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71)
EP.471 471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30)
471화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Re (30)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571일 차
현재 위치 : 206호, 저주의 방 – ‘100일 후에 부활하는 마왕’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궁극자는 마치 내게 충성을 바치려는 기사처럼 무릎 꿇었다.
물론, 외형적으로 인간과 거리가 너무 멀어진 상태긴 했지만.
[조언 : 3 -> 2]‘이 자의 제안을 받아야 합니까?’
[적어도 네게 손해는 없다.]이런 답을 들으니 찰나의 순간, 복잡한 상념이 떠올랐다.
신성한 태양, 나의 두 번째 유산이자 믿을 수 없이 강력한 보물.
예전에 신성한 태양을 얻으며 주와 계약했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는 한가인의 정신을 집어삼키지 않는다.
한가인은 신성한 태양에 14만 4천의 영혼을 담는다.
“…”
돌이켜보면 사기 계약에 가까웠다.
계약 당시는 물론 104호가 종료하는 시점까지도 주와 신성한 태양의 본질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에 맺은 계약이었으니까.
첫 번째 문장은 아무 의미가 없다.
태양의 침식이란 태양 속에 주가 있어서 매일 밤 날 묶어두고 영혼과 정신을 흡수하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침식은 곧 내 선택이다.
태양을 통해 끝없는 힘을 얻을 수 있음을 자각한 내가 스스로 미친 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 뿐.
이렇듯, 마도서의 두 번째 문장을 얻은 후엔 나 자신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손해는 없다….”
“가인 님, 무슨 말씀이시지요?”
성역에서 만난 궁극자는 더할 나위 없이 간절한 태도로 내게 부탁했다.
우리의 구원이 되어달라고.
피할 수 없는 파멸을 피할 수 있는 방주가 되어달라고.
주어가 ‘나’가 아니라 ‘우리’인 이유는 신성한 태양에 담아달라는 영혼이 본인 하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충실한 시민들의 영혼을 모아왔습니다.”
“마왕 숭배자들의 영혼을 모았다?”
“하하, 그렇지요. 아주…. 아주 오랫동안 말입니다.”
“…”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끝없이 파도가 들이치는 해변에서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았지요.”
“…”
“당신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숫자입니다.”
대체 몇 명일까?
14만 4천명보다 훨씬 많을 것 같다.
“영혼을 모은다. 그건 결사의 수장인 당신의 본래 힘인가? 아니면 마왕 숭배자로서 얻은 힘?”
“그 구분이 이 시점에서 의미 있겠습니까?”
“…”
“장담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당신에게 엄청난 힘이 되어줄 겁니다.”
“새삼스럽지만, 넌 내 신성한 태양에 대해 어떻게 아는 거지? 태양에 영혼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
“하하! 그야 가인 님이 206호에서 10만 명이 넘는 사람을 담으셨으니까요.”
“…”
이놈 말대로 여러 번의 회차에서 태양을 요란하게 사용했다.
그러니 마왕은 당연히 인지했을 테고, 그 정보를 자신의 사제에게 전달한 것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태양에 영혼을 더 담는다 해서 무한히 강해지진 않는다.
주가 말했던 14만 4천이라는 숫자는 신성한 태양이 최대 출력의 힘을 낼 수 있는 용량을 말하는 것이었으니까.
더 오랫동안 힘을 쓸 수는 있다.
총에 더 큰 탄창을 장착한다고 위력이 강해지진 않지만, 총을 더 오래 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
따라서 이 제안은 내게 손해랄 것이 아예 없고, 올빼미도 그렇게 답했다.
애초에 궁극자가 부탁하기 전부터 나는 신성한 태양에 영혼을 담아왔다.
하지만.
태양에 담긴다는 것은 결코 평온한 구원이 아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생기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구원보다는 지옥에 떨어지는 것에 가깝지 않을지.
궁극자가 바라는 ‘호텔 밖의 진실한 삶’을 가능케 하는 건 신성한 태양이 아니라 영혼의 함이다.
…
참지 못하고 말했다.
“태양은 네가 생각하는 구원과 많이 달라.”
