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70)
EP.470 470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29)
470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29)
– 김묵성
고요함이 가득한 음울한 저택.
쌍안경으로 외부를 살피던 승엽이가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모이고 있어요.”
“…”
“시위 같은 걸 하려는 게 아닐까요?”
시위라….
눈치 없는 사람이라 해도 물 공급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아챘을 테니, 사달이 날 때도 됐다.
“잘 됐구나.”
“네?”
“밖에 나가서 시위하고 떠들며 체력을 낭비하면, 더 빨리 쓰러질 것 아니냐? 우리가 이곳에서 버텨야 할 시간이 줄어드는 셈이지.”
“그,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네요.”
불안해하며 바깥을 살피는 승엽이를 보자 그놈의 ‘청야전술’이 떠올랐다.
계획을 거칠게 요약하면 간단하다.
마왕이 인간을 잡아먹기 전에 우리 손으로 인류의 명줄을 끊자는 것.
먹을 것이 없어진 마왕이 지구를 떠난 후 시간의 지배자로 죽은 사람들을 부활하면 성공이다.
이 황당한 계획에는 크게 세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어떻게 다 죽이지?
생존자가 무슨 수십 수백 명이 아니다.
낙원에만 억 단위, 지구 전체엔 23억이 넘는 사람이 살아있다.
둘째, 진행 도중에 마왕이 강림하면 어떻게 할까?
마왕이 얌전한 이유는 전 세계에서 불굴의 이성에 매일 사람을 바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처럼 강력한 도시 통제력이 필요한데, 도시가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이런 통제가 가능할까?
다 같이 죽는 상황이 되면, 지배층의 수족이던 인포서나 요원들부터 명령을 듣지 않을 텐데!
셋째, 마왕이 우리 생각대로 행동해줄까?
계획이 성공했다 치자.
우리 손으로 인류의 명줄을 끊었고, 마왕은 시체로 가득한 지구에서 깨어났다.
이 상황에서 마왕은 우리 기대대로 지구를 떠나줄까?
애초에 죄수와 참가자는 물론, 호텔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데!
“후우….”
“할아버지?”
“신경 쓰지 마라.”
허점이 많아도 너무 많은 계획이 아닌가.
이렇게 허술한 계획에 모두가 동의했다는 사실이 유치한 농담처럼 느껴졌다.
계획을 가장 강하게 밀어붙인 동료를 떠올리자 음울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우리는 이 계획을 동의한 것인가?
아니면, ‘동의 당한’것인가.
“… 이것 참, 나도 주책이구나.”
그때, 멀리서 귀를 찌를듯한 소음이 들려왔다.
— 쿵! 쿵!
“여기, 여기에 물이…. 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마실 것도 없으니 나가시오.”
“제발…. 제발! 에, 엘레나 양! 듣고 계시죠? 우, 우리 가족은 전부 엘레나 양 팬이란 말입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도 딱 한 병만 -”
— 탕!
“꺄악!”
“경고사격은 이게 마지막이다. 다가오면 다음은 머리다.”
“아아아….”
멀리서 듣기만 했는데도 참혹한 상황이다.
당연히 옆에 있던 승엽이의 표정도 더욱 우울해졌다.
우리는 엘레나의 재산을 아낌없이 사용해 식량과 물을 제법 비축했고, 다 같이 엘레나의 저택에서 버티는 상황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낙원 사람들이 그런 준비를 했을 리 있겠는가?
매일같이 제발 물 한 병만 달라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다행이군.”
“예? 대, 대체 뭐가 다행이죠?”
이 녀석은 이 상황에서 ‘다행’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나올 수 있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내가 보기엔 정말 다행이다.
저택에 승엽이 같은 애들만 남았으면 무슨 일이 생겼겠냐?
보나 마나 눈물 찔끔 흘리면서 우리 마실 것도 없는 물 한 병을 줄지 말지 토론했겠지.
이런 종류의 문제에선 은솔이나 진철이도 그리 믿음직하지 못하다.
다행히 상현 선생은 제법 단단한 심지가 있는 사람이라, 흔들리지 않고 외부인을 쫓아냈다.
“승엽아, 가서 송이 좀 데려와라.”
첫 번째, ‘어떻게 생존자를 다 죽이냐?’의 문제는 심층부로 내려간 동료들이 해결했다.
