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81)
EP.481 481화 – 파티 타임 – 디너 파티 (6)
481화 – 파티 타임 – 디너 파티 (6)
– 김상현
“이얍! 얍! 나와라!”
“… 승엽 군, 공기가 뜨거우니 얌전히 있읍시다.”
흥분한 소년을 진정시키고 계속해서 강을 따라 걸었다.
지금 이 과정은 무엇인가?
호텔이 우리에게 주는 207호에 관한 힌트다.
“207호는 10명 전원이 뭉쳐서 진행하는 게 아니라, 각기 흩어져서 진행하는 모양입니다.”
그나마 말이 통하는 송이 양이 즉답했다.
“그러게요. 인원도 지금과 똑같을까요?”
그새를 못 참고 앵무새와 눈싸움 중인 소년과 조심성 없이 강가의 식물을 만지는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두 어린 동료를 보다가 송이 양을 보니, 이렇게 믿음직할 수가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선생님. 잘 부탁드려요.”
말하는 꼴을 보니 이 아가씨도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강 따라 더 걸어갑시다.”
덥고 습한 환경에서 1시간 가까이 걸었다.
체력이 부족한 사람이면 진즉 허덕이며 신음했을 상황인데, 다행히 뒤쪽의 어린 동료들도 별말 없다.
호텔에서 지나쳐 온 과정이 무의미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곧, 나 또한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이 강이 무슨 강인지 알 듯 모를 듯한데.”
“헤엑! 헉!”
“괜찮습니까?”
“네, 네! 무슨 강이죠?”
“… 확실해지면 말하겠습니다.”
지형지물의 모습은 물론 생물 종의 형태까지 익숙했다.
그 말인 즉, 이곳이 무슨 외우주의 이계 행성이 아니라 지구임을 말한다.
애초에 이 강 자체도 이미 본 적 있어.
“아, 아마존인가요? 완전 정글이니까!”
“…”
정글이니까 아마존강을 떠올린 모양인데, 내 판단이 정확하다면 아니다.
이곳은 –
“으악! 아, 아나콘다가 또 나왔어요!”
“승엽아, 물러서라!”
재빨리 달려가서 막대로 한 차례 위협했다.
다행히 이번엔 좀 작은 놈이었고, 일행의 수가 많아 보였는지 혀만 내밀어 쉿쉿거리다가 사라졌다.
“괜찮습니까?”
“허억! 네, 네! 무슨 이런 괴물 같은 뱀이 -”
“이 뱀은 아나콘다가 아닙니다.”
“네?”
이 소년이 무슨 파충류 전문가도 아닌데 뱀 종류를 구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냥 덩치 큰 뱀 중 아는 게 아나콘다뿐이겠지.
“조금 더 갑시다. 확신이 서면 말해줄 테니.”
체감상 15분 정도 강을 따라 더 걸어갔을 때, 모든 것이 확연해졌다.
나는 더 이상 이곳이 어디이며 이 강이 무슨 강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구조물, 피라미드가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으악! 나 저거 영화에서 봤어!”
“나도! 나도 봤어! 송이도 봤지?”
“이게 왜 여기서 나와? 선생님? 여기 정글 아니었나요?”
“…”
우리는 조금 전까지 정글을 연상케 하는 습지에 있었는데, 이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암시한다.
현대인은 오늘날 이집트 하면 모래와 자갈로 가득한 사막 풍경을 떠올리지만, 이는 수천 년에 걸쳐 사하라 사막이 확장했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는 선대 인류가 건설한 옛 문명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문명.
이집트의 역사가 시작하던 태고의 시대는 현대와 기후가 전혀 달랐다.
하마와 악어는 물론, 사자와 코끼리까지 살았던 풍요로운 식생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곳은 사하라 사막이 확장하기 전의 고대 이집트다.
이게 호텔의 힌트인가?
첫 번째 배경은 고대 이집트다?
— 쿠궁!
… 곧, 의식을 잃었다.
*
– 이은솔
“이단을 죽여라!”
살벌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진철이가 기민하게 반응했다.
“누님, 내 뒤로!”
도망가자는 등의 소리는 꺼내지도 않았다.
상대는 말을 타고 있는데 축복과 유산을 잃은 우리가 어떻게 따돌릴 수 있겠는가.
곧,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영화에서나 본 ‘기사’를 연상케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을 포위했다.
기사 무리를 이끄는 것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흉포한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 〿〿, 그대가 마녀를 숨기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할 말이 있는가?”
“…”
아까와 같은 현상, 앞의 몇 단어를 알아들을 수 없다.
정황상 내 이름 혹은 직책을 부른 것 같은데….
아까부터 호텔이 왜 이 정보를 검열하지?
막말로 ‘거북왕 공녀, 리자몽 영주’하는 식으로 대충 부른다 한들 이 명칭 자체에 무슨 의미가 –
“…”
바보 같은 생각이네.
