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68)
EP.468 468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27)
468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27)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555일 차
현재 위치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현자의 조언 : 1]
– 한가인
“… 차라리 싸우기라도 했으면.”
끝없이 이어지는 강행군에 지쳤기 때문일까?
불길한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
전체적으로 분홍색 톤의 공간이다.
가구가 없는 사무실과 비슷한 분위기이며 끝없이 넓다.
바닥은 미묘하게 불쾌한 질감의 카페트, 천장에는 쉴 새 없이 윙윙거리는 소음을 내는 형광등.
언뜻 보면 도시의 평범한 사무실 같은 이 공간에는 한 가지 끔찍한 특징이 있었다.
넓다.
끝없이 넓다.
무한히 넓다.
공간을 뒤져 문을 열면 다른 사무실이 나오고, 그 사무실을 뒤져 문을 열면 또 다른 사무실이 나온다.
“…”
무지막지한 유산과 축복을 겸비한 복제와의 치열한 혈투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격렬한 싸움은커녕 적의 위치조차 알 수 없었다.
— 화르르!
다시금 신성한 태양을 불러내 초월적인 인지능력으로 주변 상황을 살폈다.
“이번에도 없어.”
시각이나 청각으로 분류할 수 없는, 압도적인 초감각이 주변 공간으로부터 수집한 데이터를 뇌에 쏟아부었음에도 유의미한 정보는 전혀 없다.
애초에 태양을 소환해 주변을 수색한 일이 처음이 아니기도 하고.
다만, 한 가지 기괴한 사실은 진작 알아냈다.
“공간을 매번 만들어내는 것 같은데?”
언뜻 보면 무한히 넓은 공간 어딘가에 내가 떨어진 것 같지만, 신성한 태양이 제공한 초감각은 전혀 다른 정보를 알려왔다.
이 순간, 실존하는 공간은 지금 내가 있는 이 장소뿐이다.
문을 열 때 원래 존재하던 다른 사무실과 연결되는 게 아니다.
문 너머로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공간이 나타나는 것.
…
이를 알아챘다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진짜 어떻게 해야 – 혼잣말 좀 그만하자.”
마도서 덕분에 생긴 괴상한 혼잣말 버릇 때문에 불쾌함만 느꼈다.
— 철컥!
다시금 문을 열자 익숙한 사무실 풍경이 날 반겼다.
“이건 아닌데.”
결국, 하나 남은 조언을 사용했다.
[조언 : 1 -> 0]‘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지?’
[상대가 준비한 판에서 놀아나면, 승리는 멀어지기 마련]“… 상대가 준비한 판이라.”
언제나 그렇듯 선문답 같은 답변.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이 뜬구름 잡는 문장을 보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기이한 현상에 매몰되어선 안 된다.
이 장소는 복제가 유산 및 축복을 사용해 만든 곳이며, 근본적으로 마왕이 내린 시련의 일환에 불과하다.
상대의 목적은?
싸움을 피하고 내 자원을 소모하는 것.
마왕의 본질은 야수, 재해, 충동의 집합 같은 존재다.
그러나 교단의 신앙심에 반응해 ‘신을 의태 한’ 마왕에게는 신도들과 소통할 수 있을 정도의 지성 비슷한 것이 있다.
신을 의태 한 마왕이 보기에 지금의 나는 지나치게 강하다.
마왕 본인이 나선다면 모를까, 어설픈 복제들이 나서서는 1분도 버티기 힘들다.
그러니 힘으로 겨루는 대신 이런 미궁 같은 장소에 가둬버리는 길을 택한 것.
“…”
유사 대적자가 누구인지, 무슨 능력을 썼는지도 짐작이 갔다.
이런 괴상한 현상을 만들 수 있는 유산은 내가 아는 한 딱 하나, ‘불길한 상상’ 뿐이다.
다른 유산, 예컨대 신성한 태양이라 해도 이런 황당한 현상은 만들 수 없다.
사용자는 필시 아리의 복제.
요원으로 일하며 경험했던 끔찍한 현상 중 하나를 구현중인 게 아닐까?
여기까진 알겠는데….
그래서 해법이 뭐지?
“…”
처음으로 ‘진짜 저주의 방’에 들어온 느낌이다.
이전에 겪었던 ‘행운, 팔찌 상현’과 ‘정의, 별 조각 미로’와의 승부도 인상 깊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싸움 일변도였지.
호텔이 만든 진짜 저주의 방은 결코 그런 방식이 아니다.