과거라면 말해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냥 웃으면서 좋다고 수많은 영혼을 삼켰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수많은 동족의 구원을 갈망하는 이를 속이고 싶진 않았다.
“짐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 목숨 하나가 아니라 ‘모두’를 이 저주받은 장소 밖으로 보내줄 가능성은 당신뿐입니다. 고통스러운 미래? 나는 고통스러운 존속이 허무한 소멸보다 낫다고 믿습니다.”
대화를 시작하고 2, 3분 정도 흘렀을까?
절대적으로 긴 시간은 아니지만, 이곳에선 생각보다 긴 시간이다.
— 쿠르릉!
그래서인지 심층부 전체가 요동치며 엄청난 폭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상에서 인신공양이 멈췄음이 분명하다.
마왕의 각성이 시작됐다.
“으앗! 야, 한가인! 무슨 결정이든 빨리 좀 내려!”
다급한 아리의 목소리를 들으며 상태창을 –
[날짜 : 571일 차]들어올 때만 해도 553일 차였는데, 벌써 20일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날짜를 보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궁극자의 제안이 나에게 유리할까요?’
[큰 틀에서 보면 분명 유리한 선택.]‘큰 틀에서? 그러면 작은 위험은 있을 수 있다?’
[위험이 전혀 없는 선택이 호텔에 있을 수 있겠나.]순식간에 두 번 연달아 조언을 쓴 후 잠시 심호흡하며 대기.
“가인아? 시간이 -”
“잠깐만, 잠깐만!”
[조언 : 0 ->3]날짜 넘어갔다!
‘궁극자의 목적은 뭐죠? 정말 신성한 태양에 담겨서 밖으로 나가는 게 구원이라고 믿는 건가?’
[본질적으로 존속과 구원을 목표로 함은 사실.]‘본질적으로? 세세하게는 다른 목적이 있다거나?’
[내가 그렇게 하나하나 알려줄 수 없음은 알지 않느냐?]뭐지?
올빼미의 말투가 살짝 달라진 느낌인데?
‘그러지 말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
조언을 수백 수천 번 쓰면서 단 한 번도 받은 적 없는 유형의 답변이 나왔다.
[너는 기묘하게 꼬인 구석이 있다. 내가 세세히 알려주면, 이번엔 널 조종하려 든다고 의심할 터. 나는 조언자일 뿐, 네 고민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다.]“어라?”
“뭐야? 결정했어?”
“…”
거짓말 안 하고 이런 답변은 처음 받아본다.
잠깐 사이에 마치 대화하듯 조언을 연달아 사용하니 다소 짜증 난 것 같다.
또, 조언을 빙자해 평소 내게 하고 싶던 말을 던진 느낌.
“기묘하게 꼬인 구석이 있다니….”
다시 한번 심층부가 큰 소리를 내며 요동쳤다.
간절한 표정의 궁극자는 물론, 아리도 다급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내게 손해도 없고, 무엇보다 이놈에겐 마지막 희망인데 그걸 거절한다?
갑자기 이상한 짓을 할지도 몰라.
— 화르르!
무너지는 지하도시, 타오르는 불길을 손에 쥔 채 말했다.
“네가 원하는 바를 하라.”
“기꺼이.”
*
– 박승엽
꿀꺽!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제법 높은 건물.
그 옥상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부유 저택 하단에선 수천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 홀린 것처럼 파이프를 오르려다가 시체의 산을 쌓았다.
아파트가 모여있던 장소엔 핵미사일이 떨어진 것 같은 참상만 남았다.
할아버지와 의사 선생님의 학살이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부유하는 괴물 해파리는 엘레나 누나를 등에 얹은 채 쉼 없이 인간을 ‘수확’한다.
허기와 갈증에 시달린 끝에 광장에서 기도하던 사람들 사이로 근육질 거한이 나타나자 이계의 빛이 사방으로 뻗었다.
또 어떤 장소에선, 수십 마리의 나비를 부려 사람들을 픽픽 쓰러지게 하는 은솔 누나도 보였다.
“…”
숨이 턱 막힌다.
분명 밖에서 계획했던 일인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있었는데!
직접 눈으로 보니 토할 것 같아.
