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79)
EP.479 479화 – 파티 타임 –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자 (4)
479화 – 파티 타임 –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자 (4)
– 김아리
“돌이켜보면, 206호의 경험이 도움이 됐습니다. 거기서 부등변다면체를 잘 사용할만한 사람을 발견했거든요.”
뭐지?
내 착각이야?
이 분위기대로라면, 부등변다면체를 얻을 사람은 –
“206호? 어떤 경험을 말하는 거냐?”
“제가 마지막 회차에서 빠르게 성역에 들렀던 것 기억하시죠?”
“물론이지.”
“그때, 궁극자를 만나기 전 말입니다.”
“궁극자 전? 아, 우리의 복제를 만났다는 그 이야기냐?”
“맞아요.”
뭐야? 설마설마했는데 진짜잖아?
“그때, 전 불길한 상상을 얻은 아리를 만났습니다.”
“불길한 상상 아리요? 신기한 조합이다아…. 그치, 아리야?”
“…”
이 상황에서 이 예시가 나왔다면, 가인이가 누굴 고를지는 답이 나온 문제.
“아리의 복제는 무려 수백 개의 ‘파 룸’을 구현해 날 끝없는 미로에 가두었습니다. 탈출하기 위해선 꿈의 왕국을 써서 진짜 아리를 만나봐야 했죠.”
“이야, 자세한 이야기는 지금 처음 듣는데, 그것도 또 재미난 이야기인데? 파 룸이라니! 그건 우리 쪽에서도 생존자가 거의 없는데 말이지.”
“호오? 요원님, 파 룸이라는게 뭡니까?”
“으음, 선생 파 룸은 간단히 말해서 -”
묵성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파 룸에 대해 설명하는 시점.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다소 혼란스러워서 가인이를 보았다.
“…”
하필 안대를 착용하고 있으니 무슨 생각인지 더 알기 어렵네.
가인아, 정말 내게 유산을 하나 더 얻으라고 할 셈이야?
대화의 흐름은 자연스레 내가 부등변다면체를 얻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근거 또한 명확했다.
이미 복제가 불길한 상상으로 유사 현상을 일으켰으니, 원본도 충분히 가능하리라는 것.
평범한 사람은 제대로 쓰기 어려운 유산인 만큼 ‘이미 유사 현상을 일으킨 사람’이 얻는 게 좋다는 가인이의 말에 설득력이 더해졌다.
다들 별다른 반박 없이 받아들이는 모양새.
심지어 내가 예상했던 유력 후보인 김상현도 활짝 웃으며 ‘가인 군, 정말이지 별의별 일을 다 겪으셨군요’ 하고 있다.
유산에 대한 탐욕이 그리 강하지 않기도 하고, 무엇보다 다들 ‘가인이를 따르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이다.
“…”
나만 뭔가 소외된 느낌으로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꼴이 우스웠는지, 송이가 피식거리면서 툭 툭 쳤다.
“축하해!”
“…”
“가인 오빠 말고도 두 번째 유산을 얻는 사람이 또 추가됐네!”
“… 그, 잠깐 다들 들어봐.”
모두가 왜 그러냐는 듯 나를 본다.
“근거가 조금 애매하지 않아? 복제가 불길한 상상으로 파 룸을 구현했으니, 나도 부등변다면체를 잘 쓸 수 있다는 말이지?”
가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음, 불길한 상상을 써본 적은 없지만, 둘은 다른 유산이야. 결과가 비슷하다고 해서 비슷한 과정을 거쳤을 리 없잖아. 엘레나가 불길한 상상을 쓰면서 딱히 고도의 연산을 한 적은 없을 텐데.”
결과가 비슷하다고 과정이 비슷한 게 아니다.
왜, 생물학에서도 수렴진화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가인이는 내 말에 반박하는 대신, 픽 웃었다.
“내가 널 추천한다는 데 왜 네가 반박하는 거야? 자신 없어?”
“아니, 그런 말이 아닌데….”
“물론 우리가 수석연구원처럼 인류사에 남을 천재이긴 어렵겠지. 하지만, 얻게 될 부등변다면체는 원본이 아니라 유산이야. 세기의 천재일 필요는 없을 거야.”
