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8)
47화 – 104호, 저주의 방 – ‘입시 명문 호텔고’(7) – 아리(Fin)
47화 – 104호, 저주의 방 – ‘입시 명문 호텔고’(7) – 아리편(Fin)
날이 밝았다.
유령처럼 떠돌던 의식이 몸으로 스며든다. 천천히 몸에 남겨진 어설픈 의식이 지워지고 ‘내’가 다시 몸의 주도권을 얻었다.
새벽이었지만 바로 나왔다. 기다렸던 걸까? 근처에 가인이가 보인다. 같이 이 방에서의 마지막 계획을 정리했다.
오늘, 나는 이 짜증 나는 학교를 태워버릴 것이다.
*
띵 – 동 – 댕 – 동 –
학교를 태워버리겠다고 아침부터 자신 있게 다짐하긴 했지만, 사실 모든 계획은 수업이 끝난 후에야 시작된다.
뭔가 심상찮은 일을 할 때는 최소한 날이 어두워지고 사람들이 줄어든 후에 해야 성공률이 높은 법이니까.
결국 묵묵히 오늘까진 수업을 들어야지. 가인이는 고3을 두 번 경험한다고 질색하던데, 솔직히 우습다.
난 고등학교만 10번은 졸업했거든~
덕분에 공부는 꽤 잘하게 됐지. 누구나 고등학교를 10번쯤 다니면 잘하게 될 것 같지만.
–툭
또 커피.
처음에는 그나마 만만해 보이기라도 했는지, 송이 쪽에만 가던 애들이 어제부터는 내 책상에도 뭐 하나씩 올린다. 이럴 때마다 솔직히 웃겨.
얘네는 자기들이 호텔에서 패배한 후 배우로 재활용되는 중이라는 걸 알기는 할까? 뭐, 모르는 쪽이 마음 편하겠지.
이리저리 책을 뒤적거리며 공부하는 시늉을 하던 차.
승엽이와 송이가 다가왔다.
자연스럽게 나에게 말을 걸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다가, 내 책상 위의 커피를 보더니 승엽이는 눈이 커졌다.
누가 줬는지 알려주면 가서 시비라도 걸려나?
참 봐도 봐도 어이가 없다. 둘 다 가짜인 걸 뻔히 아는데 이런 행동. 하기야 본인들은 가짜인 걸 모를 테니, 이건 우습다기보단 대단한 비극일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돌렸다. 엘레나, 가인.
둘 다 오늘은 출석하지 않았다. 엘레나는 ‘가짜’를 만들지 못한 채로 천사에게 살해당했으니, 아마 조만간 학교에서 무슨 핑계를 만들겠지.
가인이는…. 잘하고 있으려나. 이 답 없는 장소에 나와 함께 남은 마지막 생존자. 어떤 의미로는 나보다 더 중요하고 어려운 일을 맡은 상태인데.
저택에서도 느꼈지만, 평소엔 똑똑한지 모르겠는데, 가끔 상당히 예리한 순간이 있다.
오늘 아침이 바로 그런 때였지.
*
“요 며칠간 어렴풋이 했던 생각인데, 어제 엘레나의 싸움과 경찰을 보면서 확신이 섰어.”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가인이 너부터 말해봐.”
“이 학교. 생각보다 ‘외부 세계의 눈치’를 엄청나게 봐. 근본적으로 목표는 구교사에 대량의 사람을 보내서 ‘뭔가’를 하는 건데, 그 ‘뭔가’를 위해 입시학교를 세우고, 입시 교육도 진짜 하고, 땅도 대량으로 샀지.”
“내가 약간 더하자면, 어제 그런 미친 짓을 벌이더니 뒷정리는 뜬금없이 현장을 조작한 후 경찰에게 맡겨서 교통사고로 처리했지. 최대한 ‘자연스럽게 처리’하려는 것처럼. 그러니까….”
“바깥에 관리국이 있는 것처럼”
“바깥에 관리국이 있는 것처럼”
“진짜 서로 통했네. 여하튼,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 이 ‘무대’는 설정상 ‘천사도 토벌할 수 있는’ 관리국 비슷한 조직이 있어. 그러니까 이런 ‘천사’같은 존재조차 자신의 행적을 철저하게 감추는 거지.”
“거기까진 나도 어제 느꼈는데, 그게 의미가 있나? 어차피 관리국에 연락할 수도 없고.”
“아리 넌 관리국 요원이라면서 못해?”
“바깥에 있었을 때야 진짜 관리국에게 연락할 수 있지만, 104호의 ‘가짜 관리국’에는 못해”
“상관없지. 어차피 대체재가 있으니까”
“대체재?”
“어제 봤잖아. 경찰.”
“… 그러니까 경찰에 신고해서 우릴 구해달라고 말하자?”
“그런 식으로는 부족해. 일단 경찰이 보기엔 그냥 평범한 학교고 학생인데, 뜬금없이 구해달라고 해봐야 장난 전화로 생각하겠지.
게다가 온다 해도 한 명이나 올 텐데, 그런 소수만 오면 이 학교에서 경찰도 그냥 정신을 제압하거나 바꿔치기하면 그만이야.”
