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82)
EP.482 482화 – 파티 타임 – 통찰과 안배, 그리고 진입 (7)
482화 – 파티 타임 – 통찰과 안배, 그리고 진입 (7)
– 김아리
시간은 바람처럼 지나갔다.
처음 주어졌을 때만 해도 꽤 길다고 생각했던 일주일의 파티타임도 거의 끝나간다.
축복의 성소는 첫날 들렀고, 은솔의 ‘탐욕의 손’으로 유의미한 정보도 얻었다.
남은 것은 207호, 관문의 방을 위한 각자의 준비 정도.
딱히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강요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했다.
누군가는 신체 단련에 힘썼고, 누군가는 고대 이집트나 중세 유럽의 시대상에 대해 알아보았고, 누군가는 휴식을 통해 심신을 이완했다.
나는 요즘 거의 설원에서 보낸다.
훈련을 위해 이보다 적절한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
손바닥 위에 놓인 검붉은 빛을 발하는 불길한 돌을 본다.
볼 때마다 신비롭고, 부등변다면체를 내가 얻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명목상 ‘두 번째 유산’이지만, 내가 느끼기엔 사실상 첫 번째다.
첫 번째 유산인 오래된 피는 태어날 때부터 내 몸의 일부였기에 특별한 보물이라기보단 타고난 초능력 같았기 때문이다.
“으음.”
정신을 집중하자 부등변다면체가 보여주는 신비로운 세계가 느껴졌다.
물질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공간’이란 마치 무대와 같은 장소.
평생 무대 위를 살아가던 배우가 처음으로 시선을 돌려 ‘무대’의 존재를 인지했다.
보이지 않는 벽과 천장이 주변을 감싸며 내부와 외부를 구분한다.
이 단순한 작업을 빠르고 광범위하게 구현하면, 201호의 큐브와 같은 거대 구조물이 생기는 것.
“읏.”
찰나, 날카로운 바늘이 머리를 후벼파는듯한 통증을 느꼈다.
훈련 과정에서 무수히 느낀 통증이건만, 고통이란 아무리 반복적으로 겪어도 적응하기 어려웠다.
“후우….”
인내해야 한다.
이 도구는 두뇌를 반쯤 학대하듯이 다루지 않고서는 정상적으로 쓸 수 없으니까.
다시금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무형의 벽이 여기저기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때, 불청객이 찾아왔다.
— 콰당!
“아얏!”
“…”
“모야! 허공에 투명한 벽이 있잖아!”
“부등변다면체 활용법 연습 중이야.”
“꼭 이렇게 투명하게 만들어야 해? 그, 흰색으로 만들면 미리 보고 피할 수 있잖아.”
“미리 보고 피하면 안 되니까 투명하게 만들어야지.”
“… 그릉가?”
“코맹맹이 소리 내지 말고 이리 와.”
“…”
“벽 치웠어.”
“응~!”
— 콰당!
아, 실수했네.
내 말을 믿고 오다가 또 벽에 부딪힌 미로가 눈을 크게 뜨고 날 본다.
어떻게 내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냐는 느낌.
고의는 아니야.
“이번엔 진짜 치웠어.”
“거짓말.”
“…”
결국 직접 가서 미로를 데려와야 했다.
“그래, 왜 찾아왔어?”
“꼭 이유가 있어야 올 수 있는 거야?”
“…”
미로는 그런 소리를 하더니, 10분 정도 내게 기대서 정말 아무 소리나 했다.
요새 부등변다면체 훈련을 위해 밥도 자주 거르고 설원에만 있었더니, 날 보고 싶었던 걸까?
뭔가 미묘한 기분이다.
날 닮아서 참 귀엽네.
…
본론은 갑작스럽게 튀어나왔다.
“예전에, 자정의 미로가 남긴 쪽지 기억해?”
“기억하지.”
“207호를 대비해 자정의 시간을 쓰지 말고 남겨두라고 했었어.”
“알아.”
“이번에 쓰면 되는 걸까?”
“…”
“모르겠어. 예전의 나는 207호에 대해 뭘 알고 있었던 거야?”
“잘 모르겠네.”
“거짓말. 아리는 알잖아.”
이 흐름은 익숙한데.
“꿈속에서 예전의 나랑 만나봤잖아!”
“그 부분은 오해라고 했잖아.”