“하하, 그 정도 지능을 요구한다면, 우리 중 누구도 쓸 수 없을 겁니다.”
“상현 형 생각도 그렇죠?”
“…”
더 이상 뭐라 반박하기 애매했다.
애초에 가인이 말대로 지금 내가 새로운 유산을 얻는 상황이잖아?
내게 유리한 상황을 가인이가 만들어줬는데, 근거가 부실해 보인다 해서 반박할 이유가 있을까!
“아리야, 받아!”
“…”
세 번째 티켓이 내 손에 들어왔다.
이제 이것을 거울의 방에서 부등변다면체로 바꾸면 된다.
유산에 관한 대화가 끝날 무렵, 은솔이가 말했다.
“탐욕의 손 말이지, 저녁에 쓸게.”
“언니! 어디에 쓸지 정하셨어요?”
도구를 얻기 위해 쓰면 어중간한 잡템이 추가될 것 같다.
정보를 얻기 위해 쓰자니 207호에 대한 정보는 호텔이 주지 않으려 한다.
이래서 은솔이는 첫날부터 고민에 빠졌다.
“엘레나에게 성소 이야기 다들 들었지?”
“엘레나, 전 못 들었어요.”
“아, 가인 씨! 별거 아니고 -”
정의의 후원자가 음습하고 탁한 분위기의 저택을 보여줬다고 한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황상 207호를 위한 힌트다.
은솔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천기누설 때처럼 이해하기 쉬운 문장형 힌트를 얻긴 힘들 것 같아. 그렇지만 약간 배경에 빗댄 간접적인 힌트? 이 정도는 줄 수 있는 것 같더라고.”
이거였구나.
한여름 밤의 꿈 당시, 미몽에서 깨어난 자정의 미로는 나와 1대 1로 대화하며 207호에 대한 기묘한 이야기를 건넸다.
천기누설에서 호텔이 이 악물고 207호 정보를 숨겼던 점을 고려하면, 미로가 그 정보를 알고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는데.
이제 알았다.
문자로 이루어지지 않은, 훨씬 간접적이면서도 애매한 힌트라면 얻을 수 있는 모양이다.
“그걸 위해 써보려고.”
“괜찮은 것 같아요!”
이 정도로 점심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
.
.
.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복도를 걷던 차, 안대를 쓴 청년과 마주쳤다.
“어이쿠! 부딪힐 뻔했네. 누군지 몰라도 조심하세요! 내가 지금 안대를 -”
“나야.”
“아, 아직 출발 안 했어? 거울의 방에서 빨리 유산을 챙겨오는 게 좋을 텐데. 연습할 시간이 필요하잖아?”
“…”
잠시, 손을 뻗어서 가인을 멈춰 세웠다.
“왜 그래?”
“… 물어보고 싶어서.”
“응?”
“왜 날 골랐어?”
“하하, 말했잖아? 네 복제가 유사한 능력을 쓰는 광경을 봤다니까?”
완전히 헛소리는 아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느낌.
뭔가 더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네가 상현이를 밀 줄 알았는데.”
회의 당시, 부등변다면체의 최유력 후보로 내가 예상한 사람은 김상현이다.
지능이 높은 데다가 필시 사용이 까다로운 유산인 만큼, 성실의 축복이 유용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능력적인 부분을 떠나서, 당시 ‘누구에게 유산을 주는가’를 결정한 사람이 가인이다.
“왜?”
솔직히 물어보자.
“상현이는 반쯤은 네 충신이잖아.”
“…”
나보다는 김상현이 훨씬 더 ‘한가인의 편’에 가깝다.
지옥에 떨어졌던 김상현을 되살리자고 주장한 사람도 가인이였고, 살린 후에도 203호에서 긴 세월 함께 고통을 나누기도 했으니까.
그래서인지, 그는 가인이가 고생했거나 활약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눈시울을 글썽일 정도로 동요하곤 했다.
내가 가인이라면, 설령 김아리의 능력이 김상현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해도 김상현을 후보로 밀었다.