“…”
“대형 사고를 쳐야 해. 그리고 우리가 직접 경찰에 신고해야지. 경찰이 소수가 아니라 수십, 수백 명이 올 정도의 초대형 사고.
이런 비밀 조직에서 수십 명의 경찰을 전부 죽이려 들까? 그걸 바깥세상에 감출 수 있을까?
게다가, 이 학교는 ‘우리’가 정신 지배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냥 우리를 바깥으로 보내고 포기할 거라고 봐.”
“그러면, 이제 둘이 같이 학교를 날리면 되는 거네”
“아니지. ‘네’가 하면 되는 거지”
“너는?”
“이 계획의 가장 큰 허점을 막아야지”
*
세워놓고 보면 별거 아닌 계획이다. 그냥 마음대로 학교를 작살내면서, 경찰 수십 명을 끌어들여서 체포당하기.
일단 체포만 당하면야, 역설적으로 그게 탈출이라고 본다. 학교랑 멀어져서 탈출일 수도 있고, 소년원에라도 갇히면 구교사로 갈 일이 사라져서 탈출일 수도 있다.
사교 집단이 그 많은 경찰을 전부 죽이거나 바꿔 치는 엄청난 무리수를 두기보다는, 그냥 어제 천사가 직접 세뇌했다고 생각 중인 학생 한둘을 포기하게 만드는 계획.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인데, 첫날인가? 승엽이가 가인이보고 같이 선생들을 두들겨 패자는 무식한 소리를 해서 내가 한마디 했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우리가 만든 탈출 계획이 학교를 작살내는 거다. 돌고돌아 승엽이가 아무렇게나 던진 말이 진짜 정답에 가까웠던 걸까? 나가면 머리라도 쓰다듬어 줘야지
계획의 완성도는…. 모르겠다.
언뜻 생각해도 빈틈이 여럿 떠오른다. 사교 집단의 행동 원리라는 것도 사실 추측에 추측을 더한 수준이고. 제일 큰 허점은 가인이가 직접 막겠다고 갔지만,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어쩌겠어?
가만히 있다가 죽을 생각이 아니라면 뭐든지 해야 하는 법.
호텔에 ‘다시’ 들어올 때부터 이미 각오했다. 살아서 다시 나갈 확률보단, 비참하게 죽을 확률이 높으리라.
그런데도 – 나는 목숨보다 귀한 것을 구하기 위해 다시 들어왔다.
*
석양이 – 진다.
아, 이게 아닌가?
수업이 끝나고 기숙사 쪽으로 와서 캔들 라이터와 캡사이신 스프레이를 챙겼다. 아직은 취침 시간이 아니라 학교로 돌아가는 건 문제 없었다.
어디를 태워볼까? 역시, 교무실이지!
—–끼이이익 탁!
“어? 아리니? 학생은 교무실 쪽에 함부로 오면 안 된다.”
“죄송해요. 그런데, 문제 풀다가 너무 안 풀리는 부분이 있어서요. 질문 하나만 드리면 안 될까요?”
“허 참…. 수업 시간 끝나고 질문했어야지. 무슨 과목인데?”
“수학이요.”
“으음. 들어오거라”
교무실 내부엔 6, 7명 정도 선생님들이 보인다. 오른쪽 구석. 수학 교사가 앉아있었다.
“질문이 있다고? 어떤 문제냐? 책이라도 들고 오지 빈손으로 왔네?”
미안한데, 책 같은 거 필요 없어. 엊그제 니 문제 풀다가 대가리 터질뻔했거든~
——–치이이이익!
“으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악~!”
“어어어! 뭐야 이거?”
“한 선생! 대체 무슨?”
“아니! 아리야? 손에 그게 대체-”
———치이이이익! ——치이이이이익!
여기저기 스프레이를 뿌리자 교사들 다수가 나뒹굴었다.
고함소리, 비명소리.
아, 이거 진짜 재밌네. 나는 왜 고등학교를 10번도 넘게 다니면서 단 한 번도 학교를 박살을 낼 생각을 못 했지? 다음에 또 다닐 일 생기면 밖에서도 반드시 학교 한번은 날려봐야지.
남교사 한 명이 셔츠를 뒤집어쓰고 달려온다. 가볍게, 눈을 마주쳤다.
달려오던 교사는 그대로 뒤를 돌아서 주먹으로 다른 교사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송이의 팔찌에 비하면 한참 하위호환에, 피까지 소모해서 대가도 비싼 힘이지만 그래도 일반인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대충 교사들은 정리했고….
역시 교무실. 책들이 꽤 많구나.
라이터를 꺼냈다.
*
아. 따뜻하네.
계절은 모르겠지만 호텔 고의 날씨는 꽤 쌀쌀했는데, 내가 학교를 위해 모닥불을 잔뜩 만들어줘서 학교가 매우 따뜻해졌다. 모두가 학교에 대한 내 애정을 알아주겠지?