도시 밖으로 나가는 샛길은 죄다 막혔고 물 공급이 서서히 끊기는 상황이다.
시기가 문제일 뿐, 파멸은 확정이라는 의미.
두 번째, ‘진행 도중 마왕이 강림하면?’은 지상의 사람들이 해결해야 한다.
“… 해결이라.”
새삼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이지 심해도 너무 심한 계획이 아닌지.
모든 이가 감내해야 할 고통의 끝에 구원이 기다리길 바랄 뿐이다.
“할아버지.”
“시조에게 연락은 받았냐?”
“…네.”
“뭐라고 하냐?”
“파이프가 끊긴 이유를 아냐고 묻더라고요. 모른다고 했죠.”
“그리고?”
“… 이대로라면, 불굴의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 것 같다면서 불안해했어요.”
“흐음. 슬슬 시작이구나. 너도 마음의 준비를 해라.”
“… 할아버지도요.”
“나야 언제나 준비 만만이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어 보이자 딱딱하게 굳어 있던 송이도 미소 지었다.
그래, 이거지.
내일 지구가 망해도 오늘은 웃을 수 있어야 한다.
…
5일이 더 지나자 물 공급이 완전히 끊겼다.
거기서 또 4일이 지난 아침.
씻지 못한 지 일주일이 넘었기에 다들 꾀죄죄한 몰골로 모였다.
다들 말없이 통조림을 까서 입에 욱여넣었다.
그러던 중,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할 이질감이 모두를 강타했다.
“아!”
“어, 어!”
“도, 돌아왔어요!”
“시작이군요.”
축복과 유산의 힘이 돌아왔다.
시조가 혼란에 빠진 낙원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 불굴의 이성이 작동을 멈췄음을 뜻한다.
마왕의 강림이 임박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후.”
갈증 속에서 이미 많은 사람이 말라비틀어졌다.
별 전체로 따지면, 최소 10억 이상은 죽었으리라.
그러나, 권력과 돈을 바탕으로 얼마 남지 않은 물을 독점해가며 버틴 사람이 제법 많다.
지금까지 버틴 사람들을 마왕이 잡아먹으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부활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청야전술’의 두 번째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이며, 답은 하나뿐이다.
이걸 위해서 우리는 낙원 내부에서 버텨왔다.
적어도 낙원의 사람들만큼은 ‘구원’하기 위해서.
— 짝!
“얘들아, 이제 시작이다.”
“…”
“…”
“모두 죽여라. 생존자들을 마왕이 잡아먹기 전에, 우리 손으로!”
*
장기간 농성했던 엘레나의 저택 밖으로 나가자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옥 같은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서 드러나는 충돌의 흔적과 바닥을 굴러다니는 시신들, 그리고.
— 찌이익! 으적! 추르릅!
시체를 뜯어 그 속의 피를 마시며 갈증을 달래는 사람을 본 송이가 역겹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곧, 아이들이 각자 생각한 위치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어디로 갈까?
“카디로프는 어디 있냐!”
“시조의 거짓을 규탄한다! 규탄한다!”
“부유 저택의 도적놈들! 당장 내려와라!”
“… 기운도 좋군. 아직도 시위할 힘이 남아있었다니.”
광장으로 향하자 최소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은 될 것 같은 어마어마한 군중이 있었다.
다들 최소 3일 이상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을 텐데, 기세만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이들을 움직이는 힘은 체력이 아니라 분노였다.
도시를 지옥으로 만든 카디로프 일가에 대한 무한한 적개심.
죽을 때 죽더라도 지배자를 찔러 죽이고 말겠다는 열망이 모든 이를 마지막 순간까지 불타오르게 만들고 있다.
물론, 이들의 현실 인식은 완전히 틀렸다.
얼마 전까지 도시를 통제한 존재는 카디로프 가문이 아니라 대리인을 내세운 시조였고, 그녀는 물 공급이 끊긴 것에 아무 책임이 없다.
물은 우리가 끊었으니까.
“… 카디로프는 물러나라!”
나 또한 시위대와 같은 목소리를 내며 합류했다.
[‘군중심리’ 발동!]“카디로프는 물러나라! 물러나라!”
“물러나라! 물러나라!”
최대한 자연스럽게, 처음부터 시위대를 이끈 사람처럼 앞으로 나아간다.
분노에 찬 사람들 또한 당연하다는 듯 내게 길을 비켰다.