싸움이나 힘겨루기의 비중은 생각보다 높지 않으니까.
다시 문 앞에 섰다.
열어봐야 또 다른 사무실이 나타날 뿐이다.
이번엔 방식을 바꿔보자.
— 화르르!
태양을 소환한 후, 문을 여는 대신 벽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단백질로 이루어진 부드러운 살덩이와 단단한 콘크리트가 부딪쳤는데 단박에 콘크리트 벽이 터져나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처음으로 이 기이한 장소에서 변화가 발생했다
“… 여긴 또 뭐야?”
발목까지 차는 물, 사방에 가득한 초록 식물들과 벽 너머로 보이는 푸른 수영장.
이전까지 있던 장소와 전혀 다르다.
문을 열면 사무실이고, 벽을 부수면 수영장인가?
“이동 방식에 따라 다르다?”
천장을 부수면 또 다른 장소? 바닥을 부수면?
이렇게 다채롭게 이동 방식을 연구하다 보면 ‘아리가 있는 장소’로 갈 방법이 나오나?
마치 퍼즐 풀이나 방 탈출 같다.
— 찰박!
찰랑이는 물 위를 걷다 보니 이 방향 역시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처음 했던 생각으로 돌아가자.
애초에 마왕이 이런 피곤한 시련을 내린 이유는?
복제들이 힘으로 날 막지 못하니, 미궁에 가둬서 시간을 끄는 것.
퍼즐을 풀어서 해답을 찾아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퍼즐 풀이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 자체가 마왕의 의도니까.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한다.
마왕이 준비하지 않은 방향성.
마왕과 아무 상관 없이 준비된 무언가.
호텔이 내린 힘.
— 펄럭!
‘꿈의 왕국’
시계는 없지만, 아직 상태창 날짜가 넘어가지 않았으니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새벽에 들어왔음을 고려할 때, 지금은 저녁이겠지.
“… 제발, 누구 한 명은 자고 있어라.”
꼼수 느낌이 강했지만 그래서 마음에 드는 방식이다.
*
[사용자 : 사상 최고의 천재날짜 : 뭐가 중요함?
현재 위치 : 존나 이상한 장소임
현자의 조언 : <— 이거 은근 도움 안 되는 듯]
거품처럼 들끓는 혼란스러운 세상.
동료들이 만들어낸 꿈의 세계.
그 틈새에서 다행히 원하는 동료를 찾아냈다.
그녀는 이번엔 허름한 항구에서 해변을 거닐고 있었다.
“아리야!”
“…”
“총 꺼내지 말고, 때리지 말고, 일단 내 말을 -”
“상황 이해했으니까 헛소리하지 마.”
“이번엔 바로 깼네?”
요전의 꿈 배경은 학교였고, 깨우기까지 총에 세 발이나 맞아야 했는데.
그때는 처음이고 이제는 아니기 때문인가.
“그래, 성역에 들어간 사람이 갑자기 무슨 일이야?”
아리에게 천천히 상황을 설명했다.
“흐음. 불길한 상상을 쓰는 내 복제가 원흉이다?”
“맞아.”
“파 룸(Far Room)을 구현한 건가….”
파 룸?
예상대로 아리는 그 장소가 무엇인지 안다!
“아오! 역시 아리 네가 문제였네.”
“…”
“그래, 해법이 뭐야?”
무슨 장소인지 알면 해법도 알겠지?
“…”
“뭐냐니까?”
“모르는데.”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마. 관리국이라고 해서 현실의 문제를 모두 아는 게 아니니까.”
“네가 경험해본 현상 아니야?”
“경험했지.”
“그, 그러면 탈출했을 것 아니야? 어떻게 -”
“… 일종의 일회성 탈출 수단을 썼어. 관리국에도 많지 않은 도구였고, 나만 쓸 수 있었지.”
“혼자 들어간 게 아닌 것 같은데, 너 말고 다른 사람은?”
곧바로 아리의 표정이 어두워졌기에 답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결국, 관리국도 파 룸 탈출법을 알아내지 못했다는 의미다.
특별한 일회성 탈출 도구로 요원인 아리 혼자만 벗어났을 뿐.
“당황스럽네. 조언이 뭐라고 했다고? 적의 판에 놀아나지 말라?”
“맞아.”
당황스럽다는 말은 진짜였는지, 아리가 다소 허둥거리며 자신이 아는 정보를 마구 던졌다.
“여러 방이 연속된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하나뿐이고 -”
“문을 열 때마다 새로운 방이 생겨나지. 그 방으로 넘어가면 기존의 방은 사라지고.”
