명 카디로프가 보낸 -”
차라리 일반인이었으면 인포서에게 신고라도 했을 텐데, 마왕 교단이니 그럴 수도 없어서 대책 없이 살해당하는 사람들.
도무지 이길 수 없음을 깨달은 사람들 여럿이 좁은 통로를 향해 달려갔다.
조금 피곤해졌기에 굳이 막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도주를 막지 않는 날 보고 무언가 깨달은 사람이 있었다.
“하! 통로에도 누군가 대기 중인가?”
“… 레이먼드.”
레이먼드, 마왕 교단의 최고참 장로이자 수장에 가까운 사람.
그는 확실히 통찰력이 있었다.
통로 쪽엔 김상현이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흐, 흐흐! 이게 대관절 무슨 일인지…. 교단의 운명이 여기서 끝나는가?”
“…”
“그럴 리 없다! 절대 그럴 리 없어…! 이 사악한 요녀, 카디로프의 마녀!”
아까 다른 사람도 그러더니, 레이먼드도 날 시장이 보낸 자객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니 그렇게 착각할 수밖에.
“우리는! 우리는 절대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오늘 네가 승리한 줄 알겠지만, 마왕께서 다시금 -”
“맞아. 너희는 이렇게 끝나지 않아.”
이런 말이 레이먼드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노인은 선량한 인간이라 여겼기에 이 정도 말은 해주고 싶었다.
“꿈을 꾼다고 생각해. 조금 길고 고통스러운 꿈. 그냥, 다 같이 한숨 자는 거야.”
“뭐? 대체 무슨 소리냐!”
“다시 깨어날 때는 오늘의 일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거야. 잘자.”
— 콰직!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
– 유송이
“하하, 시장님. 저번 분기 회계 결산에 따르면 -”
“어제 광산에서 올라온 보고입니다만 -”
“플레온 컴퍼니에서 대규모 횡령 사건이 -”
공무원들과 낙원 고위층의 보고가 끝없이 이어진다.
시장, 레온 카디로프는 단 1초도 허비하지 않은 채 쉴 새 없이 업무를 처리했다.
2, 3회차에선 중간부터 내가 사실상 시장 역할을 맡았었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레온을 비교하면 어떨까?
…
에헴.
이 부분은 솔직히 인정하자.
지금 시장이 일하는 걸 보고 있으니, 과거의 난 잘 쳐줘야 좀 복잡한 소꿉놀이를 한 것 같아.
무, 물론 어쩔 수 없어.
원래도 대단한 천재인데다가 행정 업무를 30년 넘게 해온 레온을 내가 어떻게 따라가겠어?
어쨌든, 새삼스럽게 레온 카디로프가 얼마나 뛰어난 인간인지 깨달았다.
“송이야.”
“…”
“송이 카디로프.”
“어? 어? 네?”
놀라서 고개를 들자 잠시 업무를 멈춘 시장이 날 보고 있었다.
“조금 이르지만, 퇴근이다.”
*
부유 저택, 불굴의 이성이 초자연성을 억누를 수 없는 신비한 장소로 돌아오자 시장이 입을 열었다.
“그래, 반나절 동안 내 일을 견학한 감상이 어떻지?”
“…”
오전, 206호에서 깨어나자마자 시장에게 당신 일을 견학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거절할 때를 대비한 2차, 3차 계획을 생각 중이었는데, 의외로 시장은 흔쾌히 허락했다.
하긴, 2회차를 복기해보면 시장은 나름대로 날 자신의 후계자 후보 정도로는 생각해.
적당히 나이 먹었으니 이런 일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
“아빠의 일 처리는 참 빠르고 정확하네요.”
레온은 가벼운 웃음으로 답했다.
기분이 나쁜 것 같진 않았다.
“내일부터는 네게도 요약한 보고를 올리도록 조치하겠다.”
“…”
이건 뭐야?
딸이 중요한 일에 관심 보이니까 기특해서 갑자기 후계자 교육?
이러지 마.
괜히 마음 약해지잖아.
“… 아빠.”
“응?”
“어떤, 어떤 계획이 있어요.”
“계획?”
“종말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한 계획이죠.”
“그래?”
“성공할 수 있을까? 확신은 없어요. 하지만 가능성은 있고.”
“대체 무슨 계획인데?”
“그, 그건 말씀드리기 힘들어요.”
“더 말해보렴.”
“문제는, 계획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희생이 발생한다는 거죠.”
“…”
“몇십 명, 몇백 명 죽는 그런 정도가 아니에요. 평범한 사람의 머리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
“100만 명?”
“그것보다도 훨씬 많죠.”
“흠.”
“심지어 편안한 죽음도 아닐 확률이 높아요. 굉장히 고통스럽겠죠. 이런 계획을 -”
“해도 되냐고? 도시를 위해서?”
“…”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현재 살아가는 사람을 희생시킬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인가?”
“… 그렇죠.”
시장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내게 해줄 말을 고르는 것 같았다.
“송이야.”
“네.”
그의 말투는 왠지 모르게 자상했다.
딱히 사랑받는 자를 쓰진 않았는데.
“그것이 바로 지배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고통스러운 고민, 나약한 자들이 내릴 수 없는 결정을 피하지 않고 부딪히는 것.”
“…”
“네가 정확히 무슨 고민에 빠졌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무엇을 선택하라고 말하긴 어렵구나. 하지만, 적어도 선택을 피하진 말아라. 죽어도 네가 택한 길에서 죽어라.”
아무리 무거운 상황이라 해도 선택을 피하진 말라.
설령 죽더라도, 내가 고른 길에서 죽어라.
시장다운 대답이다.
시장다운 유언이다.
“도움이 됐니?”
“네. 덕분에 마음을 굳힐 수 있었어요.”
“무슨 일인지 몰라도 다행이구나.”
“아빠. 안녕히 주무세요.”
“뭐? 아직 잘 시간은 -”
— 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