내가 쓰지 않을 보물이라면 충신에게 내리는 게 맞지 않아?
그러니까 –
— 스륵!
갑자기 가인이가 안대를 벗었다!
“엇! 괜찮 -”
눈동자와 눈동자가 마주친다.
내 시선과 그의 시선이 교차한다.
찰나, 극도의 긴장으로 인해 숨이 멎었다.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 사이에서 탐욕스럽게 진리를 탐하는 눈이 나를 살핀다.
단어 몇 개로는 도무지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압박감이 날 짓눌렀다.
— 다다다!
나도 모르게 돌아서서 뒤로 10보 정도 뛰었다.
“…”
“…”
뒤늦게 이 얼마나 추한 모습인가 생각하며 돌아섰을 때, 가인이는 다시 안대를 쓴 후였다.
“방금 내게도 뭔가 봤어?”
최대한 자연스럽게, 농담하는 투로 말해보고 싶었어.
위축된 나 자신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어땠는데? 음메에~! 하는 소가 날 물고 있었다거나? 아니면 밀가루 반죽을 두른 채 뜨거운 물에 들어가려고 했다거나?”
“…”
“아니면 레스토랑에 앉아서 파인다이닝을 즐기는 -”
“내가 널 고른 이유.”
갑자기 진지해지지 말아줘.
“네가 가장….”
내가 가장?
“결정을 내릴 때 주저하지 않을 것 같았어.”
“… 무슨 소리야?”
“너를 가장 믿었다고 해둘게. 이건 진심이야.”
이, 이건 갑자기 무슨 말이래! 남사스럽게!
“무, 무, 무 – 갑자기 헛소리를! 왜 날 골랐냐고 물었는데?”
“너는 일반적인 도덕률의 관점에서 보면 착한 사람은 아니지.”
갑자기 독설?
“도덕률에 구애받지 않는 합리성. 관리국이 미덕으로 여기는 가치. 이런 덕목이 언제나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필요한 순간이 있기 마련.”
“…”
지금 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내 태도를 읽었는지, 가인이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냥, 하던 대로 하라는 이야기야. 그래야 내게도 편해.”
“…”
‘내게도 편하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지금 이 남자가 어떤 국면에 놓였는지 어렴풋이 느꼈다.
“나를, 우리를 보면서 뭔가를 봤어. 맞지? 미래? 가능성? 좋아. 함부로 이야기해주긴 어려운 상황이지?”
그는 대답 대신 날 주목했다.
“왜 이야기하기 힘들까? 이야기하면 네 이야기를 듣고 우리의 행동이 달라질 거야. 달라지면, 네가 본 무언가의 가치가 사라지고 또 새로운 가능성이 생기지.”
“…”
“아까 묵성이에게 첨탑에서 죽은 정보를 말해줬지? 말해주면 어떻게 되는지 시험해본 거야? 어떻게 됐어?”
“…”
“말해주니까 기존 정보가 의미 없어졌어? 다시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났다?”
가능성을 보고, 이것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끔찍한 정보를 본 우리는 이를 회피하기 위해 행동을 바꾼다.
그 시점에서 가인이가 본 가능성은 의미 없는 정보로 변하고 또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본다.
무의미한 순환이다.
이 순환을 끊고 싶으면, 본 정보를 우리에게 알리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네 예측대로 행동해야 해. 그래야 네가 원하는 결말을 유도할 수 있어. 맞아?”
“역시….”
“뭐야?”
“널 고르길 잘했어.”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미소 지었다.
“…”
105호로 돌아가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김상현이 아닌 내가 부등변다면체를 얻은 이유?
누가 더 유산 사용에 적합한지 따위는 아무 상관 없었으며, 아까 가인이가 든 예시는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
체스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내가 모르는 영역에서 – 누군가 내게 나이트의 역할을 줬다.
나이트에겐 말이 필요하니까 부등변다면체를 얻어야 했다.
그렇다면 비숍에겐?
충신에게도 나름의 역할은 있을 테니, 곧 왕의 지시가 내려가리라.
“…”
호텔에서 예지와 지혜는 전혀 다른 힘이다.