“오해?”
“꿈속의 넌 자정의 미로가 아니야. 애초에 꿈속에 온전한 자아를 남길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러면 -”
“섞여 있어. 지금의 너와 과거의 너, 심지어 반쯤 미쳐있던 유아 퇴행 시절까지.”
“…”
여러 번 해준 이야기인데, 미로는 잘 믿지 않았다.
“자정의 나는, 음, 207호에서 고대 이집트에 떨어질 줄도 알았을까?”
“글쎄…. 그리고, 네가 고대 이집트에 떨어지는 건 확정이 아니야. 디너파티의 정보는 간접적으로 주어졌으니까.”
“왜 다 헷갈리게 말해? 좀 확실하게 이렇다, 저렇다 해야지!”
“정보가 다 애매한데 어떻게 확실하게 말해.”
“…”
“…”
“요즘 가인이가 날 볼 때마다 이상한 표정을 지어.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 하다가 안 하고.”
모두가 관문의 방을 대비하는 요즈음, 가인이는 우리 중 가장 괴상한 준비를 시작했다.
무슨 토론을 하는 것도 아니며 유산 훈련에도 관심이 없고, 그렇다고 쉬는 것도 아니다.
말없이 복도를 거닐다가 갑자기 우리 중 누군가에게 다가가더니, 5분 10분씩 뚫어져라 쳐다보는 일의 반복.
그는 통찰과 조언을 쉼 없이 사용하며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체스를 두기 시작했다.
체스의 말은 아마도 ‘우리’겠지.
처음 몇 번은 ‘그래, 내 미래가 보이냐? 어떻게 해야 부자 될 수 있냐?’하고 넉살 좋게 반응하던 묵성이도 얼마 지나지 않아 가인이를 피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가인이를 피해 다니기 시작했고, 대화창엔 ‘한가인 주의보’가 마치 경고하듯 올라왔다.
“그 녀석 나름대로 준비 중인 거야.”
“나도 알아. 하지만, 아무 설명도 없이 10분씩 쳐다보다가 갑자기 한숨 쉬잖아!”
“…”
“요즘은 좀 무서워.”
“예전엔 가인이 엄청 좋다며.”
“으악! 그, 그런 말 하지 마!”
미로는 화들짝 놀라며 일어서더니 갑자기 설원의 눈을 내 옷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나쁜 말 했으니까 벌 받아라!”
“…”
“…”
“그래, 이젠 싫어?”
“그,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좀….”
그때, 대화창에서 이젠 익숙한 ‘경고문’이 올라왔다.
김묵성 : 한가인 설원으로 가는 중.
한가인 : 대체 제 동선을 왜 매번 알리시나요?
김묵성 : 가인 주의보 발령!
“헉! 가인이 온대!”
“… 도망가든지.”
이미 늦었다.
“하하! 도망이라니, 아리야. 농담이 너무 과해.”
“…”
“으흠, 미로야 -”
“으아악!”
“…”
“미, 미로야. 할 말이 있어서 그래. 그리고, 음, 아리는 멀리 떨어졌으면 좋겠는데.”
미로와 단둘이서 대화하고 싶다는 이야기.
평소 같으면 미로가 얼굴을 붉히면서 짜증 나게 했을 것 같은데, 이번엔 깜짝 놀라서 도망가려다가 잡혔다.
“으악!”
“제발 가만히 좀 있어. 할 말이 있다니까.”
“… 둘이 즐겁게 지내.”
대체 미로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약간의 궁금증을 느끼며 호텔로 돌아갔다.
*
“미로, 시간대여기에 아리도 담겨 있지?”
“응. 지금은 오전에 아리가 – 어? 아리에게 할 말이 있으면 왜 돌려보냈어?”
“아리를 불러줘.”
*
설원에서 깨어났다.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변한 장소, 애매하게 웃는 미로, 굳은 표정의 가인.
이해했다.
난 과거에서 온 소환체구나.
상황을 파악하던 중, 가인이가 미로를 멀리 보냈다.
“뭐야? 나랑 둘이 할 말이 있어?”
“그래.”
순간, 궁금증이 들었다.
이곳은 저주의 방이 아니라 호텔 설원이다.
내게 할 말이 있다면, 지금 시간대의 ‘원본’과 대화하면 될 일이 아닌지.