“어, 어? 이미 알고 있네?”
“더 말해봐.”
“기존의 방이 무조건 사라지는 건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 없는 방’만 사라지는 것 같아. 또, 동시에 여러 방을 만들 수도 -”
동시에 여러 방을 만든다.
“그 부분!”
“어?”
“동시에 여러 방을 어떻게 만들지?”
“그, 아마 문을 열면서 이동했겠지만 -”
“벽을 부숴보기도 했어.”
“그러면 다 알아낸 거야. 문을 열면 건너편 방이 보이지? 그 상태로 넘어가지 말고 기존 방에서 벽을 부숴. 그러면 벽 너머로 또 다른 방이 보여. 역시 넘어가지 말고 -”
“OK. 이해했어.”
기본적으로 사람이 있는 방 외엔 사라지지만, 방을 넘어가지 않은 채 문을 열고 벽, 천장 등을 부수면 동시에 여러 방이 생긴다.
그러니까….
“알았다.”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깨달았다.
내 ‘알았다’를 듣고 아리는 정말이지 충격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알았다고? 파 룸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알았어? 60년 이상, 관리국 추산으로 12만 5천 명이 넘는 사람이 죽어 나갔는데 -”
“아니, 파 룸의 탈출법은 아니야.”
탈출법을 알았다.
그런데, 파 룸의 탈출법은 아니다.
“한가인!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
“나중에 설명해 줄게. 시간이 없으니까.”
꿈에서 깨어났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555일 차
현재 위치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현자의 조언 : 0]
다시 현실, 파 룸의 수영장과 비슷한 공간.
잠시 가만히 선 채 생각했다.
“파 룸의 탈출법이라….”
미안하지만, 현실에 있을 ‘진짜 파 룸’의 탈출법 같은 건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장소는 진짜 파 룸이 아니다.
어딘가에 있을 아리의 복제가 불길한 상상으로 구현한 가짜일 뿐!
— 화르르!
신성한 태양이 타올랐다.
다시금 빛의 천사로 화한 내 손끝에서 불꽃이 춤을 췄다.
문이 열리자 수 없이 본 핑크빛 사무실이 형성되었다.
벽에 거대한 구멍이 뚫리며 건너편에 또 다른 수영장이 나타났다.
천장이 무너지자 인형으로 가득한 방이 보였다.
바닥이 터져나가며 낡은 폐공장의 탁한 공기가 코를 찔렀다.
찰나의 순간, 다섯 개의 방이 만들어졌다.
“이제 시작이다.”
내가 새롭게 형성된 방으로 옮겨가면 그 방을 제외한 장소는 전부 사라진다.
즉, 옮겨가지 않으면 모든 방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와.”
가만히 선 채 ‘태양 가인’을 불러냈다.
당연하게도, 구질구질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나타나는 순간부터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으니까.
— 쿠르릉! 우르르르!
요란한 공사장에서나 날법한 엄청난 소음이 귀를 찌른다.
내가 가만히 있는 사이, 태양 가인이 다른 방으로 이동해서 내가 했던 행동을 똑같이 반복했기 때문이다.
불과 20초 정도의 시간.
1개의 방이 5개로 불어나고, 5개의 방이 25개로 불어난다.
다음은 125개, 그다음은 625개!
이 모든 공간을 구현 중인 존재.
분명,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 아리의 복제에게 말했다.
“한번 해 봐. 네가 대체 몇 개의 방을 구현할 수 있을지 나도 궁금하니까!”
…
…
…
총 272개.
이것이 아리의 복제가 만들 수 있는 방 개수의 한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만들어낸 모든 공간이 갑자기 유리처럼 변하며 깨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타난 흑발 소녀는, 눈, 코, 입 등 여기저기서 피 흘리며 혼절한 상태였다.
제법 고통스러워 보였기에 가볍게 목을 조여 안식을 주었다.
실시간으로 무너지는 공간 속에서 생각했다.
바깥, 현실에는 이런 어설픈 모사품이 아닌 ‘진짜 파 룸’이 있다고 한다.
당연히 지금 내가 쓴 탈출법은 그곳에서는 통하지 않을 터.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현실로 나간다면, 나는 분명 진짜 파 룸을 경험하지 않을지.
불길한 상상이다.
— 화아앗!
갑자기 주변이 밝아졌다.
곧,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하루 만에 여기까지 왔습니까? 당신은 정말이지 대단하군요!”
마침내 최초의 마왕 숭배자, 결사의 수장 궁극자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