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69)
EP.469 469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28)
469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28)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564일 차
현재 위치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어두운 지하도시의 허공을 비행하며 괴이한 것을 관찰했다.
꿈틀꿈틀.
꿈틀꿈틀.
불쾌할 정도로 쉼 없이 꾸물거리는 하얀 형체.
일본 쪽 괴담인 ‘쿠네쿠네’를 구현했다는데, 내 눈에는 무슨 새하얀 천을 뒤집어쓴 거대 애벌레처럼 보였다.
그때, 내 근처에서 같이 비행 중이던 아리가 한마디 했다.
“너무 대놓고 보는 것 아니야? 괜찮아?”
“괜찮은 것 같은데.”
“신기하네. 은솔이는 저걸 맨눈으로 보자마자 돌아버렸는데.”
“하하! 은솔 양이 약하다기보다는 가인 님이 특출난 것 아니겠습니까? 본디 특별한 운명을 타고난 이에겐 많은 축복이 주어지는 법입니다.”
“…”
“…”
비행 능력이 없었기에 내 등 뒤에 매달린 ‘그’가 끼어들자마자 나와 아리가 조용해졌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이런 징그러운 놈이 내 등에 매달려 있으니 정말 불쾌하다.
차라리 옆에서 비행 중인 아리가 날 뒤에서 껴안고 있었으면 훨씬 –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이상한 생각은 그만하자.
여하튼, 마치 동료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는 궁극자와 계속 거리를 유지하는 나와 아리의 대응이 반복되었다.
대체 어쩌다가 이런 일이 생겼을까?
궁극자는 처음 상현 형과 만났을 때부터 나를 만나고 싶어 했지.
물론, 그가 원한다고 우리가 그의 뜻에 따를 필요는 없었다.
허나, 나는 그의 소망대로 성역에 가서 시련을 돌파한 후 궁극자와 대화했다.
어째서?
마왕 숭배라는 정신 나간, 그러나 인류를 존속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낸 자에 대한 보상?
혹은 가련한 NPC에 대한 동정심?
당연히 그런 건 아니다.
단지, 궁극자가 내게 바라는 게 있듯 우리도 그에게 바라는 게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와 아리는 궁극자를 데리고 낙원 심층부로 내려왔다.
“날짜가 얼마나 지났습니까? 물론, 우리가 느끼기엔 겨우 1시간 좀 넘게 지난 느낌이지만, 바깥세상 기준을 말하는 겁니다.”
이 정도 질문에는 답해주는 게 좋겠지.
“206호 진입 시점은 553일, 심층부 진입 시점은 556일 새벽. 지금은 564일 – ”
[날짜 : 564일 차 -> 565일 차]“- 아니, 565일로 바뀌었네.”
상태창을 볼 때마다 날짜가 훅훅 바뀌어서 무서울 정도였다.
이런 장소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라도 하면 대체 무슨 일이 생길까?
“연구소가 보이는군요. 하아….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장소입니다.”
“…”
가끔 궁금하다.
시나리오에서 이놈의 역할은 뭘까?
대적자?
그렇게 여기기엔, 딱히 이놈이 우릴 죽이려 한 적은 없다.
애초에 206호에 대적자라고 할만한 존재가 있던가?
“…”
낙원의 시장과 시조.
심층부의 소장.
성역의 궁극자.
비중 있는 NPC라면 이 정도인데 이들 모두가 적이라고 말하기 애매하다.
상황에 따라 우릴 적대한 경우는 있었지만, 큰 틀에선 마왕이라는 재해에 대처하는 아군에 가깝다.
궁극자도 마찬가지다.
“…”
오래전,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에게 들은 것 같다.
대적자나 죄수 같은 단어는 우리가 호텔을 공략하며 편의상 만들어낸 개념에 가깝다고.
돌이켜보면 호텔은 이런 단어를 거의 쓰지 않았다.
대적자 ‘따위’는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죄수도 그냥 ‘약간의 위험, 깔끔하지 못한 선객, 진상, 손님’등의 표현을 썼지.
호텔은 우리에게도 비슷한 표현을 쓴다.
여기에는 또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
연구소에 도착한 후, 소장을 만날 때까지 그 어떤 물리적 충돌도 발생하지 않았다.