“… 너하고만 상의할 수 있는 문제야.”
“그게 무슨 – 아.”
이해했다.
통찰의 힘은 주어진 근거를 바탕으로 구체화한 미래를 보는 것.
디너타임에서 207호에 관한 다양한 근거를 얻었으니, 통찰 또한 이전엔 보이지 않았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었을 터.
문제는, 가인이는 자신이 본 가능성을 우리에게 말해줄 수 없다.
말해주면 우리 행동이 달라지고, 그로 인해 본인이 본 가능성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겐 말해줘도 되겠네. 어차피 지금 나눈 대화의 기억은 원본에게 전해지지 않을 테니.”
찰나, 다채로운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시간대여기의 소환체를 ‘보안 유지가 철저한 상담역’으로 쓰겠다는 발상이 흥미롭다.
점점 모두와 멀어지는 것 같던 이 남자도 혼자서는 통찰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약간의 위안을 준다.
지금부터 알게 될 놀라운 정보를 생각하면 약간의 배덕감마저 들었다.
가인이는 다르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통찰은 예지와 너무나 닮아있지 않은가.
미래에 대한 정보라니!
마지막, 그가 상담역으로 ‘날’ 선택했다는 사실이 솔직히 기뻤다.
“그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
듣고, 답하고, 의견을 내고, 반박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거쳤다.
평소라면 그가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았을 무궁한 가능성의 편린을 들었다.
불길한 가능성.
피할 수 없는 실패.
감당할 수 없는 대가.
인간의 영역에서 반 발자국 벗어난 그에게도 상당한 두려움을 안겨주는 음울한 미래들.
“요원 일을 하다 보면 종종, 누군가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상황을 겪곤 해.”
“…”
“사실, 꼭 요원이 아니더라도 군대의 지휘관만 되어도 겪는 일이지. 죽을 확률이 대단히 높지만, 누군가는 가서 막아야 하는 방어선.”
“…”
“이때, 중요한 건 희생을 피할 수 있냐 없냐가 아니야. 누가, 어디에서 희생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희생을 가치 있게 활용할 수 있는가.”
“…”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
“도움이 됐어.”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또한, 이 시간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다음은 누구야? 네 충신?”
“… 상현 형은 신하 같은 사람이 아니야. 그냥, 믿을만한 동료지.”
나 다음으로 만날 사람이 상현이라는 점은 부정하지 않았다.
다음은 상현이고 그다음은….
…
이 시점에서 내게 남은 시간은 약 5분.
오랜 상담에 대한 가인 나름의 감사의 표시일까?
그는 5분 동안 날 떠나지 않고 장난스러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 이제 이별이네.”
“이별이라니? 난 지금도 호텔에 있어. 미래의 내게도 친절히 보답하도록 해.”
이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가인 군, 이건 무엇입니까?”
“봉투죠.”
“그건 보면 압니다. 내용물이 무엇인지 묻고 있는 겁니다.”
“207호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펼쳐보세요.”
“그 순간이 언제입니까?”
“그때가 되면 알아요.”
“… 알겠습니다.”
*
“가인 씨, 이게 뭔가요?”
“봉투죠.”
“그, 그건 보면 알죠. 내부에 뭐가 들었어요? 작은 종이?”
“207호에서 엘레나 차례가 시작할 때, 바로 확인하세요.”
“시작하자마자?”
“네.”
“그…. 시작하자마자 해줄 충고면, 지금 미리 해줄 수는 없나요?”
“네. 안 됩니다.”
“… 알겠어요.”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38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중앙 홀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마침내 그날이 왔다.
우리가, 두 번째 ‘관문의 방’에 들어가야 하는 날이.
— 꿀꺽!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침을 삼키는 소리.
우리 중 가장 대범한 사람조차 이 순간만큼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무, 문 엽니다?”
진철 형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자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중간히 시간 끌면, 호텔이 또 뭐 이상한 짓을 벌일 텐데.”
“멧돼지 이놈아, 그냥 말하지 말고 열어!”
— 벌컥!
2층에 숨겨진 모든 인과의 종착점.
우리가 찾아 헤맨 다양한 의문의 답이 숨겨진 장소.
그 끝에서 모두가 탈출할 수 있다고 호텔이 약속한 방.
마침내 207호의 문이 열렸다.
이제 시작이다.