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76)
EP.476 476화 – 파티 타임 – 고민 (1)
476화 – 파티 타임 – 고민 (1)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31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복도에서 깨어났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뒤를 돌아 동료들의 표정을 확인하자 말이 필요 없음을 알았다.
해방감 가득한 동료들과 흥분한 할아버지의 표정이 곧 답이었으므로.
마침내 길고 길었던 206호, 마왕의 압박에서 벗어난 것이다.
*
다과 테이블로 이동해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선택의 시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들었다.
“- 그래서 할아버님이 원 모어 찬스를 얻으셨어. 이해했니?”
“네. 할아버지, 축하드려요.”
“허허, 축하는 무슨. 차라리 다른 방이면 몰라도, 206호에선 진짜 업혀 간 느낌이라 이거 민망한데?”
“그래도 기쁘시죠?”
“하하!”
하는 것 없이 유산을 먹어서 민망하다?
에이~! 이건 솔직히 거짓말이지.
원래 인생은 하는 것 없이 날로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해.
내가 비록 영원한 20세 청년이지만 이 정도는 안다.
곧, 잠시 105호에 다녀온 은솔 누나가 기쁜 소식 두 가지를 가져왔다.
“요번엔 일주일 파티타임이래! 그리고 짜잔~!”
“역시 티켓이 완성됐네요.”
호텔에서 얻은 세 번째 티켓이다.
첫 번째는 상현 형님의 부활에 쓰였고, 두 번째는 미로 부활에 쓰였지.
세 번째 티켓은 어디에 쓰일까?
“참, 이젠 파티타임 안내에 그 문구가 사라졌더라.”
“문구요?”
“호텔에는 파티 타임에만 정체를 드러내는 비밀이 있다는 그런 문구.”
“이젠 찾을 게 없어서 그런가 보네요.”
파티타임마다 우리는 호텔을 탐색해 숨겨진 NPC와 방을 찾아냈다.
매 층이 개방될 때마다 두 명의 숨겨진 NPC와 두 개의 숨겨진 방이 나타났었지.
아리가 본인 눈에만 보인다는 이런 느낌의 그림을 몇 번 보여줬다.
「호텔의 비밀! 1층 편
1. 숨겨진 방
1) 축복의 성소 2) 기념품 상점
2. 숨겨진 NPC
1) 의사 2) 상인 」
「호텔의 비밀! 2층 편
1. 숨겨진 방
1) 거울의 방 2) 부활의 방
2. 숨겨진 NPC
1) 신비의 장인 2) 화가 」
“시원섭섭하네. 파티타임에 할 일이 미묘하게 줄어든 느낌이야.”
누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진철 형이 한 마디 덧붙였다.
“이 요상한 장소에서 고생하는 것도 끝나가는 느낌 아닙니까. 2층 종료 후엔 현실로 돌아갈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번에는 모두가 조용해졌다.
2층의 끝에서 탈출할 수 있음은 여러 차례 호텔이 재확인해준 신뢰할만한 정보이긴 한데….
그 현실의 의미는 무엇이며 2층에서 끝낼 수 있다면 3층은 왜 있는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며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래서 가볍게 탁자를 쳐 주의를 환기했다.
— 툭!
“에헴! 자, 자. 붕 뜬 마음을 진정시키고 현실로 돌아오죠. 아직 하나 남았잖아요? 무려 ‘관문의 방’이 말이죠.”
207호, 관문의 방.
“파티타임에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생각해봅시다.”
기다렸다는 듯 아리가 말했다.
“축복의 성소, 티켓 사용처, 탐욕의 손. 이 정도 떠오르네. 묵성이의 새 유산 실험은 어때?”
자랑스럽다는 듯 원 모어 찬스를 소환한 할아버지는 곧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
“나도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마는….”
호텔이 말하기를 무려 역천의 대가를 각오하란다.
이래서야 ‘연습 삼아 한번 써보기’따위는 꿈도 꿀 수 없다.
“생각해봐라. 역천의 대가로 지옥에 떨어졌어. 검붉은 수염을 자랑하는 염라대왕 나으리께서 법 봉으로 날 후려치며 묻는 거지.”