총을 든 채 달려드는 군인들을 궁극자가 손짓 한 번에 잠재웠기 때문이다.
“별것 아닙니다. 당신의 힘에 비하면 우스운 잔재주가 아니겠습니까?”
“…”
“그쪽, 아리 양. 동료분을 깨워주시지요. 지금의 전 도시 제어장치를 직접 통제하기 어려워서 말입니다.”
아리가 어딘가 꺼림칙한 표정으로 궁극자를 훑었다.
“지금의 넌 인간을 벗어났기 때문인가? 그래서 제어장치를 직접 통제할 수 없다?”
“글쎄요?”
“…”
곧, 아리가 기절한 소장의 몸에 잠들어 있던 미로를 깨웠다.
그리고.
— 슈우웅!
태풍과도 같은 엄청난 강풍이 불며 아리가 벽에 처박히고, 미로가 형체가 흐릿해질 정도의 속도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으읏!”
잠에서 깨어나며 숨 한번 내쉬자 강풍이 일어났다.
내가 빙의해주길 기다리며 가만히 있을 뿐인데, 심장 박동을 비롯한 약간의 움직임만으로 몸 전체가 엄청난 속도로 진동 중인 상황.
기침 한번 하면 건물이 무너질까 걱정했다는 슈퍼맨이나 다름 없는데?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직접 보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찰나, 유치한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지금의 ‘초가속 미로’와 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쓸데없는 생각은 집어치우자.
— 파지직!
곧, 미로의 몸이 내 통제하에 들어왔다.
“오호, 참 신기한 힘이군요?”
“…”
“방금 그 ‘파지직’ 하는 소리와 빛은 무엇이죠? 당신의 신비로운 책이 만들어내는 현상입니까?”
“…”
두 번째 문장을 이해한 후, 화신의 힘이 과거보다 강력해지며 생긴 현상인데 이유는 나도 모른다.
“바쁜데 시작하지. 벌써 568일 차인데.”
“그러지요.”
잠깐 사이에 또 3일이 흘렀다.
*
궁극자의 지시에 따라 도시 제어장치를 조작했다.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명령어를 한참 동안 입력했는데, 굳이 따지면 핸드폰의 ‘개발자 모드’를 건드리는 것 같았다.
잠시, 일종의 로딩이 시작되자 궁극자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여러분도 참 대단합니다. 우리는 이런 방식은 떠올리지도 못했으니까요!”
“떠올려도 소용없었겠지.”
“그건 그렇습니다. 당시의 우리 능력으론 시도할 수 없었으니. 사실, 지금도 그럴 것 같군요.”
“…”
긴 세월 인류사의 뒷면에서 문명을 지탱해온 결사의 수장이 보기에도 희한한 해결법.
최초의 아이디어는 승엽이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던 문장에서 시작됐다.
‘NPC들을 전부 다 죽인 후에 시간을 돌려서 살리는 건 어떨까요?’
“정말이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23억 4천만 인구를 전부 다 죽이다니요? 아무리 시간을 돌릴 수단이 있어도 그렇지, 너무나 악마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인간을 게임 캐릭터처럼 여기는 사고방식이 아니라면 떠올리기조차 쉽지 않은 발상입니다.”
아리가 불쾌한 듯 답했다.
“그래서? 우리가 너희를 게임 캐릭터처럼 여기는 게 싫어? 악마 같아?”
“하하! 그럴 리가요? 이거 이거, 동업자들끼리 너무 까칠하게 굴지 맙시다.”
“… 동업자라니.”
“아닙니까? 관리국 출신이라면서요? 보나 마나 같은 조직이 몇 순 돌면서 그때그때 이름 바꾼 게 -”
“아앗! 듣는 사람이 있는데!”
같은 업계 사람들의 대화에 애매하게 낀 느낌이라 순간적으로 웃음이 나왔다.
“그냥 편히들 대화해. 어차피 나도 짐작하고 있으니까.”
“…”
“…”
막상 멍석을 깔아주니 두 사람 다 조용해졌다.
그래서 내가 질문을 던졌다.