의미가 있으니까 검열했겠지.
지금 시점에선 알 수 없을 뿐.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정말 몰라.
“하, 그대의 뻔뻔한 변명도 오래가지 않을 터! 곧, 〿〿〿〿〿 〿〿께서 도착하신다!”
“누가 온다는 거죠?”
“귀머거리 행세한다고 해서 봐줄 줄 아나?”
미안한데 진짜 안 들려.
뭔가, 더 대화해서 정보를 알아내야 할 것 같다.
“마녀라…. 혹시 나와 진철의 피부색 때문에 그런가요? 그렇다면, 그 부분은 큰 오해가 -”
눈앞의 남자는 내 말에 장난치냐는 듯 눈을 크게 떴다.
“피부색? 하! 〿〿〿 〿〿, 당신은 우리가 무지렁이 농부인 줄 아시오?”
“…”
“〿〿〿 가문이 170년 전 〿〿〿〿〿 대공의 부름을 받아 -”
반 이상 삐- 소리로 가득 찬 장광설을 들으며 침착하게 생각한다.
중세 초기의 유럽은 오랜 세월 암흑시대(Dark Ages)라 불려왔다.
로마 문명이 무너진 후 그 대체자가 나타나지 않았기에 야만과 무지의 시대로 여겨진 것.
그러나 오늘날 역사학계가 밝힌 바에 따르면 이는 르네상스 시절의 계몽주의자들이 만든 편견에 불과하며 –
잡설은 생략하고, 내 앞에서 장광설을 늘어놓는 그럴듯한 직책의 남자 정도면 세상 어딘가 피부색 다른 인종이 있다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다는 말이지.
“그러면 마녀 어쩌고는 무슨 이야기지?”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어 자세히 물어보려는 순간 –
— 캬아아악!
지옥의 저편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우렁찬 포효가 들려왔다!
“이런.”
극도로 긴장한 채 검을 뽑아 드는 기사들을 보며 상황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정황상 이곳은 최소 수백 년 전의 중세 유럽 어딘가다.
또한, 이곳은 악마와 마녀가 실존하는 세계다!
— 쿠궁!
시야가 어두워졌다.
*
– 김묵성
“거, 길 좀 비키시오.”
— 푹!
“으익! 이, 이게 무슨 짓이오!”
“비키라니까.”
조금 전, 배불뚝이 늙은이 한 명이 번들거리는 시선으로 아리를 대놓고 훑어보았다.
당장이라도 손에 들린 지팡이로 배때지를 뚫어주고 싶었지만, 그냥 다리를 툭 찌르는 선에서 그만두었다.
“괜히 시선 끌지 말고 조용히 있어.”
“알겠다.”
정작 아리는 시답잖은 짓 하지 말라고 하며 얌전히 벽에 기댔는데, 그 자태가 제법 곱긴 고왔다.
이러니까 저 돼지들이 나잇값도 못 하고 추한 행동을 하는 것이겠지만.
“히야, 아리야. 이러고 있으니 예전 생각도 나는 것이 -”
“자꾸 예전, 예전 하지 마. 늙은이 같아.”
“…”
“분위기가 좀 이상하네. 보통 생각하는 파티 분위기가 아니야. 그보다 무슨 비밀 모임 같은데.”
입을 거의 움직이지도 않으며 딱 내 귀에 들릴 정도의 소리로 속삭인다.
정말이지 너무나 익숙한 요원 특유의 행동이군.
최근엔 이런 상황에서 그냥 대화창을 쓰면 그만이었는데 말이지.
물론 나도 할 수 있다.
“파티 초대장부터가 이상했지. 무슨 파티를 왜 연다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고….”
“시대는 근대인가? 1차대전 이전? 이후?”
“거기까지는 -”
“저쪽, 모노클을 쓴 노인의 모자를 봐. 1차대전 이전에나 유행했던 스타일이야. 문제는, 저 노인이 시대에 뒤처진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을 가능성이지.”
“…”
1차대전 이전에 유행한 모자 스타일을 내가 어떻게 아냐?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온 초대장이 -”
아리가 무언가 바쁘게 설명하려는 순간, 파티의 주최자로 여겨지는 기품있는 인상의 중년인이 나타났다.
그는 고급스러운 천으로 덮인 정체불명의 물건을 들고 있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인류의 순수성을 위해 모이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인류의 순수성? 그게 파티의 목적?
“그 전에, 불쾌한 이야기부터 하나 전달하겠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비루하기 짝이 없는 〿〿〿 〿〿이 스며들어왔다고 합니다.”
뭐시여? 방금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가 나왔는데?
당황해서 시선을 돌린 순간, 비슷한 시점에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소녀를 보며 아리도 같은 경험을 했음을 알았다.
“이게 무슨 -”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주최자에게 갑자기 무슨 말이냐고 항의했을 때.