그때, 부드러운 손이 날 껴안았다.
“이제 아무것도 안 보인다! 까꿍?”
송이 누나가 날 껴안았다.
“누나. 저 초등학생 아니에요.”
“까꿍?”
“아 진짜!”
뭔가 짜증 나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누나는 나랑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면서!
누나가 한발 물러서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승엽아, 굳이 보려고 하지 마.”
“…”
“아무도 네게 묵시적 비극에 대한 윤리적 고민에 빠지라고 하지 않으니까. 고민해도 답을 낼 수 없는 문제는 고민을 그만두는 게 답일지도 몰라.”
답이 없는 문제는 고민을 그만둔다.
이게 송이 누나가 호텔에서 얻은 나름의 교훈일까?
그때, 송이 누나보다 훨씬 차가운 유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모두에겐 역할이 있고, 너도 마찬가지야. 그 일에 집중해.”
“…”
날 변호하듯, 송이 누나가 답했다.
“유미 너 바보니? 승엽이는 집중하면 안 된다니까? 승엽아. 그냥 대충 놀아. 멸망해가는 세상 속에서 롤 한판은 어때?”
“…”
“소환사의 협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건 또 뭔가요.”
“게임 하는 기분이라도 느끼게 해주려고. 대사 이거 맞지?”
누나, 변호해주려고 말한 것 맞죠?
…
모두에겐 역할이 있다.
내게도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시조는 혼란에 빠진 낙원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고, 불굴의 이성이 작동을 멈췄다.
머지않아 마왕이 몸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다.
동료들은 마왕이 강림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생존자를 ‘안락사’중인 상황.
그렇다고는 해도, 마왕이 진짜로 강림하는 순간에는 모두가 안전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타이밍, 바로 그 타이밍의 문제다.
동료들이 생존자의 ‘안락사’를 멈추고 마왕을 피해 몸을 숨겨야 할 정확한 타이밍.
마왕이 손 한번 까딱해서 동료들을 집어삼키기 직전의 순간!
그 정확한 골든 타임은 언제일까?
모르지.
아무도 모르고, 알 방법도 없어.
그래서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일이 내게 주어졌다.
— 고오오오!
도시를 뒤흔드는 악몽 같은 울음이 울려 퍼진다.
조금 전까지 날 위해서라도 여유 있는 체하던 송이 누나가 다급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유미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어! 지, 지금 -”
아니다.
아직은 적절한 때가 아니다.
동료들에게도 그렇게 전했다.
박승엽 : 아직 아니니까 더 하세요.
김묵성 : OK.
차진철 : 소리가 불안한데…. OK.
— 우르릉!
종말의 순간에나 들려올 듯한,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폭음!
기다렸다는 듯, 하늘에서 천사들의 합창이 들려온다.
당연하지만 206호에 천사 따위는 없다.
“으악! 지, 지금 아니야? 지금이 -”
“아니에요.”
아직 아니다.
더 많은 사람을 안락사해야 한다.
마왕이 집어삼킬 ‘먹잇감’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박승엽 : 아직 아님. 안락사 계속하면 됨.
김상현 : 이제 진짜 좀 무섭군요.
이은솔 : 아직도 아니야?
더.
더.
더.
…
하늘이 열렸다.
돔으로 막혀있기에 하늘을 볼 수 없는 낙원의 하늘이 열렸다.
지금까지도 남아있던 소수의 생존자가 넋 나간 채 하늘을 바라본다.
미친 세상의 예수가 재림이 다가왔음을 세상에 고하자 사람들이 둥실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천운 발동! 우주의 기운이 당신을 가호합니다!]바닥이 ‘적절히’ 무너지며 균형을 잃자 꼭 쥐고 있던 주먹이 벌어졌다.
마침내 모래시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 축복은 행운.
행운이란 무지(無智)한 상황에서조차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
— 딸깍!
별의 심연에서 궁극의 악이 몸을 일으키는 순간 – 모래시계가 한 바퀴 돌았다.
나는 마왕을 향해 외쳤다.
“씨발! 보라고! 이게 바로 딸깍 캐리다! 마왕 이 병신 같은 -”
이게 롤이지.
…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