“처음으로 해보는 방법이라 궁금해. 불굴의 이성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생존자를 전부 죽이면, 마왕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마왕이 야수 같은 존재라면, 인간의 영혼을 들이마시는 우주적 포식자 같은 존재라면.
지구에 사냥감이 사라졌음을 알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쩌면, 먹을 것이 없으니까 지구를 떠나지 않을까?”
이게 우리가 세운 계획의 골자다.
은솔 누나는 ‘청야전술’이라는 블랙코미디 같은 이름을 붙였다.
그때, 침묵을 깨트리는 소음이 들려왔다.
— 삑!
로딩이 끝나자 다시 바빠졌다.
궁극자의 복잡한 지시를 따라 미로의 몸을 통제하며 ‘청야전술’에 대해 생각했다.
먹잇감을 전부 없앤다.
먹을 것이 사라진 마왕이 떠난다.
마왕이 떠난 후 시간을 돌려 사람들을 되살린다.
이 단순명쾌한 계획에는 NPC를 한없이 도구로 보는 비인간적인 면 외에도 빈틈이 ‘너무’ 많았다.
1번부터 문제다.
인간 열댓 명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23억 4천만 생존자를 어떻게 죽이지?
불굴의 이성에 바쳐서는 안 된다.
영혼 자체가 장작처럼 타버리면 부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굴의 이성과 무관한 방식으로 206호의 생존자 대부분을 죽여야 한다.
그런 수단이 있긴 할까?
여기서 회의가 막혀서 조언을 썼을 때, 올빼미는 충격적인 답을 들려주었다.
206호의 구도를 만들어낸 자, 최초의 마왕 숭배자, 궁극자.
그에겐 불굴의 이성과 상관없이 인류를 몰살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생존자를 깡그리 제물로 바치거나 전 인류를 마왕 숭배자로 세뇌하는 일은 정신 나간 짓이긴 하나, 결국은 결사 나름대로 만들어낸 인류를 위한 길이다.
그런데,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인류를 몰살하는 수단을 대체 왜 만든단 말인가?
“아니, 아닙니다. 오른쪽 위에서 두 번째 패널을 누르고 다음으로 -”
“맞게 눌렀는데?”
“한 번 더 누르셔야 합니다.”
진실은 언제나 단순하다.
처음 우리 생각이 맞았다.
결사는 의미 없는 인류 몰살 장치 따위를 만든 적 없다.
다만, 이 제어장치는 결사가 건설한 ‘도시’라는 정교한 시스템을 세밀하게 통제할 수 있다.
그 세밀한 통제 중에 ‘일시적인 물 공급 차단’이 있었을 뿐이다.
원래는 물이 오염되었을 때를 대비한 일시적인 수단이었겠지.
여기에 도시 밖으로 절대 나갈 수 없게 조치한다면?
인간이 물 없이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3일이다.
— 우우웅!
지하 전체를 울리는 진동 속에서 궁극자는 빙그레 웃었다.
“끝났습니다!”
“…”
“본래는 즉시 파이프를 차단할 수 있는데, 지상과 심층부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니까요. 아마 지상에선 며칠에서 몇 주에 걸쳐서 서서히 물 공급이 멈출 겁니다. 물론, 마왕 교단이 사용하던 외부로 통하는 샛길도 막힙니다.”
“…”
“대업을 축하드립니다. 그러니까….”
궁극자, 206호에서 가장 기이한 존재의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날 향했다.
“성역에서 했던 이야기를 끝내볼까요?”
그는 우리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이제, 우리가 그의 요청에 답할 시간이다.
“가인 님. 당신들이야말로 누구보다 잘 아시겠지만, 기실 이런 장난질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
“206호를 해결하든 말든 ‘우리에게는’ 아무 의미 없다는 이야깁니다.”
“…”
“나는 진실한 구원을 바랍니다. 부디, 우리의 구원이 되어주소서.”
진즉 인간의 형상을 잃은 기괴한 존재가 흡사 왕에게 경배하듯 무릎 꿇었다.
동시에 아리의 복잡한 감정이 담긴 시선이 날 향했다.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571일 차
현재 위치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현자의 조언 : 3]
“… 그새 날짜가 또 많이 지났네. 지상의 동료들은 잘 버티고 있으려나.”
[조언 : 3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