— 펄럭!
사람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중년인이 천을 걷었다.
“크으읏!”
괴이한 광채가 삽시간에 파티장을 휩쓸고, 모든 ‘사람’이 비명 지르며 바닥을 구르는 순간.
— 찌이익!
뭔가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사람이 아닌 자’들이 몸을 일으켰다.
이, 이게 갑자기 뭔 상황이야!
— 쿠궁!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33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중앙 홀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정신 차렸을 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화려하게 장식된 호텔 2층에서 깨어났다.
곧, 동료들이 각자 겪은 기묘한 경험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죄 떠들기 시작했다.
“…”
잠깐이라도 말을 멈추면 까먹을까 봐 두려웠는지, 30분이 넘도록 다들 쉼 없이 떠들고 화이트보드에 끄적이느라 정신이 없다.
간신히 조용해질 무렵, 은솔 누나가 화이트보드 앞으로 움직였다.
“다들 잠깐만 주목! 기억나는 대로 정리해보자. 우선, 파티 구성!”
1번 파티 : 김상현, 유송이, 박승엽, 미로
2번 파티 : 이은솔, 엘레나, 차진철
3번 파티 : 김묵성, 김아리
4번 파티 : 한가인
“이렇게 맞지?”
보아하니 맞는 것 같다.
“실제 관문의 방에서도 같은 파티 구성일까?”
“…”
“…”
이 질문에는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호텔 마음이지 누가 알겠나.
“배경, 배경도 정리해보자. 상현 씨 방은 배경이 이집트라고?”
“요즘과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나일강과 피라미드가 있었으니 확실합니다.”
“시대는?”
“… 아마도 고대일 겁니다.”
“고대? 상현 씨, 아시겠지만 이집트의 ‘고대’는 범위가 엄청나게 넓어요.”
“그렇지요. 무려 기원전 5000년에 파라오가 나타났으니 말입니다.”
기원전 5000년 전에 파라오?
다른 곳은 다들 우가우가 하면서 맘모스랑 싸우느라 바빴을 것 같은데.
“정확한 연대 추정까진 어렵습니다.”
“그러면 그냥 고대라고 치죠. 다음이 우리네. 우리는 음, 중세 유럽 분위기?”
진철 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철갑옷을 입은 기사의 외형을 묘사했다.
“그런데 마녀나 악마가 진짜 있는 것 같아. 마지막에 들은 끔찍한 소리 말이지…. 나도 호텔을 오래 겪다 보니 촉이 생겼어. 그건 절대 짐승의 울음 따위가 아니었어.”
“누님, 100%죠. 무조건 악마나 그 비슷한 괴물입니다.”
호텔 경력이 쌓여서 다들 괴물 전문가가 된 상태다.
“할아버님 쪽은 유럽이라고 하셨죠?”
“글쎄, 나는 대충 뭐 서양인가 보다 했는데, 아리 말에 따르면 -”
“유럽이 아니라 미국. 1차대전 이전이고, 배경은 1890년대 후반 혹은 1900년대 초.”
“…”
연대까지 구체적으로 나왔다.
“비밀 모임에 갔다고?”
“아마도.”
“이상한 마도구가 빛을 뿜어냈다?”
“응.”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괴물이 튀어나오고?”
“맞아.”
“으음….”
이쯤에서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정리했다.
1번 파티는 고대 이집트에 떨어져서 피라미드를 발견했다.
2번 파티는 중세 유럽에 떨어져서 마녀사냥에 나선 기사단과 접촉한 후, 악마의 울음을 들었다.
3번 파티는 근대 미국에 떨어져서 괴상한 비밀 조직의 모임에 초대받았고, 마도구와 괴물을 조우했다.
그리고 나, 단독 파티.
“저는 뭐, 아까 말한 그대로입니다. 그냥 집 밖을 나서서 걷다 보니 하늘에서 이상한 빛이 내려왔어요.”
“더 알아낸 건 없어?”
“네.”
그때, 유심히 듣고 있던 아리가 중얼거렸다.
“전부 지구네.”
“…”
“이집트, 유럽, 미국, 서울. 서로 다른 시대의 지구 어딘가야.”
엘레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뭔가 우리가 아는 지구와 좀 다르지 않아요? 고대 이집트…. 는 모르겠지만, 중세 유럽의 악마라거나, 근대 미국의 마도구? 괴물? 듣도보도 못한 이야기인데….”
그 말에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애초에 ‘우리가 아는 지구’라는 게 다 다르기도 하고, 일반 사회에 퍼진 상식이라는 게 어디 믿을만한 것이던가.
보나 마나 우리 중 두 사람이 소속한 특정 조직이 이리저리 조작해왔을 터.
“…”
내가 알던 ‘상식적인 역사’와 207호에서 보게 될 ‘뒤틀린 역사’.
이중 무엇이 더 진실에 가까울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