갑자기 할아버지가 무슨 연극 배우 같은 톤으로 말했다.
“‘죄인 김묵성은 말하라. 어이하여 대우주의 법칙을 무너트리고 파천의 죄인이 되었는고?’ 여기에 나는 이렇게 답하는 거야. ‘세상을 조지는 연습 한번 해 봤습니다.’ 그러면 염라대왕이 뭐라고 하시겠냐?”
“으잌! 킥킥! 할아버지, 배우도 해보셨어요?”
“배우는 무슨? 송이 네가 웃었으니 됐다.”
의외로 송이는 이런 개그 취향인가 보다.
나로서는, 글쎄, 유산을 얻은 할아버지의 텐션이 제법 올랐다 정도의 느낌이다.
엘레나가 호응하듯 가볍게 웃은 후, 진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리 말대로 성소에 가보긴 해야겠지만, 이번에 강화할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게.”
축복의 강화는 게임과 같아서 강화 단계가 올라갈수록 요구 기여도가 높아진다.
“올빼미에게 듣기로는 3단계가 일반적으로 마지막 강화라고 해. 4단계도 있긴 한데 그 강화를 얻는 경우가 거의 없대.”
“우리, 그러면 각자 얼마나 강화했는지 세볼까?”
은솔 누나가 흥미롭다는 듯, 화이트보드에 하나하나 적기 시작했다.
“가인이부터 말해봐.”
“동료 위치정보, 시나리오 이해. 시나리오 이해는 ‘강력한 강화’니까 2개분으로 쳐야 해요.”
곧 내 축복 정보가 화이트보드에 적혔다.
한가인 : 동료 위치정보(1) -> 시나리오 이해(2) = 3단계.
비슷한 느낌으로 다른 동료들의 정보가 쭉 적혔다.
유송이 : 이심전심(1) -> 사랑받는 자(2) = 3단계.
박승엽 : 천운 통제(1) -> 태초의 인간(2) = 3단계.
김아리 : 나침반(1) -> 존재감 없는 소녀(1) = 2단계.
엘레나 : 거짓말 탐지(1) -> 명경지수(1) = 2단계.
차진철 : 재생력(1) -> 찰나(2) = 3단계.
김묵성 : 생생한 소통(1) -> 군중심리(1) = 2단계.
이은솔 : 탐욕의 손(2) = 2단계.
김상현 : 즐기는 자(1) = 1단계.
미로 : 불변력(1) = 1단계.
“적다가 내 탐욕의 손이 좀 헷갈리긴 했어. 다만, 드래곤이 대놓고 ‘강력한 힘’이라고 했으니까 2단계가 아닐까?”
일리 있는 이야기다.
여하튼, 이렇게 보니 강화 가능성이 없는 사람과 약간이나마 있는 사람이 보였다.
“나 아직도 2단계였네.”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요오….”
“뭐, 호텔 생각은 다른가 보지.”
어딘가 아쉽다는 투의 아리와 동의하는 엘레나, 반쯤 체념한 은솔 누나.
“인마, 난 군중심리라도 얻어서 다행이던데 욕심도 많다! 호텔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지.”
유산을 얻어서인지 ‘친 호텔 파’로 바뀐 할아버지.
“선생님, 우리도 또 강화할 수 있을까요?”
“나도 모릅니다.”
합류가 늦은 만큼 축복 강화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미로와 상현 형까지.
내일이면 밝혀질 일이지만, 1 – 2단계인 동료 중 누군가는 강화할 수 있을 것 같다.
꼭 206호에서 엄청나게 활약해서가 아니다.
게임식으로 표현하면, 경험치 바가 95% 정도 채워진 상태였다면 206호에서 활약이 없었다고 해도 5% 정도는 채웠으니 레벨이 올라가는 이치다.
그리고….
어쩌면, 내게 4단계 강화가 주어질지도 모른다.
*
축복에 관한 이야기가 정리되자 누나가 잠시 탐욕의 손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엔 어디에 쓰는 게 좋을까?”
“그걸 말이라고? 당연히 207호의 – 아, 안 되겠구나.”