대충 교무실 처리하고 비슷한 느낌으로 3번 정도 반복했더니 학교 전체에 소음이 가득하다. 화재 경보도 사방에서 울리고. 사람들은 일단 도망가느라 정신이 없고.
아까 주운 핸드폰을 꺼냈다. 112.
“강동 경찰서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학교가 타고 있어요~”
“네? 정확히 말씀을-”
“제가 학교를 다 태우고 있거든요?”
“하! 참 나이가 몇 살인데 장난 전화를- 삑. 학생 대체 누굽니까!”
갑자기 사람이 바뀌었네. 나 말고 누가 신고했구나.
“학교가 춥길래 따뜻하게 하는 중이거든요. 지금 교실 다섯 개째 태우는 중인데, 다들 불 좀 쐬러 오세요~”
—탁.
이 정도면 됐지. 아마 조만간 소방차와 경찰 여럿이 올 것 같다.
*
탈출 계획의 가장 큰 허점.
‘경찰이 나서기 전에 천사 또는 사교 내부의 타격대가 나서서 우릴 제압하고 학교 내부에서 상황을 끝내는 것’
이 허점은 결국 해결된 것 같다. 가인이가 구교사에서 잘하는 모양이다.
이 흐름대로면 탈출은 무난히 성공하겠구나. 나간다고 생각하니 걱정은 든다.
송이에 이어서, 가인이까지.
명백히 날 의심하고 경고까지 주기 시작했다. 나가면 아마 청문회 반나절은 당하겠구나. 어차피 결국은 이런 때가 오리라 생각했지.
어떻게 대답할지나 생각해봐야겠다.
대충 교실 7개쯤 날릴 때쯤 경찰들과 소방차가 도착했다. 대충 봐도 외부인이 100명은 온 것 같아 보인다. 이 정도면, 사교도들도 대책 없겠지. 딱히 총에 맞는 취미는 없어서 말없이 양손을 들었다.
*
탈출이 인정되기까진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 덕에 탈출의 조건은 명확히 알긴 했지만.
‘구교사로 끌려갈 가능성의 완전한 소멸’이게 탈출 조건인 듯하다.
—탁 —탁.
“김아리 학생. 거 재판에 협조 안 할겁니까?”
아. 제발 판사야. 그냥 선고해라. 난 빨리 나가고 싶다고 좀!
“내 말 안 들립니까? 재판 우습게 봅니까? 학교에 방화한 이유 말 안 해?”
“뭘 자꾸 물으시는지. 말했잖아요. 말했잖아. 추워서 불 지폈다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대체….”
“존경하는 재판관님. 보시다시피, 피고인은 제정신이 아닙니다. 억압적인 입시학교의 분위기 속에서 오래 고통받은 끝에 정신적인 문제가-”
“아 좀 변호사 넌 주둥이 다물고 있어. 그냥 닥치고 있으라고 다섯 번은 말했는데”
“보시다시피 제정신이 아닙니다. 피고인은 아직 어립니다. 소년원보다는 의사의 치료를 통해 마음을 회복한다면, 장래 사회에-”
“아 제발 지랄 좀 그만. 이놈의 사회 다 태워버릴 거라니까!”
점점 피곤하다. 경찰에 끌려간 시점에서, ‘물리적으로’ 학교에서 멀어졌으니 탈출 판정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이 방의 탈출 조건은 물리적인 거리만으로는 부족했다.
아예 졸업할 때까지 학교가 아닌 다른 곳, 아마도소년원이나 병원에 갇히는 쪽으로 확정되어서 학교로 돌아갈 가능성이 아예 사라져야 탈출 판정인 걸까.
덕택에 모두가 죽어서 쉬고 있을 텐데 나 혼자 거의 한 달째 고생이구나.
가인이도 아마 죽었겠지. 더 화가 난다.
이상하게 걔랑 둘이 남으면 꼭 나만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는 분위기 아니야?
이래 놓고 밖에 나가선 내 청문회라도 할 분위기던데?
못 참고 앞에 있던 펜을 집어던졌다.
—따악!
명중!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아프시죠? 형량 서비스로 부탁드릴게요.”
그날. 아마 방화죄와 상해죄, 살인죄(누구 죽은 듯?), 그리고 판사 머리 때린 괘씸죄 등이 합쳐져서 징역 11년이 나왔다.
와! 불을 지르고 사람 죽이고 판사 머리까지 쳤는데 11년? K 법 형량 너무 낮은데?
/당신은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방화, 살인, 상해, 폭행. 범죄란 범죄는 다 저지른 당신! 대체 무슨 짓입니까? 이렇게까지 학교에 대한 원한이 컸던 건가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호텔은 당신의 무자비함과 결단력에 크게 감탄했습니다.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에선 이런 면도 필요한 법이지요.
이로써, 당신은 사교 집단이 진행하던 의문의 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당신은 저주로부터 탈출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저주의 근원은 남아있는 것을 느낍니다.
…
…
…
…
동료 중 탈출 성공자 발생! 축하합니다! 탈출 성공자가 발생하여, 구성원 전원이 무사 귀환합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녁에 가인편 파이널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