가인이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맥락 없이 무에서 유를 얻어내는 것이 예지요, 소에서 대를 얻어내는 것이 지혜다.
통찰은 아무것도 없는 공백에서 미래를 읽어내는 게 아니라, 이미 얻어낸 작은 근거를 모아 구체적인 가능성을 보여주는 힘.
그러므로 가인이가 본 음울한 미래의 근거는 이미 있다.
분명 나도 알고 있는 정보다.
거미줄처럼 뻗어나가던 생각이 문득, 어떤 기억에 닿았다.
모두가 신비로운 꿈에 휩쓸렸던 한 여름밤의 어느 날의 기억.
관리국.
어렴풋이 가인이가 무엇을 보았는지, 왜 ‘나에게’ 유산을 주었는지 알 것 같았다.
“… 멈춰야 하나?”
여기서 더 가인이의 의도를 헤아리는 게 맞을까?
내가 결국 가인이 생각을 맞춘다?
맞춰서 거기에 맞게 행동한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가인이가 본 가능성이 어그러지는 것 아닌가?
반대일지도 몰라.
애초에 내가 이런 고민에 빠지는 것 역시 큰 그림 일부가 아닐까?
그렇다면, 더 깊이 고민해서 –
“아.”
급격히 머리가 아파졌다.
생각이 많으면 많아서 문제고, 없으면 없어서 문제인 상황이잖아!
아까 가인이가 나에 대해 뭐라 했었지?
결정을 내릴 때 주저하지 않을 것 같다?
좋아,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겠어.
…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203호에서 수백 년의 고련 끝에 일시적으로 마도서의 극한에 도달했던 순간.
206호에서 대량의 영혼을 축적한 끝에 반신의 영역에 한 발자국 걸쳤던 순간.
어떤 의미에선, 그때보다 지금의 한가인이 더 알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33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 – ‘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105호, 호텔에서 가장 평화로운 장소.
아직 익숙하지 않은 안대를 매만지며 조금 전의 대화를 떠올렸다.
분명, 호텔에서 태어난 소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고민에 빠져있겠지.
“…”
어쩌면, 지금의 내가 전지(全知)의 영역에 한 발자국 걸쳤다고 착각했을지도.
정말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
예전엔 1부터 몰랐으니 뭘 모르는지도 몰랐는데, 이젠 1을 알았다.
기쁘기보다 한탄스러웠다.
1 이전에 0이 있음을 알고, 1 이후에 2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1을 알았기에, 자신이 0과 2를 모름을 알았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늘어나는 기이한 모순.
“…”
원하든 원치 않든, 내가 점점 더 ‘위’로 올라가고 있음을 느낀다.
처음에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던 후원자의 꽁지깃이 어렴풋이 보인다.
덕분에 깨달았다.
올빼미, 후원자가 왜 그리 선문답을 좋아하고 모호한 답변만 반복했는지 알았다.
정답은 언제나 단순한 문제였다.
많은 경우, 올빼미 자신도 정확히 몰랐기 때문이다.
물론, 올빼미와 내가 말하는 ‘모른다’와 평범한 인간이 말하는 ‘모른다’는 전혀 다른 개념이겠지만.
— 스륵!
세면대의 거울을 살짝 닦아낸 후, 안대를 벗었다.
“… 하.”
통찰은 곧, 사소한 실마리로부터 무궁한 가능성을 읽어내는 힘.
이런 힘이 어찌 ‘타인에게만’ 작동하겠는가.
거울에 비춘 ‘나’를 보았다.
이대로라면, 내게 도래할 암울한 미래의 일부를 보았다.
수백 조각으로 갈기갈기 찢겨 온 세상에 흩어진 나 자신을 보았다.
— 쿠궁!
“뭐야?”
이은솔 : 다들 프론트로 와줘! 방금 탐욕의 손을 사용했어!
탐욕의 손?
그때, 호텔 복도 여기저기 걸려있는 디스플레이가 깜빡이며 알림을 보냈다.
“디너 파티? 호텔에서?”
이 순간만큼은, 내 복잡한 상념을 끝내준 은솔 누나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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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호텔 탈출기-47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