쉽게 대답하려던 할아버지가 곧 문제를 깨닫고 입을 닫았다.
탐욕의 손으로 일으켰던 정보 획득 이벤트인 천기누설을 되새겨보자.
지나친 정보를 요구하면 감당할 수 없는 천벌이 떨어지는데, 207호는 가장 격이 높은 방이어서 그 어떤 질문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벤트의 종류를 바꿔도 결말은 비슷하리라.
호텔은 207호에 대한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주려 하지 않는다.
그때, 아리가 다소 복잡한 표정으로 미로를 바라보았다.
“미로, 너는 어떻게 -”
“응?”
“… 아니야.”
언제나 그렇듯, 저 둘 사이에는 우리가 쉽사리 끼어들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우습게도 그 무언가를 아리만 알고 미로는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자연스레 티켓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부활보다는 추가 유산이 낫겠지?”
“그렇죠.”
“이번에는 그쪽으로 하자.”
자연스럽게 추가 유산으로 의견이 모인다.
아무래도 아리의 지상 과제였던 미로가 깨어난 후, ‘부활’이라는 주제 자체가 우리와 멀어진 느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남은 동료 후보 중 ‘지금의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드물기 때문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존재라면 103호에서 송이를 도와준 외계생물인 에스타비오 정도인데….
외계인은 좀 그래.
진짜 내가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동료로 좀 특이한 사람도 아니고 불가사리 닮은 외계인은 좀 그렇다.
그 사이, 은솔 누나가 우리가 놓쳤던 2층의 유산들을 쭉 적었다.
「놓친 유산 목록.
부등변다면체(201호)
여왕 루다흐(202호)
미지의 세포(203호)
홍염철선(205호)
불굴의 이성(206호)」
“이것 중 하나를 고르면 되겠네. 각자 의견을 말해봐.”
제일 먼저 미로가 입을 열었다.
“나 저 부채 싫어!”
“… 그래. 홍염철선이 미로를 참 좋아하긴 했지.”
미로의 호불호와 별개로 객관적으로 봐도 홍염철선이 제일 문제가 많다.
“홍염철선은 별로죠. 절 보세요. 정의보다 불길한 상상을 훨씬 자주 쓰잖아요? 이유도 다들 아시죠?”
‘악인 심판’의 힘은 엘레나의 정의와 겹치는 데다가 정의부터가 생각보다 활용하기 어렵다.
호텔을 진행하며 느꼈지만, 세상을 위협할 정도의 악당이 단순한 악인인 경우가 의외로 드물기 때문이다.
“난 여왕루다흐도 좀 그래. 다들 달팽이 먹고 어인이 되고 싶니?”
은솔 누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달팽이를 먹는 건 둘째치고 물고기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이번엔 상현 형이 의견을 냈다.
“미지의 세포도 비추천합니다. 유산의 능력 자체는 뛰어난 편이긴 한데….”
뛰어난 편이긴 한데?
잠시 말을 고르던 형은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 약간 가인 군의 유산들과 비슷합니다.”
내 유산들과 비슷해?
“고점이 꽤 높은데, 그 고점이라는 게 사람의 고점이 아닙니다.”
점점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해졌다.
“으음, 쉽게 설명해보겠습니다. 여러분, ‘눈먼 시계공’이라는 단어 들어보셨습니까?”
아주 유명한 책에서 본 단어다.
“진화론에서 자연 선택을 빗댄 묘사인데,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진화에는 계획이나 의도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 인간의 몸에는 불완전한 점이 참으로 많습니다.”
진화에 계획이나 의도가 없기에 필연적으로 발생한 인간 육신의 불완전성.
“맹점, 맹장, 사랑니 같은 유명한 예시들 말고도 많습니다.”
잠깐 사이에 눈이 흐릿해진 송이가 멍한 목소리를 냈다.
“저기, 그게 미지의 세포랑 무슨 상관인가요?”
“만약 내가 미지의 세포를 얻게 되면, 나는 정말 많은 부분을 뜯어고치고 싶습니다.”
뜯어고친다고?