“카디로프가 우리를 지옥으로 이끌었다!”
“카디로프가 우리를 -”
“탐욕스러운 시장을 응징하라!”
“응징하라!”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내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군중들.
어느 순간, 나는 당연하다는 듯 모두를 이끄는 연단에 선다.
아하, 높은 위치에 서자 자연히 보였다.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해야 내 목적을 이룰 수 있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한 전능감이 짜릿하게 올라온다.
가인이 고 녀석이 연설을 참 좋아하길래 특이하다 했더니, 이제 알았다.
“갈증에 시달리는 시민 여러분! 내 말 들으시오!”
“듣고 있다! 듣고 있다!”
군중의 수는 엄청나게 많은데 확성기가 없다.
그래서 뒤쪽 사람들은 내 말을 듣지 못할까 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기이하게도 모든 이가 내 말, 내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있으니까.
“부유 저택으로 갑시다! 카디로프 그 악마들에게 천벌을 내립시다!”
“천벌! 천벌!”
“갑시다!”
낙원 상공의 부유 저택은 본디 이 도시에서 가장 고귀한 장소.
그러나, 지금은 모든 이의 증오가 모여드는 곳이다.
— 쿠르릉!
“…”
하늘에서 괴이한 소음이 들려왔다.
분명, 마왕이 깨어나는 징조이리라.
발걸음을 재촉하며 계속해서 외쳤다.
“카디로프에게 천벌을!”
“천벌! 천벌!”
“죄인에게 응징을!”
“응징! 응징!”
목마르고 굶주린 군중, 분명 몸에 힘이라고는 한 올도 없어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들일 텐데.
증오가 이들을 부유 저택 인근까지 인도했다.
헐떡이는 사람들, 모두가 넋이 나간 채 도시의 하늘에 있는 부유 저택을 바라보았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마치 답을 구하듯 내게 물었다.
“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을 말인가?”
“저택은, 저택은 하늘에 있지 않습니까! 천벌을, 응징을 내려야 하는데…. 카디로프 이 쓰레기들을 태워죽여야 하는데!”
“좋은 생각일세. 그 마음을 그대로 위에 전하게.”
“그러니까! 어떻게 하냐고요! 저택이 하늘에 있는데 -”
군중을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다들 무엇을 고민하시는가? 여기, 부유 저택으로 향하는 파이프가 보이는데 말이지.”
올라가라.
올라가서 증오를 토해내라.
지쳐 죽을 때까지 파이프를 타고 올라가라!
*
– 김상현
물경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금속 파이프를 붙잡고 수십m를 오른다.
멀쩡한 체력으로도 불가능한 일인데, 며칠 동안 쇠약해진 몸으로 가능할 리가 없지.
당연히 파이프를 오르던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미끄러져서 바닥에 떨어졌다.
정녕 기괴한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떨어진 사람들이 무슨 귀신에 홀린 것처럼 다시 파이프를 오르고, 떨어지고, 오르고, 떨어지고를 반복했으니까!
바로 옆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이 나오는데도, 주변 사람들은 장님이 된 것처럼 파이프로 달려든다.
분명, 저들은 지쳐 죽는 순간까지 저 행동을 반복하리라.
앞에서 익사하는 광경을 보면서도 같이 물에 뛰어드는 ‘레밍’의 행동이 이와 같을까?
“요원님도 참, 어마어마한 일을 벌이시는군요.”
예전부터 생각했다.
매일매일 얼굴 보며 친구처럼 지내니까 서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 호텔파티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라고 착각 중인 반신과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반신이 있을 뿐.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이 아닌 존재로 변해간다는 것.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니다.
호텔에서 수없이 경험하지 않았는가?
신, 악마, 초월자 –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모두 야수와 같은 존재이니.
“…”
무의미한 상념에 불과하다.
애초에 나 역시 마찬가지니까.
어설픈 동정심보다는 대의를 위하여 결단을 내릴 시간이다.
낙원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장소, 한 눈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아파트가 밀집한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놈의 유치한 시동어 좀 바꾸고 싶은데.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한 줄기 섬광이 십수 개의 아파트를 관통하는 순간, 인간 김상현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삼각형이 물었다.
‘이후에 시간을 돌린다 해서 오늘의 살인이 사라진다고 믿는가?’
나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이미 너무 멀리 오지 않았습니까. 오늘의 고통이 미래의 구원을 위한 초석이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