“왜 인간의 눈은 이토록 비효율적일까요? 여러분 다리의 십자인대가 얼마나 허술한 구조인지 아십니까? 사람의 척추는 아직도 직립보행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당황스러운 이야기에 다들 반쯤 입을 벌렸다.
“비타민 합성은 또 어떻습니까? 거의 모든 동물이 간에서 만들어내는 비타민 C를 왜 영장류만 합성하지 못하는지? 두뇌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백만, 수천만 년의 석기시대에 적응한 결과 문명사회에선 수많은 정신병에 시달리지요.”
어렴풋이 상현 형의 말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미지의 세포를 얻으면 이 모든 문제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정말이지 위대한 기적이요, 인간을 초월함과 같습니다.”
“그건….”
“가인 군은 내 말을 이해하시겠지요? 육신을 뜯어고쳐 인간을 초월함이 무슨 의미인지.”
“…”
마도서나 신성한 태양이 정신을 뜯어고치거나 영적인 방향의 탈각 혹은 초월을 꾀한다면, 미지의 세포는 궁극적인 유물론자를 위한 유산.
인간은 물론, 생물의 한계에 도전하기 위한 가능성.
그래서 위험하다.
잠시 주변이 조용해지자 아리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두 개 남았네. 부등변다면체랑 불굴의 이성. 이쯤에서 내 의견을 말해볼까? 나는 당연히 불굴의 이성이라고 봐. 가인이도 강력하게 동의할걸?”
갑자기 내 이야기?
“다들 잊지 마. 206호의 유산은 세상을 구하기 위한 도구고, 불굴의 이성과 원 모어 찬스중 무엇이 핵심인지는 현시점에선 몰라. 그러니 둘 다 얻어야 해. 맞지, 가인아?”
“…”
그렇네.
내가 저 이야기를 해서 동료들을 설득했었지? 기억 난다.
“물론, 세상의 위기가 어쩌고저쩌고해도 다들 잘 실감 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너희도 영원히 호텔에 살 생각은 아니잖아?”
“그야 그렇지.”
아무리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라 해도, 인류 종말의 위기라면 신경 쓰이기 마련이다.
“가인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
날 철석같이 믿는 것 같은 아리를 보며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내가 했던 말은 진심이 아니라 신성한 태양의 침식 때문에 반쯤 돌아서 했던 말이니까.
돌이켜보면, ‘영혼에 대한 갈증’이 내 정신을 찰흙처럼 주물렀던 시기다.
현실을 구하기 위해 206호의 유산을 반드시 둘 다 얻어야 한다?
이건 그냥 남들을 설득하기 위해 쥐어짜낸 논리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그냥 206호의 영혼을 마왕 주기 싫어서 만들어낸 이야기다.
…
억지로 만든 논리긴 해도 제법 설득력 있는 이야기인 건 사실이다.
그러니까 다른 동료들도 당시 내 말에 동의했었지.
그러나 빈틈이 없는 논리는 아니었고, 은솔 누나가 그 부분을 지적했다.
“근데 가인아, 그때도 했던 생각인데…. 조금 이상하지 않아?”
“…”
“호텔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건 보통은 평범한 해결이잖아. 201호처럼.”
“… 그렇죠.”
“평범하게 해결하면 한 방에 하나의 유산이 기본이야. 그런데 206호만 두 개의 유산을 모두 얻어야 한다는 게 살짝 이상해서.”
은솔 누나의 의견을 요약하면 간단하다.
저주의 방이 종료할 때 호텔이 띄우는 알림 내용을 살펴보면, 통상적인 기대치는 티켓을 얻을 수 없는 30점짜리 해결이지 티켓을 얻을 수 있는 고득점 해결이 아니다.
호텔도 우리에게 이것을 ‘반드시 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모래시계와 함께 세상을 구하기 위한 보상이 206호에 숨겨져 있다는 말은 이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불굴의 이성과 원 모어 찬스, 둘 중 하나만 있어도 방법이 달라질 뿐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글쎄,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 부분은 은솔이 네 추측 아니야? 가인이 생각은 다를 텐데.”
“…”
아리가 자꾸 이러니까 부담스럽네.
그래서 내 생각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